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게
안녕하신가, 제군. 오늘도 하늘은 붉고, 해무는 자욱하지. 그렇지 않은가?
아마 궁금한 점이 많겠지. 왜 본 적도 없는 노트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지, 또 이리 자연스레 자네에게 말을 거는 나는 누구인지…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닐세. 진정 중요한 건 자네가 예의 그 규정을 어기고 이 정체 모를 무언가를 펴 보았다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걱정 말게. 무수한 처벌 규정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아. 바다로 나간 연어에게 강의 규율이 무의미하듯, 이 역시 그러한 것이라네.
용건을 꺼내기 전에 오래된 옛날 이야기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너무 지루해하진 말게나. 혹시 아나? 자네의 그 깊고도 깊은 고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
1900년대. 그 대교도, 또 우리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 때 모든 건 시작되었지. 이 나라가 제 1 공화국이라 불리우던 시대에 말이야. 한 민족이 반으로 갈라져 싸우던 전쟁의 가운데서,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뒤틀린 소망은 조용히 싹을 틔웠다네.
최초의 보고는 단순했다네. 해무가 걷히는 날, 다리를 넘어간 부대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평범한 이야기.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방어선의 한 가운데에서 분대 하나의 실종 따위는 별 문제가 아니었으니. 다만 조금 의아함을 느낀 사람은 있었지. 대체 무슨 다리를 그들은 건너간 걸까. 근 2km에 달하는 바다를 어디로 건너간 걸까? 다른 이들이 그랬듯, 이 역시 금방 사라질 번뜩임에 불과했지. 그랬어야만 했다네. 허나 그곳에서 자욱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를 본 순간… 그 찰나의 광채는 어느덧 저편에서 기이하게 빛나기 시작했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충동을 이끌며, 그리 손짓하기 시작한 게야.
그때부터 다른 모든 건 빛을 잃어버렸다네. 권력도, 재산도, 가족도 모두 길가의 돌맹이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지. 그저 수단이었다네. 뇌 한구석에 뿌리내려 당최 뽑히지 않는, 그날의 아지랑이에 조금이라도 닿기 위한 수단. 참으로 애석하게도, 그 자는 조금은 더 현명했다네. 그 광채에 이끌려 깊은 바다 속 어딘가로 가라앉았던, 다른 수많은 우자(愚者)들에 비해서 말일세.
어느덧 높은 자리에 오른 그는 그 광채에 ‘조국의 영광’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자신이 연구하는 것은 명백하게 이 나라를 위한 것이며, 이 빛은 우리를 진정 영광된 길로 이끌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지. 본능적인 두려움에 애국심의 장막을 두르고, 근원적 충동을 숭고한 것으로 포장해 가며 그리 나아간 게야. 자네가 생각해도 우습지 않나? 그런 거창하고 한심한 이름으로 불릴 만한 게 아닌 데 말이야.
그는 제 권위와 설득을 이용해 그 빛을 쫓기 위한 시설을 세웠지. 자네가 생각하는 그곳이 맞다네. 다만 그때는 조금 다른 이름이었지. ‘부산 초자연현상 연구부서’. 참으로 멍청했지. 이름은 중요하다네. 우리는 ‘재난’이라는 이름으로부터 그것에 공포를 느끼고, 또한 결국 거역할 수 없음을 겸허히 인정하게 되는 게야. 허나 그는 제 길이 옳다고 믿어야 했기에 ‘연구’라는 이름을 붙이고, 결국 그 이름 하에 다른 이들마저 뒤틀린 소망으로 이끌었지. 어찌 알 수 있었겠나? 아니, 틀림없이 알고 있었지. 불꽃에 손을 넣어봐야만 뜨거움을 알 수 있는 게 아닐진데, 어찌 몰랐겠나! 허나 부나방이 그 뜨거움을 안다 한들 빛을 어찌 외면할까. 그저 그 끝에 과실이 있을 거라 무작정 믿고 또 되네일 뿐이지.
수많은 사람들이 애국심이라는 기틀 아래 안개 너머로 향했고, 몇몇은 다시 돌아왔지. 출발 전에 느꼈던 일말의 불안감조차 사라진 채 부드러운 웃음을 품고. 다행스럽게도, 그에게도 일말의 두려움은 남아 있었지. 그들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동정심의 탈을 쓴 충동에 결코 휘둘리지 않았던 게야. 그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욕망을 품고, 그 안의 것을 들여다보려는 눈을 한 가닥 남은 이성으로 돌려 가며 불쌍한 희생자들을 미친 듯이 파헤쳤다네. 아주 조금이라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말이야.
그러나 눈을 돌린다 한들 어찌 모든 것을 외면할 수 있었겠나. 그 기이하리만치 행복해 보이는 미소에 담긴 의미를 어찌 모를 수 있었을까. 속이 뜯겨져 나가고 약품에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던 그 웃음의 근원을 짐작하지 못할 리가 없지. 강줄기가 굽이친다 한들 결국 바다에 이르게 되는 것을. 연구라는 미명 하에 행해지던 무의미한 반복조차, 어느 날 끝을 맞이한 게야.
이제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겠네. 자네를 그리도 괴롭히는 ‘그것’에 대해서.
본디 그것에는 실체라 할 만한 게 없었다네. 그저 우리들의 의식이 향할 기수역에 불과했지. 가끔씩 그에 홀려버린 불쌍한 자들이 흘러들어가고, 또 결말을 맞이하는 장소에 불과했던 게야… 허나 누군가는 작은 소망을 품었지. 예정된 결말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기를 바랬고, 또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어.
그렇게 대교는 탄생했다네. 표면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끊임없는 경제 성장의 지표로, 그 이면에 우리들의 조그마한 소망을 품은 채로.
허나 어리석은 일이었지. 이미 소망은 뒤틀릴 대로 뒤틀려 있었건만, 어찌 정해진 목적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설령 뒤틀리지 않았다 한들, 한낱 인간의 소망으로 그 드넓은 붉은 하늘을 어찌 가릴 수 있었을까! 2006년의 일은 결국 필연이었지. 뒤틀린 채로 지어진 것이, 올바른 형태로 돌아갔을 뿐이야. 그 해무 속에 파묻혀 있던 아지랑이는 이제 실체를 얻고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자 속의 희망이 그러하듯, 아직 우리의 소망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네. 다리를 건너 반대편에 도착하면, 길 잃은 자들은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게야. 그것만은 변하지 않았지.
그렇기에 우리들은 과거의 실패에서 벗어나 다시금 시작했지. 관리국을 세우고, 무수한 희생을 딛으며 규칙을 만들고, 또 그것을 퍼뜨리고 지켜나갈 체계를 세웠다네.
매뉴얼은 목적을 달성하기에 한없이 유용한 수단이었지. 규칙과 규칙의 충돌, 당최 이유조차 알 수 없는 기이한 항목들! 그 행간에 숨은 공포와 압제로부터 사고를 제한하고 충동을 억제함으로서, 우리의 이상은 비로소 이루어지는 게야.
맨 처음 자네에게 말했듯이, 이 노트는 자네가 잘 아는 기초적인 수칙에 어긋난다네. <부산 초자연재난 관리국 직원 공통 조례 1조 2항>, 출처 모를 물건, 원인 모를 현상에 접하지 말 것. 사실 이를 어긴 순간부터 이미 늦었지. 그 모든 두려움과 제약을 이겨내며 이곳에 도달한 자에게는 응당 부정한 과보가 주어지는 법이니…
혼란스럽겠지. 그저 평범한 하루, 평범한 일상의 속에서 잠시간의 망각에 이끌린 것에 불과하거늘, 어찌 그 존재와 접하게 되었단 말인가?
어렵진 않아. 다리를 건너온 자들 중 1차선에 들어간 이들을 생각해 보게나. 우리가 만든 매뉴얼의 그 어디에서도 신체 훼손에 관한 항목은 없어. 그러나 모두가 이를 행했고, 그럼에도 다시 돌아갔다네.
대체 무엇이 이토록 고통스럽게 한단 말인가? 끝없는 공포와 고통마저도 넘어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린 이유가 무엇인가?
자네는 이미 알고 있어. 대체 무엇이 자네가 가진 문제인지, 우리의 소망을 뒤틀리게 한 것이 무엇인지, 또 수많은 비용과 희생을 들여서라도 막아야 했던 그 끔찍한 것의 본질을 말일세.
아, 호기심이여. 눈을 뽑고, 귀를 파내고, 코를 도려내고 피부를 벗겨내어도 차마 걷어내지 못한 빌어먹을 호기심이여! 이는 우리를 결국 파멸로 이끌 것이나, 그럼에도 거스르지 못할 영원한 족쇄이니…
그 교각의 아래는 모든 강물이 모일 바다이며 우리의 근원된 곳이라네. 모두는 그게 결코 선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어. 자각하지 않더라도 영혼의 깊은 곳으로부터 깨닫고 있는 사실이지. 그럼에도 누군가는 교량의 안쪽으로 들어가고, 누군가는 금고 안의 기밀을 파헤치며, 자네는 이 노트를 펴 보았다네.
이름은 참으로 중요하지. ‘소망’의 이름을 가짐으로써, 만인은 그 위에서 제 모든 것을 바쳐 뇌를 파먹는 호기심을 해소할 기회를 부여받게 되었다네. 이성은 부정하겠으나, 이는 마음 깊은 곳에 깃든 소망이니 그저 이루어질 뿐이지. 무수한 규범조차 그 앞에서는 그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야.
이쯤에서 용건을 말해야 겠군. 사실, 안다 하여 모두가 삼켜지는 건 아니야. 물론 대다수는 저주받을 호기심을 해결한 대가로 다시없을 쾌락을 누리고, 한없는 이타심으로 그 사특한 진리를 모두에게 알리고자 하지. 진정 행복하다는 듯 웃음을 걸고 말이야.
하지만 특별한 몇몇은, 혹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그것을 접한 자들은 슬프게도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다네. 잠시간의 즐거움이 도저히 가리지 못할 정도로, 해무 너머에서 기다리는 무언가의 진정한 실체를 깨닫는 게야. 그리고 결코 해갈되지 못할 끝없는 고통에 휩싸여 자비를 구걸하지.
결국 그들과 우리는 같아. 다른 이들이 그것을 누렸으면 하기에, 혹은 다른 이들만은 구원받았으면 하기에 제 생을 바쳐 이루고자 하는 거지.
나는, 우리는 실패했다네. 수많은 사람들을 파헤쳐 그 속의 실체를 보았으나, 그 순간의 쾌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소망을 품어버렸지. 그렇기에 진정 올바른 소망을 품고 이를 막아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고 말이야.
이 노트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네. 자네같이. 모든 장벽을 넘어 규정의 바깥을 볼 정도로 호기심 많고, 또 그것에 완전히 삼켜지지 않을 수 있는 이들.
다음 장에 적힌 건 내가, 우리가 본 그것의 진실이라네. 자네가 밤잠을 설치며 궁금해하던 그것에 대한 정보의 총아이며 1차선의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하지.
물론 그걸 들추는 건 자네의 선택이야. 첫 번째 장에는 아무런 강제력도 없어. 그저 어느 늙은이의 시시콜콜한 옛이야기에 불과하다네. 만약 원치 않는다면 그저 덮어버리고 일상을 보내게나. 어느 순간 사라져 있을 거고, 기억 속에서 이 내용 역시 사그라들겠지. 혹시 아나? 이 노트 자체가 그 존재의 계략에 불과할지. 자신이 0급 정신오염자가 되는 일이 두렵다면 신고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만약, 정말 만약 우리와 함께하고자 한다면… 다음 장을 넘겨 읽어보게나. 조금 긴 내용이니 커피 한 잔을 곁들이는 것도 좋겠지. 다만 결코 추천하진 않는다네. 이 지옥에 다른 이를 끌어들이기에는 내 남은 인간성이 허락하지 않거든.
말이 길었군. 이만 줄이겠네. 부디 자네가 남은 생을 평범하게 보내기를 진심을 다해 기원하지.
…그럼 마지막으로, 우리와 함께하게 된 것을 환영하네.
관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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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글솜씨 동원해서 적어보긴 했는데 이게 맞나 모르겠음.
나름 재미있길 바람.
지훈이 어디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