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 친구 목소리가 들려요."

여자 A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비참하게 메마른 목소리는, 마치 입속으로 들어간 모래알을 씹어 뱉는 것처럼 건조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알아요! 안다고요! 하지만 눈을 감으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요. 꿈속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있잖아, 라는 단말마 말씀이시죠."
"맞아요, 그거…! 아아, 그녀는 아직도 절 원망하는 게 틀림없어요."

새된 음성으로 비명을 읊조린 A는 깡마른 나뭇가지처럼 볼품없는 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처방해드린 약은 계속 드시고 계신 거죠?"
"하…! 그 효과도 없는 알갱이들이요? 아무렴요. 그거라도 먹어야 잠이 오니까!"
"약은 어디까지나 환자분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치료는, 환자분의 의지에 달려있어요."
"무슨 의지? 차라리 이대로 죽을까, 하는?"
"후우, 대화를 바꿔 보죠."

상담사는 고여있는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후, 하고 바람을 불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제가 그 건물을 탈출했을 때요?"
"아니요. 그보다 더 전으로, 환자분과 친구분이 갇혀있었을 때로요."

그 두려웠던 순간을 다시 상기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듯 A가 미간을 있는 대로 구겨뜨리자, 상담사는 양손을 가라앉히는 제스처를 취했다. 감정을 누그러뜨리라는 의미였다.

"과거를 되짚어 죄책감이 머물러있는 상황을 곱씹으라는 게 아닙니다. 그때의 그 상황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써 멀리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라는 의미입니다."

A는 꽤 신빙성 있는 상담사의 설득에 납득했다. 그리고 곧 수긍하여 입을 열었다.

"이미 들어 아시겠지만, 저랑 친구는 심령 스폿을 탐험하는 체험단 ■■■■ 소속 멤버예요."

웅얼거리는 말투엔 반쯤 체념한 것처럼 적극성이 일절 묻어나지 않았다.

"저희가 갔던 그 건물 역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거죠. 워낙 외진 곳이기도 하고, 휴가철도 다 지나서 평일에 잡은 모임 약속이라 그 자리엔 저와 그 친구만 있었어요."
"어떤 건물이었죠?"
"다시 생각해도 끔찍해요! 다 떨어지고 낡아서 뭐라고 적힌 지 알아볼 수조차 없는 간판, 온통 깨진 창문들 그리고 을씨년스럽게 휘날리는 커튼까지…. 심령 스폿이라는 단어를 그림으로 표현해놓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음침한 곳이었어요."

A는 갈라진 목소리만큼이나 목이 탔는지 잠시 내려놓았던 찻잔을 다시 들어 입술을 적셨다.

"거기서 무얼 봤죠?"
"하아……. 소문의 귀신이요."
"어떤 소문?"
"그 건물 귀신이요. 그 건물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기생하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잔을 동아줄처럼 거머쥔 그녀의 손가락이 미미하게 떨렸다.

"어둠 속에 기생하고 있다고요?"
"네. 하지만 손전등이나 핸드폰 라이트로 비춘다고 해서 보이지는 않아요. 그저 어둠 속에 무언가 있다는 위화감만 들 뿐이라고….."
"위화감이요?"
"맞아요, 위화감. 그리고 그걸 인지한 순간부터가 정말 위험하다고도 했어요."

A는 아직도 그 존재에게 쫓기고 있는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몸을 바짝 낮추며 말했다.

"인지한다?"
"네. 그것이 어둠을 벗 삼아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그때는 반드시 불을 꺼야 해요."
"불을 끄면 더 위험한 것 아닙니까? 어둠 속에 사는 존재일 텐데."
"아뇨, 아뇨! 그러니 더더욱 빛을 차단해야 해요. 빛이 있는 순간, 그것도 저희를 인식할 테니까요."

점점 더 낮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엔 긴장감이 바짝 서려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리네요?"
"네, 맞아요."
"흠, 어두운 공간에서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같이 온 동료가 어디 있는지도 확인하기 힘들 테고."

상담사가 자못 진지한 투로 물었다.

"괜찮아요. 그것은 '대화'를 인식하지는 못하거든요."
"대화?"
"네, 대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무언가가 있다, 귀신이다, 너 뒤에 있다, 내 옆에 있다, 따위의 존재를 지목하는 문장은 인식하고 공격하지만, 자연스러운 대화는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는 게 모호하기 때문에 반응하지 않아요."

그녀의 대답에 상담사는 몹시 흥미롭다는 듯 싱글싱글 웃었다.

"나름의 파훼법이로군요."
"그런 게 없다면 애초에 들어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친구분과 건물을 탐험할 때 그 대화법을 쓰신 겁니까?"
"네…. 근데 혹시 난방이 꺼진 건가요? 그때 일을 생각하니 아직도 좀 한기가 들어서……."
"아, 추우시면 온도를 좀 더 올려드릴게요."

A가 어깨를 옹송그리며 추운 내색을 보이자 상담사가 리모컨으로 온도 센서를 조작했다.

"그때 나눴던 대화를 아직 기억하십니까?"
"당연하죠. 아직도 생생해요. 항상 있잖아, 라고 서두를 떼기로 했어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존재'를 지목하는 문장을 사용하면 공격한다고. 그건 귀신뿐만 아니라 같이 있는 사람도 포함되니까요."
"예를 들면요?"
"있잖아, 밥 먹었어? 라고 질문을 하면,"
"있잖아, 아까 먹었어. 라는 식으로 대답하면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거군."
"네…, 맞아…요……."

온도 센서가 올라갔음에도 상담실은 따뜻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A는 연신 제 어깨를 문지르며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근데요, 선생님……."

그녀는 미리 챙겨뒀던 진정제를 먹기 위해 핸드백에서 급하게 알약을 꺼내들었다. 알알이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자가 적힌 갈색 약들이 그녀의 손에서 차고도 넘쳐 바닥으로 후두둑 흩어졌다.

"귀, 귀신에 대해서는 이렇게 자세하게 물어보지 않으셨었지 않아요?"

핏줄까지 모조리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와 엄습해 오는 두려움을 차마 억누를 수가 없었던 그녀는, 떨어진 알약들을 도로 주워 모으기 위해 바닥으로 납작 몸을 엎드렸다.

"선생님…?"

바닥을 더듬거리는 A의 손끝엔 낡은 시멘트 바닥과 오래된 먼지만이 집혔다. 그녀는 떨어진 알약들을 제대로 찾기 위해 핸드폰의 라이트를 켜 바닥을 비추었다.

"아, 찾았다…!"

밝아진 시야 덕택에 알약을 집어들 수 있었던 A는 라이트 아래서 탁한 빛을 내는 갈색 염주알을 허탈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주변은 온도 센서를 바짝 올려 따뜻한 상담실 따위가 아니었다.

낡아서 뭐라고 적힌 지 알아볼 수조차 없는 간판, 온통 깨진 창문들 그리고 을씨년스럽게 휘날리는 커튼까지.

"있잖아."

그 위에 덩그러니 혼자 놓여있는 A의 뒤로 침묵처럼 깔린 어둠이 말을 걸어왔다.

"거기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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