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켜자 그런 화면이 나왔다.
완전히 하얀 바탕 화면에 검은 글씨로 쓴 문장 하나.
"인터넷은 없습니다."
분노의 비명을 지를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아.
또 랜섬웨어구나.
다행히 지난번에 심하게 당한 적이 있었기에 주요 파일은 항상 백업해놓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복호화 키를 구할 수도 있겠지.
백업용 외장 메모리가 서랍에 멀쩡하게 들어있는 걸 확인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포맷을 해버리기 전에, 이 랜섬웨어의 제작자는 어떤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해올지 한번 보고싶어졌기 때문이다.
"당신이 보던 인터넷은 전부 가짜입니다."
"이 화면은 오직 진짜를 인식할 수 있는 극소수 인간에게만 인지되도록 배포되었습니다."
랜섬웨어가 아니라 사이비 종교 포교용 바이러스였나보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튜브를 틀면 항상 나오는 추억의 노래, 옛날 TV 프로그램, 복고풍 감성의 영상들."
"당신이 어렸을 때나 하던 옛날 게임의 리메이크작들, 옛날 영화의 명장면 모음집들."
"항상 똑같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나누는 커뮤니티 유저들."
그럭저럭 재미있는 이야기라 계속 읽게 됐다.
흰 바탕에 커다랗게 써진 검은색 문장이 흡입력이 대단하다. 적어도 한쪽 구석에 놓인 화살표 버튼을 내가 계속 클릭하게 만들 정도로는 말이다.
"그것들은 모두 '놈들'이 만든 가짜입니다."
"놈들은 어느 시점부터인가 인터넷에 스며들어,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인터넷 전체가 놈들이 만든 가짜로 대체됐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이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놈들이 만든 가짜 인터넷은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맞춤형 인터넷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어린 시절 추억, 옛날에 들은 노래, 어렸을 때 본 만화, 청소년기에 본 영화... 그런 것들이 가짜 인터넷이 학습하고 재생성하는 소재입니다."
꽤 재밌는 음모론이다. 그렇다면 그 '놈들'이라는 자들은 나같은 보통 사람 하나의 뇌와 기억을 뜯어보거나, 인생 전체를 조사하는 수고를 들였다는 의미인데...
일루미나티 음모론만큼이나 허황된 이야기에 피식 웃으면서 계속 화살표 버튼을 눌렀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컴퓨터를 끄고 밖으로 나가십시오. 그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직 남아있"
문장은 여기서 끊어졌다. 난입한 요원들에게 끌려나가서 끊어지는 걸로 마무리한다니, 마지막까지 음모론자 컨셉에 충실하다.
애초에 인터넷 전체가 가짜라면, 당장 어제 친구하고 최근 뜨는 유투브 영상에 대해 이야기한거나, 얼마 전에 게임 대회를 보러 간 건 뭐란 말인가? 다 인터넷 문화의 산물인데.
그것들 전체가 가짜라도 되지 않는 이상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
괜히 시간만 버렸다. 일단 포맷은 밥 먹고 해야지.
옷을 적당히 입고 밖으로 나와서 한산한 거리를 걷는다.
어렸을 때 자주 가던 돈까스 체인점이네... 오랜만에 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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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인터넷 이론이라는 음모론 소재로 생각나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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