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필자는 대구에서 태어나 5살에 서울로 상경한 경상도 출신의 서울 사람이다.


그리고 부산에서 엑스포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에 살고 있는 누나의 남편인 자형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앞으로 이어질 내용은 5일동안 부산에서 머물며 듣고 겪었던 내용들로 법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실제 인명, 인물, 지명등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실제 지명과 다르더라도 이런 배경을 이해 바란다.


본 내용은 읽는 이에 따라서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받을 수 있으니 심약자, 노인, 임산부는 읽는 것을 자제 바란다.



0. 서울에서의 출발


"양말은 충분히 챙겼어요?"


"응, 하루에 하나씩 신으면 될테니깐. 5켤래는 챙겼어."


"부산에는 취재기자도 없는건가요? 왜 꼭 당신이 가야 하는 건가요?"


"뭐, 먹고 살려면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지. 잘 갔다 올게."


부산으로 장기간 출장을 떠나게 된 나는 아내의 볼멘 소리를 마음에 담아둔 채 부산행 열차를 타게 되었다.


부산까지 향하는 KTX는 정차역이 6개로 2시간 30분 정도만에 부산까지 도착할 수 있었지만.


이 정차역은 점점 늘어나서 13개 17개 29 42개 등 셀 수 없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렇기에 가끔씩 정차역이 아닌, 기차가 서서는 안되는 곳까지 향하곤 하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하필이면 내가 탄 KTX 열차가 정차역이 아닌 곳에 정차를 하고 만 것이었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지옥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미리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we will soon arriving at Hell,  please make sure all your belong be with you when leaving train. thank you.'


하필이면 열차가 지나는 길이 지옥인 바람에 부산까지 향하는 길이 늦어지게 되었다.


나는 기차에 마련되어 있는 비상 탈출용 망치를 꺼내서 기차 안으로 들어오려는 망자들의 머리를 깨부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위를 조금 먹었는지, 그 뒤로 기차가 부산까지 향할때까지 나는 에어컨 앞을 떠나지 않았다.


태풍보다 무서운게 더위라고 하지 않던가?


내 앞에 앉은 이들은 20대 커플로 부산행이 초행인지 기차 메뉴얼을 정독하고 있었다.


청춘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장자로서 조언을 한마디 해줬다.


"메뉴얼은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쓰는게 아니니, 너무 맹신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혹시 부산은 몇번 가보셨나요?"


"이번이 숫자로만 치면 7번째겠군요."


이 커플은 서울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을 전공하는 학생들로 부산에 인디 영화를 출품하기 위해 향하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과 부산에선 어떤 음식이 맛있으며, 볼거리는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차는 부산역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숙련 된 기관사가 아니였다면, 실수로 일본이나 바다 속으로 쳐 박힐 수도 있었기에 유능한 기관사를 만나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 부산의 운전수들


부산은 6.25 이후로 열악한 도로와 교통망을 자랑하고 있다. 도로를 걷다 보면 어느새 도로가 아닌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곤 한다.


그만큼 도시 설계가 계획적이라기보단 난개발로 이루어져있다는 의미인데.


차선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이해할 수 없는 표지판이 있거나 내비게이션이 잘못 된 길로 안내하거나.


소망대교라는 이미 폐쇄 된 다리로 들어가게 되거나 하는 등의 경험을 겪을 수가 있다.


나는 누님의 집으로 향하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첫 택시는 멀쩡해보였으나 문을 열자 미묘한 피냄새가 났다.


그래서 택시를 보내고 다음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는 50대에 머리가 까진 중년으로 원래는 양산에서 사업을 작게 하다가 부산에서 택시를 몰게 되었다고 한다.


"글 쓰는 양반인교? 아이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멀리도 왔네예. 뭐하러 왔는교?"


택시 기사에게 엑스포에서 수산물 관련 된 글을 쓰러 간다고 하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부산하면 회 아잉교? 싸게싸게 먹는데, 이 사케 하나 걸치고 회 먹으면 이게 진국인기라."


가끔씩 부산에서는 바다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데, 그 날이면 회나 해산물을 실컷 먹고 이웃끼리도 나눠 먹는다고 한다.


그는 운전 중에 핸드폰을 꺼내서 내게 사진을 하나 보여줬다.


"이게 저번에 잡은기라. 참 크죠잉?"


4m 정도 되는 해산물과 그 옆에서 큰 웃음을 짓고 있는 택시 기사의 모습이 스마트폰 너머로 보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정차를 했다.


"억!"


뒷좌석에 앉아있던 나는 앞좌석에 머리 부분 쿠션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야 이 새끼야 운전 똑바로 안하냐!"


택시 기사의 욕설이 귓가를 아른거렸다. 주변을 둘러보자 모든 간판이 뒤집어져 있거나 읽을 수 없는 글로 쓰여져 있었고.


무언가가 내가 탄 택시 쪽으로 달려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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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뭐랍니까?"


"외국 양놈들 아잉교, 씨발럼들이 틱톡인가 지랄인가 한답시고 차도로 뛰어들어서 여간 곤란한게 아잉기라."


외국인들은 부산에 생태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다가 치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내가 탄 택시는 우리 누나의 집으로 도착하게 되었다.


2. 묘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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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은 6.25 당시에 갑자기 몰린 피난민 때문에 부산은 거주지가 모자르게 되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공동묘지까지 사람들이 몰리게 되었는데,


원래라면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던 이 곳은 피난민들이 살 공간이 너무 모자르게 되자 비석마저 통째로 들어내서 집을 지었다고 한다.


가끔씩 망자들이 찾아오곤 했지만, 전쟁 통에 너무 배고프고 얼어죽을 것 같았기에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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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를 지나가다보니 비교적 멀쩡해보이는 비석들을 발견했다. 나는 이를 자형에게 묻자 뜻밖에 대답을 들었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마을이 자라기 위해선 더 많은 무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스스로 증식하는거야."


나는 묘비에 비석 중 하나를 보았는데 2029년 출생 2042년 사망이라는 묘비명이 보였다.


망자들이 잠들지 못하는 이 공간에서는 더 많은 이들을 망자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런 비석들이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한다.


처음에는 불길하다고 부수거나 망가트렸는데, 최근에는 전통을 살려서 이들을 건축자재로 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비석 중에 하나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이구야. 오늘 밤엔 좀 바쁘겠구나."


다행히도 누님의 집에는 작살이 있어서 밤을 넘기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3. 부산의 LG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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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LGBT는 롯데 자이언트 베이스볼 팀을 의미한다.


이 팀은 가을에는 야구를 하지 못하는 팀으로 단 한번도 1위를 기록한 적이 없는 팀이라고 한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이들이 실제로는 야구팀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흉내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게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었다.



4.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다.


부산 엑스포에서 해양 수산물을 성공적으로 취재했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선 크툴루라 불리우는 대왕문어 아종이 마침내 국내 양식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이제는 굳이 미국까지 가지 않아도 국내에서 손쉽게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국내 양식 된 이를 플라스틱 포장지에 담아 질리도록 맛봤다.


그리고 술을 마셨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드문드문 있는지라. 양해 부탁바란다.


5. 다시 서울로 향하다.


부산에서의 길고도 짧은 5일은 이렇게 끝이 나게 되었다.


누나 집에서 편의점을 가려다가 실수로 길을 잘못들어서 100층짜리 건물을 탈출했어야 하는 일이나.


부산 엑스포에서 있었던 일들은 차후에 다른 이야기로 풀도록 하겠다.


나는 부산에서 있었던 여독을 풀기 위해 KTX 좌석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우연인지, 내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왔을때 만났던 이들과 다시 같은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남자는 큰 교통사고를 당할뻔 했으나 가까스로 피했으며, 두명의 여성은 새벽에 바닷가를 거닐었는데, 새벽 바닷 공기가 좋았다며 이야기를 했다.


서울까지 돌아가는 길에서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기차 역에서 내렸다.


이로서 내 5일간의 부산 탐방기는 끝나게 된다.


만약 색다른 경험을 원한다면 부산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