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버튼을 봤을 때로 리셋하세요!”

모든 이야기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작디작은 새빨간 버튼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이 버튼이 갑자기 나타난 건 정확히 2024년 3월 12일 오후 3시 46분 23초.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아냐고?

왜냐하면 오늘이 내가 리셋을 시작한 후 겪는 39번째의 3월 12일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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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시작은 간단했다.

갑자기 내 앞에 “리셋 버튼”이라고 명명된 빨간색 버튼이랑 노트가 허공에서 생겨났다.

이 리셋 버튼은 세계를 “리셋 버튼을 받은 당시”로 리셋시킨다는 허무맹랑한 설명과 함께.

[규칙 1: 리셋 버튼을 누르면 세계는 “리셋 버튼을 받은 당시”로 리셋된다.]


당연히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누군가가 장난치는 거라고도 생각했다.

단지 무언가 이상했던 건 이 리셋버튼과 노트가 말 그대로 “허공에서 생겨났다는 것.”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일단 집으로 가져가서 한쪽에 치워 놨다.

그 이후는… 사실 잊어버렸다.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에 깊게 매료될 정도로 한가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 뒤로는 그저 잊고 살았다.



그래… 지구가 멸망하던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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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시작은 간단했다. 2024년 12월 31일 오전 6시, 연말과 동시에 새해를 맞이한다는 기쁨도 찰나, 기계적으로 회사에 가기 위해 일어난 그날.

아니 사실 그날의 기상 시간은 5시 20분이었다.

귓속을 파고드는 강렬한 파열음에 놀라기도 잠시, 그저 단순한 재난 문자라고 생각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스마트폰의 전원을 켰다.

“오후 6시, 0.1 c의 속도로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소행성 충돌”

‘이게 씨발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그날은 사실 정상적인 하루가 아니었다. 종말을 알리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사실 리셋버튼이 뭐야 0.1 c 가 뭔 개소리인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왜, 우리도 일반적으로 소행성이 지구 가까이 돌진한다, 뭐 스쳐 지나간다. 이런 소리 많이 들어봤잖아. 이번 소행성 관련 재난 문자도 비슷한 건 줄 알았다.

근데 0.1 c 가 빛의 속도의 0.1배라는 소리라더라. 3,000만 m/s라고, E = mc^2 이랬는데 그럼 도대체 얼마나 파괴적이라는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애초에 리셋 버튼을 누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게 나의 첫 번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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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죽기는 죽었다. 그런데 내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2024년 3월 12일 오후 3시 46분 23초.

돌아왔다.

[규칙 2: 리셋 버튼을 소유한 사람이 죽을 경우 세계는 “리셋 버튼을 받은 당시”로 리셋된다.]

그리고 책에 새로운 규칙이 하나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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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이런 씨발!


4번째 리셋에는 드디어 소행성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지름이 400미터 전후라던가.

지름 20m에 총중량이 1만 3천 톤에 달하는 소행성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폭발의 위력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40배에 해당하는 규모였다는데 이걸 해결하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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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은 굳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되나보다.

[규칙 3: 리셋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리셋”이라고 말하면 세계는 “리셋 버튼을 받은 당시”로 리셋된다.]

“리셋”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으로 리셋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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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번에 드디어 새로운 발견을 했다. 6번째 만에!

리셋버튼과 함께 있던 노트의 두 번째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는 내가 쓴 글이 유지된다! 첫 번째 페이지에 규칙들이 쓰이는 걸 보면 그 뒤의 페이지들을 사용해서 어떻게 지구를 지키라는 건가?

[규칙 4: “책”은 파괴되지 않으며 리셋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규칙은 내가 진실들을 알게 되면 그때 업데이트되는 모양이다. 불친절한 시스템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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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날렸다. 14번째 회귀까지 한 게 하나도 없는 거 같다.

어쩔 수 없어. 미사일이나 핵폭탄으로 격추하는 건 포기했다.

12번째에는 처음부터 예언자 행세를 해서 미사일 날리게 하는 것까지 성공했는데 소행성이 너무 빠르다. 미사일로 격추 시킬만한 소행성이 아니었어.

미사일로 격추하는 건 포기하자.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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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차.

씨발 좆같네

[규칙 1: 리셋 버튼을 누르면 세계는 “리셋 버튼을 받은 당시”로 리셋된다.]

이 개같은 규칙을 없애는 건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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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회차.

드디어 뭔가 발전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지구 말고 다른 희생양이 필요해. 충격 흡수는 잘하고 뒤로 충격을 전달하지 않는 그런 희생양이.

예언자 행세를 하는 게 제일 쉽다. 이 방법이 제일 빠르게 국가 정부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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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회차.

어떤 개 병신이 날 암살했다.

이 상황에서 암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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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회차.

나를 암살하러 온다는 거까지 예언해서 겨우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다. 일단 초반 빌드는 이게 최적화인 거 같고… 나머지를 생각해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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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회차.

똑같은 일을 계속하는 게 얼마나 좆같은 일인지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오늘까지다. 드디어 완성했어. 나보다 훨씬 똑똑한 놈들이 만든 “방파제”가 완성됐다.

지름이 400m이고 3,000만m/s로 돌진하는 소행성이 있다는 걸 나사 놈들한테 설명하는 게 제일 어려웠지만. 내가 그렇다는데 자기들이 뭘 어쩌겠어.

드디어 끝이다.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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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씨-발


뭐가 잘못된 건지

진짜 하나도 모르겠다

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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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회차.

아 설마

[규칙 5: 당신이 격추해야 하는 소행성은 2개입니다.]

개같은 시스템 내가 의심하기 전까지는 알려주지도 않겠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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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회차.

미래 회차에 탈출할 희망이 보인다.

소행성이 2개라는 말과 책에 관한 비밀까지 세계정부와 공유했다. 이젠 천재들이 과거의 그들과 협력할 테니 언젠가는 이 지긋지긋한 회귀도 끝날 거야.

기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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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회차.

이제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리셋되는 수많은 9개월 중 6개월 정도는 항상 똑같은 루틴으로 살아간다. 부모님 볼 시간도 없다. 일은 진작 때려치웠어.

무섭다. 아프다.

고독하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면 진작 미쳐버렸을지도 몰라.

이번 회차도 실패한 거 같다. 다음번에는 기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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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과거의, 현재의, 그리고 내가 겪은 미래의 이야기이다.

이번 회차는 성공할 거야.

먼저 처음 2달의 인생은 정해져 있다.

예언자 행세, 미국 정부 접촉, 암살 타파, 나사 협력, 회귀 증거 공유, 책 비밀 공유. 종말 공유.

그리고 이후에는 항상 기계적으로 미래에 일어나는 일들 나열만 하면 된다. 6개월 동안.

그동안 나사 놈들이랑 세계정부가 어떻게든 방파제 만들어 주겠지. 하고 빌어야지.



이제는 비는 수밖에 없어.

이번 회차에 끝내자 제발.

24년 9월 11일

24년 9월 27일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24년 10월 11일

24년 10월 12일

24년 10월 16일

24년 10월 25일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게 가는지. 항상 불안해 미칠 것만 같다.

따르르르릉

전화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감격에 흐느끼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린다.

“드디어…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예언자님이 와서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아


드디어.

드디어 이 지옥의 끝에 가까워졌구나.

드디어 자유라는 이름으로 억압된 철창 속에서 한 걸음 밖으로 내디딜 수 있겠구나.



그들이 만들었다는 방파제는 완벽했다. 이중 구조에 첫 충돌의 진동이 다음 방파제를 펼치는 방식으로 두 번째 소행성까지 완벽하게 막아낼 것이다.

2024년 12월 31일 오후 6시까지의 시간은 찰나의 순간이라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그래. 이 지긋지긋한 혼자만의 전쟁의 끝을 보자.

“소행성 Despair와 그 뒤의 소행성 Trojan 전부 확인됐습니다!”


“3초 후 방파제와 충돌합니다!”

3!


2!

1!












살았다.


“씨바아아아알!!!”

“살았어 씨발 씨발 끝났다고!”


드디어 끝났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왜인지 너무나 불안하다.

분명… 모든 걸 끝냈는데

분명

분명 세상을 지켜냈는데

아.

갑자기 오한이 느껴졌다.


“리셋”

그때 등 뒤에서 들리면 안 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규칙 6: 이 모든 건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