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범한,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못한 판타지 소설 작가였다.
인터넷 소설 사이트에서 적당히 하루 이틀에 한 편씩 글을 끄적이고, 나머지 시간은 소잿거리를 생각하거나 현타에 드러누워 반쯤 잠든 상태로 보내는 인간.
폐인이나 다름없는, 스스로에게도 불만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다.
늘 이런 생활이 끝나기만을, 차라리 내가 죽어서라도 이 일상이 멈추기만을 기도했다.
대가 없이 풍족하기에 더욱이 허무하고 초라한 내 일상이.
그리고 그런 일상이 정말로 무너진 것은 불과 몇 시간 전.
낮잠에 빠진 내가 눈을 뜬 곳은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방이었다.
유튜브에서 납량특집이라며 나오는 낡은 폐가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도 아닌.
그저 아래쪽에 작은 구멍이 뚫린 문 하나가 밖에서 잠겼을 뿐인 평범한 방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노트로 빽빽히 들어찬 책장.
그 옆에 붙어 있는 책상에는 아마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양의 샤프심들이 샤프 한 자루와 함께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놓인 작은 쪽지.
쪽지에는 단 한줄의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당신이 탈출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작성하세요.
단, 일정 수준 이상의 난이도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탈출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작성하라니.
그게 이 방을 나가는 방법인걸까?
그것도 그냥 문 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난이도라니.
나는 잠시 고민하다 책장 옆에서 노트 하나를 꺼냈다.
조형진.
노트에 적힌 이름과 필체가 꽤나 익숙하다.
사각. 사각.
샤프를 들고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판타지기는 해도 소설을 쓰는 것이 취미였던 나였기에, 글 한 편을 써내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늘상 생각하던,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엑스트라가 잡몹을 잡고 살아남는 컨셉의 이야기를 썼고, 난이도도 내가 넉넉히 탈출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다른 노트를 꺼내들었다.
더는 쓸 수 없게 된 조형진이라는 노트는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인간은 내가 생각한 것 보다도 훨씬 더 약하고, 각오가 부족한 생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최민형이라는 노트에 작성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냥 문에 비밀번호만 하나 걸어놓고, 바닥에 놓인 힌트대로 자물쇠를 풀어 탈출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비밀번호를 세 차례 틀렸다.
내가 써 준 비밀번호를 맞추었는데도.
사각. 사각.
노트에 내가 쓰지 않았던 전개가 추가로 작성되었다.
정답은 힌트를 거꾸로 돌려봤을 때 나오는 숫자였습니다.
그것을 보지 못한 주인공은 안타깝게도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사용했고, 흔적조차 남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답니다.
노트는 마지막 한 마디를 허공에 그리며 흩어졌다.
일정 수준 이상의 난이도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임의로 이야기가 보충됩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총동원했다.
여러 장의 노트에 동시에 같은 이야기를 써서 협동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결과는 성공적이었지만 동시에 실패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무사히 탈출했지만 노트는 나를 비웃었다.
당신에게는 도움을 청할 누군가가 존재하나요?
극한의 기다림을 끝으로 죽기 직전 간신히 구출된다는 이야기도 써냈다.
그는 실제로 아사 직전 문을 열고 돌어온 무언가에게 구조되었다.
그리고 노트는 다시 한 번 나를 비웃으며 사라졌다.
이곳에서 나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랍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범한 사람이 알 수 없는 무언가에게 공격당하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 그 사람을 두고 떠나는 바람에 목숨을 구한다는 전개.
주인공이 패배 직전까지 몰리지만, 일단은 물러나준다는 클리셰를 이용한 이야기였다.
곧 내 시선이 닿는 저편에 내가 써낸 존재와 이 노트의 주인이 맞닥뜨렸고, 약 20분 뒤 그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이곳을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2시간 뒤, 책장이 불타올랐다.
모든 책들이 잿더미가 되어 사라진다.
새로이 책들이 채워졌지만, 이내 모두 재가 되어 흩어진다.
한 권, 두 권, 책이 남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내 그것들도 형체를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책장은 몇 달에 걸쳐 사라지고 채워지기를 반복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단 26권의 노트가 남은 책장을 바라보았다.
한번에 30권 정도가 채워지는 책장이 계속해서 불타오르고 교체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절망감과 함께 볼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이 하나 있었다면, 적어도 내 눈으로 본 사라진 책들은 억이라는 벽을 넘어가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25권의 이야기를 읽는다.
비어있어야 할 노토에는 처음 보는 이야기들이 한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들이 살아남은 방법들을, 다른 책이 몇 번이고 사라져도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단 한 권의 책에 적어두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대중교통을 조심할 것.
경찰을 믿지 말 것.
더 이상 이곳에는 치안을 유지할 만큼의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층 건물에 다가가야 한다면, 차라리 내부로 이동할 것.
날붙이보다는 둔기류가 효과적이다.
화기를 사용하지 말 것.
단체생활을 철저히 중시할 것.
그것의 눈이 붉은 빛일 때, 눈을 마주친 사람만을 남기고 도주할 것.
식량은 외부에서 구하지 말고 내부에서 구할 것.
마지막 문장을 적는 사이 한 권의 노트가 사라졌다.
그들만의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였을까, 이니면 그들만의 규칙을 지켜서였을까.
마지막까지도 무더기로 사라지던 노트가 고작 한 권만 사라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규칙을 적어놓은 노트 한 권.
그 마지막에 단 한 줄의 이야기를 적었다.
주인공은 평범한 문을 열고 나간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망설임을 그만두고 문을 열어, 이전과는 달라진 현실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거야.
규칙서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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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에서 또다른 미지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