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위에서의 부름이 있었다. 나는 말단 중의 말단이었기에, 방에 들어가기 전 무척이나 긴장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뭐, 뭐지? 왜 부르시는 거지? 뭔가 잘못한 게 있나? 전에 작업할 때 실수라도 했나?'

 하지만 그분께서 말씀하신 건 내 예상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새로운 종류의 기억소거제를 그대에게 맡겨보고 싶네."

 "네?"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가 부정의 의미로 말한 것이라 받아들였는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상한 건 아닐세. 임상실험도 모두 통과해 도입만을 앞둔, 신형 기억소거제라네. 이전의 불완전했던 기억소거제와 달리 이 Type P 기억소거제는 거의 정확히 한 시간 가량의 기억만을 소거하지. 부작용도 전혀 없이 말이야. 어떤가, 시험해 보아줄 수 있겠나?"

 "어, 네, 그, 하지만..."

 거부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 기억소거제를 어디에 써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듣기로는 기관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던데."

 "아..."

 사실이었다. 솔직히 이상개체라는 것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니 뭐 물론, 그런 걸 두려워하지 않을 인간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한 '이상' 개체들은 늘 공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이상개체들을 두려워 하는 게 정상이고, 두려워하지 않는 게 비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것들을 유독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릴적부터 그랬다. 눈을 감는 게 무서웠고, 밤이 무서웠고, 거울이. 홀로 남은 집이. 밤길이. 어둠이 두려웠으니까.

 "우리는 그대와 같은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대는 기관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인재일세. 그래서 이 약을 맡기는 것도 있네. 결코 싼 약이 아니야, 그대에게 기대를 하기에 맡겨보고 싶은 거지."

 "기대... 라고요."

 기대. 그것은 확실히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보다 한참 위의 직급에 있을 사람이 나한테 기대하고 있다고.

 그래서 나는.

 "...네.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으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은 하루였다.
 무섭고 두려운 이상개체들. 손이 느린 나와, 그런 나를 질책하는 동료들.


 그들이 문제인 게 아니다. 내가 문제였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오늘 있었던 평소와는 다른 일이 떠올랐다.
 그래.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특이한 일이 있었지.

 "...기억소거제... 라고."

 '그 약은 반드시 품에 지니고 다니게나. 그래야만 필요할 때 곧장 먹을 수 있으니까. 필요하다면 언제든 더 줄 수 있으니 사양하지도 말고.'

 나는 내 품속에 있던 작은 약통을 꺼내 들어보았다. 겉보기엔 약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적인 외형. 그러나 그 뚜껑을 열어보면, 안에는 투명한 색의 알약들이 한가득이다.

 기억소거제. 뭐라 하셨더라... Type P? 신형이랬지.

 현대의 기억소거제에는 여러 문제들이 많다. 기억을 지울 범위를 제대로 지정하지 못하는 건 기본이고, 혈압 이상, 발작, 내출혈 등. 최악의 경우에는 사망에까지 이르러 어지간해서는 기관의 사람에게는 사용되지 않는 약이라고 들었다.

 확실히 그런 위험성 높은 기억소거제 대신 부작용이 없는 이런 신형 기억소거제가 도입된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억소거제 도입의 첫 발걸음이 나라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이겠지.

 "..."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뚜껑을 닫고 다시 약통을 품 속에 넣은 뒤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치지직.


 ...그리고 기억에 노이즈가 뒤섞인다.


 "...윽. 머리야. 뭐... 무슨..."

 아릿한 두통에 나는 머리를 짚으며 주변을 살폈다. 보이는 것은 익숙한, 나의 집.

 "...어?"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펴보지만 가구며 물건이며 모두 확실히 내 집이었다. 창문 밖을 살펴보아도 확실하다.
 뭐야,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설마."

 나는 방금 전, 혹은 아까 전 꺼내보았던 품속의 약통을 꺼내보았다.


 기억소거제. Type P. 부작용 없이 약 한 시간 가량의 기억만을 제거하는 약.


 ...내가 먹은 건가? 왜?
 이 기이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확실히 나는 이 약을 먹었던 것이다.

 깜짝 놀라 주변을 살펴보지만 위험이랄 건 없었다. 그 어디보다 익숙하고 안락한 나의 집인 것이다. 내 몸에도 이상은 없다.

 "...이상한 일이네."


 그 날의 기이한 경험, 그 이후 내 삶은 180도 이상 바뀌었다.


 이 약의 '진정한 사용법'을 깨닫게 된 이유 탓이다.


 힘겨운 작업 앞에 고민하는 동료들 앞에서 나는 제일 먼저 외쳤다.

 "제가 하겠습니다!"

 동료들은 미안해 하면서도 고마워서, 이후 건물 안 가게에서 무언가 먹을 걸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정확히 한 시간을 지울 수 있는 기억소거제란, 어떠한 의미론 '한 시간을 미래로 이동할 수 있는 타임머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힘들었다는 건 안다. 때로는 이상개체에 의해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음을 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신이 들고 보면 그러한 기억이 깔끔하게 사라져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날 밤의 기이한 경험 이후 자신감을 찾게 되었다. 무서운 일이 무섭지 않아졌고, 힘든 일이 힘들지 않아졌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아아, 다른 사람들은 이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단 말인가?


 "...이번 이상개체는 꽤 위험해. 일명 기억 포식귀. 정신에 파고들어서 그 기억을 점차 잡아먹지. 실험 중단 명령이 내려와서 관리만 할 뿐이지만, 그래도 작업 후 꼭 기억소거제를..."

 "제가 하겠습니다!"

 나는 당당히 외칠 수 있었다.

 나는, 나만은 이 신형 기억소거제가 있었으니까.


 "너 요즘 달라지지 않았어?"

 "힘든 일도 곧장 도와주고... 고마워. 너를 좀 다시 봤어."

 "대단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그만한 방호기제라니... 훈련소쪽 사람 말고는 그다지 본 적이 없는데."

 주변의 평가도 상당히 달라졌다. 확실히 마음가짐이라는 건 중요하구나.

 이렇게되니 크게 변한 건 없는데도, 나는 자신감이 생겨서 이상개체가 전처럼 두렵지도 않아졌다. 최악의 경우에는 약을 먹으면 될 테니까. 그러면 느꼈던 공포감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아까 네가 갖고 온 물 못 봤어? 어디갔지?"

 동료의 말에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어라? 내가 어디에 뒀더라?"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여기에 있던 거 같은데...
 아닌가?
 잘 모르겠다.

 왜인지 이런일이 요즘들어 잦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뭔가를 깜빡하거나, 잊어버리거나 하는 등의 일이 늘어난 것 같다.

 나는 생각했다.

 '기억소거제의 부작용인 걸까?'

 일단 부작용이 없다고 말은 들었지만... 역시 기억을 지워주는 약이니 만큼, 기억에 악영향을 주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기억소거제를 덜 먹으면 되는 일이니까. 바뀐 세상에 조금 신이 나서 많이 써버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억은 없지만.

 '앞으로는 조금만 써야지.'

 나는 그렇게 굳게 다짐했다. 이제는 이 약에 크게 의존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인생이란 쏘아진 화살과도 같아서, 한 번 방향을 바꾸면 지향성을 지니는 법이니까.

 어차피 기억소거제는 도구일 뿐이고, 그걸 사용하는 건 나니까 괜찮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윽. 머리야."

 최근 머리가 조금 아프다.

 기억이 사라진다고는 해도, 그 영향이 없는 건 아니지. 너무 무리한 탓일까.

 "으. 왜 이러지. 어지러워..."

 몸이 이상하게도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뭐라고 해야 할까, 한 발 늦게 내 머리를 따라온다고 해야 하나.

 나는 내 스마트폰을...

 "어라, 어디에 뒀더라..."

 ...이상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단 머리맡에는 없다.

 하지만 뭐, 내가 스마트폰을 두는 곳이야 정해져 있었다. 잠깐의 탐색 끝에 나는 쉽게 스마트폰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연락해, 오늘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출근하지 못하겠다고 전했다. 최근 달라진 내 태도에 감명받은 동료들은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응. 고마워..."

 속에서 구역감이 차오른다. 나는 내 말에 대한 대답도 들려오기 전에 연락을 끊었다.
 목이 탄다. 물을 마셔야겠다. 최근들어 물 맛이 좋았다. 역시 음료수보다는 물이...



 ......어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엉망이 된 거실 한가운데에 있었다. 유리로 된 컵은 박살이 났고, 식탁은 엎어져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위기감을 느꼈다. 한동안 온순하게 있던 공포감이 다시 그 고개를 들었다.

 "윽..."

 '뭐지? 어떻게 된 일이지?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갑작스러운 이동. 아니... 기억의 공백?


 기억소거제.


 나는 내 품에 있을 그 약을 떠올렸다.

 내가 그 약을 먹었나? 언제? 아니, 왜? 어째서?

 나는 주위를 살핀다. 엉망이 되어있긴 했지만 위협이랄 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없는 게 아니야.'

 없으니까 보이지 않는 게 아니다.

 보지 못했으니까, 아직 내가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거야!

 생각해보니 그 기이한 일이 일어났던 날도 집 안에서 깨어났었지.

 ...설마 집 안에 어떤 위험한 이상개체가 있는 건가?!

 등을 타고 오르는 극심한 공포감. 내 등을 소름이 적신다.
 지금까지 내 안락한 휴식처가 되어주었던 방이 나를 그 입 안에 둔 괴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

 나는 세수할 생각도 없이 곧장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나가야 한다. 위험하다. 도망쳐야 해!

 그런 생각과 함께 발걸음을 내딛은 순간.


 찌이잉!


 "끄아아악!!!"

 크나큰 두통에 나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꼭 내 머리 안을 송곳으로 찌르는듯한, 무자비한 통증이었다. 당장 머리를 내 손으로 떼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만한 아픔. 괴로움. 두려움과 고통.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

 "끄... 쿨럭, 쿨럭!"

 갑작스레 나온 기침에선 피가 섞여있었다. 안 돼, 안 돼! 이대로 죽을 수는...!

 그때, 나는 내 품 속의 기억소거제를 떠올렸다.

 그래. 기억을 지우면.

 나는 이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만약 이 이상현상이 어떠한 기억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전에 관리했던 이상개체도 기억소거제로 막을 수 있었으니까. 지금 이 현상은 물리적인 이상현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미칠듯한 통증을 보면, 무언가 뇌에 일어나는 현상임이 확실해 보였다.

 반쯤은 도피성으로 나는 품 안에서 약통을 꺼내 그 뚜껑을 열었고,

 "...어?"

 그 안은 비어있었다.

 "어, 어. 이게 왜..."

 기억소거제. 부작용도 없이, 한 시간의 기억을 지워주는, 내 삶을 긍정적이게 바꿔준 약...


 "푸웁."

 입 안에 진득한 쇠맛. 피맛으로 가득 찬다. 계속해서 나오는 피로 이제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코에서는 코피가 나온다.

 머리를 뒤흔드는 진한 고통 속에서,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되뇌였다.


 아마, 나는. 몸 상태가 크게 나빠진 시점에 이걸 먹고. 먹은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깨어나, 또다시 먹고. 또 먹고를 반복해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게 원인은 아닐 거야. 분명 이 약에는 부작용이 없다고 했었으니까. 그러니까 어떠한 이상개체가 원흉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런 내 머릿속에서, 기억소거제라는 이름이 통 떠나질 않았다.



특별 업무 보고서.
XXXX-XX-XX.
대상: 직원 X
업무 내용: 이상개체 XXXXX, 기억 포식귀의 실험과 기억소거제 Type P의 사용.
처리 결과: 업무 생산성의 비약적인 상승과, 업무에 가지고 있던 스트레스 및 불만 수치가 내려갔고 주변 동료들의 평가도 좋아짐. 방호기제의 등급 또한 상승함. 어떤 일이든 솔선수범하여 먼저 나서는 성격으로 변화함. 4주 뒤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 부검 결과 과다출혈은 있었으나, 특별한 외상은 발견되지 않음. 그리고 두뇌가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음. 대외적으로는 사고사로 처리.


 "4주 정도인가. 꽤나 놀라운 성과로군. 기존의 피험자는 1주일 정도만 돼도 이상을 호소하다 죽었는데 말이야."

 나는 기록으로 올라온, 짤막한 보고서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업무 생산성 상승. 불만 감소. 주변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졌고. 방호기제 등급도 올랐나?"

 꽤나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이정도면 조금 다듬어서 실제 지침으로 써도 괜찮겠는걸.

 나중에 관련해서 말을 올려 봐야겠어.

 "...너무 원망하지는 말게. 원래대로라면 공포를 느끼다가 끝엔 착란하며 죽어갔을 것을, 그래도 긍정적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니까."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플라시보Place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