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오늘은 내가 죽을 날이다.
한기가 불어닥치는 겨울, 온기를 나누는 거리.
반딧불이 같이 빛을 채우는 창문들과 꼬마전구들….
말하자면, 작금의 상황이 너무나 서늘해 살을 에는 것만 같다.
열두 번째 겨울에 내가 받은 선물은 단언하건대 최악에 가까운 종류이다.
할머니가 떠주신 스웨터를 입고 잠이 든 크리스마스 그날.
히터의 열기에 잠에서 깨어버린 나는 '산타'를 내 두 눈으로 보고야 말았다.
이틀의 열병. 뇌가 익어버릴 것 같은 고열은 사흘째의 꿈과 함께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형용할 수 없는 형상의 산타는 뿌연 안개 짙은 꿈에 나왔다.
나는 내 가족들과 함께 서 있었고, 발끝조차 내 뜻대로 하지 못했다.
산타는 앙상한 손가락 끝으로 우리를 가리켰다.
무한의 띠를 그리며 갈팡질팡하던 부지깽이 손가락은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고, 그대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것이 나의 어머니에게 닿을 때쯤, 나는 잠에서 깼다.
불길한 꿈을 말할 수 없을뿐더러 모두가 나의 완쾌에 감사하고 있었기에 그저 웃어 보였다.
그 해의 30일 아침.
장을 보러 나가신 어머니는 돌아오시지 못했다.
마중 나온 나의 눈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며 손을 흔들던 그 모습은
눈을 한 번 깜빡이자 빨갛게 물든 세단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닥에 처참하게 흩어진 저것들은 뭐지?
우리는 어머니의 시신을 수습해 작은 단지에 담았다.
새 시작의 타종, 폭죽과 환호.
끝의 선고, 통곡과 비통.
잘 이해가 가지 않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식장에서 돌아와 닳아빠진 신발 두 짝을 치워버릴 때가 되어서야 펑펑 울음이 나오더라.
제발 버리지 말아 주세요, 제발요.
아버지는 신발을 꾹 쥔 채 눈물을 삼키고 계셨겠지.
부탁이에요, 엄마를 가져가지 말아줘요….
다음 해의 크리스마스, 산타는 또다시 정수리의 굴뚝을 타고 올라 나의 꿈에 침범했다.
따각따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나뭇가지 소리를 내며 다음을 고르던 산타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해.
아버지의 가슴팍을 찌르는 게 아닌가.
아빠, 오늘은 나가지 않으면 안 될까요?
부쩍 수척해진 나의 아버지. 그는 애처가였으며, 말은 하지 않았으나 우리보다도 어머니를 더욱 사랑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겠지.
아버지는 대답 없이 밑창이 너덜너덜한 구두를 구겨 신고 나가셨다.
31일의 출근, 그 구부정한 뒷모습을 더는 볼 수 없었지.
우리에게 살갑게 굴던 윗집 새댁이 집 문을 부서지라 두드렸고, 아파트 주민이 구름떼처럼 모인 아름드리나무 쪽으로 나와 동생을 끌고 갔었다.
손목을 어찌나 억세게 쥐었던가.
나무에는 아버지가 매달려 있었다.
위에는 별빛이 걸려 있고, 시퍼런 아버지는 오너먼트 같았다.
기억에서 녹여버리고 싶어지는 트리의 이미지다.
내가 평생 크리스마스트리를 좋아하지 못한 이유겠지.
현관에 구두가 치워지는 날이었다.
산타는 매년 나를 찾아왔고, 해마다 나의 소중한 일부를 뜯어먹어 갔다.
할머니는 딸과 사위를 보낸 후 시름시름 앓다가 쇠하여 돌아가셨다.
동생은 얼음 얼은 계단에서 미끄러져 눈을 붉은 카펫처럼 물들였다.
정이 많이 들었던 새댁은 볼 때마다 상처가 늘더니, 언젠가 듣기로는 신랑 되는 사람에게 맞아 죽었다던가.
삼촌은...
선생님은......
착한 아이는 아니었어도 나쁘게 살지는 않았다.
산타는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는 걸까.
내가 그날 당신을 봤기 때문일까?
그날, 일찍 잠들지 않은 나쁜 어린이였기 때문인 거야?
산타는 언제나 25일 밤이면 내 꿈을 빌린다.
잠들지 않으려 애를 써 봐도 쏟아지는 병적인 졸음 앞에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 스스로 차가워지기로 했다.
다시는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않으면, 산타의 선물은 오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그를 만나게 된 것은 정말이지 거대한 변화였다.
해일같이 내 마음을 흔들어온 그이는 너무나 상냥했다.
나의 아픔을 들어줬다.
나의 꿈을 들어줬다.
그리고 그것을 농담 삼지 않았다.
함께 이겨내자고 했다.
미안해.
이제는 힘들 것 같아.
올해 크리스마스엔 산타가 내게 닿았어.
배를 아프게 찔러온 산타의 손가락은 예상보다도 더 차갑고
메말랐으며
슬펐다.
이번에도 차마 꾼 꿈을 말할 수는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이에게 내가 죽을 거라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
그래서.
오늘 하루만큼은 종일 함께해 달라고 했다.
모두가 떠났지만
당신만큼은 내 곁에 있어 주는구나.
불 꺼진 단칸방. 그에게 기대어 연말 방송을 기다린다.
무심코 타종은 보고 싶은데, 하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들었으려나?
그이는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시계는 11시 50분을 가리킨다.
분침은 이제 곧 돌아 내 목을 잘라가겠지.
이제는 괜찮을 것 같아.
어떤 죽음이라도 괜찮아, 산타.
한스러운 삶에서 마지막 남은 온기는 꼭 쥐고 있으니까.
58분.
59분.
59분 하고도 58초.
59초.
.
-데엥!
눈을 감고 있던 나는 너무 놀라, 그만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종 울리는 소리가 끝없는 꿈속에서 나를 깨운다.
12시 1분.
산타는 빼앗지 않았다.
그 사실에, 아직 닿아있는 그의 어깨에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
.
803호 할머니? 날 추운데 왜 밖에 계셔요?
아이구 부녀회장님 아니셔, 내 다른 게 아니구. 이거 봐.
어머나 예쁜 목도리네. 할머님이 만드신 거예요?
그럼. 내가 우리 아들딸 손녀들 옷은 다 떠줬어. 내 덕에 옷값 굳었다구 좋아들 해.
그런데 웬 목도리래. 크기도 작고….
502호 새색시가 있잖아,
아아.
아들이랬나 딸이랬나. 하여튼간 곧 쓸 날이 오겠지.
이거 왜 안떴을까 너무 좋은 글인데...보고 한참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