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세계는 알 수 없는 현상으로 인해 망해가는 중이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주변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뉴스를 통해 지구온난화에 따른 극심한 더위로 인한 헤프닝이라는 말도 안되는 입장을 발표했으나,
어느 순간 세계 곳곳에서 사람이 아닌 것들이 밤낮 구분 없이 나타나 사람을 산 채로 씹어먹었고, 더 이상의 발표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발표를 할 수도, 발표한들 볼 수 있는 방법이 사라졌다.
그렇게 TV, 휴대전화 등 모든 것이 먹통이 되어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서로를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어느 순간 곳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규칙서를 배포되기 시작하면서 작은 신뢰의 불씨를 지펴갔다.
생존 26일 차
문을 굳게 걸어잠군 슈퍼 안.
문 뿐만이 아니라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모든 곳이 목재와 잡동사니로 막혀 있었다.
그 안에서 한 남성이 8살 난 아이에게 감자를 삶아서 내주었다.
감자는 방금 막 삶았기에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뜨거웠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굶주린 아이는 옛날에 생일 때 먹은 딸기 크림 케이크보다 이 감자가 더 달다고 생각했다.
"배 많이 고팠구나? 꼭꼭 씹어 먹거라 이놈아."
수일 슈퍼를 운영하는 김수일은 세계가 망하던 날, 부모를 모두 잃어버린 준수를 돌봐주고 있었다.
부인과 이혼한 수일 또한 세계가 망하던 날에 마지막 남은 가족이었던 아들을 잃었다.
그래서 부모를 잃고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던 준수를 발견하여 보호해주고 있었다.
다행히 수일은 슈퍼를 운영했기에 식량에 대한 걱정은 덜었으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우후죽순 생겨난 편의점과 무인 가게로 인해 슈퍼를 정리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곧 정리할 슈퍼였기에 생필품을 제외한 식품은 발주를 거의 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풍족한 편은 아니었다.
때문에 유통기한이 긴 보존 식품들은 최대한 아껴두고 신선 식품 위주로 먼저 소비하고 있었지만 여름에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슈퍼의 유리창을 모두 봉쇄 해놓았기에 해가 들지 않아 감자는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수일은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자신 곁에 있어서...자신의 죽은 아들의 슬픔을 위로해줄 이 작은 존재가 있어서...
수일은 준수가 그 조그마한 입 안에 감자를 잔뜩 우겨 넣어 볼이 뽈록해지는 만큼 수일의 삭막했던 희망도 비례하여 부풀었다.
수일은 퍽퍽한 감자 하나에도 투정 하지 않고 맛있게 먹는 준수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생존 116일 차
수일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최대한 식량을 아꼈으나 이제 통조림 같은 보존식품만이 전부였다.
물을 아끼기 위해 갈증은 이온 음료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일 밤 잠들기 전, 많은 수일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바보 같긴...그러게 왜 피붙이도 아닌 것을 굳이 데려와서 식량을 허비해?
아니야 저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자살 했을테지...
아니, 그건 모를 일이지? 지금이라도 아이를 내쫓아내야 하나?
아냐 규칙서를 나눠주던 집단들도 어느 순간 사라진 마당에 저 어린 아이를 쫓아내는 건 어른으로서 도리가 아니야...
아니, 여태 먹여준 게 어디야...쫓아내야 해...
수일의 고민을 준수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늦은 밤, 칼을 들고 자신 앞을 서성이던 수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망한 세상 속에 일찍 철이 들어버린 준수 또한 짐이 되기 싫은 마음에
수일이 잠든 밤, 떠나야 할까 고민을 수없이 해야 했다.
8살의 아이가 하기에는 너무나도 잔인한 고민이었고 이러한 현실이 당연한 세상이 됐다.
생존 172일 차
통조림도 이젠 그리 넉넉하게 남지 않았다.
참치나 햄도 아닌 과일이나 콘옥수수 통조림이 전부였다.
준수를 보호하려는 내면이 승리한 수일은 여전히 준수를 내쫓지 않았지만
부족한 영양과 추운 날씨에 먹통인 난방에 점점 병들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병이 들어 삶에 대한 갈망이 줄어든 수일은 자신의 선택을 행운으로 여겼다.
등산을 취미로 가졌던 수일은 워낙 건강했기에 병마 따위에 지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식량을 노리고 슈퍼를 침입한 침입자들을 몰아내다가 다치고 불안 증세에 잠을 설친 탓에
이 때를 놓치지 않은 간악한 병마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삼촌...제가 약 구해올게요...좀만 기다려요..."
"안된다니까!! 밖은 위험해...소식을 전해주던 애들도 전부 죽어서 더 이상 오지 않아...나가도 너 같이 어린 것이 뭘 구해올 수 있다고..."
이제는 준수가 직접 식사를 챙길 만큼 기운이 없는 수일이지만 준수가 나가려 하는 순간만은 독하게 다그쳤다.
준수는 3일째 수일을 설득하려고 고군분투 했으나, 수일은 완강했다.
가끔씩은 자신이 병에 죽어가더라도 준수만은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과
준수가 약을 구해오길 바라는 마음의 저울이 엇비슷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준수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이 헛된 기대를 위로 날려보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수일의 말이 옳았다.
세상이 망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일수를 세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지금 나가봐야 제대로 된 것이 남아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가야 해요...삼촌 죽으면 어차피 저도 죽어요...여태 먹여주신 은혜 정도는 갚게 해주세요..."
"하...너는 왜 애가 애답지가 않니?"
"이딴 세상에서 애다우면 뭘 할 수 있는데요?"
수일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 갓 9살이 되었을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세상이 멀쩡했다면 저 아이의 눈빛은 여느 또래들처럼 좀 더 해맑았겠지...
자신의 아들과 함께 태권도장이나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자신의 슈퍼에 들러 간식을 먹었으리라
그런 생각이 스치자 수일은 괜스레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죽고나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자신의 아들을 앗아간,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병으로 인해 이 선물같은 아이마저 앗아가려고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이러한 세상 속에 아직 살아는 있는 지 모를 신에게 빌었다가, 어느 순간 욕을 하고 끝에는 저주를 퍼붓는 등
점점 신에 대한 분노만이 스스로 번지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저는 데려가도 좋으니...제가 죽더라도 저 아이를 불쌍하게 보시어 이 지옥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모두를 사랑한다는 신이라면서 저 혼자 남을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다니 엿이나 쳐먹으라지
내가 죽어 당신을 마주한다면 신의 노릇을 하지 않는 당신을 반드시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리
생존 201일 차
수일은 이제 말을 최대한 아꼈다.
말을 하는 순간 함께 나오는 기침이 폐를 자극하여 누군가 자신의 갈비뼈를 힘껏 누르는 듯 했다.
다행인 점은 식량을 노리던 괴한들이 남을 약탈해 늘린 생명줄도 이젠 다 하였는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결국 준수는 간절한 부탁에 못 이긴, 그리고 심한 고통에 판단이 흐려진 수일의 허락 하에 바깥을 나섰다.
슈퍼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까지는 100m 남짓이었지만 가는 길은 아이의 눈을 거치기에는 너무 참혹했다.
아니, 아이 뿐만 아니라 그 누가 보더라도 참혹했다.
이미 썩은 시체가 가득했고, 죽음 뒤에 시체라도 온전히 보존했다면 죽음 속에서 유일한 행운이라 여길 수 있었다.
시체를 쪼아먹는 까마귀만이 이 비극의 거리 속 승자라는 듯이 거리를 당당히 활보했다.
아무리 찾아도 눈 속에 파묻혀 젖고 찢어진 신문은 작년 이후의 일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약국은 이미 망한 지 오래였다.
깨진 창문 너머로 알 수 없는 약들만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다른 약국을 향했으나 그 곳이라고 다를 바는 없었고,
자신을 욕한 수일에 분노한 신이 꺼져가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계시를 현실로 보여준 듯 했다.
준수는 깨져버린 희망을 주워담을 용기도, 의지도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결국 빈 손으로 돌아온 준수는 수일의 곁에서 엉엉 우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 때만큼은 아이다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수일은 끝내 영원한 잠에 들었다.
잠든 수일의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했고, 준수의 뺨을 어루만지던 그의 손은 준수의 뺨에서 바닥으로 향했다.
기침을 내뱉던 바싹 마르고 갈라진 그의 입술은 더 이상 입김을 내뱉지 않았다.
준수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 커녕 기침조차 하지 않는 수일에
첫 만남과는 확연히 다른 비쩍 마른 수일의 배에 엎드려 눈물을 훌쩍였다.
준수의 훌쩍임은 서서히 절망으로, 그리고 절망은 서서히 오열로 몸집을 불려갔고,
수일의 올이 풀리고 때탄 회색 스웨터에는 준수의 눈물 자국이 번지기 시작했다.
준수가 아무리 울어도 수일의 배는 더 이상 들쑥날쑥 하지 않는다.
이는 더 이상 수일이 숨을 쉬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임을 준수 또한 알고 있었다.
그걸 안다고 해도 준수는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남지 않았다.
점점 수일이 차가워지고 역한 냄새가 나도 준수는 수일의 스웨터를 눈물로 적실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준수는 수일의 손처럼 바닥으로 내쳐진 희망을 줍기는 커녕 찾아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그대로 식음을 전폐하여 수일의 곁을 따라갔다.
당신은 준수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가?
준수를 위해 슬퍼할 당신을 위해 다른 아이들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11살 예훈은 부모를 잃고 길에서 떠돌다가 알 수 없는 것에게 그대로 먹혀 생을 마감했다.
13살 민지는 유일하게 남은 동생의 손을 놓칠세라 꽉 붙잡고 도망쳤지만 젖은 손이 미끄러워 손을 놓친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동생을 먹어치우는 것을 목격하고 동생의 뒤를 따랐다.
10살 수혁이는 식량을 찾아오라는 어른 집단의 협박에 못 이겨 식량을 구하다가 정신을 놓아버린 어른의 희생양이 되었다.
11살 재영이는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셨지만 식량이 부족하다고 느낀 부모에 의해 쫓겨나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삶을 마감했다.
15살 서규는 함께 다니던 같은 반 친구들을 하나 둘 떠나 보내고 혼자 남았을 때,
이제 추억 외에는 그 무엇도 남지 않은 교실로 찾아가 목을 매는 선택을 했다.
망해버린 세계는 아이라는 이유로 너그러운 아량을 베풀지 않는다.
망해버린 세계는 어리다는 이유로 배를 채워주지 않는다.
망해버린 세계는 행복하게 살았어요 라고 끝맺음을 맺는 동화가 쓰여지지 않는다.
망해버린 세계에서는 현실이라는 잔혹동화만이 쓰여진다.
-------------------------------------------------
뭔가 아이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는 거 같아서 한 번 써봤슴
근데 쓰면 쓸수록 제목이랑은 동 떨어지는 기분
ㅠㅠㅠ 감정이입된다..
꿈도 희망도 없네...
와 준수 이야기로만 끝냈어도 잘 썼네 하고 봤을텐데 다른 아이들의 현실 보여주는건 ㄹㅇ 지린다 - dc App
초딩때 가끔 굿네이버스 같은곳에서 가난한 아프리카의 한 가족 보여주면 들던 생각이 쟤만 도와주면 다른 애들은? 쟤들은 최소한 운좋게 저런데 나와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TV에 안 나온 다른 애들은 쟤들보다 비참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생각 해봤는데 마지막부분 그때 생각나네
필력 ㄹㅇ좋네
겁나 슬프네ㅠ ㅜㅜㅜㅜㅜ
불쌍하다고 생각 안해서 뜨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