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아.

정확히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을 시간조차 없어.

부디 네가 눈을 뜬 즉시 이 쪽지를 발견했기를 바랄게.

명심해, 이 곳에서 시간은 곧 금이야.


너는 아마 한 달 정도 이 방에 갇힌 채 생활하게 될 거야.

아래 규칙을 빠짐없이 따라야만 해. 반드시.


첫째, 이 방에 갇힌 지 며칠이 지났는지 반드시 기억해.

머리로 외워도 되고, 어디에 기록해놔도 돼.

중요한 건 절대로 헷갈려서는 안 된다는 거야.

만약 어느 날 일어났는데 오늘이 며칠째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이 책상 서랍 오른쪽 두 번째 칸을 열어서 안에 있는 주황색 사탕을 먹어.

그게 이 방에서는 가장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이야.


둘째, 첫날부터 일주일 동안은 네 감을 믿어.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을 거야.

가령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긴 것 같다던가, 그림자가 지나칠 정도로 까맣다던가.

네가 몇 살일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온 경험상 '이건 이상하다' 싶은 게 있을 거야.

그럴 때는 반드시 네 감을 믿고 그걸 반드시 네 신체에서 떼어내.

이 책상 서랍 왼쪽 첫 번째 칸에는 맥가이버 칼과 소형 손전등이 있어.

머리카락은 원래 네 길이였다는 '확신이 드는' 길이까지 잘라내.

조금 여유있게, 더 짧게 잘라도 좋아. 하지만 너무 과하게 자르지는 마.

이 현상이 한 번만 일어난다고는 한 적 없어. 어느 순간 잘라낼 머리카락이 없어질 거야.

그림자는 손전등을 비추면 사라질 거야. 그게 상식이잖아. 빛과 어둠.

그림자가 충분히 연해져서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면 신경쓰지 않아도 돼.

만약 그림자가 연해지지 않는다면 주기도문이든, 염불이든 뭔가 신성한 내용을 외쳐. 연해질 때까지.

만약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이미 네 몸으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야.

주황색 사탕을 먹어.

그 외의 경우는, 미안. 나도 잘 모르겠다. 네 감대로 행동해 봐. 살아남을지도.


셋째, 일주일이 되는 날부터 13일까지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마.

팔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거나, 손가락이 좀 많은 것 같다거나,

방이 지나치게 밝거나 지나치게 어둡거나 어둡고 밝은 공간이 공존한다거나

하루에도 수 번에서 수십 번씩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질 거야.

하지만 오히려 둘째 경우보다 쉬워. 그냥 눈을 감고, 어떤 노래든 1절을 완곡해.

가사 좀 틀려도 돼. 발음 좀 절어도 돼. 정 모르겠으면 나나나 하면서 음만 내도 돼.

하지만 노래 중간에 눈을 떠서는 안 돼. 그리고 절대로 중간에 멈추지 마.

눈을 뜨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든다면, 노래를 멈추지 말고 손을 더듬어서 서랍을 열어.

주황색 사탕은 너를 이 공간에서 자유롭게 해 줄 유일한 출구야.


넷째, 네가 여기 온지 13일째 되는 날은 반드시 금요일이야.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일어나는 순간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확신이 설 거야.

확신이 선다면 그냥 평소보다 조금 재수없는 날일 수 있다고 생각해. 13일의 금요일 알지?

만약 일어났는데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면

오늘이 며칠째 되는 날인지 바로 확인해 봐.

그리고 13일째 되는 날이 제발 아니었기를 바라도록 해.


다섯째, 13일부터 말일까지는 네 감을 절대로 믿지 마.

하늘은 보랏빛, 구름은 연두색. 비가 올 때는 세상이 너무 밝아져서 눈이 부시지.

새가 왈왈 울면서 뒷다리로 뿔을 긁고, 뱀이 샤샤샥 소리를 내며 수십 개의 다리로 기어다녀.

이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지? 상식적이지 않지?

근데 그거 알아? 너 13일에 이거 다시 읽어보면 왜 이해가 안 되는지 이해가 안 될 걸?

이 방에 있으면서 어느 순간 네 상식선이 완전히 비틀려버리게 될 거야.

어렵지 않아. 너를 절대로 믿지 말고, 이 방의 모든 게 완벽히 이상해지도록 만들면 돼.

아...그리고, 이 기간 동안은 주황색 사탕 먹지 마.

위에도 적혀 있어. '상식적이지 않다'고.


여섯째, 네가 말일까지 살아남는다면, 딱 한 번 방문이 열려.

근데 너 윗 규칙 기억나지? 넌 아마 방문이 열리면 나갈 수 있다는 걸 생각해내지 못할 거야.

그 때 딱 한 번 쓰라고 놔두고 간다.

책상 왼쪽 세 번째 서랍을 열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거야.

서랍을 꺼낸 뒤 손을 서랍 밑바닥쪽으로 넣어서 살짝 들어올려.

들리면서 그 안에 끼워놓은 흰색 쪽지가 떨어질 거야.

그 쪽지 안에 말린 가루가 있어. 마약성 진통제야. 남김없이 흡입해.

일시적으로 술에 취한 것처럼 몸이 말을 안 듣겠지만, 동시에 정신은 번쩍 들 거야.

딱 5분이야. 5분 안에 어떻게든 몸 가눠서 문 밖으로 나가야 돼.

5분 지나면 문 다시 닫힌다. 그러면 언제 열릴지 몰라...

나도 모른다. 언제 열릴지...오늘이 며칠인지도 잊어버렸어. 너는 제발 성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