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에 어머니는 종종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욕조의 밑바닥에는 괴물이 살아'
어머니 말씀으로는, 물을 채운 욕조는 바닥이 어딘가의 공간과 이어진다고. 그 공간에는 아주 기다란 괴물이 살아서 욕조에 빠진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그러셨다.
지금 와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 대부분은 흐릿하나 그 말만큼은 내 머릿속에 선명한 인두 자국을 남긴 모양이다.
나는 그 말을 믿었고, 스물이 넘은 지금까지도 욕조에 들어가지 못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조금 떨어진 곳의 주택에 제법 부티가 나는 아저씨가 있었다.
사람이 친절해서 동네에서 평판이 좋았다.
나에게는 이따금 누룽지 사탕을 주시기도 하셨는데,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지만 싫어하지도 않아 곧잘 받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이쁨받았던 것 같다.
그해 여름방학엔 처음 보는 형이 아저씨를 찾아왔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던 그 형은 아저씨의 조카라 했다. 방학을 맞아 며칠 놀다 간다던가.
종종 찾아가 놀 때는 꽤 재밌었다. 집에서는 사주지 않는 신형 게임기를 가지고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나와 형은 레이싱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곧 도착할 치킨의 다리를 걸었기 때문에 열심히 했던 게 기억난다.
누가 이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저씨가 씻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정신없이 놀았다.
치킨이 도착했다.
결제해 줄 아저씨는 씻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줄 모르고 형을 바라봤다.
'삼촌! 너무 오래 씻어!'
쩌렁쩌렁 외치는 형을 따라 욕실로 향했다.
벌컥, 열린 문 뒤로 가득 차 넘치는 욕조
켜져 있는 샤워기
따끈한 비누 거품
그리고 그 자리에 아저씨는 없었다.
아저씨는 이후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형은 지금 무얼 하고 지낼까. 이따금 궁금해진다.
욕조 밑 사람을 먹는 괴물 이야기는 내 안에서 점차 형태를 잡아갔다.
시간이 흘러 내가 형의 나이만큼 커졌을 때의 일이다.
친하게 지내던 애들 둘이 있었다. (편의상 A, B라 하겠다.)
우리 셋은 피아노 학원에서 알게 되었다.
A는 제법 잘 쳤다. B는 아주 잘 쳤다.
나는 음악을 장래 삼지 않았고, 내가 방구석에서 혼자 돌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아버지의 공포심에 등 떠밀리듯 했기에 형편없었다.
덕분에 친구가 생기긴 했으니, 아버지는 기뻐하셨다.
어느 날은 B가 폐가에 가보자고 했다.
A가 먼저 꼬드긴 모양이었다.
여러 가지 법적 사유로 조금은 걱정되었으나, B의 들뜬 모습에 그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무책임한 말이긴 하지만 촉법소년 아니었던가? 다소의 말썽 정도는 다들 눈감아 주겠지, 싶었다.
약속 그날 찾아간 폐가는
아무도 살지 않아 방치된 아저씨네였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날 욕실 바닥에 넘실거렸던 거품의 해일이 나를 덮치는 것만 같았다.
A와 B를 제치고, 익숙한 거실과 복도를 지나...
벌컥.
먼지 소복이 쌓인 화장실 풍경은 그때에서 멈춰있었다.
고인 물에서 악취가 났다. 아니 어쩌면 향긋한 비누 내음을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욕조에 다가가 초록색 아니면 분홍색 아니면 검은색 물을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난다.
넋이 다시 돌아오니 A가 나를 부축해 화장실에서 끌어내고 있었다.
안색이 너무 창백하다고.
힘들면 잠시 나가 있어도 괜찮다고, 미안하다고 그랬다.
유난 떨고 싶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괜찮지 않았기에 그렇게 했다.
한참 뒤, A가 나왔을 때에는
B는 온데간데없고 그 또한 피가 쭉 빠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무슨 일 있었어?'
벌벌 떨리고 있는 젖은 손을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A는 관절이 뻑뻑한 인형처럼 고개를 돌려 말했다.
'욕조 밑에서부터 끌어당겼어.'
우리는 욕조에 담긴 B를 두고 왔고
얼마 안 있어 그 주검은 돌아와 부모의 눈물에 잠겼다.
욕조의 밑바닥에는 괴물이 살아.
욕조의 밑바닥에는 괴물이 살아.
욕조의 밑바닥에는 괴물이 살아.
나는 그렇게 믿었다.
열렬하게 믿었다
'괴물'이 내게서 어머니를 빼앗은 날이 기억난다.
욕조의 붉은 물에 식은 몸이 떠다니던 날.
그 순간만큼은 내 머릿속에 선명한 인두 자국을 남긴 모양이다.
그때부터 내 뇌는 이미 눌어붙어 사고가 마비되었을지도.
다만 어머니의 손목에 그어진 몇 겹의, 동맥을 집요하게 찾아 헤매던 몇 겹의 가는 선분들이 흐릿한 기억 속의 착각이길 바라고 있다.
다만 완전히 잠기지 않고 머리만 욕조에 처박고 있던 B.
그 시기 우연히 콩쿠르에서 1등을 했던 B.
찢어진 옷의 형태로 A에게 남은 싸움의 흔적.
2등을 한 A.
어떠한 악의를 느끼고 몸서리치던 날 밤이 그저 내 오해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믿고 싶다.
해명되지 않은 아저씨의 실종이 감사하다.
지금 나는
처음으로 내 손을 써서
욕조에 물을 채우고 있다.
그날과 같이 거품을 한가득 띄워야지.
따뜻한 물로 하자. 아저씨처럼.
괴물은 나를 잡아먹으러 올까?
나는 그 말을 믿고 싶다.
괴이현상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
역시 필력이 밑바탕이 되면 양품이 되는구만
진짜 아저씨 실종과 인간적 사건이 결부되어서 상상을 자극하네
개재밌네
필력이 십사기네
이런게 명작선 가야되는거 아니냐
잘쓴다
필력 미쳤네
좋다 - dc App
우와 재밌어요
재밌다.
와 그냥 예전에 돌던 스프아저씨 괴담 섞은 줄 알았는데 다른 소재들도 들어가니까 맛이 ㅈㄴ 풍부하네
안녕하세요 써주신 글 너무 인상깊게 읽었어요! 혹시 출처 남기고 유튜브 영상 제작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제작하신 후에 영상 링크 부탁드립니다.
https://youtu.be/9pJwsoQZm-U?si=3tvZaoqZwaQeUEjX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혹시 글을 캎에다가 올려도 될까요? 글 링크는 글 마지막에 적겠습니다
정말 몇 번을 읽어도 너무 좋다 욕조 밑 괴물을 끝내 믿고싶어하는 화자의 심리 묘사도 아저씨의 해명되지 않은 실종이 사건의 진상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도 이런 게 진짜 나폴리탄 아닐까 너무 맛있는데
잘 읽었어 재밌다
주인공의죄책감에대한표현력에감탄하며봄
오 2ch풍
백상아리 청상아리 나 무서워서 물에 가만히
이사람은 글을잘써
이것만큼 좋은 글이 있을까 싶네
미쳤네 진짜;;
21년 낲갤 초창기부터 해왔고 생각해낸 괴담 아이디어만 한트럭인데 단 한번도 글을 써본적이 없다. 소재 있으면 뭐하나, 나에겐 이런 치트키급 필력이 절실하다...
나 손목이 시려...
와
그럼 아저씨는 왜 사라진거야? 이건 도저히모르겠는데
출처 표기 후 영상 만들어도 될까요?
진짜 존나잘썼네
이게왜 명전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