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쿵


오후 8시 32분 경.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큰 소리로 대꾸했다


"누구세요?"


"안녕하십니까, 방문 점검 나온 수도시설과 소속 6급 주사 이종현 이라고 합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잠시만요."


1년 전부터 한 달 주기로 나오는 점검이다


처음엔 다소 귀찮았지만 이제는 그냥 일상 속 루틴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뭐, 이 시간까지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공무원들만 불쌍하지.


나는 별안간 그렇게 생각하고는 문을 열었다


"또 뵙네요. 늦은 시간까지 고생하십니다. 어떻게 좀 마실 거라도 내올까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불편 하실 테니 빠르게 점검 시작하겠습니다."


...


짧은 인사치레를 마치고 시작된 점검과 이어지는 다소 간의 적막.


약간은 불편한 이 분위기를 깨기 위해 나는 되는 대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아직까지도 황당하다니까요. 어떻게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지, 그 이후로 무슨 수도도 모자라서 정수기 점검 하나까지 공무원 분들이 하시고 나 참 이게 무슨.. 안 그래요?


"허허, 뭐 그렇죠."


실 없는 대화 이후 덜그럭 대는 소리만이 감돌 무렵, 나는 문득 평소에 궁금했던 것이 떠올라 그에게 물었다


"아, 근데 물은 원래 맛이 없죠?"


-끼익


순간 분주하게 점검을 진행하던 그의 손이 멈췄다


"..."


그리고는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작업을 재개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할 무렵, 그가 입을 열었다


"점검 끝났습니다. 상태는 양호하네요.


"아, 네 고생하셨습니다."


그의 표정은 다소 굳어있었으나 달리 화나거나 불편한 기색은 없어 보였기에 나 또한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늦은 시각까지 불편 드려 죄송합니다."


짐을 챙겨 현관을 나서려던 그에게 나는 애써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아까는 제가 좀 이상한 질문을 했네요. 하하. 근데 요즘 뭔가 평소보다 더 맛이 안 느껴진다고 해야 할지.. 물이 원래 맛이 없는게 당연한건데 그렇죠?"


"아, 그렇죠. 물은 원래 맛이 없습니다. 아까는 저도 피곤해서 말씀을 제대로 못 드렸네요. 그럼 전 이만..."


그 또한 내가 민망함을 느끼는 것을 알았는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나는 짧게 목례 후, 문을 닫고는 물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 앞으로 갔다


-벌컥벌컥


역시 맛이 없다. 뭐 당연한건가... 라고 생각하던 찰나, 불현듯 이상한 느낌에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대로는 궁금해서 안 되겠다. 뭐라도 검색해봐야지


근데 뭐라고 검색하지? 물의 맛? ...흠.. 물맛? 이렇게 저렇게 단어를 바꿔가며 검색을 진행하던 도중 '물맛' 이라는 나무위키 문서가 눈에 띄었다


수 백자가 채 안 되는 짧은 문서.


참 별의별 문서가 다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진지하게 그 문서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디감이나 미네랄 맛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나, 물 자체는 아무런 맛이 없다..."


나는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하, 나도 참 당연한걸 가지고 이렇게... 그나저나 좀 피곤하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 탓인지, 나는 갑자기 몰려오는 피곤함에 못 이겨 침대로 가서 잠을 청했다


8시간 후-


-삐리릭


'간만에 푹 잤네. 일어나야지.'


알람 소리에 깬 나는 목이 타는 느낌에 물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로 발걸음을 옮겼다



벌컥벌컥.



역시 오늘도 물은 맛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