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마법의 주문이 있다.

 

가르메지락마르기.”

 

이 주문을 알게 된 것은 약 십여년 전.

군 제대 후 집으로 향하는 버스 터미널에서

나는 한 걸인을 마주쳤다.

 

평생을 햇볕과 노동에 시달려 온 듯 검게 탄 피부

야위어 홀쭉하게 드러냔 뺨에 초점이 맞지 않은 눈동자

땀과 오물에 쩐내가 가득한 옷을 걸친 채

노인은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모두가 노인을 힐끔거리며 피했다.

나 역시 그러했지만 재수가 없어노인은 내게 쓰러졌다.

나는 곧바로 노인을 뿌리쳤으며 그는 바닥에 엎어졌다.

 

곧바로 죄책감이 일어 노인을 부축했지만

이미 노인은 눈을 까뒤집고 마지막 숨을 쥐어짜냈다

희미하게 토해낸 것이 바로 여덟 글자 주문.

 

가르메지락마르기.”

 

얼마 뒤 구급차가 도착했고 나는 경찰서로 끌려갔다.

하지만 노인의 죽음은 오랜 지병 때문임이 머잖아 밝혀졌기에

나는 뜻하지 못한 재앙을 불러온 노인을 원망하며 귀가했다.

 

가르메지락마르기.”

 

문득 그 주문이 떠오른 것은

인생이 거의 파멸 직전까지 치다른 시점이었다.

가벼운 생각으로 뛰어든 코인 투자.

애당초 시드 머니였던 군 적금은 오래 전 사라져버리고

대출이며 개인빛으로 끌어모은 일억의 빛이 날 옥죄었다.

 

도무지 올라갈 생각하지 않은 차트를 모니터에 띄우고

어디서부터 어긋나 버린 걸까로 시작된 지난 날들의 관측

어째서인가 문득 그 의미 모를 구절이 생각났던 것이다.

 

가르메지락마르기.”

 

차트가 급격하게 변동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어떤 전조도변수도 없이 가격이 솟구쳤고 단 이틀만에

나는 잃어버린 모든 돈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가르메지락마르기.”

 

그 말을 되뇌일 때마다

모든 것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가르메지락마르기.”

 

어떤 품목의 매수를 고민하며 주문을 읊으면 가격이 내려가고

내가 매수함과 동시에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다.

 

가르메지락마르기.”

 

주문의 힘은 단순히 코인과 투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부동산은 물론이오각종 건강과 인간관계 역시 주문을 읊으면

거짓말처럼 막혔던 운수가 틔인다.

 

가르메지락마르기.”

 

언제인가 한 번목적 없이 주문만을 흥얼거렸을 때

나는 즉시 목구멍에서 솟구친 피를 토했고

그동안 누린 행운의 응보가 찾아왔다 생각해 병원을 찾았으나

들려온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나도 모른 채 위 안에서 자라고 있던 악성 종양이

자연치유되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르메지락마르기.”

 

그 이후로 주문의 비호 아래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가르메지락마르기.”

 

더 이상 쌓는 것이 무의미해질 정도의 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감에도 점점 더 왕성해지는 육체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헌신하는 수많은 인연들.

물론 그들 중 누구에게조차 주문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진 않았다.

 

가르메지락마르기.”

 

너무나도 쉽게 돌아가는 세상에 염증을 느껴서일까

아니면 행복과 기적을 독점한 것에 대한모종의 책임 의식일까

나는 쌓아 올린 부를 세상과 나누기 시작했다.

세계의 어려운 이들에게 다양한 복지와 인프라를 베풀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것으로 세상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다.

산더미같은 재산은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고

세계의 헐벗고 굶주린 이들은 끊임없이 나를 향해 손을 벌렸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이었지만 쏟아지는 물 역시 무한했다.

 

가르메지락마르기.”

 

세월이 얼마쯤 지난 후

나는 인류사 손꼽히는 성자라고까지 불리고 있었다.

하긴 기적을 자아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성자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겠지.

 

어느 날 누군가가 찾아왔다

이름조차 생소한 어떤 종교 재단의 이사장이라 자신을 소개하는 그는

자신들의 종교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수양 단체이며

인류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종말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라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래서그 종말을 구원하기 위해 무얼 하시오?”

 

당장 사람을 시켜 그 사기꾼을 쫓아낼 수도 있었지만

지루함 때문일까나는 맞장구를 치는 척 물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읍니다.”

마음을 모은다라기도라도 하면서 말요?”

 

그렇습니다하면서

사기꾼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무언가 바라며 기도문을 읊습니다....”

난 없소아쉽게도 종교가 없거든.”

 

거짓말이었지만 거짓말이 아니기도 했다.

주기도문이나 금강경혹은 기복을 위해 비는 수많은 기도

그 따위 사기와 내 주문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으니까.

 

그런 기도에 시간을 낭비할 바엔나와 타인을 위해

한 방울 땀이라도 더 흘려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사기꾼은 고개를 숙였다.

 

저희 역시 그와 같은 생각으로 정진하여 왔지요.”

기도를 한다고 하지 않았소.”

 

자신의 앞뒤 말조차 맞추지 못하는 사기꾼에게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기도를 하나꺼내지 않고 담을 뿐이지요.”

그게 무슨 소리요?”

기도란 결국 뜻을 담는 그릇이요그 자체로는 말일 뿐입니다.”

 

사기꾼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기도문을 읊는 누군가가 진정 맑은 마음으로

타인을 위한 뜻을 담는다면그 뜻은 곧 말 자체에 담깁니다.

구원이 필요한 중생이 다시 그 기도문을 읊음으로서

뜻은 곧 그를 돕는 힘이 되어 작용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꺼내는 기도와 담는 기도라고 사기꾼이 말했다.

 

그렇기에 과거 수많은 종교의 수행자들이 중생을 위하여

경전을 외며자신들의 담고 뜻이 담긴 구절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조금이라도 생의 고통을 덜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허나 진실된 수행자가 없고고통받는 이들이 늘어난 지금

기도문들엔 더 이상 사람들을 도울 힘이 남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서?”

창시자께서는 세상의 이치를 통달하여 먼 앞날을 내다보셨고

이 세상에 닥칠 종말을 예견하셨기에 수행자들 이외에는

기도문을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그렇게 저희 종단은 꺼내지 않고

오로지 담기만 하여 지난 천오백 년간 기도문을 간직해 왔습니다.”

 

꺼내는 것은 단 한 번

언젠가 인류에게 닥쳐올 끔찍한 재액을 막아내기 위해.

 

하지만... 한심하게도 제 대에 이르러 한계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헌금을 바칠 신도가 없는오직 수행자들만의 종교.

그런 것이 당연히 오래도록 지속될 리가 없다.

천오백 년 간 지속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겠지.

 

아니... 애초에 천오백 년이고 뭐고

그런 단체가 실제로 존재할 리 없겠지만.

 

그 종말이라는 건 언제 오는 거요?”

이제 단 일 년....”

그것 참으로 무시무시하군.”

 

나는 웃으며 손을 까딱여 내저었다.

 

재밌게 들었소그만 가 보시오.”

회장님!”

 

사기꾼이 창백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큰 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다만... 다만 저희 수행자 삼백 명이

일 년만 생활할 수 있도록만 도와주신다면....”

그만 가 보라니까.”

 

나는 책상 위의 벨을 눌렀다.

경호원들은 신속하게 들이닥쳐사기꾼을 밖으로 끌어냈다.

 

회장님회장....”

 

점점 멀리 메아리치는 목소리가 사라지고

문득 나는 피곤함을 느꼈다.

아마 잠이 부족한 것이 원인일 것 같다.

어제의 파티는 새벽까지 이어졌고나도 이제 젊지 않으니.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가르메지락마르기.”

 

흐릿했던 머리가 맑아지고활력이 샘솟는다.

나는 경호원들이 사기꾼을 집 밖으로 쫓아냈음을 확인했고

오늘은 세 번째 부인의 집에서 묵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