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부모님은 6살짜리 꼬맹이에게 얼마 쓰지도 못할 어린이용 자동차 침대를 사 줄 만큼 부유하시진 않았지만,그래도 자식을 정말 사랑하시는 분들이었어요.
공무원이신 아버지와 동네에서 나름 알아주는 학원의 수학 선생님이었던 어머니.
두 분 모두 표준적으로 바르게 살아온 인생의 표본같은 분이셨어요.
다자녀 가정에서 첫째로 태어나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하고
충실히 공부해 적당한 4년제 대학을 나와 늦지 않게 취업하고
남들 다 결혼할 때 결혼해 아이를 낳은 부부.
학창 시절에는 일탈뿐만 아니라 다른 흔한 일들-이를테면 학원을 빠지거나, 요령을 피워 조퇴하거나, 밤 늦게까지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도 해보지 않았다고.
부모님의 친구들은 어린 저를 무릎에 앉히고 말씀하시고는 하셨죠.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당신의 자식은 외동으로, 그리고 조금은 응석받이로 키우고 싶으셨다고
걱정할 건 자신밖에 없는 아이로 살게 하고 싶으셨다고
어머니는 잠들기 전 제 배를 토닥이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적 부모님은 저에게 상당히 관대하셨어요.
하지만 뭐, 잘 아시잖아요. 오구오구 해주는 집안에서 절제가 가능한 아이가 자라는 건 힘들다는 거.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저는 놀이터 평상에서 쌀과자를 먹는 아줌마들이 말하는
‘코뿔소 같은 아이‘라는, ‘그 못말리는(가끔은 못된) 애’라는 수식어를 맡는 존재가 되었죠.
하원 버스에서 내리면 어머니는 제 팔을 쫙 펴게 하여 상처나 멍이 없는지 살펴보고
누구 때렸니-부순 거 있니-훔친 거 있니-선생님 말 잘 들었니 순으로 물어보시곤 하셨죠
아버지는 그 동안 선생님과 짧게 얘기를 하고, 제 가방을 검사하시곤 하셨어요.
어머니의 질문과 아버지의 검문을 모두 넘긴 날은
글쎄요. 민망하지만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래도 저희 부모님은 저를 다그치지 않으셨어요.
유치원에 갈 때까지는 볶음밥에서 피망을 삼십 분동안이나 골라내도 큰소리 내지 않으셨고
새로 산 옷을 걸레짝으로 만들어도 별 말 없이 새 옷을 사 주셨으며
싸우고 돌아온 날에도 손을 올리지 않으셨어요.
비록, 나이가 들수록 저를 보는 눈에는 그늘이 짙어졌지만.그럼에도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6살 때, 나도 내 침대를 가지고 싶다고 밤낮없이 부엌과 거실을 구르면서 때를 쓰는 악동을 위해서
일주일 동안 중고 장터를 뒤지며 이것저것 알아본 후
거의 새 것 같은 퀸사이즈 침대를 제 방에 놔 주셨다니까요. 생일도 기념일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지금 생각하면, 하하.죄송하네요.
말로는 나도 이제 독립심을 기르고 싶다 했지만 사실 영수네 집에서 본, 침대 부분이 자동차 모양인 벙커 침대가 참 부러웠었어요.
엄마가 사주셨다며 한껏 콧대가 높아진 영수가 커튼을 걷어
레고 블록과 공룡 모형 박스 등등이 차곡차곡 쌓인 마치 비밀 동굴 같은 공간을 보여줬을 때
부러움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부모님을 더욱 졸랐던거죠.



아무튼, 처음 침대를 받았을 때는 사실 좀 실망했어요.
멋진 모양도 아니고, 나만의 아지트? 같은 느낌도 들지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보면 볼수록 원목으로 짜여진 침대 틀의 옹이 모양이 선명한 표면도 마음에 들고
은은하게 나는 달달한 나무 냄새도 좋아져서
어느샌가 벙커 침대는 기억 저편으로 까맣게 사라졌다고요.
심지어 자상하신 아버지께서는 벙커 침대 느낌이 조금이라도 나라고
손수 기둥을 박아 커튼을 쳐 주셨어요.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저녁 먹어라-하는 소리도 안 들릴 만큼 아늑했답니다.
어머니께서는 분명 나중에 떼기 힘들 텐데도 불구하고
벽과 침대에 야광 별과 로봇 스티커를 붙이도록 허락해주셨어요.
밤이 되면 커튼을 쳐 놓고 스피노사우르스와 티라노사우르스를 우주 공간에서 싸움을 붙이다
스르르 잠드는 것은 제 일상의 소소한 낙이었죠.
뭐, 6살 때는 아직 부모님과 자는 친구들도 꽤 많으니 뭔가 나는 형아?이런 우쭐함도 있었고요.
8살이 되고, 저는 초등학교에 들어갔어요.
물론, 성질이 2년만에 죽었겠어요? 여전히 악동 친구들 사이에서 짱 먹고 싶어하는 아이었죠.
영수랑, 진영이랑, 호진이랑, 은수랑, 유찬이랑…온갖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녔어요.

아 요점만 말하라고요? 죄송합니다 하하. 이런 이야기를 할 만한 분이 별로 없거든요, 요즘.
조금만 인내심을 가져주세요. 아직 본론은 시작하지도 않았다구요.

어느 날, 집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어요.
진영이가 제 축구공을 터트렸었나, 그래서 화가 난 상태였어요.
심지어 구구단까지 안 외워져서 끙끙거리다 짜증나서 학습지를 집어 던졌는데
글쎄, 그게 침대 밑으로 쏙 들어간 거 있죠.
화가 치밀어서 혼자서 연필을 내던지며 발작하다가 용돈을 줄이겠다는 어머니 말이 떠올라
한숨을 푹푹 내쉬며 침대 밑으로 고개를 들이밀었죠.
그리고 그걸 보았어요.
음..뭐라고 해야 하나. 혹시 액체 괴물이라고 아세요?
그걸 좀 오래, 더럽게 가지고 놀다 보면
때도 많이 타고 수분도 날아가서 애매하게 물컹하고 안 흐르는 끈적한 덩어리가 되거든요.
어둠 자체로 제작한 그런 것 같았어요.
크기는 그 당시 저보다 좀 작았던 어린애 크기.
하얀 눈만 동동 떠서 절 보고 있었어요.
보통 그런 걸 보면 무섭죠. 무섭고 말고요.

아 헛소리 말라고요? 허풍 같으시면 죄송합니다. 충분히 이상한 이야기에요.
이번 상담비는 받지 않을 테니, 아 소설 쓴다-생각하시고 들어주세요.

그걸 보고 아아악 하며 집을 뛰쳐나온 후, 성격이 소심해져서 공부만 하다 이렇게 되었냐고요?
흠. 그 당시에 유행하던 손바닥만한 종이 책이 있었거든요. 무서운 이야기 들어있는.
그 책 마니아였던 저는 침대 밑 괴물이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마치 공룡이 부활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요. 심지어 제가 웃으니까 걔도 웃는 것 같았어요.
어린애에다가 쓸데없이 용감했던 저는 그냥 비밀 친구가 생겨 신났어요.
아무튼, 그날 이후로 침대 밑 괴물 관찰하기는 저의 낙이 되었어요.
매일매일 불을 끄고 은은한 야광 빛으로 그걸 들여다보았죠.심지어 날이 갈 수록 점점 커지더라고요.
쳐다만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공룡 인형도 침대 밑으로 하나씩 넣어 주고,
동화책도 읽어 줬어요. 타잔이나 피터 팬 같은 거.
그럴 때마다 걔는 꿈틀거렸는데, 좋아하는 것 같아 기뼜습니다.
간식도 꼭 반 정도 남겨두었다가 침대 밑에 넣어두면 다음 날 없어지곤 했죠.
식성도 저랑 비슷한 것 같았어요. 당근은 싫어했고, 고기랑 새우 그리고 빵은 좋아했어요.
그때 저는 걔를 강아지나, 뭐 동생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해가 바뀌었어요. 저는 9살이 되었죠.
방학이 시작되어서, 친구들도 한 동안 못 보았었어요.
침대괴물을 만난 지도 벌써 8달이 된 시점이었어요
그 즈음 침대괴물의 성장이 멈춘 것 같길래, 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생각해보니 그동안 먹이도 한동안 안 준 거에요
불쌍한 놈..하고 생각에 잠겨있던 시기. 전 불현듯 깨달았어요.
그냥 덩어리 같던 녀석의 모습이 조금씩 울퉁불퉁해지는 거에요.
네 군데서 뭔가 볼록 나오더니, 일주일만에 길어졌어요.
그때 침대를 부쉈어야 했는데, 하하.



팔다리와 닮았다는 건 손가락이 나오기 시작할 때 깨달았어요.
그것은 이제 목 없는 원숭이와 같은 모습으로 침대 밑바닥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때쯤 아둔한 저도 깨달았어요. 잘못되었단 걸.
동화책 낭독도 그만두었고, 인형도 모두 꺼내 버렸어요.
그래도 그것이 불어나는 게 무서워, 들여다보는 것도 줄였고요.
삼사일에 한 번씩 볼 때마다 그건 자랐습니다.
몸통과 골반이 굴곡지고, 목이 생기고, 머리카락 비슷한 게 돋았어요.
그 와중에도 하얀 눈은 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죠.집요할 정도로 선명했어요.
마침내 이목구비가 잡혀서야 저는 알아챘습니다.



저였어요.
그건 저였다고요.
그동안 그건 내 침대 밑에 붙어 살며 내가 되었던 겁니다. 나를 복제하고 모방하였던 겁니다.
그걸 알고 나니 견딜 수가 없었어요. 비밀 친구는 어느새 저를 곧 잡아먹을 악마같이 느껴졌다고요.
당장 어머니께 달려가 울며불며 말했죠. 침대 밑에 괴물이 있다.
하지만 평소 스스로가 용감하다 떠벌리던 저였기에 어머니는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침대 밑을 봐주겠다고 하셨어요.
그것은 이제 입마저 뻐끔거리더군요.곧 말이라도 땔 듯이.
하얀 눈에 콕 박힌, 제 눈 같은 암갈색 홍채가 그렇게 징그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피부도 이제 거의 갈색에 가까워졌었다고요.
하지만 어머니 눈에는 보이지 않으셨나 봅니다. 쓱 둘러보더니 괴물은 없단다 얘야-하고 다정하게 말하셨어요.
미칠 지경이었죠. 살면서 처음으로, 그 어린 나이에 본인이 정상인지 의심되었으니까요.
어머니께 빌었어요. 제발, 안방 가서 자게 해주세요 엄마.
어머니는 상냥하게 거절하셨죠.
아가, 네가 다 컸다고 침대 달라고 한 게 언젠데? 친구들이랑 몰래 공포영화보고 겁먹은 거지 응?
저는 울며불며 빌었지만 먹히지 않자 그럼 내 침대애서라도 같이 자자고 애원했어요.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초딩 시절이었지만 그때는 수치도 못 느낄 정도로 겁먹었었죠.
제가 통곡하자 어머니의 초딩을 훈육하겠단 굳은 결심도 조금은 여려졌는지
그러면 딱 이 주 동안만 같이 자자고 하셨습니다.
밤마다 어머니 옆에 딱 붙어 침대 틈으로 내려가는 시선을 붙들며 겨우 잠에 들었어요


.
11일째 되던 날
어머니가 원생 시험 준비로 늦게 들어오시게 되었어요.
하필 아버지도 그날따라 야근이었고요.
혼자 침대에 누울 자신이 전혀 없어서 안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았습니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호신용이라고 아버지의 등산 스틱을 꼭 쥐고요.
눈을 감고 얼마나 지났을까,뭔가 끄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어머니, 집에 오셨구나! 생각도 잠시
도어락이 울리지 않았더라고요.
숨을 참고, 내 심장 박동이 내 귀에 들리는 것보다 작길 간절히 빌었습니다.
발걸음은 방문 앞에서 멈추고

똑똑



그리고 내 목소리가 말했습니다.
“들어가. 나.”

쿵쿵

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쿵
그러더니

파삭

하고 방문이 열렸습니다.
문 앞에는
내가 있었어요.
등 뒤에 무언가를 단 채로요.
내 뺨이.뺨이 너무 붉고. 네? 그리고 입술이 너무 빨갰어요.진짜 사람처럼
저보다 더 저 같았다고요.
그건 절 보고 웃었습니다.너무나 밝게
입을 뻐끔거리더니, 꼬이는 혀가 제자리를 찾고
“잘자.잘자.잘자.잘자.안녕.안녕?“
“음.잘자.”
.
.
.
“안녕!잘자~”
다가오더라고요.
뼈가 있다면 불가능한 크기로 벌린 입과 함께
저는 패닉애 빠져 스틱을 마구 휘둘렀습니다.그것의 표피에 사정없이 꽂았습니다.
그것의 살갗은 너무나 부드러워 마치 피자 도우마냥 쭉 늘어지더라고요.
그것은 저항 없이 저에게로 웃으며 다가왔어요. 치아가 너무나 하얬습니다.
언뜻 보인 하나의 충치가 내 것과 같은 위치라는 게 미칠 것 같았습니다.
끌리는 소리는 여전히 들려왔습니다.
그것이 내게 그 넓은 목구멍을 벌렸을 때
패닉에 빠져 휘두른 팔에 전등 스위치가 닿았습니다.
방이 일순간에 환해지고
그것은 멈추더니
팍삭 무너졌어요. 말 그대로요.마치 먼지가 되어서.타 버린 것마냥
잠깐 사이에 그것이 끌고 온 게 뭔지 볼 수 있었어요.
사람의 상체. 네, 어머니의 상체였어요.
짧은 시간 그것은 어머니의 상체마저 복제했던 거죠.
제가 품에 안겨 자는 모양새처럼, 어머니의 상체 모양 살덩이는 그것을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저는 온 집안의 불을 다 켜 놓고 떨다
밤 12시에 들어오신 부모님께 울며 안겼죠.
침대는 결국 팔았습니다. 더 작은 중고 침대를 샀고요.
그날 이후로 센 척하던 버릇은 사라지고 조용한 성격이 되었습니다.
밤과 침대가 두려우니 자연스래 불을 오래 켜고 앉아있게 되었고
공부에 취미를 붙였죠.
부모님이 아무리 응석받이도 괜찮다고 말하셨어도,
자기 앞가림 못하는 아들보다는 진중하고 성실해진 아들이 퍽 자랑스러우셨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좋은 대학에 가고, 컨설팅 업체에 입사해 지금 학부모님 앞에 앉아있는 것이죠.




지루하셨죠. 죄송합니다.
이제 진짜 본론입니다.
예준이 예희랑 다르게 어머님 셋째 자제분이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놀러만 다닌다고요.
제가 조금 머리가 커지고 나서, 몇 가지 궁금증들이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추억 회상이었죠.
그때 침대의 커튼, 참 안락하고 좋았었는데.
이상하게 그 안에 들어가면 밖에 소리가 다 묻힌단 말이지. 상당히 두꺼웠었고부터 시작했어요.
그리고, 부모님께서는 왜 그 망나니 아들내미를 훈육할 생각을 안 했을까.
어머니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말하셨지만
왜 침대 밑으로 고개를 숙이자마자 그것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고
어머니 학원은 초등생 원생 위주였는데 어째서 시험 준비를 하셨고
두 해 동안 야근이 한번도 없었던 아버지는 어째서 하필 그날 야근이셨으며
아무리 아이가 허세를 평소에 많이 부렸다 해도
그렇게 우는 아이를 굳이 침대에서 자게 한 이유는 무엇이고
초등학생 때의 다른 이벤트는 잘만 회상하면서
어째서 침대 밑 괴물 소동은 언급하지 않는지.
내 다른 친구들은 알게 모르게 마음에 안 들어하셨으면서
어째서 영수네 가족이랑은 친했는지.
그리고 겨울방학이 끝나고 만난 영수가 다른 사람처럼 순해진 이유는 뭔지.
야구선수가 꿈이던 그 애는 어째서 로스쿨에 간 건지.
저는 제 반평생을 그것을 찾아 헤맸고
그것의 정체와 원리를 마침내 정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지만은..
저희 부모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저는 그것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었고,적절하게 가공할 수 있었습니다.
제 부모님이 원했던 것이 다른 아들인지, 달라진 아들인진 평생 모르겠지만요.
저희 업체에 앞서 두 분의 자녀를 맡겨주신 어머님의 신뢰에 보답하고자
저희 업체의 극집중 커리큘럼을 선택하신 소수 학부모님 대상 신상품의 사용 기회를 어머님께 가장 먼저 드리려고 합니다.
빵을 구울 때는 반죽을 알맞게 배합해 적정 기간 숙성시킨 다음, 적절한 시간을 구워야지만 맛있는 빵이 완성되죠.
저희 어머니 아버지는 빵 굽는 걸 참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상품의 이름을, 페이스트(paste)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어떠십니까.어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