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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서에는 라디오가 하나 있어. 중요한 물건이라고 듣긴 했는데, 아무래도 고장난 것 같아.


무슨 버튼을 눌러도 작동을 안 해.


가끔 뭐 잘만 만지작거리면 소리가 나기는 해. 


근데 그것도 내가 듣기에는 말이야, 찌직거리면서 귀에 거슬리는 노이즈밖에 안 나오거든. 


내 생각에는 안테나가 고장난 것 같아.


난 그것밖에 몰라. 




근데 웃기잖아, 팀장도 개인 사무실이 없는 마당에 별 희한한 고물딱지 라디오한테 큼지막한 독방을 하나 주지를 않나,


그것도 모자라서 독방 문에는 이중삼중으로 자물쇠며 보안 인증 장치며 별 최신 잠금장치를 해놓질 않나.


방도 그냥 방이 아니던데, 벽에다가 흡음재 쫙 깔려 있어.


보관만 하면 다행이게.


아침저녁으로 그거 잘 있나 들어가서 확인하고, 먼지 좀 털고…


정확히 뭘 하라는 건진 모르겠는데 일단 매일 두 번씩 확인을 하래. 라디오가 잘 있나 없나.


그게 말이냐 바가지냐? 아니 걔가 발이 달려서 도망을 가냐고 뭘 하냐고.


팀장이 진지하게 라디오 전담 직원을 뽑니 마니 얘기했을 땐 진짜 노망이라도 난 줄 알았다.


내가 엄청 말렸거든. 차라리 그 월급을 날 주면 그 라디오를 아주 상전으로 받들어 모시겠다고. 


그래서 라디오 관리는 내가 하게 됐어. 덕분에 난 하루아침에 우리 부서에서 가장 돈 많이 받는 인간이 됐고.


관리라고 해 봐야 아까 말한 게 전부기는 하다만, 하다 보면 이게 뭔 짓인가 싶어. 돈 주니까 하는 거지.




웃긴 건 뭔지 아냐?


옆 부서 안경잡이 놈이 하나 있어. 딱 그런 느낌 있잖아, 기계라면 죽고 못 사는 전형적인 공돌이. 


걔는 내 일을 엄청 부러워하더라.


연봉이 아니라 순수하게 일을 부러워하는 거야. 별 뭐 하는 것도 없는데.


그래도 사람이 옆에서 대단하다, 대단하다 해주면 어쩔 수 없이 좀 우쭐해지는 게 있잖아.


몰래 몇 번 구경시켜줬지. 원래 라디오 방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거든. 당연히.


신나서 떠드는 걸 장단 맞춰준 적이 몇 번 있어. 근데 딱히 걔도 제대로 아는 건 없더라. 


하루는 1960년대식이랬다가, 또 다음날은 1970년대식이랬다가.


근데 저게 70년대식이든 70세기식이든 난 솔직히 그런 건 관심없거든.





한번은 그 안경잡이한테 저 찍찍대는 노이즈 소리 좀 멈출 방법은 없냐고 물었어.


그게 평소에는 아무런 소리도 안 나다가, 한번 노이즈가 시작되면 멈추지가 않거든.


나야 기계 쪽은 알지도 못하니 멈추는 법도 모르고,


윗선에서 그렇게 애지중지 모시니 갖다버리거나 부숴버릴 수도 없고.


그런데 걔가 그러는 거야. 저거 전선도 없고 배터리도 없다. 노이즈든 뭐든 소리가 날 리가 없다.


네 착각이다.


나로서는 어이가 없는 거지. 아니, 내가 들은 게 있는데? 지가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심지어 그 노이즈, 시끄러울 때는 엄청 시끄럽거든. 이명 같은 거랑 헷갈릴 수준이 아니란 말야.


라디오 주파수 좀 잘못 맞추면 나오는 그 소리 있잖아, 얼마나 시끄러운지 알 사람은 알걸?


그래서 내가 이랬어.


네가 기계를 잘 아는 건 알겠다. 하지만 저 라디오에 한해서는 내가 봐도 삼백 번은 더 봤을 거다. 분명히 지직거리는 소리가 났었다. 그것도 귀청 떨어지게 크게.


그 소리를 네가 못 들어본 모양인데, 차라리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문제다. 지금 여기가 온통 방음벽이라 방 밖으로 소리가 안 나가서 그런 거 아니냐, 나는 이 안에서 그 시끄러운 소리를 쌩으로 다 듣고 있어야 했다.


결론은 안 났어. 그 자리에서 들려주려고 라디오의 온갖 버튼을 다 눌러봤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나오더라.


말했잖아, 그 노이즈가 매번 나오는 게 아니라고. 가끔 나온다니까, 가끔.


영양가 없지.




그리고 나서는 별 일 없었어.


오늘까지는.


정확히 말하면 딱 오늘 아침 내가 출근하기 직전까지는.




그러니까, 나는 도저히 지금 이 난장판이 이해가 안 가는 거야.


처음에는 건물에 불이라도 난 줄 알았어. 아니면 적어도 미친 연쇄살인마가 침입이라도 했거나.


딱 출근했는데, 부서 안에서 어디 하나 멀쩡한 구석이 없었거든. 멀쩡한 인간은 더 없고.


사람들은 마구 뛰어다니고, 울고, 어디 구석에 틀어박혀서 덜덜 떨고 있고.


와중에 팀장이라는 인간은 출근도 안 했더라. 


아무나 붙잡고 대체 뭔 일이냐고 물었지.


별로 말은 안 통하더라. 


아이라인 다 번진 얼굴로 괜찮다고, 처리반 불렀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펑펑 울던데.


아니,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고. 





우는 애 다그치기도 좀 그래서, 다른 놈 하나 붙잡고 똑같이 물었어.


잡고 보니까 옆 부서 안경이더라고.


걔도 제정신은 아니더라. 아, 무슨 컴퓨터 본체를 다 뜯어서는 그 케이스를 갑옷마냥 입고 있던데.


걔가 하는 말이, 그 라디오가 문제라는 거야. 지금 소리가 들리냬. 그 라디오가 분명하대.


어, 그러고 보니까 그 시끄러운 노이즈가 들리는 것 같긴 한 거야.


워낙 사내가 난장판이니 사람들 비명소리에 묻혀서 잘 안 들리는 거였어.


내가 그랬지.


그 노이즈?


근데 걔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못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어.


눈에 초점이 없던데.


그리고 또 그 얘기를 하더라.


처리반 불렀다고, 괜찮을 거라고. 넌 걱정하지 말라고.


처리반이 다 알아서 해 줄 거고, 우리는 무사할 거라고.





처리반?


하, 듣긴 했지. 악명이 얼마나 자자하신데.


회사 차원에서 고용한 사설 소방관 겸 경찰관 겸 교도관 겸…


내가 보기엔, 그냥 실적 하나는 뒤지게 끝내주는 사설 깡패야. 


딱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저쪽에서 웬 큼지막한 노란색 덩어리들이 저벅저벅 걸어오는 거야. 


호랑이도 제말 하면 온다고 그랬나. 생체방호복을 쫙 빼입은 처리반이었어.


수가 많지도 않아, 셋인가 넷인가 그랬어. 하긴 그만한 거한들을 여럿 모으기가 어디 쉽나.


쓱 보니까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것처럼 생겼어.


아, 얼굴 얘기는 아니고. 애초에 방독면까지 쓰고 있었으니까 얼굴은 못 봤지. 


근데 사람이 압도된다는 감각은 얼굴에서 오는 게 아니거든. 소위 포스라고 하잖아. 보면 알아, 분위기나 피지컬이나, 걸음걸이나. 그냥 누가 봐도 자비없는 인간들이라는 확신이 와.


어쨌든 걔네들이 오니까 그렇게 미쳐날뛰던 부서 사람들이 쫙 조용해지는 거 있잖아.


여기저기서 질러대던 비명이 멈추니까 라디오 노이즈가 좀더 잘 들리긴 하더라.




가관이더라.


거기서 귀를 안 막고 있는 건 나밖에 없었어.


다들 양손으로 귀를 싸매고, 귓구멍을 틀어막고 있었어.


누구는 연필이나 뭐 그런 걸 귀에 꽂아넣으려고 하는 바람에 처리반 중 한 놈이 바닥에 메다꽂아버렸지.


사람들이 처리반한테 막 뭐라뭐라 하는데 대꾸도 안 하는 걸 봐서는, 처리반도 방호복 안에 귀마개 같은 걸 끼고 있지 않을까 싶긴 했어.




근데 이쯤 되면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잖아.


대체 그 노이즈가 뭐길래 저런 인간흉기가 우리 부서까지 행차하셔야 하는 건데?





노이즈가 시끄럽긴 해. 그건 내가 제일 잘 알지.


근데 그 정돈가? 싶은 거야.


이 난리가 날 정도로?




물론 지금까지는 노이즈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 무지막지한 방음벽을 뚫을 정도의 소음은 아니긴 했어. 


라디오 방 안에 있을 때나 청력 걱정을 좀 했지,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렸을걸.


지금은 방 밖에서도, 사무실이나 복도에서도 찌직거리는 소리가 들리니까 좀 크긴 크지.


아, 근데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까지 온 회사가 미쳐날뛸 정도는 아니란 말이야. 


옆옆 부서의 신입은 어디서 났는지 면도칼로 귀를 자르고 와서 피가 철철 나는 걸 처리반이 기절시켰단 말야.


솔직히 그 정도냐고. 아니거든.





다들 처리반이 어떻게든 해줄 거라고 믿고 있는 눈치였어.


눈치도 아니지, 대놓고 큰절을 하는 인간도 있었는걸. 내 아버지뻘이었는데.


어쨌든 말야, 이왕이면 좀 빨리 이 난리를 끝내줬으면 싶었지, 나는.


처리반 중 대장으로 보이는, 완장을 차고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이 나를 불러냈어.


정확히 말하면 라디오 관리 담당자를 불러낸 거지. 라디오 방 문을 열려면 열쇠며 생체 인증이며 절차가 필요하니까.


그거 다 해제하는 데에만 5분은 넘게 걸렸을 거다.


라디오 방 문 앞에 서니까 확실히 노이즈 소리가 크긴 크더라. 아직 방음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어.


왜 그렇게 늦냐고 엄청 독촉해대는데, 다들 성능이 끝내주는 귀마개를 끼고 있는지, 설명을 해도 알아듣는 것 같지도 않고.


마음이 급한 걸 이해는 해, 그러는 와중에도 뒤에서 한두 명씩 픽픽 쓰러졌거든. 근데 잠금 해제 절차가 있는데 난들 어떡하냐.





잠금장치 다 풀고, 안면인식 완료하고, 지문인식까지 싹 끝내고.


그떄까지만 해도 정신 붙들고 있던 사람들이 몇 있었어.


다들 처리반을 연호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희망에 찬 눈으로 지켜보는 중이었어.


개중에는 우리 부서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도 있었지.


직급은 별로 안 높아. 알기 쉽게 환산하자면 경리쯤 될까.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처리반 대장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이렇게 말하더라.


이제 자네가 기적을 일으킬 거야. 


정작 그 사람은 귀마개 때문에 듣지도 못할 텐데.





수신호를 쓰기로 했어.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 하고 나서 내가 문을 열기로.


모르긴 몰라도 그러면 다음에는 처리반이 알아서 하겠지.


막연하게는 라디오를 망치 같은 걸로 한번에 부숴버리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방법이야 나는 모르지. 내가 걔네들 머릿속을 어떻게 알겠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문을 열어주는 것뿐이었단 말이야.





나는 아직도 처리반에게 일어난 일을 자세히 몰라.


나는 문을 열었고, 방음벽에 갇혀 있던 노이즈 소리가 벼락같이 지나갔어.


노이즈. 그 찢어지는 소리.


청각 신경의 한계치에 가까운 탓에 거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소리는 곧 진동이잖아. 


공기가 사정없이 떨리고 있다는 것쯤은 심장으로 알지.


그런 소리는 어떻게든 들려.


말 그대로, 어떻게든.


처리반의 귀마개가 얼마나 최신식 기능을 갖추고 있든간에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야.


노란색 방호복을 입은 무리들은 라디오가 있는 방에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했어.


그 자리에서 혼이 빠질 때까지 울부짖다 지쳐 쓰러져버렸어.


그들뿐일까.


울던 직원, 안경잡이, 경리 할아버지를 포함한 직원들 전부가 쓰러졌어.


두 발로 서 있는 건 나밖에 없는 거야.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냥, 라디오 방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문을 꽉 닫고 기다렸어.


아마 30분 정도.


찍찍대는 소리가 여전히 엄청나게 시끄럽긴 했지만, 확실히 음량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어.


그래서 30분을 더 기다렸지.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더.


조용해지더라.


밖에 나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어.


난장판이나 핏자국, 잘린 귀 조각이나 고막 파편은 치워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사람은 없었어.


이제 퇴근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