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한여름 밤, 차가운 냉기에 잠에서 깨어난다.

아니 그저 자고 있던 척을 했을 뿐이다.

햇빛 하나 들지 않는 방, 하염없이 들려오는 통곡 소리, 계속 기도를 외우는 사이비 소리.

언제부터일까 우리집은 이런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중학교까진 성적은 잘 안 나와도 교우관계가 굉장히 좋았으며, 늘 밝은 아이라고 들어왔으며 부모님과의 관계도 좋았다.

하지만 중학교 졸업여행 이후 고등학교로 올라오자 상황은 바뀌었다.

친했던 친구들은 내 말을 듣지도 않으며, 부모님은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다.

자연스럽게 나는 말수가 줄어들었으며, 학교도 가지 않고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때문일까,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곳에 화가나기 시작했다. 노랫소리, 평소에 잘 읽던 책, 평소에 좋아했던 감자튀김 등 그 모든 곳에.

특히 부모님이 이상한 사이비에 더욱 빠져 부적같은 거에 힘쓰는 것을 보니 불쾌하고 화가 났다.


이런 상황에 실증이 나, 원래는 자살도 고려하여서 도구를 찾던 중 내가 던져서 박살난 목상 옆에 한 쪽지가 떨어져 있었다.

"혼황 음식점 매뉴얼?"

어릴때 많이 갔던 음식점에서 나눠준 5가지 규칙이 적힌 매뉴얼이었다.

뭔가 수수께끼 풀던 느낌이라 집중해서 지키느라 부모님이 내가 조용해서 좋아하셨던게 기억난다.

"죽기전에 먹으러 가볼까..."

마침 시간도 영업시간이라 적당히 준비하고 나갔다.


조용한 거리를 지나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어느순간 혼황 음식점 앞에 도착하였다.

단층건물에 한적한 도로변에 있는 적당한 크기의 가게 겉모습은 내가 알던 음식점과 똑 닮았다.


"추억이네... 그럼 우선 박수 3번을 쳐야..."

그 첫번째규칙, 들어가기전 박수 3번과 반절을 할 시 문이 열리며 직원이 반겨준다.

지금와서 굳이 지켜야 하나 싶은 매뉴얼이지만 추억을 되살릴겸 해보기로 하던 그 순간, 갑자기 박수를 치기 직전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하긴 몇년이 지났는데 자동문으로 바꿨겠네."

예전에는 문이 지멋대로 열리는 낡은 문이었는데 지금까지 유지했을리가 없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조금 쑥쓰러워하며 음식점 안으로 들어왔다.


"내부 인테리어도 싹 바꿨네... 나만 그 자리에 있었구나..."

음식점 내부는 어릴때와는 많이 바뀌었다.


잠시 감상에 젖어있었지만 얼른 남는 자리에 앉아서 직원을 불러보았다.


잠시뒤 검은옷을 입은 직원 한분이 다가와서는 메뉴판 보여주셨다.

'전에는 꼭 호출기로 불러달라고 했는데 진짜 컨셉 다 버렸나 보구나...'

매뉴얼의 내용을 곱씹어 보며 왔던 내가 한번 더 무색해지는 순간이였다.


다행스러운건 메뉴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어린이 정식, 스파게티, 오므라이스등등 익숙한 음식들 사이로 한 음식이 눈에 들어왔다.

"나폴리탄 하나 주세요."

다른 음식점에서도 가끔씩 보이는 메뉴이지만 여기서는 한번도 먹어본적이 없었다.


그렇게 비싼건 아니였지만 평소에는 어린이 정식에 감자튀김으로 먹었고, 막상 시킬려고 하면 재료가 다 소진되었다며 주문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말을 들은 직원은 내 테이블 위로 주황색 카드를 하나 올려놓고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해주었다.

매뉴얼3번때문에 좀 꺼름직하긴 했지만 내 옆쪽에 앉은 한 환자에게도 같은 카드를 올려놓는걸 보고는 음식표시용으로 사용하는 듯 보였다.


역시 죽으려고 하니까 일이 풀리는 건가... 라고 생각 하던중

옆에 한 가족이 눈에 띄었다.


서로 웃음꽃을 피우며 음식을 먹는, 어릴적의 나를 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 가족을 보고 있다가 민폐인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애초에 매뉴얼4번에서 타인을 보지도 말고, 누가 보고나 말을 걸면 무시하라고 하였는데 말이다.

나도 참 매뉴얼에 집착이 심한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이 매뉴얼의 내용 대부분 예의와 관련되어 있던데

예절 교육하기도 좋고 아이들도 재밌게 배우는 좋은 매뉴얼 같아 보여서 부모님이 외우라고 한 것 같다.


얼마나 있었을까, 직원이 와서는 나폴리탄을 건내주었다.

나는 배고팠기에 바로 먹기 시작했다.

나폴리탄, 첫술은 시원하며, 두술은 따듯하였으며, 그다음 술은 갑작스럽게 매웠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이제야 먹다니 울음이 나온다.

옆에 환자분도 눈물을 흘리며 먹고 있었다.


이제야 깨닫는다.

왜 손님 모두에게 매뉴얼을 주었는지.

이 매뉴얼은 나에겐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란 것도.


나는 지체 없이 직원을 부른 뒤 마지막 매뉴얼을 어기고 2층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직원은 빙긋 웃으며 안내해주겠다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