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생소하게 들리는 지명.
내가 처음 나고야에 대해 들었던 것은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던 중 나누었던 대화에서였다.
"저 이번 휴가 때 나고야 갔다 왔는데 엄청 좋더라고요.'
"나고야? 어느 나라에요? 아, 일본."
휴식 시간에 흘려보내는 그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
분명 그렇게 기억 속에서 사라져야만 했던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나고야'라는 세 글자는 잊히지 않았다.
절대로.
그 이름을 다시 떠올린 것은 일하다가 잠시 짬이 났을 때였다.
'나고야라...'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멍하니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딱 그 정도였다.
지나가다 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단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고야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고야.'
일하는 도중 문득문득 떠올랐지만 내 생각보다 감명 깊게 들었나. 가보긴 해야겠네.
이런 생각만 조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나고야라는 단어를 곱씹다가 무언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고야. 나고야. 나고야.
뭔가 떠오를듯한데 글자가 혀끝을 맴돌 뿐 단어가 되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답답함에 계속 혀를 굴리던 순간 갑자기 꽃이 피듯 글자들이 순식간에 합쳐져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아이치현 나고야.'
뭔지 모르겠지만 딱 맞는 퍼즐을 끼운 것 같은 쾌감.
줄곧 속을 답답하게 하던 것을 해결한 기쁨도 잠시 나는 곧 이상함을 느꼈다.
나고야가 일본의 도시인 것도 오늘 처음 알았는데 어떻게 아이치현이라는 것을 떠올렸을까.
'애초에 아이치현이 뭐지?'
검색을 해보고 나서야 아이치현 안에 나고야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르는 단어를 어떻게 떠올렸는지 고민하다가 그냥 어디선가 듣고 까먹었던 게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자네, 일은 안 하나?"
검색 결과를 띄워놓고 생각에 잠겨있다가 부장에게 걸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잠시 찾아볼 게 있어서, 그만."
얼른 검색창을 닫고 업무를 다시 시작했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나고야가 가득했다.
이제는 더 나아가 아이치현 나고야시라는 여덟 글자가 떠돌기 시작했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도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고 있으면 슬그머니 다가왔다.
집에 와서도 멍하니 침대에 앉아 나고야에 대해 생각하다가 순간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하고 누워 잠을 청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점점 의식이 흐려졌다.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요?"
"그러게요. 잠을 제대로 못 잤나. 좀 피곤하네요."
분명 일찍 잤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아이치현 나고야라는 단어가 꿈에 계속 나왔던 것 같기도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이어지는 지루한 업무시간, 평상시와 똑같은 분위기 똑같은 일.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잠시라도 생각의 공백이 생기면 머릿속으로 어떤 단어를 멍하니 떠올리고 있었다.
'아이치현 나고야.'
어떤 곳일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오늘 많이 피곤해?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네?"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해? 무슨 일 있으면 반차라도 내는 게 어때."
어느새 다가온 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였다.
억지로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나고야에 대한 정보를 닥치는 대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일본 주부 지방의 도시. 아이치현 최대 도시이자 일본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
한참을 검색하며 궁금증을 해결하고 나자 그제야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결된 줄 알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점점 심해져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지 않으면 아이치현 나고야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지배했다.
어느새 구글 지도를 켜 나고야를 보고 있었다.
카톡을 하다가도 나고야 여행 후기를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을 넘어 점점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코끼리를 떠올리는 것처럼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밤에는 잠을 거의 못 자 점점 예민해지고 피로해졌다.
보고서를 쓰다가도 곳곳에 박힌 '아이치현 나고야시'라는 글자를 발견하고 지우기도 여러 번.
다음 휴가에는 일본여행을 가기로 마음 먹었지만 고작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이치현씨는 이번 나고야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쯧. 회의에 집중 좀 하게. 그렇게 안 봤는데 요새 아주 엉망이야."
"죄송합니다."
점점 환청이 들리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으면 아이치현 나고야시라는 글자가 보였고 어렴풋이 비명이 들렸다.
잠에 들면 나고야에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지만 꿈에서 깨면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지 않았다.
이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넘어 누군가 속삭이고 있었다.
환청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당장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옆자리 동료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고야에 무슨 일 있어요?"
처음에는 또 환청인줄 알았다.
"네? 무슨 소리에요?"
"계속 중얼거리시던데요? 아이치현 나고야시 이러면서."
내 머릿속에 그 이름을 속삭이던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나를 괴롭히고 있던 것도 나였다.
나고야로 향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거였다.
결국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를 잠시 쉬기로 하고 나는 즉시 가장 빠른 비행기 표를 예매해 공항으로 달려갔다.
비행기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완성되기 직전에 이르자 글자들이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좌석에 앉아 그대로 눈을 감고 나고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떠올렸다.
숙소도 계획도 짐도 없이 달려왔지만 걱정되지 않았다.
나는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릴 시간이 다가오자, 가슴은 술렁였고 머릿속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글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서둘러 공항을 나섰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눈에 담긴 풍경은...
오늘 오후 한 한국인 여행객이 나고야 공항에서 숨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현지 경찰은 별다른 외상이 없다는 점과 공항을 나선 이 모 씨가 갑자기 새파랗게 질리더니 쓰러졌다는 주변의 증언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심장마비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나고야라...'
나는 채널을 돌리며 처음 듣는 것 같은데 굉장히 익숙한 이름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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