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대에는 몇 년 전에 막사로 쓰던 구 막사가 있다.
현재 그 막사는 창고로 쓰이고 있는데 일꺾도 안된 나에게는 생활관만큼이나 자주 들락거리는 곳이다.
우선 이 창고가 족같은 점은 여러 가지인데
1. 올라가는 계단이 존나 많아서 올라가기 힘들다.
2. 흡연 부스가 밑에 있어 올라가는 길에 담배 쩐내가 존나 올라온다.
3. 창고로만 쓰이는 곳이라 그런지 케케묵은 냄새가 난다.
4. 알 수 없는 섬뜩한 낙서가 존나게 많다 이거 때문에 가끔 꿈도 꾼다.
좀 더 나열하자면 더 있지만 대충 추리자면 이 정도다.
하 그나저나 지금 17시도 지나고 체단도 끝났는데 폰 불출 일찍 좀 하면 안...
'후-후- 행정반에서 전파합니다. 작업 인원 4명 작업 인원 4명
각 계급 별로 한 명씩 행정반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전파합니다. 작업 인원 4명 작업 인원 4명
각 계급 별로 한 명씩입니다.'
아...왜 내가 이병일 때는 막내만 작업 존나 시키다가
내가 일꺾이 될랑말랑 하니까 선진 병영신같은 걸 해서...
심지어 동기들이랑 가위바위보도 지고 말았다.
그래도 짬 먹은 티 좀 내기 위해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천천히 가고 있는데 윗 선임 새끼 하나가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본다.
아마 가위바위보 하느랴 늦은 나를 고깝게 보는 듯한데
나는 뛸까 말까 고민을 좀 하다가 빠른 걸음으로 타협했다.
작업 인원은 나, 팔짱 끼며 꼬라본 상병 새끼, 그리고 병장임에도 착실하게 작업을 나와 모범용사까지 받은 병장이...
어?
"김호준 상병님 이병 애들 안 왔습니까?"
"저기 봐. 누가 그렇게 잘 가르쳤는지 선임들 기다리는데 느긋하게 걸어오신다 이병님"
나 들으라는 듯 하는 말에 나는 애써 흘려넘기며 뒤로 돌아 이병을 쳐다봤다.
따끔하게 한 마디 하려고 입을 열려는 차에 본 이병은 걸어서 오는 게 아니라 약간 다리를 저는 느낌이었다.
"야, 너 다리도 안 좋은 거 같은데 왜 니가 나와? 니들 동기는 뭐해?"
"야야 좀 있으면 폰 불출이야 그냥 빨리 끝내자"
나는 어이가 없어 이병에게 추궁하려고 했지만, 김호준은 폰 불출 시간이 날라갈까 행정반으로 우릴 끌고 들어갔다.
"어 그래, 너네 둘은 창고에서 여기 적힌 교보재 좀 꺼내오고"
행보관은 내게 구 막사 창고 키를 주며 이병과 함께 창고로 보냈고,
"너네 둘은 부식 좀 받아와라 총원 57명이니까 수량 잘 체크하고"
선임들은 여름이라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아이스크림을 수령하러 보냈다.
"야 너 계단 올라갈 수 있겠어?"
"괜찮습니다."
이제 보니까 피부도 창백한 게 뭔가 일이라도 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시각은 17시 11분 어물쩡거리다간 폰 불출 시간이 지날 거 같았다.
그래서 뭔 일이 있겠거니 싶어 그냥 가기로 했다.
"고생하십니다."
"어, 그래."
구 막사 창고로 가기 위해 흡연 부스로 나온 나는 이병들의 인사를 대충 받고는 계단을 올려다봤다.
17시임에도 누그러질 줄 모르는 햇빛이 너무 뜨거운 탓인가?
오늘따라 계단이 더욱 가파르고 높아보였다.
그래서 빨리 그늘로 가자는 마음에 빠르게 계단을 오른 나는 뒤늦게 이병이 떠올라 쳐다보았다.
그런데 다리를 절뚝거리던 놈 치고는 제법 잘 올라왔다.
역시 작업하기 싫어서 가라치려고 했었구만...
구 막사 창고 자물쇠를 풀며 나는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을 했다.
창고는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인지 바깥과는 달리 제법 쌀쌀했다.
에어컨을 쐬는 듯한 시원함에 잠깐 기분이 좋아지려던 찰나에,
벽에 잔뜩 갈겨놓은 낙서를 본 나는 으스스하다 못해 불쾌함이 몰려왔다.
미운 5살처럼 장난끼 가득한 웃음을 짓는 얼굴이 그려진 낙서에 불과했지만
찢어진 입과 빨갛게 칠해진 눈이 제법 위험한 장난을 칠 거 같은 표정처럼 보이기에는 충분했다.
심지어 팔 다리는 없으면서 목까지는 그려진 게 목이 베어진 듯 보여 그 불쾌함을 더 했다.
"여기 구 막사인 건 알지?"
"그렇습니다."
나는 이 창고에 몇 번 와본 적 없을 이병에게 장난치려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여기 왜 폐쇄하고 신막사 지은 줄 알아?"
"모르겠습니다."
"나도 선임들한테 들은 건데 여기 막사가 있을 때 부조리가 존나 심했다더라."
물론 나도 선임들한테 들은 거지만 마치 내가 직접 겪은 양 목소리에 분위기를 잡았다.
"그 때는 지금이랑 다르게 때리고 이상한 거 먹이고 진짜 심했나봐? 그러다 보니까 결국 자살하는 사람이 나온 거지...
결국 부대에서는 이걸 덮네 마네 하다가 결국 덮어버리고 여기를 폐쇄하기로 했대."
나는 교보재를 착착 쌓으며 말했다.
이병은 잔뜩 쫄은 건지 창백한 얼굴이 더 창백해지며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시선이 여기저기 돌아가는 게 시선도 어디로 둘 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짜식 그렇게 무서운 얘기도 아니구만...
"다 챙겼으니까 가자."
역시나 대꾸도 없이 조용히 나를 따라온다.
아무리 무섭다고 그래도 선임이 가자는데 예 알겠습니다 정도는 해야하는 거 아닌가?
"표정 풀어 임마. 다 얘기가 흘러 흘러서 과장된 거겠지.
기껏 해봐야 캠프가서 전역했겠지 설마 멍청하게 자살했겠냐?
진짜 그랬으면 뉴스 나오고 난리가 났지...그나저나 키워준 부모님은 피눈물 흘리겠다 어유...
빨리 가자 여기 왜 이렇게 춥냐..."
나는 점점 더 으스스해지는 느낌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자꾸 흘러내리는 교보재를 무릎으로 힘껏 올려 다잡았다.
"에이씨 폰 불출 시간 지났겠네..."
...
"아니 근데 너는 왜 아까부터 대답을 안 하냐?"
생각해보니 이 새끼는 왜 아까부터 대답을 안 하지?
하는 마음에 나는 뒤를 돌아봤다.
"....총원 56 열외 6 열외 내용 휴가 5 사단 의무대 1을 제외한 현재원 50명 이상 저녁점호 준비 끝!"
"쉬어."
"쉬어!"
"그래 중대장이 이렇게 급하게 와서 모아놓고 점호하는 이유는 교육할 게 하나 있어서야.
작업할 때나 담배 피러 갈 때나 전우조 편성해서 다니도록 하자.
오늘 다친 인원도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마침 거기가 흡연부스 근처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 했어.
아마 여름이라 더위 먹어서 갑자기 정신 잃고 그런 거 같은데 다들 조심하자?"
"알겠습니다!!"
"당직부관. 보급관님은 왜 XX일병 창고에 혼자 보내신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자꾸 본인은 2명 보냈다고 하시는데 이상합니다. 같은 시간에 다른 작업 간 호준이도 창고에 2명이 갔다고 하는데..."
"그건 그렇다 치고...XX일병이 실려가기 전에 정확히 뭐라고 했대? 팔이랑 다리가 죄다 꺾여서 제정신도 아니었을 텐데..."
"제가 전해 듣기로는 횡설수설 하면서 낙서가 어떻다느니 XX이병 입이 찢어졌다느니 이상한 소리만 했다고 합니다..."
"XX이병? 걔가 누군데?"
--------
왜 쓰고 나니까 재미가 없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