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이야기는 술김에 충동적으로 기억을 더듬어 가며 쓰기에
다소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음을 밝힌다.
나는 프리랜서 기자 생활을 꽤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페이가 적고 일이 많지 않아, 결코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일이었지만.
자유로움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기자 업무의 특성상 남들이 가지 않는 곳들을 가는 경우들이 잦았고.
그 과정에서 인상 깊은 장소를 사진으로 남기고, 유추되는 생각을 글로 옮겼다.
그게 좋아 그렇게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작년 이맘쯤이었다.
그날의 취재는 오는 가을을 맞이하여 산에서 보이는 풍경을 담아보는 에세이 형식의 테마였다.
일반적으로 유명하고 잘 알려진 명소가 아닌,
아는 사람만 알던 지역사회의 풍경을 전해보자는 어쩌면 소박하고 평범한 주제.
A산은 정상에서 보이는 노을이 특히 예쁘다고 한다.
노을을 담고자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비로소 등산을 시작했다.
소문대로 풍경이 참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다.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좀 담았을 때였나.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자연환경에 서둘러 작업을 마무리하고 하산을 결정해야 했다.
초행길인 산에서 야밤에 길을 잃는다면 그것만큼 낭패는 없겠지.
나는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불빛을 따라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불빛이 조금씩 커지며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산 중턱에 나타난 평평한 평지.
그곳에 놓인 허름하게 개조된 컨테이너 박스.
외진 곳에 놓인 간이 화장실로 보였다.
어느 산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간이 화장실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들렸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니,
(특정 지어질 수 있으니, 장소를 유추할 수 있는 정보는 전부 가렸다.)
투박한 글씨체로 써진, 들어가자마자 떡 하니 보이는 경고성 문구가 나를 반겼다.
아래에는 휴지 도둑이 있어 CCTV 단속 중이라는 문구.
그 위에는 불법 촬영은 범죄입니다는 공익성의 문구.
뭔가 이질적이다.
그 오묘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어 X바, 그러면 지금 범죄 저지르고 있다는 거잖아.”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린 기억이 난다.
나중에 무언가의 소재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 한 컷 찍고,
주변을 돌아보니 안쪽은 더 했다.
화장실의 안쪽 벽면에는 온통 빨간 글씨로 경고성 문구들이 도배되어 있었는데,
기억에 의존하여 적어 보자면 대략 이런 문구들이었다.
‘변기 막히면 화장실 청소는 과연 누가 할까?’
‘휴지, 물병, 음료수병, 커피, 담배 걸리면 아가리를 찢어버릴 것임’
‘담배 조심, 개 조심, 사람 조심’
‘자신 없으면 이용하지 말 것.’
‘꺼져’
'xxxxxxxxxxxx'
아, 여기 무섭다.
무슨 화장실이 이런 해괴한 문구들로 가득할까.
이쯤 되니 무언가 기록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은 싹 사라지고,
일단 피해야 한다는 일념만 생겼다.
호기심을 내려놓자.
곧바로 화장실을 나와 이후로는 한눈팔지 않고,
그날의 산행을 무사히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나흘 정도 지났을까.
어느 정도 글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니 산의 경치가 다시 보고 싶어져,
운동 삼아 산길을 다시 올랐다.
글이라는 게 원래 그런 선순환적 효과가 있다.
정상에서 느껴지는 좋은 기운을 다시 한번 만끽하고,
내려가려는 차에 그 화장실이 다시 생각났다.
낮에 본다면 또 느낌이 다르려나.
어차피 내려가는 길인데 지나쳐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그런데 화장실이 없다.
그냥 폐쇄되었다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흔적도 없이 화장실이 사라진 거다.
전혀. 해체 흔적 하나 없이 말이다.
장소가 틀렸나 싶어서 찍은 사진들을 돌아보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 장소가 맞았다.
단 나흘 만에 이렇게 사라진다고?
이상한 화장실이긴 했지만, 빨라도 너무 빨랐다.
혹시 야밤 중에 헛것을 본 것은 아닐까?
괜히 오싹한 기분이 들어 그 자리에서 잠깐 굳어져 있다,
찝찝함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산했다.
그러고 그 장소를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굳이 기억하고 언급해서 뭐 하겠냐는,
조금은 방어적인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화장실에 대한 기억은, 제삼자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
편의상 대화체로 서술하겠다.
L : 형님, 이번에 취재하신 A산 말인데요, 기사로 못 올릴 것 같습니다.
나 : 어? 왜? 나 글 다 썼는데?
L : 그게... 좀 문제가 생겨서 말입니다.
나 : 뭐가 문젠데? 좀 납득가게 설명해봐.
L : 거기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관련 준비 중인 기사 보여드릴게요.
"지역 산림 지역에서의 수상한 움직임... 수사 착수"
경찰이 지역 산림에서 감시를 강화하던 중 수상한 행위를 포착, 해당 인원들을 검거했습니다. 활동의 구체적 성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관련 인원들이 더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추가 조사하고 있습니다.
나 : 이게 뭔 일이야 진짜. 그러니까 너 말은, 저 기사가 A산에 관련된 내용이라는 거지?
L : 맞습니다... 사실 A산에서 용의자들이 검거된 건 아닌데, 경찰이 A산도 주요 장소로 찍었답니다. 우리 테마가 가을 산 여행이다 보니 지금 올리기에는 부적절할 것 같습니다.
나 : 아 속상한데;; 그래서 저게 무슨 일인데? 단순 사건이 아닌 거 같은데?
L : 모르시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형님...
나 : 왜? 말해줘. 너 뭐 알고 있지.
L : 제가 편집자다 보니 듣긴 들었죠. 근데 좀 충격적입니다.
그다음 L이 한 말은 이러하다.
어떤 야산에서 컨테이너 박스가 발견되었다.
사람이 정말로 다니지 않는 곳이었기에 그 지역 사람들도 아무도 몰랐다.
K는 자신의 친구 P가 연락이 두절된 것에 이상함을 느껴 위치 추적을 했고,
해당 야산에서 마지막 신호가 잡혔다는 걸 알게 되었다.
K는 지인을 모아 해당 야산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컨테이너 박스를 발견했다.
그 컨테이너 박스는 깔끔하게 생긴 화장실이었고,
야산에 있는데도 지나치게 깔끔한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K가 변기를 뜯어보니,
P가 안에서 사지절단 되어 있었다.
널브러진 주사기와 흉기들과 함께.
나 : 와 씨, 이게 무슨 이야기야.
L :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벽에 피로 “찾지 마!” 라고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마치 누가 여기로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요.
다행인지 강단이 있던 애들이라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네요.
이게 대략 몇 달 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나 : 그런데 지하공간? 컨테이너 박스에 지하공간이 있다고?
L : 잠시만요, 예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L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그 뜻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나 : 이건 컨테이너 박스들이잖아.
L : 맞습니다. 겹친 박스들이요. 이게 지하에 있었던 겁니다.
나 : 이게 말이 되나..,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산속에 버려진 컨테이너 박스들이 있고, 그 아래에 다른 컨테이너 박스들이 묻힌 지하공간이 있다는 거네?
L : 그렇죠... 이번 계기로 전국에 이런 것들이 몇 개나 있다는 게 밝혀진 겁니다. 저도 이후 상황은 모릅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았고, 다들 조사하기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네요.
나 : 허... 참.
L : 형님, 모른 척하셔야 합니다. 이번에 기사로 못 실은 부분이 죄송스러워서 말씀드리는 거니 어디서 절대 이야기하시면 안 됩니다. 암튼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나 : 아니야... 고마워.
나는 L에게 내가 본 것을 이야기할까 망설였다.
괜히 말로 뱉으면 더 무서워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너무 복잡하다.
잠을 잘 못 이루겠다.
속상하다.
내가 본 것이 L이 말한 그 컨테이너 박스가 아닐까?
그때 내 아래에도 어떤 끔찍한 사건이 발생해 있지 않았을까?
이걸 지은이들은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일까?
그 경고성 문구들은?
만약 내가 호기심에 안을 더 뒤져보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언론에는 언제 공개되는 것일까?
적어도 확실한 건.
전처럼 여행을 쉽게 입에 담지는 못할 것 같다.
이 사람은 글을 진짜 잘 써 - dc App
냠냠냠
'그런데 지하공간? 컨테이너 박스에 지하공간이 있다고?' 이거 대사 전에 지하공간을 언급한게 없는데 이거도 떡밥임..?
나도 이거때매 글 한 세번은 다시읽었다 - dc App
개추
이 분 글은 그냥 존나 맛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양반은 정말 '작가'가 아닐까 싶다..
글 진짜 깔끔하게 잘 쓰네
진짜인가 조마조마하면서 봤는데 시리즈 보고 안도했다
작가왈: "모든 시리즈가 창작은 아닙니다."
이 사람 글 진짜 잘쓴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