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들은 말이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의 사지를 밭에서 무 수확하듯 뽑아내려 애쓰던 갑옷 기사들이(갑옷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순식간에 내 팔과 다리를 놓고는 절그럭거리며 절도 있게 투구를 숙였다. 


마치 사과하는 듯한 모양새에 나는 탈골되어 아래로 축 처져 덜렁거리는 오른팔을 붙잡고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지를 단번에 뜯지 못 해서 죄송하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정말 미친놈들이로군.’


정말 죄송합니다. 중대한 착오가 있었습니다. 


“???”


갑옷 기사들을 진두지휘하던 자줏빛 슬라임이 내 앞에서 정중하게 몸을 접으며 다시 한번 사과했다. 


‘한 번 눌러보고 싶다.’ 


사람이 너무 터무니없는 고통을 겪으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통각을 인지하지 못 하게 된다고 했던가. 


유튜브에서 액체괴물 ASMR 소재로 사용하면 조회수 1천만 정도는 손쉽게 달성할 것 같은 깜찍한 슬라임의 형태를 보며 나는 탈골된 팔의 고통을 잠시 잊고 잡념에 잠겼다. 


적법한 방문 절차를 밟은 객이 찾아오는 일이 드문지라, 초대를 받은 손님을 알아보지 못 하고 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아량을…


“어… 예… 근데 초대라니 그게 무슨…“


슬라임이 젤리와 같이 탱탱한 몸을 탄력있게 굽히며 내게 재차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의 연속이다. 


사람을 보자마자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사지를 뜯어 해체하려고 하는 미치광이의 소굴에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내가 왜 초대를 받았단 말인가? 


게다가 가장 중요한 점은 나는 초대장 비슷한 그 어떠한 것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거지 같은 상황에 떨어지기 전의 나는 5일 연속 철야 후 피로에 찌든 몸을 이끌고 환호성을 지르며 침대에 뛰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내 육신은 그토록 소망하던 햇볕 냄새 나는 푹신한 크림색 매트리스 위가 아닌 피비린내가 무성한 잿빛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자 분노와 울분으로 몸이 부르르 떨리고 이가 절로 갈렸다. 이 얼마나 부당하고 불운하며 불합리한 사고란 말인가! 


사악한 제사에 쓸 희생양을 납치해야 한다면 부하 직원들을 잠도 재우지 않고 부려먹는 악마 같이 악독한 상사를 잡아야지, 나 같은 사축을 잡아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다시금 분노가 솟아올라 ‘초대고 지랄이고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주쇼’라는 말을 내뱉을 뻔 했지만 혀 밑으로 겨우 가라앉혔다. 


진정한 샐러리맨이라면 어떤 개같은 거래처를 만나더라도 깍듯이 허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하는 법. 나는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불규칙적으로 몸을 부풀리는 슬라임에게 질문했다. 


“존경하옵는 슬라임 선생님.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는 칼이라고 합니다. 주인께서 손님을 뵙고자 하시니, 응접실로 모시겠습니다. 


“아, 아니. 그건 좀 부담스러운데요. 오해가 풀렸다면 그냥 집에 돌려보내주시면 안됩니까?”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주인님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저택에 찾아온 객을 무작정 되돌려보내는 무뢰한이 아니십니다. 손님께선 마땅히 배알의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으십니다. 


‘내가 만나기 싫다고. 개자식아.’


말을 못 알아먹는 슬라임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싶었으나, 고정되지 않아 덜렁거리는 오른팔의 고통이 나를 말려주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슬라, 아니 칼 님.“


욱신거리는 팔을 부여잡고 슬라임에게 목례를 하자 놈의 탱글탱글한 몸이 펄쩍 뛰어올랐다. 제자리에서 족히 2m는 넘게 뛰어오른 슬라임은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몸을 격렬히 진동시켰다(저 나름대로의 감정표현인 것 같았다). 


경어라니, 가당치 않습니다! 저는 위대한 분을 섬기는 수많은 종복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니 부디 말씀을 낮춰주시지요. 


슬라임의 급격한 감정 변화를 반영하기라도 한듯, 자줏빛으로 반짝이던 반투명한 푸딩같은 몸이 순식간에 옅은 적색으로 물들었다. 놈이 마치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말캉한 신체를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고 있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칼 씨. 주인 분께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내가 순순히 말을 따르자 빠르게 기분을 회복한 슬라임은 바닥에 끈적끈적한 보라색 점액을 남기며 나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는지 가끔 공중에 몸을 통통 띄우며 경쾌하게 움직이던 슬라임은 이리저리 방향을 꺾더니 이윽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란 회랑으로 안내했다. 


코끼리 세 마리 정도는 거뜬히 지나갈 만큼 넓고 긴 회랑에는 불온한 그늘과 침묵이 장식처럼 걸려 있었다. 발치에는 밟는 것이 황송할 정도로 아름다운 기하학적인 패턴이 가미된 양탄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창문이 있어야 할 것 같은 공간에는 하나같이 커다란 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모두 서로 다른 시대의 양식을 따른 듯 모양새가 제각각이었으며 어떤 문은 황금, 어떤 문은 무엇인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금속 재질, 또 어떤 문은 빽빽한 덩굴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인상적인 구조에 감명 받은 나는 주위를 구경하다 발견한 것에 경악하며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으아아아악, 씨발! 저, 저게 대체 뭡니까?!??”


회랑의 양 옆으로 늘어선 거대한 회백색의 기둥에는 빛을 밝히기 위한 횃대가 걸려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순한 나뭇가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그것의 실체를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인간의 앙상한 팔이었다. 말라비틀어져 한겨울의 볼품없는 나뭇가지를 연상케하는 누군가의 신체의 일부가 기둥에 단단히 고정되어 횃대로 쓰이고 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이렇게 인체를 재활용해 만든 횃대는 한 두개가 아니었다. 종점을 알 수 없는 회랑에 수없이 들어선 기둥마다 길이도, 색도 다른 다양한 팔과 다리가 횃불을 위한 거치대로 쓰이고 있었다. 


그 비현실적으로 살풍경한 모습에 나는 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느낌에 내가 비틀거리자 슬라임이 기포를 보글거리며 나에게 급히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예. 그보다… 저건 뭐죠? 왜 사람의 팔다리를…”


아! 저희 종복들의 자랑스러운 헌팅 트로피들이지요. 비열하고 비겁한 편법을 통해 저택에 침입한 해충들을 퇴치한 흔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슬라임은 스스로가 대견스럽다는듯 몸을 잔뜩 팽창시키며 떠들었다. 나는 그 말에 자동으로 이들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래서 사지를 뽑으려고 했던 건가… 여기에 장식하려고…’ 


새삼스럽게 내가 어떤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는지 선명하게 자각하게 됐다. 삽시간에 기분이 우울해진 나는 들뜬 슬라임이 혼자 떠들도록 냅두었다. 


그래서 1561번째 침입자가 주방의 개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려 할 때 충성스러운 갑옷 기사들이 취한 방법이-


슬라임이 무뢰배들에게 침입당한 저택의 비통한 역사와 또 그것을 용맹한 종복들이 어떻게 막아냈는지 줄줄이 헛소리를 쏟아내는 동안 나는 그 이야기 속에서 얻은 유용한 정보를 정리했다. 


첫 번째. 이 미치광이들은 정당한 손님에게는(바로 나 같은) 해를 끼치지 않는다. 적어도 손님이 요청하지 않는 한. 

두 번째. 집으로 돌아갈 방법은 분명히 있다. 침입자든, 납치되어 강제로 불려온 손님이든. 


직접적인 탈출 방법과 같은 핵심적인 정보는 없었으나, 최소한 내 일신의 안위는 보장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만으로도 화살을 쏘기 전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잔뜩 긴장한 몸에서 힘이 풀리고 말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추스르며, 나는 이어서 이 괴물들의 무리를 통솔하고 지배한다는 ‘주인’의 존재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대체 그놈은 나라는 인간의 어떤 점을 보고 초대를 빙자한 납치를 했을까. 그리고 나는 초대를 수락한 기억은 물론이고 그걸 증명할 아무런 증거도 갖고 있지 않는데 이들은 대체 뭘로 손님의 자격을 구분한거지?


게다가 슬라임의 말에 의하면 이 저택을 돌아다니는 종복들은 하나하나가 다 인간 한 명 정도는 가볍게 찢을 수 있는, 그야말로 악몽에서나 나올 법한 괴물들이었다. 


이런 괴물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주인’이란 놈의 힘은 분명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력할 터. 자칫 잘못해서 놈의 심기를 거슬리거나 손님으로서의 품격이나 자격을 보여주지 못 하면 사지 절단은 물론이고 일격에 곤죽이 되어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인’의 앞에 끌려간 내가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각종 언어 관련 자격증과 컴퓨터 활용 능력, 공모전 수상 경력 등을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모습을 상상하자 위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스트레스성 위경련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 배를 왼손으로 주물러 겨우 달래주고 있을 때, 슬라임이 커다란 흑적색 문 앞에서 멈춰섰다. 


응접실에 도착했습니다. 앗, 손님. 그 팔은? 


슬라임이 물컹거리는 몸을 원뿔 모양으로 뻗어 덜렁거리는 내 오른팔을 지목했다.


‘네가 뽑으려고 했잖냐.’ 


지독할 정도로 뻔뻔한 슬라임의 언급에 나는 이를 악 물고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하하. 별 일 아닙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이런…! 아까 전 정문에서 제가 범한 무례로 부상을 입으신거군요. 많이 고통스러우셨을텐데! 지금 바로 고쳐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슬라임은 재빠르게 몸을 연장시켜 내 오른팔 전체를 휘감았다. 손가락이 없음에도 솜씨 좋게 옷소매를 걷어올린 슬라임은 거침 없이 맨살 위로 몸을 뻗어 왔다. 


슬라임의 몸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부드럽고, 신축성이 있었으며, 매우 말캉하고 쫀득한 소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기묘한 감촉에 내가 감탄하고 있을 때, 슬라임은 내 오른쪽 어깨까지 몸을 연장시켜 단단히 고정한 후 공기를 한계까지 가득 넣은 풍선처럼 몸을 크게 부풀렸다. 


예상하지 못 한 개짓거리에 내가 경악하던 찰나, ‘우드득’ 소리와 함께 내 오른팔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내가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는데도 슬라임은 할 일을 마친 뒤 태연하게 팔에서 몸을 철수시켰다. 


다만 놈은 무슨 생각인지 맨 처음 신속하게 몸을 뻗던 것과 달리 매우 느릿느릿하게 피부를 이리저리 쓸고는 불쾌한 감각을 남기며 내 몸에서 물러났다. 


‘뭐지? 횃대로 쓸 견적이 나오나 재보기라도 한 건가?’ 


놈의 개수작에 불안함과 불길함을 느낀 나는 즉각 오른팔의 상태를 점검했다. 끈 떨어진 인형처럼 덜렁거리던 오른팔은 훌륭히 제 기능을 되찾아 정상적으로 가동했다. 


팔을 이리저리 굽히고 휘어보며 감격하던 순간, 슬라임이 쓸고 간 부분에 이상한 보라색 점액질의 흔적이 남은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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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인건가? 근데 무슨 말이지?’ 


내가 팔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슬라임은 몸을 진한 붉은색으로 물들이며 쉴새없이 기포를 보글거렸다. 


나는 어쩐지 그 모습에서 쉬운 문제를 틀린 학생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교사를 떠올렸다. 


…소매를 내려주십시오. 알현의 시간입니다. 


슬라임은 내가 그를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자 포기한듯 몸을 자줏빛으로 되돌리고 문을 열 채비를 했다. 


기억하세요. 손님. 제 이름은 칼입니다. 


거대한 흑적색 문이 쇠 긁는 소리와 함께 열리기 시작한 순간, 슬라임이 작은 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그리고 안쪽에서 흘러나온 빛이 우리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