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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전나무 숲속에서 잠들어 버린적이 있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눈을 떠보니 형언할 수 없는 총천연색의 빛이 일렁이며 떠다녔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빛덩이를 움켜쥐자 고운 입자로 화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느껴지는 산들바람.





그때는 너무 어려 그때 느낀 기분을 표현할 단어를 몰랐지만,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자면



















찬란, 경외, 황홀, 공포.





































































































82년 6월 3일, 사랑하는 세리나에게





늘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펜을 잡고서 그대에게 이야기를 전하려니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어색합니다.





이곳은 나름대로 괜찮습니다. 사람들도 잘 대해주고, 그대가 걱정한 아름다운 여자도 없습니다. 아마 그대를 알아버린 순간부터 그대보다 아름다운 여자는 내인생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대는 나름대로는 괜찮지 않다는 뜻이 아닌가ㅡ 하고 걱정할 것이 뻔히 보이기에, 그 이유를 적어보렵니다. 그대가 있는 곳과는 달리 이곳에선 해가 뜹니다.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동안 들어온 여러 무서운 소문이 저를 불안하게 합니다.





이곳 사람들도 이를 아는 것인지, 저에게 잔뜩 겁을 줍니다. 그중 한분은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면 눈이 멀어 버린답니다. 적당히 흘려듣고선 웃어 주었습니다.





떠나올 때는 내색하진 않았습니다만, 사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수송기를 타고서 14시간, 이곳에서의 수속절차가 끝나기까지 3시간. 도합 17시간이라는 이곳에 있을 3년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그런 짧디짧은 시간 중에도 한시도 빠짐없이 그대가 벌써 보고 싶었습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를 보려 탈영해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는 이틀 뒤에나 그대에게 전해진다고 합니다. 그동안 모쪼록, 몸 건강히 지내주세요. 아버지께는 따로 연락을 드릴 터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82년 6월 5일, 정말정말 사랑하는 내 콜랴에게





보내준 편지는 예쁘게 벽에 장식해 두었어요. 무뚝뚝한 모습에 세줄이나 보내면 다행으로 여기려 했는데, 이렇게 장문의 글을 받아보아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당신이 없으니 하루하루가 칙칙해요. 괜히 하늘도 더 어두운 것 같고, 사람들도 생기 없어 보이고, 기운도 쭉쭉 빠지곤 해요. 물론 편지를 읽은 후 다시 세상이 아름다워 보여요.





글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건가요? 제가 아는 니콜라이는 이렇게 로맨틱한 사람이 아닌데, 분명 누군가 도와줬을 거라 확신해요.





수송기에서 14시간이라니. 상상도 못하겠어요. 그 추운 곳에서 웅크려 있었을 당신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네요. 보내드리기 전에 새로 코트를 장만한 과거의 저에게 잔뜩 칭찬해주고 싶어요.





할머니께 물어보았어요. 그분은 이전세대 분이시잖아요. 사실 낮이라는 건 참으로 아름답대요. 참, 이 편지가 도착할 때쯤엔 이미 여러 번 보았겠군요. 부디 어땠는지 말해주세요.





저도 당신을 참 보고 싶지만, 탈영하면 큰일이 나니 아쉬운 대로 제 사진을 보내요. 이렇게 하면 당신이 좀 더 힘이 날 거라 믿어요.





아버님께 다녀왔어요.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하셨지만, 아버님인걸요. 감기에 걸리셨지만, 의사 말로는 금방 지나갈 거랍니다. 티는 내시지 않지만 무척 쓸쓸해 하시는 것 같아요. 자주 찾아뵐게요.





당신을 사랑하는 세리나가 사랑을 담아.

























































82년 6월 7일, 사랑하는 세리나에게





사진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대없는 며칠간은 생각보다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정말 소중한 것은 사라져 보아야 알 수 있다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편지를 쓰는데 도움은 받지 않았습니다. 남의 조언이 들어가면 온전한 제 마음을 전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굳이 도움을 준 사람을 찾자면 나보코프, 톨스토이, 푸시킨 정도일까요?





낮은, 할머님 말이 옳은 것 같습니다. 아니, 낮을 본 사람들의 말은 전부 사실입니다.





아름답습니다. 온세상을 비추던 그 뜨거운 빛은 직접 느껴보지 않고서야 절대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기지의 조명따위로는 비교도 하지 못할 강렬한 빛을 비추는 아름다운 고리였습니다.





눈이 멀어 버린다는 말도 사실입니다. 너무나도 밝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특수고글을 끼고 나서야 겨우 쳐다볼 수 있었는데, 마치 신의 눈동자를 마주한 것 같은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섭습니다. 순식간에 몸을 뜨겁게 달구어 마치 오븐속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해가 뜨면 특수복을 입지 않고서는 밖으로 나갈 수도 없습니다. 아름답지만, 생명을 앗아가는, 성경의 선악과 같은 무서운 존재입니다.





처음나간 외부 근무에서 꽃을 꺾어왔습니다. 고위 관료들이나 장식할 때 쓰는 꽃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습니다. 세송이를 꺾어왔는데, 하나는 말리다 바스라졌고 하나는 흉하게 마르는 바람에 한 송이만을 보냅니다.





말할지 말지 고민했던 일입니다만, 사실 그대가 기다린다고 해주었을 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 눈물이 조금 났었습니다. 그대가 놀리는 것이 창피해 얼굴을 돌렸었습니다. 편지를 쓰니 얼굴에 철판이 깔리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서도 종종 써 보아야겠습니다.





추신) 아버지는 정말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원체 강인하신 분이라, 신경도 쓰지 않으실 겁니다.

























































82년 6월 9일 오늘따라 무척 보고 싶은 콜랴에게





보내주신 편지를 읽으면서 처음엔 눈물이 고였고, 놀라다가 마지막에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려 버렸어요. 당신이 울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어요.





내색하진 않지만 당신은 울 때마다 티가 엄청 나요. 예전에 보았던 극장에서라던가, 무척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나, 이번의 일까지. 당신은 울 때마다 눈가와 볼이 불그스레 올라온답니다.





당신이 책을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서재에 있던 책들은 분명 날 꼬시려고 쌓아둔 장식품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군요.





꽃을 보고서는 정말 놀랐어요. 웬 상자인가ㅡ 하고 보니 아름다운 꽃송이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유리 상자 하나를 사서 곱게 넣어 두고 머리맡에 놓아두었어요. 자고 일어나면 눈이 마주친답니다.





고리라니, 할머니와는 말이 다르군요. 예전분이라 그러신 걸까요? 원래는 꽉 차 있었다고, 지금의 낮은 낮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네요. 원래는 더 밝았다던데, 그럼 예전의 낮은 얼마나 더웠던 걸까요?





전화 요청을 해 보았는데, 가격이 상상을 초월했어요. 전자기기가 말을 듣지 않는다나 뭐라나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 바람에 대충 흘려듣고 나왔어요. 당신 목소리가 그립네요.





당신도 제 목소리를 그리워하겠죠? 이번에 열심히 연습하는 노래가 있는데 한번 들어 보세요. USB는 정보법 위반이지만, 이 정도는 넘어가 주지 않을까요?





추신) 정말정말 찾아뵐거랍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82년 6월 11일 사랑하는 세리나에게





보내준 꽃이 잘 도착했다니 다행입니다. 혹여나 배달부들이 함부로 다뤄 망가지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였는데, 뒷돈을 조금 쓴 보람이 느껴집니다.





애석하게도 USB는 받지 못했습니다. 수화물 검사에서 걸린 모양입니다.





어제 편지에 쓰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대가 어릴 적 보았다던 나비란 것의 고치가 근무지에 생겼습니다. 얼굴이 빨갛게 물들 정도로 그것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설명하려는 그대의 얼굴이 생각나 웃음이 났습니다.





사실 그대의 말을 반쯤 믿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릴 적의 추억이 과장되게 기억된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만, 거대한 고치를 보니 그대의 말이 참으로 진실이였구나, 하고 납득했습니다.





과학자들이 곧 변모할 것이라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아름답다던 모습을 직접 두 눈에 담고 사진에 담으려 포획조에 자원해 들어갔습니다. 성공하면 특수휴가도 준다니, 그날이 무척 기대가 됩니다.





전화는 이쪽에서 해결해 보겠습니다. 실적이 쌓이면 전화정도는 무료로 해준다고 들었습니다. 그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라 생각하니 힘든 업무도 즐겁게 느껴집니다.





꼭 휴가를 받아 다음달에 양손 가득 생화를 들고 찾아가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니콜라이가.

























































82년 6월 12일





소식 들었습니다. 부디 빠르게 연락해주세요.













82년 6월 13일





편지 받았습니다. 당신탓이 아님에도 당신을 원망하게 됩니다. 휴가는 중요치 않아요. 몸 성하게만 있어 주세요.













82년 6월 14일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요. 아버님께서 쓰러지셨어요. 의사 말로는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는데, 당신 편지 한통이면 나으실 텐데.













82년 6월 16일





윗분들이 소식을 전해주지 않아요.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는데, 이해되지 않아요. 당신이 살아 있을 거라 믿어요. 부디 살아 있어 주세요.











82년 6월 17일





아버님은 안정되셨어요. 이제 당신만 괜찮으면 돼요. 온 사방에서 나비 이야기뿐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당신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텐데..

























































82년 6월 16일





미안합니다. 그동안 도저히 편지를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분대장님의 빠른 판단으로 급히 물러나 피해는 크지 않았습니다만, 한동안 글씨와 말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보이고 들리는 탓에 도저히 편지를 쓸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울컥했습니다. 강하시던 아버지가 쇠약해지긴 것 같아 불효자가 된 기분입니다. 당신이 잘 돌보아드려주십시오.





하루마다 편지가 쌓여 가도 읽지를 못하니 괴로웠습니다. 걱정시켜서 정말 미안한 마음 말고는 전할게 없습니다.





철없지만, 나비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그날 당신이 말해 준 단어 네 개를 기억하십니까? 고치가 갈라지며 젖어 있는 아홉 쌍의 날개를 펼치는데, 원시인들이 동물을 숭배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대가 말해 준 네 단어가 완벽한 설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날부터 가끔 나비꿈을 꿉니다. 세상이 수백 수천조각으로 나뉘어져 보입니다. 나비는 자외선을 볼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보랏빛 너머의 설명할수 없는 색이 눈을 뜨고 나서도 선명히 보입니다.





진짜 나비가 된것 같습니다. 과거의 그대를 꿈에서 보았습니다. 꿈속에서의 그대는 지금과는 다른 짧은 단발에 노란 목걸이를 차고있었습니다.





목이 가끔 탑니다. 무언가 마시고 싶은데,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물을 마셔보아도 해결되지 않는 갈증감이 느껴집니다. 군의관 말로는 수술의 부작용이라는데, 믿음직스럽지가 않습니다.





가끔 나비가 떠다니는 환영이 보입니다. 기억속의 거대한 나비가 아닌 과거의 자그마한, 책에서나 볼수 있는 작은 나비들 말입니다. 가끔은 손을 스쳐가고, 가끔은 눈두덩이 위에 앉기도 하며, 가끔은 코끝을 간질이기도 합니다.





꿈에서 깨어날때마다 돋아난적 없는 날개를 활짝 펴보고 싶은 충동이 듭니다. 있을리 없는 날개가 등 뒤에서 돋아나는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늘을 날아보고 싶습니다.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기지가 가루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부상자들에 한해 집으로 보내준다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그 무리에 낄수 있었습니다. 편지는 특송으로 부치겠습니다. 사흘이면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걱정시켜서 정말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남극기지로 향하던 6번 수송기에서 집단 투신이 일어났습니다. 사망자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반. 안드레이. 빅토르. 옐레나. 케샤. 세르게이. 니콜라이. 괴츠. 그라나프. 바딤. 글로브나. 리. 두켄. 마이어. 하겐. 파루크. 던스트. 켄드멘. 아돌포. 아니제. 알도. 그리샤. 안젤라. 베르테노. 카를레. 유나. 한. 유한.





고인들의 유족들에게 유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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