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에게



영호야, 잘 지내고 있는지 항상 네 소식이 궁금해. 지난번 간다던 유격은 잘 끝냈는지 모르겠어. 그저 몸 다치지 않고 네가 건강하길 바랄 뿐이야.



가족들과 이사 온 여기 백합리는 투명한 계곡과 청명한 산들이 즐비해 있어. 엄마의 고향에서, 엄마가 하루빨리 건강해지기를 매일 기도드려.



엄마도 고향에만 돌아간다면 병이 나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고 ; 아빠는 시골 생활이 맞지 않다고 나한테 투덜대시긴 하더라



이웃들도 모두 친절하셨어. 내가 만난 백합 사람들은 한평생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더래.



있지, 백합리 사람들이 모두 우리 집에 방문하셨어. 다들 엄마가 걱정되셨나 봐. 옆집 할머니는 엄마 손을 잡고 펑펑 우시는데 나도 마음 한구석이 울컥해 눈물만 흘러나왔어.



하루에 한 시간씩 산책하러 나가는 일이 일상이 되었어. 주변을 둘러봐도 아름다운 경치뿐이야. 엄마가 이리 아픈데 나 홀로 황홀함에 취한 것 같아서 죄책감도 들지만.


어쨌든, 서울에서의 생활보다 훨씬 마음에 들어. 해피도 이곳 생활이 썩 마음에 드나 봐. 하긴, 집 안에 갇혀있었던 서울보다 시골이 해피 입장에선 더 즐거울 것 같아.



나는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는데 영호 너와 같은 시간을 살면서 같은 공간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워. 박영호, 너의 이름 석 자만 머릿속에 맴돌아. 편지 기다릴게.





추신. 여기서 가장 큰 산인 백합산! 오늘은 거길 올라갈 예정이야, 이곳 사람들이 기도 올리는 산신이 있다더라!

글로는 전해지지 않는 마음을 담아, 은주가

1987.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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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에게



편지 잘 받았어, 영호야.  네가 몸 성히 훈련이 끝났다고 해서 얼마나 안심되는지 몰라. 어쨌든, 오늘따라 네 얼굴이 아른거리는 밤이야.



해피가 없어진 지 일주일이 지났어. 어딜 찾아도 보이지 않아. 정말 미친 듯이 찾아다녔는데도, 흔적조차 없어. 아빠는 이 동네 개 도둑이 해피를 데려갔다고 확신하시더라.



어쨌든, 어디에 있든 해피가 무사히 지내기만 바라는 마음이야. 해피가 너무 보고 싶어.



어쨌든, 엄마의 건강이 정말 많이 호전되었어. 한 달 사이 예전보다 더 건강해지신 것 같아. 내가 엄마를 모시고 백합산에 올라 매일 기도드린 덕분이래. 지난 편지에서 엄마 손을 잡고 우신 할머니가 말씀 주셨어; 마을에서 대모 할머니라고 불리셔



어쨌든, 백합산 정상 쪽에는 작은 샘이 있어. 거기서 신님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샘물을 3번 떠 마셔.  샘물 덕분일까? 냄새는 비리지만 산신이 주는 샘물이라 그런가봐.



뭐랄까. 과한 친절은 독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아.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항상 웃으며 엄마 안부를 물으셔. 하루에 못해도 다섯 번씩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같아. 아무리 같은 고향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엄마에게 관심이 많은 건 이상하지 않나? 아직 내가 여기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건가?



어쨌든, 나 너무 네가 보고 싶어 영호. 휴가는 언제쯤 나올 수 있어? 정말 빨리 나와줘. 지금은 네가 꼭 필요해.

글로는 전해지지 않는 마음을 담아, 은주가

1987.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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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에게



아빠가 이젠 집에 없어. 엄마가 말해줬어. 어젯밤 큰 고성이 들렸어. 엄마랑 아빠가 싸우는 소리였어.



어쨌든, 오늘은 엄마의 방을 정리하는데 침대 밑에서 뼈들이 나왔어. 뼈 자체가 무섭다기보다, 작은 강아지 뼈라서 더 무서워. 해피를 생각하면 안 되는데, 자꾸 해피가 생각나.



어쨌든, 엄마는 건강이 많이 호전되었어. 엄마는 산신님 덕분이래. 산신님을 져버린 지난 세월이 너무 후회된대. 엄마는 매순간이 행복하대.



어쨌든, 요즘에는 자주 어지럼증을 느껴. 이곳에 산들은 내겐 너무 크게 다가와. 공기가 나를 깔아뭉개고있어.



어쨌든, 요즘에는 엄마가 나를 업고 백합산에 올라. 누워있는 내게 샘물을 세 번 떠먹여 줘. 비릿하고 역겨운 맛에 뱉어내면 내 뺨을 때리셔.



사람들이 엄마 대신, 내 안부를 묻기 시작했어.



어쨌든, 은주가

1987.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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궳?뚫?어쨌든,어쨌든,어쨌든,



뚫뤨어쨌든어쨌든어쨌든,어쨌든

앚엙?뱝잗어쨌든어쨌든어쨌든어쨌든



어쨌듢듢쟀든어쨌든어쨌든

든 산신님이 있어.



뛜.똟.엕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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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에게



부대는 잘 복귀했어? 네가 준 세 알의 초콜릿 맛있었어.



우리 사이 잘 정리된 것 같아서 다행이야.



지금까지 고마웠어.



은주가.

1987. 8.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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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무단 탈영 인원(일병 박영호) 소지품에서 발견된 편지 전문임.



8사단 57 탄약대대 소속 일병 박영호는 1987. 08. 02. 21:13에 탄약고 경비 임무 중 선임 김정훈 상병을 개머리판으로 폭행 뒤, K1 기관단총 및 5.56mm 탄 50발을 탈취 후 탈영한 것으로 추정됨.



이후, 8사단의 대대적 수색이 이루어졌지만, 소재 파악이 불분명했음.



1987. 09. 02. 13:37 경기도 용인 인근 주민 제보로 탈영 인원 일병 박영호의 소재 확보하였으며, 인근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됨.



부검 결과, 사망 추정 시각은 8. 29. 오후 경이며 260 Sv의 방사선 피폭이 직접적인 사인임.



소지품에서도 다량의 피폭 흔적이 남았으며, 4통의 편지에선 기준치를 훨씬 뛰어넘는 방사능이 검출되었음. 편지에서는 일병 박영호의 지문 외 다른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음.



소지품 중 K1 기관단총에선 3발의 탄흔이 발견. 3발의 총탄은 소재가 불명확함. 현재 인근 주민 대상으로 격발 목격 여부를 탐문 중이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음.



편지 내용에 적힌 백합리는 용인 어디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지명이며, 실제 당국에서도 해당 지명을 사용하는 곳은 없었음.



본 사건은 일병 박영호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탈영 자살 사건으로 보이지만, 탈영 인원의 직접적인 사인이 방사선 피폭인 것으로 보아,  북한의 개입 가능성이 있음.  국내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로 정세가 혼란한 틈을 탄,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본 담당관의 견해임. 본 사건에 대해 당국의 경각심을 높이고, 북한의 행보를 주목해야만 함.



국가안전기획부 김덕은 중령

1987.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