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cea8374b2846cf63cec98b21fd7040339b42a01270b528ab3619d



.

.

.

.

.





1eec8670b3816cf739ee82ec46876a372316a6ebc588925bdcad1140e1




어느덧 뼈를 깎는 듯한 한파도 누그러지고

붉은 빛을 담뿍 머금은 매화가 봉오리를 틔는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담장 너머에 심어놓은 매실나무에서는 

한껏 가지마다 그 자태를 뽐내는 매화 잎이

흐드러지고 있었습니다.



만개한 홍매화가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것 아십니까? 여느 해 매화 곁에서

지저귀던 휘파람새의 울음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던 그 언젠가부터


도성에 피어나던 새하얀 매화 꽃들은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는 사실을...



차라리 잘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흰색 매화였으니까요.


화려하고 변덕스럽고 정열적이고

그와 동시에 세상에서 가지고픈 모든 것은

다 손에 쥐고야 말던 어리광쟁이였던


당신의 아리따운 자태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유곽에서 내로라하는 꽃들이 모인 와중에도

군계일학마냥 돋보일 수 밖에 없던 당신.



오이란(花魁)에 불과한 당신의 손아귀에

다이묘 나으리도, 귀족 어르신들, 덕망 높은 고승, 

또한 나와 같은 수많은 무사들도 쥐락펴락

손장난을 당하며 당신의 말이면 저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갈쿠리 째로 쓸어 담을 기세였습니다.



인간의 집념이란 실로 무서웠습니다. 

우리들은 당신의 무심코 지나가는 한마디를 이뤄주기 위해 

앞을 다투어 분전했습니다.



고양이의 보석과도 같은 눈매에 감탄하며



'어쩜 .. 이런 아름다운 눈망울이 열매와 같이 맺으면....'



이라는 실언 한마디로 인해 도성에 있는 고양이의 눈알이 전부 파였고


당신네 집 앞의 나무에 그것들이 알알이 걸리게 됐습니다.




한 번은 동대사 동자승의 귀여운 외모를 보고



'머리맡에 두고 싶은 얼굴이로구나....'



라는 탄식에 죄 없는 동자승의 목은 그 날로 떨어져


당신의 선물로 진상 되었습니다.



보자기에 담긴 동자승의 수급을 보고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잘린 얼굴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기도 하고 다른 인형들과 함께


인형극을 하기를 수 차례... 이내 질렸는지 당신의 침소 옆

백매화 나무에 내던지고는 새로운 유희를 찾아 우리들에게

요구했지요.



그것은 아랫동네 기름 장수네 딸아이의 새끼 손가락을 엮은

목걸이일 때도 있었고, 때로는 명망 있는 귀족 자제의 첩을

데려다가 그 얼굴 가죽을 도려낸 가면일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찌 그런 지독한 살생을 범했나 싶을 정도로

치가 떨리는 일이오만, 당시의 우리는 당연한 일을

하는 것 마냥 당신의 수족이 되어줄 따름이었습니다.



당신의 바램을 들어줬던 수 많은 호걸들이 당신의 침소로 향했고,



극락과도 같은 당신과의 하룻밤을 보낸 뒤, 하나같이 똑같은

속삭임에 꾀어 내어져 그 행방이 묘연하더이다.



아름다운 당신의 폭정도 매화가 지고, 산천 초목이 푸른

시기를 지나, 핏빛 단풍잎이 여물며, 한 해가 흐르고 

두 해가 지나고 해를 거듭하여도, 당신의 미모는 

단 한 치의 균열조차도 일절 허락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당신의 용안과는 달리 침소 옆 

매화 나무에는 조금의 변화가 생겼던 듯 하외다.



본디 흰색 매화를 꽃 피우던 나무임이 분명하였거늘

마치 피를 머금은 듯이 붉게 물든 홍매화를 피워냈고,



이윽고 매화가 저물고 매실이 열려 그 과실의 형태를

보아하니, 마치 사람의 두상과도 같았습니다.



그 매실의 맛 또한 세상 곳곳을 뒤져보아도 견줄 바

없는 진미(眞味)와도 같았으니, 당신의 집에 심어 놓은

매실을 얻기 위해 서로가 죽고 죽이는 상잔을 해마다

거듭하기를 일곱 차례가 흘렀을 무렵...



어째서인지 당신은 침소 옆에 심어진 매화 나무에 

목을 맨 채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소.



그리고 두 번 다시 매화 나무에 과실이 맺히는 일은 없었소이다.



훗날 지체 높은 신사의 무녀님께서 이곳을 다녀가시며

그대가 목을 맨 나무의 뿌리를 삽으로 파내자...



그 곳에서는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의 뼈 무더기가

잔뜩 나오고 또 나왔습니다. 

무녀께서는 다섯가닥의 새끼줄과

지수(紙垂)를 통해 그 일대를 봉마의 의식을

치른 직후 검붉은 피를 토하곤 쓰러지셨습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입니다. 마을에 매화가 필 때마다

나무에서 당신의 속삭임이 들렸던 것은....



당신에게 연심을 품었던 이들...

그 많던 무사들, 귀족 어르신들, 덕망 높은 고승들이

차례 차례 마을의 매화 나무에 목을 매어 죽기를

해를 거듭하며 그 시체로 매화 나무의 밑거름이 되었고



그럴수록 매화의 색은 붉어져만 갔습니다.



사실 이제는 분간이 가질 않습니다.


당신의 속삭임에 눈을 찔러버려 눈에서 벌겋게 나온 핏물이

하얀 매화를 붉게 보이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당신이 바람대로 하얀 매화가 사라지고 붉은 매화가 만개하여

꽃잎이 휘날리는 것인지 말입니다.


이제 당신의 바람대로 온 세상 산천초목을

붉은 빛이 수놓았으니, 나 또한 당신의 

품 속으로 귀의하도록 하겠소이다.


이른 봄 가시지 않은 추위를 무릅쓰고 하얀 눈 속에

피는 설중매(雪中梅)가 아름다운 것은 세상을 

새하얗게 뒤덮은 눈의 장막 사이에 보란 듯이 피처럼

붉은 빛깔을 토해놓았기 때문이 아닐런지 모르겠습니다.


나 또한 한 떨기 붉은 홍매화로 거듭나기를...


혹은, 그녀의 양분이 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