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너가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건 내 후손이라는 소리겠지. 물론 내 직계 자손은 아닐 거야.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나는 얼마 안 가 죽을 예정이거든. 그러니까 너는 나를 찾지 않아도 돼. 게다가 집에서 일종의 금기가 될 테니까 집안 어른들께 여쭤보지도 말고.


나는 그래, 이 현상을 최초로 기록한 사람, 발견한 자로 기억해줘.


너가 이 기록을 힘을 잃기 위해서, 아니면 우연히 발견한 건지는 나로선 알 수 없겠지만 너가 이 글을 발견하기 전까지 너가 외롭지 않았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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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너는 다른 말로 지칭할 수 있겠지만 나는 힘이라고 명명한 그 기이한 것. 한 명의 어머니에서 한 명의 딸에게 유전되는 그것은 언제부터 우리 안에 있었는지, 애초에 우리의 것이 맞는지, 단순 오래된 정신질환인지 나는 어느 것 하나 알지 못한단다.


나는 단순히 이 현상을 알아차렸을 뿐이니까.


그러니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이 글을 읽은 거라면 정말 미안하다. 나의 기록은 어느 것 하나 알려주지 못한 채 너에게 한 줌 재같은 위로만 건네는구나.


그리고 나의 계획은 결국 실패했음을 알아주렴. 앞에서 내가 곧 죽는다고 했었지? 물론 내 정신적인 문제도 어느정도는 관여를 했겠지만, ...나는 이 힘을 끊고 싶었다.


막을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뇌를 침범하며 매일 밤 상실의 고통과 육체적 아픔을 경험하다가 끝끝내 돛이 찢어지고 닻을 잃어버려 자기자신이 누군지조차 모르고 풍랑에 휩쓸리는 끔찍한 저주...


나는 슬픔만이 남는 그 악몽을 내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죽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느낌이 범습해왔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그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못했다.


이름도 모르는 아이야, 나를 무책임하다며 욕해도 좋다. 결국 나는 죽음으로써 이 저주에서 달아나버렸으니까. 그러나... 그러나, 부디 너의 이름을 잊지 말아주기를, 너는 인간인 너로서 존재해주기를 간절히 부탁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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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추론한 것이니 참고하렴. 언제든 수정하고 덧붙일 수 있단다.



1. 힘의 개방은 4~7살 때 일어난다. 나의 경우엔 5살 때 발생했고, 그 전까지의 꿈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방의 조건은 한 번 죽음을 맞이하는 것.


5살 봄, 꿈 속에서 저승에 갔었다. 어렸을 적 폐렴에 수차례 앓아 호흡이 얕았고, 그게 원인이 된 모양이다.


그 꿈을 기점으로 오랜 꿈이 시작됐다.



2. 그렇다면 자고있는 몸은 어떻게 될까? 모른다. 다만 꿈을 꾸는 동안 몸이 다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에 대한 추론은 뒤에서 다루자.



3. 꿈에서의 시간은 세계마다 다르다. 현실과 유사한 정도의 시간이 흐른 적도 있고, 현실과 동떨어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적도 있다. 각각 6시간, 87년 정도이다.



4. 세계마다 급이 있다. 급이 높은 세계는 태초에 가까운 신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세계라면 더더욱 사고치지 말 것. 애초에 사고 자체를 안 치는 게 안전을 최소한으로 보장할 수 있다.



5. 꿈에서는 의식을 차리는 편이 좋다. 우리가 우리임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이 가장 큰 목적이지만, 언제나 우리는 현실 세계의 사람일 뿐, 꿈 속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꿈에 갇히는 일은 피해야 한다.


그 이유는 꿈에서 다른 세계만 방문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아닌 것들(대표적인 예: 귀신)이 우리를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을 본다면 절대 반응하지 마라.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건, 그들도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소리이다. 그들에게 절대 붙잡히지 말 것. 거리가 가까워지고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싸우는 걸 추천한다.



6. 꿈을 꾸기 전에 의식을 차려보는 연습할 것을 추천한다. 나의 경우에는 잠들었을 때 일어나를 거듭 외치니 성공했다.


만약 성공했다면 반투명한 막들이 보일 것이다. 맘에 드는 곳 아무데나 들어가도 좋고 안 들서가도 좋다. 그 막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자 그 세계의 보호막으로 추정된다.


막에 들어설 때 느낌은 축축하게 부드럽게 따뜻하다. 불쾌한 느낌은 아니다.



7. 가끔 막이 우리를 튕길 때가 있을텐데 그건 우리를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세계의 의지이다.

억지로 뚫지 말고 다른 곳으로 들어가든 가만히 있든지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8. 다른 세계를 돌아다닐 때 처음부터 영혼의 상태일수도 있고 빙의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의지로 결정할 수 없으며, 만약 빙의될 시 오감이 모두 느껴진다.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 가까워지면 우리의 영혼과 그의 영혼이 뒤섞이면서 우리의 영혼이 천천히 밖으로 나온다. 이때, 그의 영혼과 완전히 융화될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의 영혼과 우리의 영혼은 마치 물과 기름같아서 절대 섞이지 않는다.



9. 예지몽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예지몽을 꾸는 조건은 단 하나.


24시간 안으로 우리가 죽을 때다.



10. 2번과 9번 항목에 관련된 것이자 우리가 힘을 지니게 원인이다.


힘은 모계유전되는 것으로 한 세대 당 한 명의 자손에게 발현된다. 힘이 발현된 자는 그 다음 세대를 출산할 때까지 죽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을 수 없다.


마치 세계가 힘이 발현될 때의 죽음을 막으려는 것 같다.



11. 힘이 사라지는 때는 16~19살이다. 사실 사라졌다고 표현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는게, 힘이 사라졌다고해서 완전히 꿈을 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말 간혹 꾼다.


아마 힘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부터 소강상태에 들어간 힘을 보유한, 대를 잇지 않은 자를 숙주라고 명명한다.


...만약 소강상태라면 나는 죽는 것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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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어릴 적 나는 공허에서 짐승을 봤다. 아름답고 추악하고 여자이고 남자인 그것에게는 대립되는 모든 개념이 존재했다. 그것은 나, 아니 인간의 이해 범주에 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것이 세계로 풀려나는 날, 세계는 멸망한다. 모두에게 공평한 밤이 찾아온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살아있기에 패배한다.


그리고, 힘은 그날을 위한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함인지, 결말이 정해진 승리를 쟁취하기 위함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날이 올 때까지 평범한 여자아이의 삶을 살아줬으면 해. 사랑을 듬뿍 받고 그 사랑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줘. 그래서 그날이 왔을 때 사무치게 그리워하지 않기를, 되뇌이지 않기를, 메마르고 캄캄한 공허 속에서 한 줄기 은하수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