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의 오후.
시험이 전부 끝나고 종례까지 모두 끝난 직후,
"그래, 시험치느라 수고 많았고, 반장. 인사해라."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안녕히 계세요."
우다다다-
반장의 인사와 함께, 수많은 학생들이 교실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그중 맨 앞줄에 앉아있던 명우는 일찌감치 가방을 싸놓았지만, 왜인지 느껴지는 위화감에 자리를 뜨길 망설였다.
"아, 대체.."
확실히 이상했다. 시험지에 적힌 그 희극 지문.. 그것은 분명 명우가 중학생때 쓴 소설의 내용과 같았다. 중학생때라고는 했지만, 며칠 전에 이사를 하면서 한 번 더 본 기억이 있어 더 확실하게 기억이 났다.
"도대체 누가?"
혼란스러웠다. 그도 그럴게, 우리 집은 외동이고, 딱히 다른 친구를 집에 초대한 적도 없었다. 심지어 인터넷에 글을 올린 적도 없으니, 어릴 적 쓴 자작소설이 외부로 유출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설마 해킹-"
"야 이명우. 발치워."
"아, 미안."
나는 내 자리 주변을 빗자루로 쓸던 여학생의 불호령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이딴 거 고민해봐야 정답이 나올까. 집이나 가야지. 같은 생각을 하고는, 곧장 뒤돌던 그 때였다.
"야, 잠깐. 너 사람이야?"
"...?"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한 거지?
"뭐?"
"...수칙 5항에 따르면 분명.."
중얼거리는 여학생. 아니.. 여학생? 난 왜 같은 학생의 이름을 기억 못하는 거지? 1학기도 끝나가는데? 나는 여학생의 교복에 달려있을 명찰을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명찰은 보이지 않았다.
"...하 참. 아직도 남아있었어. 너 인간 맞지? 반응이 '괴이'가 아닌데? 아니면.. 아직 잠식당하는 중이라던가."
"도대체 무슨 소리야? 괴이고 잠식이고.. 난 무슨 소린지.."
"잠식되는 중이면.. 살릴 수는 있으려나. 아 씨, 괜히 나까지 죽는 거 아냐 이거?"
내 말은 가볍게 무시하고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던 여학생은, 손가락으로 창문 뒤를 가리켰다.
"..뭐. 어쩌라고."
"창문. 저기, 교문쪽을 봐."
나는 천천히 창문으로 향했고, 곧 저 멀리서 교문으로 하교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이게 왜? 뭐 문제있어?"
"교문쪽을 자세히 봐. 교문 밖을 내딛는 학생들이 갑자기 감쪽같이 사라지잖아. 마치 연기처럼."
나는 다시 교문 밖으로 나가는 학생들을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여학생의 말이 사실이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거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더 이상한 건 저기, 교문 앞에서 친구 기다리는 애들. 분명 시야만 보면 계속 교문 쪽을 흘긋거리는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잖아. 애들이 갑자기 교문 앞에서 펑하고 사라지면 이상함을 느껴야되지 않아?"
"어, 그러네.. 이상하네..?"
분명, 여학생의 말대로였다. 교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사라지는 학생들, 그리고 그런 광경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아하는 교문 앞의 학생들. 분명 정상은 아니었다.
"이상함을 느끼는 거 보니 다행이네. 너, 아직 사람이구나."
"아까부터 사람 사람거리는데, 그럼 니 말대로면 사람이 아닌게 있다는..."
"쉿. 그래, 있어. 사람 아닌 것들."
검지를 입술에 갖다붙이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여학생. 언뜻 긴장한 듯한 여학생의 태도에 나는 이게 실제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근데 너, 그런 건 어떻게 안 거야?"
"어떻게 알긴 그때 방송.."
"방송? 그게 뭐 어쨌.."
내가 되묻자, 경악하는 표정을 한 여학생은 곧장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로 물러섰다.
"씨발, 뒤지기 싫으면 손들어!!"
"...야 왜.."
"당장!!!"
"까,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
"안들면.."
여학생은 곧바로 주머니에서 커다란 식칼을 꺼내들고 내게 겨누었다.
"진짜 죽일거야."
"....알았어. 들게"
식겁한 내가 대답하며 손을 들자, 조금 진정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한다.
"소리 질러서 미안한데, 지금 너가 괴이로 의심되거든? 아니, 의심이 아니라.. 거의 확신이야."
"괴이라니, 그게 뭐.."
"모르는척 하긴. 하긴 꽤 오래됐지..아무리 잠식되던 중이라도 방송을 못들었을리 없고.. 이제 진화하는 놈까지 나온 건가?"
"아까부터 자꾸 뭐라고.."
"닥쳐. 이 괴물새끼야."
괴물? 내가 왜 괴물이야. 난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인데.
"날 왜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건데."
"...잠식 과정중 기억 소거는 들은 바 없지만, 혹시 니가 특이케이스일 수 있으니 설명할게. 오늘로 시험 끝난 건 알지?"
"어, 어.. 그렇지. 오늘이 마지막 날이잖아."
"뭐 다른 것도 다 이상했지만, 오늘 국어시험 봤잖아. 국어시험지, 뭔가 안이상했어?"
"어, 아.. 그 16번 지문? 이상하긴 했지."
"...어디가 이상한데? 구체적으로 말해."
"그 희극 지문. 실제로 없는 희극이잖아.
말 그대로다. 그 희극 지문은 바로 내가 쓴 소설이고, 아직 세상에 내보인 적 없기에, 세상에 오직 나만 알고있는 작품이다.
"그래, 희극 지문뿐만 아니라 죄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시랑 소설이었어. 그리고, 문제도 이상했잖아? '당신이 미래에 겪을 일'이라니.. 그딴게 말이 돼?"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이상하게 느껴지는게 당연한거였다. 난 왜 그걸 지금까지 몰랐지? 심지어 난 지금 앞에있는 애 이름조차 기억을..
게다가 내가 만든 소설이 정말 그 괴상한 문제로 출제된거라면..
"나 그럼 설마, 진짜 괴이니 뭐니 하는 그거야? 아냐, 그럴리가.. 그렇다면 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기억은.."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정말 '방송' 못들었어?"
방송. 내가 들은 방송이라면 시험 종료 5분전에 울린 안내 방송 뿐이다. 하지만 지금 얘가 말하는 방송이 그걸 뜻하진 않는 듯 하다.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아니. 못들었어."
"...그럼 역시 넌 괴이가 확실해. 정확히는, 곧 괴이로 변하는 거지. 이미 잠식이 거의 완료된 상태야."
"자, 잠깐. 넌 뭔가 괴이의 특징을 알고있는 거 같은데, 나한테도 알려줘. 그럼 내가 판단할게. 나도 내가 정말 괴이인지 뭔지, 괴물같은 거라면 더 살고 싶지 않아."
"..괴이는 인간이 아니야. 원래 인간이였든, 아니면 날 때부터 괴이였든. 특히 인간이었던 괴이들은 아예 존재 자체가 말소되어버려. 그게 괴이가 되었다는 증거야."
"그러니까, 애초에 내가 잠식되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아?"
"...너, 국어 16번 몇번으로 찍었어?"
"어... 아마, 2번. (가)랑 (나)였나."
"땡, 5번. (가), (나), (다) 전부야. 애초에 16번은 답을 정해놓고 물은 거야. 이건 시나 소설 따위가 아닌, 너가 겪을 미래라고. 그러니 괴이 아니겠어?"
"분명.. (다)는.."
"그 시험 문제, 16번 문항은 괴이야.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문제를 틀린 학생 역시 괴이에 잠식됐겠지. 아니, 됐어. 내가 들은 방송에 의하면, 그리고 경험에 의하면, 그래."
"잠식된 학생은 어떻게 돼?"
"괴이에 완전히 잠식되면, 괴이 자체가 되어버려. 너처럼 인간인척 굴 때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그 자체로 인간을 위협한다고."
"...위협이라면"
"죽이는 거지. 어떤 방식으로든. 괴이에게 죽은 놈은 또 다시 괴이가 되어 다른 놈을 죽일 거고."
"아아, 아아아...."
여학생의 말을 곱씹자, 나는 등 뒤로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랬던 거구나. 그랬던 거였어.
"..그러니, 미안. 괴이가 될 바엔 너도 차라리 내 칼에.."
끼이이익-
"야, 너 뭐하는..!!"
ㅡㅡㅡ
나는 뒤에 있던 창문을 열고, 그대로 뛰어내렸다.
나부끼는 머리카락, 가까워져오는 땅, 그리고, 끝내, 충돌하기 직전,
난 이 선택이 옳다는 것을 직감했다.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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