본래 날씨에 대한 경고라면 응당 눈비바람이나 온도에 관해야 하는 것이다.
통상주의보 라는 말은 내가 살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아닐 수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안전 안내 문자] [행정안전부] 전국에 폭염주의보 발효 중; 논, 밭 작업, 건설현장 등 야외활동 자제, 충분한 물 마시기 등 건강에 유의바랍니다.
애먼 날마다 치솟는 온도에 질리지도 않고 찾아오는 안전 안내 문자 메시지는 이제 각 글자가 친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기온이 얼마나 극적인가에 따라 뒷자리가 주의보인지 경보인지 나뉘는 정도의 차이도 밥상머리에 배추김치가 올라가느냐, 총각김치가 올라가느냐 수준이라 비유해도 옳을 것이다.
그나마 신경이라도 쓰는 사람이라면 입을 옷 색깔을 좀 더 밝게 바꾸는 정도가 되리라.
더위와 습도에 풀 죽어가는 머리만 벅벅 긁을 뿐이다. 폰은 또 조용하게 진동을 내뱉는다. 왜냐하면 내가 알림 소리조차 듣기 짜증났기에, 볼륨 버튼 위의 음소거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눌렀기 때문이다. 말매미 소리에 묻혀가는 전자기기의 은밀한 발작도 곤두선 내 신경을 긁으니 당연지사 나의 무의식은 미지근한 휴대폰으로 손을 옮긴다.
16:47 [안전 안내 문자] [행정안전부] 전국에 통상주의보 발효 중; 기온 주의
행정안전부도 더위 먹고 겨우 10~20도 부근의 기온도 못 버티니 이 꼬락서니에 다다랐구나, 하고 여겼는데, 통상주의보?
누가 통상을 주의하는가?
화면을 꺼도 아른거리는 글자다. 통상주의보.
정상이 귀해지니 사람들이 적당히 입고 나가는 법을 잊었나 싶다. 누가 겨울 코트를 입고 쪄 죽었나, 티셔츠를 입고 얼어 죽었나.
애초에 미지근한 날씨에 누가 문제를 겪나. 좀 높은 온도로 에어컨을 틀거나 선풍기 틀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내려가는 게 온도인 것을. 국가 단위로 날 비꼬려고 드나 싶어서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옷을 입고 있다.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언제나 처럼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 오후 5시를 목전에 둔 금요일의 세상은 지극히 당연하게 순환한다.
시선을 거두고 컴퓨터에 앉아 구글에 검색을 돌려본다. '통상주의보'. 관련도 없는 기상청 얘기만 주르륵 뜬다. 그 어디에도 통상주의보 라는 말은 없다. 관련 정보는 '주의보' 검색어에서 파생된 폭염주의보나 한파주의보 주의점 모음 뿐이었다.
유튜브에 공영 방송사 이름을 검색해 최신 라이브를 본다. 정치사회 이야기만 주구장창 흘러나오고, 날씨 이야기는 코빼기도 비추질 않는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들은 클로징 멘트로 '요즘 날씨가 덥고 습하니 주의하고 건강 챙기라'는 말을 표면적으로라도 챙겨왔었다.
휴대폰을 다시 켜, 지금 내 주변 지역의 온도를 날씨 앱으로 확인해봤다. 애석하게도 위태로운 통신을 유지하던 내 와이파이는 숫자를 도출해주질 않는다.
창문을 열어 팔 하나를 내놓아본다. 습도는 적당하다. 온도는 미지근하다. 비는 오지 않는다. 이런 기온엔 긴팔을 입어도 반팔을 입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문득 어색함이 들어 밖을 다시 쳐다본다. 사람들은 옷을 입고 있다. 말 그대로 옷을 입은 채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나와 다른 점은, 그들은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나는 옷을 입고 집 안에 앉아있다는 점이다.
나도 그들과 같이 행동하기로 했다.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 집 주변을 산책한다. 특별한 점은 없었다. 어둑해져가는 하늘이 저물어가는 노을과 겹쳐 황푸른 색을 낸다.
모두가 무관심하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정면을 바라보며 각기 다른 속도로 걸어간다. 그들은 모두 옷을 입고 있다.
묻기에는 새삼스럽다. 그러나 묻기에는 분명 더욱 궁금해지기만 할 것이다.
근처 편의점에서 담배를 한 갑 사면서 직원에게 묻기로 한다.
"사천 오백 원 입니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여기 있습니다. ...혹시 문자 받으셨나요?"
"어떤 문자 말씀이세요?"
"통상주의보라고, 저도 이게, 처음 들어보는 안내 문자가..."
"아, 어..."
...
골목에서 들이키는 담배 연기가 오늘따라 묵직하다.
사람들은 옷을 입고 있다. 나도 옷을 입고 있다. 날씨는 미지근하다. 날씨 뿐만 아니라, 집에 들어가면 내 방의 온도도 미지근할 것이다.
온 몸이 떨리지만 오한이 느껴지지 않는다. 생각으로 뜨거워지는 머리완 다르게 땀 한 방울 나지 않는다.
어제 먹고 잔 두통약이 문제였을까? 오늘 먹은 점심이 잘못되었나? 담배를 끊어야 하나?
같은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년, 손가방을 들고 길을 걷는 여인,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
모두 허공을 응시하며 걷고 있다.
폐를 거쳐 곱게 뿜어져 나오는 내 날숨과 시선도 허공을 맴돈다.
떨리는 손으로 허겁지겁 피운 담배 한 개비는 털지 않은 하얀 재가 위태로이 매달려 있다.
그 중 일부가 손등을 툭 치고 바닥을 향해 힘없이 떨어진다. 이미 불이 꺼진 재는 닿아도 뜨겁거나 차갑지 않다.
그저 비껴만 바라보아도 좋았을 것을.
사람들과 나는 옷을 입고 있다.
유난히 조용한 금요일의 저녁이다.
사람들과 나는 옷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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