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두려움이란 뭘까요.
무언가 찾으려는 것처럼 빨대로 얼음이 다 녹아 밍밍해진 커피 속을 뒤적이던 정 선생이 물었다.

밖은 퇴근시간이 가까웠음에도 환하다. ACAN 컨설팅사의 임직원에게 여름은 예기치 못한 잔업과 비보의 계절이다.
사내 정보지원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여름철의 이현상은 발생 빈도가 타 계절대비 적으나 사상, 실종률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한다.
실무적으로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수치다.
동적이며 특정할 수 있는 객체의 형태를 띄는 이현상이라면 괴이, 정적인 객체들의 집합이 하나의 이현상으로서 기능한다면 마경.
이놈이고 저놈이고 모두 여름철에는 저들마저도 홀린 것처럼 사람을 잡아먹는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는군.”
“괴이나 마경은 으레 사람들이 두려워할 법한 곳에서 주로 출현하잖아요. 정말 이상하거나 강력한 애들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긴 한데.”

사실이다. 일례로 그것들이 벌건 대낮에 출현하였다는 사내 긴급통지는 연에 한 건 받을까 말까 한 수준이다.
다만 그것들이 빛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님은 여러 증언과 희생을 통해 확인되었다.

“정 선생 생각은 어때?”

그녀는 모니터의 뿌연 화면보호기를 잠시 노려보다 말을 이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거 아닐까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어떤 극심한 거북함?
미지에 대한 공포라는 쉬운 말이 있긴 한데, 그건 뭐랄까.. 좀 포장성이 짙은 것 같아서.”
“포장성?”
“제가 밤중에 가로등 없는 시골길 운전하면서 느끼는 쎄함이나, 어디 클럽 같은데서 모르는 남자가 술잔 같은 거 건넬 때 느끼는 거부감이나.
전부 따지고 보면 두려움이 기저에 있는 거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네.”

정 선생 쪽으로 기울였던 의자 등받이를 다시 곧추세우며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다.
지금은 오후 5시 32분. 회사 방침상 현장이 아니라면 야근은 엄금 사항이다.

시야의 테두리에 어렴풋이 잡히는 것은 최 대리가 말꼬를 트기 전까지 마무리 중에 있던 제안서다.
나흘 전, 유달리 무더웠던 그 날에 접수된 이현상 대응 RFP(Request for Proposal, 제안요청서)는 그 내용마저 어딘가 눅눅한 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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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제안 안내

1) 프로젝트명(가칭) : 사춘기(思春期)
2) 사업 기간 : 2024년 8월 중순 (계약일로부터 1달 이내)
3) 사업 지역 :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동 ■■■길 ■■■■로 ■■■■ 상가
※ 마경 소재지 관련 상세 정보 및 파악된 진입 방법은 수임사 대상 별도 전달 예정
4) 사업 범위 : 발생 이현상의 완전한 소멸, 혹은 무력화
※ 대응방안 수립, 문서화 및 피해예상자 대상 배포 고려 불가함


Ⅱ. 프로젝트 개요

1) 이현상 구분 : 마경 (1)개소 및 동 마경에 종속된 것으로 확인된 (6)체 이상의 괴이

2) 이현상 개요(마경) : 동일 건물 내 총 2개의 연속된 층으로 구성된 학교교과교습학원(이하 “학원”)의 형태를 띔.
사업 지역의 ■■■■ 상가 건물의 일부 층을 “덮어씌우는” 형태로 출현. 상세 출현 주기 및 조건은 명백히 규명되지 않았으나, 
피해 및 생환 사례(후술) 고려 시 매해년의 특정 월도, 특정 시간대의 만족이 출현 조건인 것으로 예상.

3) 이현상 개요(괴이) : 제안 시점 기준 마경 내부 상주 개체 2체외부 배회 개체 4체로 구성. 전수 인간형.
전 괴이체는 외견상 4도 이상의 화상흔(피부 전층 손상으로 인한 전신 상아색 가피, 부종 및 진물 등) 으로 식별 가능함.

- 마경 내부 상주 2개 개체 중 1개 개체 적대적, 1개 개체 중립적. 2개 개체 모두와 제한적 소통(와해된 언어, 대화 상호성 낮음) 가능.

- 마경 외부 배회 4개 개체 전수 대체적으로 중립적이나 특정 조건 하에 적대적 성향 표출하는 것으로 보임.
이현상 발생 시 마경 출현 건물 인근에서 집결, 30분 내외 경과 시 산개하여 개체별 상이한 구역 범위(별표 2. 참조)를 빠른 속도로 경보하듯 배회.


Ⅲ. 주요 피해 및 생환 사례

+ 피해(확인 사례 총 10건)

1. 피해자 : 김O지 (11세)
피해발생일시 : ‘15년 8월 2일, 오전 00:31시
발생 피해 : 사망
피해 상세 : 마경 외부 배회 개체 중 1체가 수면 중이던 피해자를 방 창문 너머로 집어든 후 배회 범위 이탈,
이후 인근 OO산 중턱에서 ■■가 ■■된 상태로 발견. 남은 시신은 발견되지 아니함.

2. 피해자 : 권O혁 (13세)
피해발생일시 : ‘16년 7월 25일, 오전 00:12시
발생 피해 : 사망
피해 상세 : 친구 신OO군의 집에서 늦은 귀가 중 미상의 이유로 ■■■■ 상가건물 진입.
이후 10분 내외 동 건물 내 마경 출현을 포함한 이현상의 발생이 확인되었으며,
익일 아침 동 상가건물 ■■■ 베이커리의 오븐 속에서 극심한 전신화상을 입은 상태로 발견.
인근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으나 오후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였음.

3. 피해자 : 박O희 (51세)
피해발생일시 : ‘17년 8월 12일, 오전 00:44시
발생 피해 : 실종
피해 상세 : 산개 전 집결 상태의 외부개체 4체와의 조우 사실을 확인.
10여분 후 산개하여 배회를 시작한 괴이는 총 3체였으며, 배회에 나서지 않은 괴이 1체는 익년의 이현상 발생 시에 다시 목격되었으나
박O희씨는 이후로도 발견되지 아니함..



9. 피해자 : 오O욱 (14세)

피해발생일시 : ‘23년 7월 11일, 오전 00:33시
발생 피해 : 실종
피해상세 : 실종 시점 1시간 전 자택에서 아버지와 크게 싸운 후 집을 나선 것으로 확인.
이후 재학 중이던 중학교 운동장을 40여분 간 서성인 후 자택 인근의 ■■■■ 상가건물 입구에 걸터앉은 상태에서 이현상 및 마경화 발생하며 실종.

10. 피해자 : 오O철 (55세)
피해발생일시 : ‘23년 8월 25일, 오전 00:34시
발생 피해 : 실종
피해상세 : 실종된 아들 오O욱 군을 찾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친인척인 본 기관 소속 요원과의 접촉을 확인.
이후 조사 과정에서 해당 요원은 오O철씨에게 아래의 생환사례 관련 정보를 전달하였음을 자백.
이후 매일 오O욱군의 실종 시간대에 ■■■■ 상가건물의 입구에 앉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8월 25일의 이현상 발생 후 다시 발견되지 아니하였음.

※ 아래의 생환절차를 시도하기 전 마경 내 상주하는 적대적 괴이체를 먼저 마주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나,
생환절차 자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음.


+ 생환(확인 사례 총 1건)

1. 생환자 : 이현상식별국 소속 요원 성OO
생환 일시: ‘16년 7월 22일, 오전 01:32시
생환 시 피해상황 : 경미한 찰과상 및 메스꺼움을 제외하고는 전무.
생환 당시 상황 상세 : 조사 및 1차적 실종자 수색을 목적으로 마경 탐색 자원.
탐색 개시 10여분 이후 학원의 교무실 창문 너머로 적대적 괴이체에게 발견됨.
적대적 괴이체의 추격을 피해 도주 중 은신을 목적으로 2층의 원장실에 진입, 이후 중립적 괴이체 조우.
대화 후 암전과 함께 정신을 잃은 성 요원은 익일 동 상가건물 인근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 해당 중립적 괴이체와의 대화 전문은 아래와 같음.


성 요원 : 원장선생님. 저 알아보시겠어요?

괴이체 : 차 마셔 과자 좋아 열기구는 여의도 오리보트는 한강 하늘강 모두 둥둥

성 요원 : 원장선생님. 저 기억하시죠. 성준이 엄마.

괴이체 : 성준이는 단어 두개 지민이는 단어 세개 성혁이는 보강 영재는 나머지 남호도 보강

성 요원 : 저 시간이 없어요. 밖에 김 선생님이 저 찾으시는 것 같아요.

괴이체 : 사춘기와 내신잡는 중학생활 사전준비 엉덩이는 무겁게 가방도 무겁게 마음도 무겁

성 요원 : 원장선생님, 김 선생님이 문 앞까지 오신 것 같아요. 제 말 대충은 알아들으시잖아요. 하다못해 아이들이라도..

괴이체 : 열기구는 여의도 오리보트는 한강 하늘로 강으로 높이 멀리 둥둥

성 요원 : 그 시간까지 안그러셔도 되는 거였잖아요. 10시 넘어 있는거 불법이었잖아요.. 이제 제발 그만.. 애들이 그 뜨거운 데서..

괴이체 : ■■■■■■■■■■■■■■■ (해석불가의 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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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이맘때 이현상치고는 굉장히 클래식한데요?
재난현장 마경화, 피해자들 괴이화, 영향권 안에 직접 있어야만 피해 발생.. 그나마도 연간 한건 있을까 말까네요. 요새 식별국은 이런 것도 발주내나?”

어느새 등 뒤로 다가와 모니터 한 켠을 차지하는 제안요청서를 빠르게 훑던 정 선생이 말했다.

“최초 발생일자가 15년이야. 생환절차도 얼추 소통 가능한 중립적 괴이체한테 말 몇마디 하는 것 정도면 무난한 편이고.
학원가니까 지역폐쇄는 무리겠지만..”
“발생조건도 안다, 대응법도 안다. 그런데 어째서 작년까지도 피해가 이어지고 있냐는 말씀이시죠?”
“피해는 이어질 수 있어. 이현상이라는게 그런 거니까. 내 마음에 걸리는 건..”

아차, 하려던 말을 속으로 삼킨다. 투입인력계획에는 정 선생도 포함되어 있다.
이 업계에서 몇 년 있다 보면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부정의 매개인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휘우, 스크롤을 내려 제안가격을 확인한 정 선생이 헛숨 내뱉듯 휘파람을 불었다.

“뭔데요? 뭐길래 이렇게 단가가 세지?”

현재 시간은 5시 52분. 제안서 최종본의 상단에 적힌 ACAN의 첫 글자 위 작은 체크박스에 까만 체크표시를 마친다.

A. 파괴(Annihilate)
C. 은닉(Conceal)
A. 분석 및 파훼(Analyze and Ascertain)
N. 협상(Negotiate).

이현상에 대응하는 4개 기본방침으로, 식별국은 제안요청서에 파괴를 제외한 그 무엇도 선택지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식별국 측 담당자에게 제안서와 견적표를 발송하며 에두른 표현을 고른다.

”정 선생, 아까 두려움이란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거북함이라고 했지.”
“네, 그런데요?”
“좋은 의견이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라. 내 생각에 두려움이란 거북함 이전에 당황스러움에 가까워.”
“당황스러움이라면 어떤..?”
“없어야 할 것이 있거나..”

제안서는 발송된 지 오래지만 나의 시선은 여전히 제안요청서 한 켠에 고정되어 있다.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에 느껴지는 당황스러움. 그게 두려움의 기저조건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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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이현상 전담 대응집단을 개설하여 운영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까닭 모를 기괴한 수칙들을 염불처럼 외며 마경을 넘어 괴이와 마주하는 것, 또한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 일체를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것은 대부분의 공무원 지망생들이 희망하는 바가 아니므로.

그러나 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투자금, 마경이 우주 한복판에 있더라도 수칙서를 발송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술력,
그리고 돈이라면 괴이의 발에 입맞춤이라도 할 정예 인력을 갖춘 사설 자문사들은 하나 둘씩 생겨났더랬다.

이 일을 계속하다 보면 여름철에 공포영화며 공포 인터넷 웹툰 따위가 유행하는 것이,
인류가 집단적으로 경험한 어떤 실체들에 대한 나름의 표현법임을 깨닫게 된다.

코끼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난생 처음으로 동물원에 다녀와
그림일기에 무엇일지도 모를 동물을 엉성히 그려보이듯,
우리는 공포스러운 창작물을 만들고, 또 향유하며 이 계절에 특히 두려운 그것들의 윤곽을 더듬고 있는 것이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눈을 들어 정 선생의 의문스러운 표정을 마주한 순간 오후 6시를 알리는 사내 방송음이 울렸다.
그때 그곳에 있어야 할 것이 정말 없었는지는 사업 수임 후에야 알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