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플래시와 환호성이 바닷바람을 타고 지상에서 퍼져나갈 무렵, 어느 궁전의 지하 복도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곳은 화려한 궁전과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콘크리트 특유의 서늘함과 공허함만이 가득찬 곳.

그러한 냉소를 뒤로 한 채 마지막으로 복도 끝의 조명이 켜지고, 그에 맞춰 걸어온 한 사람이 매우 낡아보이지만, 그렇다고 고장난 곳은 없는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비뚤어진 모자를 다시 한번 고쳐 쓴 후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방은 복도와 마찬가지로 콘크리트의 냉소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시선도 미처 다 닿지 못할 정도로 우뚝 솟아있는 천장이 왜인지 모를 비장함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런 장소에 놓여있는 것은 푸르스름한 조명과 원탁, 그리고 8인의 신사들 뿐.

그는 신사들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어색한 표정으로 상석에 앉아 조심스럽게 첫 마디를 시작했다.

"자, 올해도 한번 시작해볼까요."

"그럼 첫번째로 국가부터."

일단 서두는 올렸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누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바라며 주위만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가 5분 넘게 이어질 무렵, 상석의 반대편에 앉은 한 남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이번 몇년간은 유럽에서 돌았으니 유럽은 빼는게 어떨까요."

"맞아요. 5년 새 프랑스만 두 번 했는데, 더 했다간 정말 엉망이 될거에요. 나라가 이래가지곤 내년에는 여기도 문닫을지도 몰라요."

"그럼 미국도 작년에 했으니 패스하고, 동아시아는 어떤가요."

"동아시아도 근래 2번이나 했는데요"

한 명이 말하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오는 족족 제지당하기 일수인 분위기에 점점 논의는 격앙되고 있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상석의 인물이 입을 열었다.

"그럼 러시아로 하는건 어떨까요. 여긴 한번도 된 적 없는걸로 알고 있는데."

"침략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전쟁 중인 국가인데 너무 과중한 시련을 주는건 아닌지..."

"여기가 언제는 그런거 따졌나요. 월남 때도 미국이 여러번 되었는데."

"찾아보니까 70년전에 한번 하긴 했네요. 그래도 오래됐으니 저는 찬성입니다."

"저도 찬성이요."

"그럼 3명이 찬성했으니 거수투표 진행하겠습니다. 찬성하시는분?"

자리의 9명 중 한명을 제외한 모두가 손을 들었다.

"그럼 국가는 러시아로 하겠습니다. 이제 다음으로 주제는 뭘로 할까요?"

"계급 문제나 젠더 문제는 러시아엔 별로 안먹힐거 같으니 빼죠."

"그럼 빈부 격차는 어떤가요?"

"빈부 격차도 따지고 보면 계급 문제 아닌가요."

"그럼 총기난사로 할까요?"

"그거도 좋지만 민족 문제는 어떤가요. 요즘 조지아가 러시아랑 심상치 않던데."

"그래도 전쟁하고 있는 나라에 총기난사나 민족문제는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가족주의의 해체 같이 약한 걸로 갑시다."

"그럼 종교 문제는 어떤가요? 요 근래 잘 안한거 같은데."

"솔직히 민족이니 종교니 너무 했던거만 하는거 같은데요. 화끈하게 자연재해같은걸로 갑시다."

"자연재해는 재미없을거 같은데요. 로스케 놈들도 한번 당해보라는 심산으로 제노사이드 어떤가요."

이러한 무시무시한 주제의 공방이 30분 넘게 이어지던 때, 또다시 상석의 인물이 입을 열었다.

"자자 이대로가면 하루종일 해도 안 끝날것 같으니 전통 방식대로 갑시다."

그는 테이블의 정중앙에 놓인 상자에서 주사위 하나를 꺼냈다.

그는 각각의 주제에 숫자를 부여한 뒤 통에 다시 넣고 흔든 다음, 탁자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3이네요. 그럼 민족 문제로 가는걸로."

그렇게 모든 것이 정해졌다. 그는 회의결과를 자신이 미리 가져온 종이에 적어 봉투에 집어넣었다.

"자 올해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술이나 한잔하러 갈까요."

"올해는 자연재해 한번 보고싶었는데.."

"우크라이나와 싸우면서 조지아랑 체첸과도 동시에 싸우게 될 러시아에게 축복을."

그들은 그의 말에 다들 한마디씩 거들면서 방을 빠져나갔다. 그는 마지막으로 빠져나가기 전 문 옆에 있는 조그마한 승강기에 편지를 넣었다.

얼마 안 있어 승강기는 저절로 올라갔고, 그는 벽 뒤에 승강기가 가리고 있었던 문구를 잠시동안 바라보았다.



《예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것을 보며 알수 없는 표정을 짓던 그는, 속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불을 끄고 방을 빠져나왔다.

'시대를 기만하는 것은 언제나 승리자이다.'


...


한편 느릿느릿하게 한참을 올라가던 승강기는 지하를 빠져나와, 지상의 달빛을 마주했다.

그렇게 잠시동안의 자유를 만끽한 그것은, 양복을 입은 한 사내에게 자신의 내용물을 건네주고는, 다시 어두컴컴한 지하를 향해 천천히 내려갔다.

비록 사고할 수 없는 쇳덩어리지만 잠시동안 신의 사자가 되었을 생각에 스스로 기뻐했으리라.



한편 봉투를 받아든 사내는 무대의 뒤편을 지나,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든 진행자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다.

진행자는 그것을 슬쩍 열어보고는, 수많은 배우와 감독들을 마주한 채 운을 떼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제 78회 칸 영화제의 피날레를 장식할 황금종려상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정해진 이상,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