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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내 삶은 탄생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불행의 연속이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지하 단칸방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나를 가졌고, 나는 어머니가 날 지울 돈이 없어서 그냥 낳아졌다.


그렇게 지하 단칸방의 화장실 변기에서 태어난 나는 남들과 또 달랐다.


하얀 머리칼의 붉은 눈...백색증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며 오열하셨다.


그리고는 탯줄만 겨우 잘라낸 날 대충 놓아둔 채로 5평짜리 공간에서 목을 매셨다.


천운인건지 지독한 악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숨을 거두시자마자 주인집 아주머니가 독촉하러 내려왔다가 날 발견했다.


난 고아원에 맡겨졌고, 그곳에서 쭉 자랐다.


고아원 생활은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을 통틀어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


남들과 다른 눈, 피부, 머리카락의 색은 같은 또래 아이들에겐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운 놀림감이었다.


난 매일같이 매질로 눈을 뜨고, 깨어있는 내내 얻어맞다가, 맞다 지쳐 잠들었다.


고아원의 수녀님들은 다른 고아들을 거두러 온 자식없는 부잣집 부부들이 방문할 때나 잘 해주는 척을 했고,


아무도 없을 땐 그저 방관만 했다. 때로는, 지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버텼다.


그리고 늘 생각만 해오던 것들을 실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난 새벽 몰래 고아원을 탈출했다.


이후부터는 차가운 현실에 나 자신을 내던졌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은 나를 이유없이 매질하진 않았고, 오히려 내가 보여준 만큼 나를 인정해주었다.


나는 뒷골목 세계에 뛰어들었었고, 수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가 몸담은 조직의 2인자가 되었다.


날 거두어준 형님, 아니 회장님은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가출 소년이었고, 함께 많은 것을 시도하고 부딪히며 지금의 조직을 일궈냈다.


그러던 어느 날, 차를 타고 문득 어떤 이름 모를 대학교 정문 앞을 지나가다 그 앞에 모여있던 학생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문득 나도 대학에 다녔으면 어땠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다.


수없이 고민한 끝에 회장님께 조직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조직 내 수많은 간부들이 그런 나를 탐탁찮아 했고, 일부는 날 죽이려 들었다.


하지만 회장님, 아니 형님은 그런 나를 한동안 바라보시더니 그렇게 하라며 날 놓아주셨다.


그렇게 나는 새끼 손가락 하나를 형님께 바치고 뒷골목 세계를 청산했다.


그리고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몇 년 동안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그리고 다시 수 년이 흘러, 나는 그래도 나름 인서울 모 대학의 적당한 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생활은, 고아원 시절과는 정반대로 내 모든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즐거움이고 기쁨이었다.


그곳에서는 모든 이들이 날 속이거나 죽이려고 하지 않았고, 호의 혹은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온다.


그렇게 다가오는 모든 이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도 행복했다.


때때로, 공부를 마치고 기숙사 방에 혼자 있을 때면 뒷골목 시절의 나와 형님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형님, 우리 형님, 사실 가끔씩 학교 근처 먼 발치에서 한번씩 날 보고 가시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

그런 나에게,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왔다.


"지금도, 태어난 걸 후회하나요?"


나에게 그 질문을 한 그 남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장년의 남자였다.


검은 중절모를 쓰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양복을 입은 것이 꽤나 부유한 사람처럼 보였다.


"절...아시나요?"


그 질문을 듣자마자 난 수만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아니요, 모릅니다. 당신이 저를 모르듯이요."


"그럼, 어째서... 그런 걸 물어보시나요?"


나의 수만가지의 망상이 가지를 치기 시작하는 것을 단번에 차단해버린 그 남자에게, 난 괜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오히려 인자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냥...궁금했어요.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너무나도 궁금했거든요."


남자는 그 말을 하고는 문득 양복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나에게 건넸다.


"이건 뭔가요?"


"당신이 정말 삶에 대해서 후회가 없을 때, 그 때 한번 뜯어보시면 됩니다."


그가 내게 건넨 것은 밀봉된 편지 봉투 같은 것이었다.


난 얼떨결에 그가 건넨 것을 받아 들었고, 그걸 받자마자 남자는 다시 한번 웃고는 왔을 때처럼이나 갑작스럽게 가버렸다.



그날 밤, 난 홀로 기숙사 책상 앞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 남자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그리고 이 편지는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지금... 내 삶에 후회가 없을까?


그렇게 수많은 생각의 얼개들이 이리 얽히고 저리 설켰다.


그러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뜯어보았다.


편지봉투 안에 있던 편지를 펼쳐보자 거기엔 고풍스러운 필체로 적힌 글이 적혔있었다.




이 편지를 보고 있다는 것은, 당신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조를 거두었다는 뜻이겠지요.


저는 당신이 그런 결심을 내려주길 진심으로 기다려 왔습니다.


아까는 제가 당신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나 굉장히 놀랐을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 앞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방법은 모릅니다. 


당신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남들은 평생에 한번도 겪어보지 못할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을 겁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그런 삶 속에는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당신의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여기까지 읽던 나는 너무 놀라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사람은...어떻게 나의 어머니를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편지에 적혀 있는 모든 내용들이 그동안의 내 삶을 모두 알고 있거나 지켜봐왔던 사람인 양 말하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편지를 집어든 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마, 제가 이 얘기를 꺼낸 순간 당신은 꽤 놀랐을 것만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릴 내용들이 지금까지의 당신의 삶과 그리고 그 시작인 당신의 어머니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만약 당신의 어머니가 불행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면 당신의 지금까지의 삶을 포기하실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이 태어나기 전까지 너무 좋지도, 너무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단 한 번의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인생이 순식간에 망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불운함을 안고 태어난 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을 낳고 스스로의 삶을 포기했을 때의 그녀의 나이가 고작 21살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을 낳지 않고, 더 나아가 당신의 어머니가 불운한 사건을 겪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문득 나는 이 편지를 쓴 그 남자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나의 모든 것을 파멸 시킬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편지를 더 읽어나가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내 눈은, 이미 그 편지지에 박힌 채 굴러가기 시작했다.



제가 편지 봉투에 편지지와 함께 동봉한 종이가 있습니다.


그 종이에 당신의 이름을 적으세요.


그리고 그 종이를 입에 문 채로 눈을 감고 열을 세십시오.


그 다음 눈을 뜨시면, 과거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아마, 지금 이 말이 너무나도 터무니없게 느껴지실 거라 생각이 듭니다만, 이것은 장난이 아니니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과거로 돌아가서 당신의 어머니의 미래를 바꾸실 수 있습니다.


당신이 돌아간 과거는 당신의 어머니에게 그 불운한 사건, 바로 당신을 잉태하게 된 그 사건이 벌어진 당일 밤입니다.


거기서부터, 당신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당신의 어머니를 구한다면, 당신이라는 존재는 사라질 것입니다.


반면에 그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그대로 방관한다면 그 사건이 끝났을 때, 당신은 여전히 존재한 채로 현실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이런 선택을 내리도록 전달하는 존재입니다.


이제 모든 것은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봉투 속엔 작은 붉은 종이가 들어 있었다.


나는 한동안 말없이 그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정을 내린 나는,


종이에 내 이름을 적고 입에 문 채로 눈을 감았다.















하나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




























그리고 내가, 이렇게 하기로 한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