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는 10년지기 동네 지인으로
내가 이 동네에 자취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쭉 사귀어온 사람이다.
B의 집안은 경북 집안에서 상당히 오래된
세습무(世襲巫)로,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시(市)라 해도
몇 대째 지역 유지 노릇을 하고 있다는 모양이다.
"우리 친할머니가 며느리로 시집 온 우리 어머니에게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큰누나에게 물려받았지."
"너는?"
"남자라는 이유로 일을 배울 기회조차 박탈당했으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 아니겠어."
하지만 B는 꿋꿋하게 꿈을 이루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라오자마자 합격한 대학에
그대로 휴학계를 던지더니, 자취방 보증금을 빼서
다짜고짜 서울에 자신의 '철학관'을 개업했다.
어머니에 할머니까지 몰려와서 꽤 소란이었던 모양이나
허락인지 절연인지 어떻게 십 년째 이 일로 먹고살고 있었다.
"너희 집안이 여계 세습이면 너한테 신통력 같은 건 없잖아?"
"재벌 2,3세들이랑 똑같은 거지. 걔들도 딱히 능력은 없는데
회사 물려받아서 나름대로 뭐 잘 굴리니까."
뭔가 그리 썩 납득되지는 않는 비유다.
"아무튼 뭐 자격증보다는 일머리, 뭐 그런 거지."
이런 돌팔이 무당이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손님은 꾸준하다.
B는 몇년 전 허름한 2층짜리 주택을 매입해, 1층을 개조하여
자신의 점집으로, 2층은 생활 용도로 쓰고 있었다.
남자 혼자 살기에는 상당히 넓은 공간이기도 해서
나 역시 그곳에 PC를 가져다 놓고 이따금씩 일을 마치면
B와 함께 게임을 하며 마음 놓고 전자담배를 피웠다.
그날은 내 작업이 조금 일찍 끝나 동네를 걸었다.
5시 30분에 집을 나서 철학관 폐점 시간인 7시에 딱 맞춰
가려고 했으나, 정작 도착하니 6시 26분이었다.
"나 때문에 일찍 닫지 않아도 되는데."
"아냐, 내 경험과 직감이 말하는데 오늘 장사 끝이야.
나가서 대패 삼겹살이나 굽지 뭐."
라고 1층의 문을 잠그자마자 좁은 마당으로 여자가 들어섰다.
우리와 또래, 아니면 20세 후반 정도쯤 되는 직장인으로 보였다.
거의 광대까지 드리운 기미와 피곤한 기색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아직까지는 외모가 빛을 내는 음울한 미인이었다.
"저기...."
"영업 합니다."
참으로 뻔뻔하게도 B가 말했다.
"들고 계시는 '그거'때문에 오신 거죠?"
무당의 신통력이라기보다는 누가 봐도 그래 보였다.
여자가 양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치고 있는 보자기 안쪽
딱 영정사진쯤 되는 크기의 납작한 사각 윤곽이 보였고
실제로도 보자기를 걷자 영락없는 영정사진이 드러났다.
흑백과 컬러의 경계가 되는 시대의 것인 듯 했다.
색이 입혀져 있긴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조잡하다는
느낌이 드는 데다 잔뜩 빛이 바랜 상태.
여느 영정사진처럼 사진은 한 노인의 얼굴과 윗가슴을
담고 있었는데, 한복을 입고 헝클어진 상투를 튼 머리
수염은 없이 말끔하게 깎여 있고 주름이 과할 정도로 많았으며...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었다.
여기까지라면 그저 사진찍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노인의
다소 경직된 얼굴로만 보일 뿐이겠지만, 다소 섬찟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노인의 시선이었다.
고개는 그대로 정면 방향을 유지한 채.
노인은 눈동자만 내려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나요?"
"네?"
"아뇨, 아닙니다. 사진에 찍히신 분이 혹시...?"
태연히 말을 돌리는 B에게 여인이 말했다.
"저희 외할아버지라고 하셨어요."
여인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여의치 못한 사정에 여기저기 거의 몸만을 옮겨 전전했지만
어머니는 어디든 저 사진만은 꼭 들고, 모녀가 잠드는 자리의
벽 위에 걸어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저희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거라고, 엄마가...."
그런 사정을 알고 나니 훈훈...
하기에는 지나치게 저 사진은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조상님이 지켜 주신다 하더라도, 마치 저렇게 눈을 부릅뜨고
나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사진을 벽에 걸고 산다는 것은 상당히
꺼림칙하고 무서운 일일 테니까.
"어머니께서는?"
"올해 봄에 돌아가셨어요."
아닌 게 아니라 여인의 경우 이 사진이 어린 시절부터 무서웠다고 한다
특히 새벽에 잠에서 깨 문득 눈을 마주칠 때마다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표정에 다시 잠들지 못한 적이 많았으며, 덕분에 자기 전에 화장실에
여러 번 가는 습관까지 생겼을 뿐더러... 어른이 된 이후에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저 사진 때문에 자취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고.
"유언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사진을 꼭 계속 걸어두라고
엄마가 말씀하시긴 했는데요, 아무래도 좀... 혼자는 무리라서요."
돌아가시고 나서 이 사진을 버리거나 보관해둘까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 자신과 어머니를 '지켜온' 셈인 외조부의 사진을
그렇게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아 B를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친한 친구 어머님께 들었어요. 이런 물건을...."
"예, 제 전문입니다. 걱정 마세요."
서글서글 웃으며 B가 잠그었던 1층 현관의 문을 열었다.
당연히 나는 문 밖에 남았고, 원래라면 2층에 올라가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는 그대로 좁은 마당에 머물렀다.
창문을 통해 유품 공양과 간단한 굿거리에 대한 비용 문제가 나오고
아무리 봐도 바가지인 듯 싶은 금액을 친구가 요구하더니, 이윽고
여자가 사진을 둔 채로 다시 현관으로 나왔다.
"...."
"...."
꾸벅 인사하는 여자에게 고개를 마주 숙이고 대문 너머
뒷모습을 바라볼 때 다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안 되겠다. 다음에 보자."
"그 사진 때문에?"
"응, 내일까지 밤 새야 할 듯."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품 처리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까 싶었지만, 어쨌든 이건
친구가 돈을 받고 하는 일이고 괜한 관심은 갖지 않는 게 낫다.
언제나 그렇듯 B는 나를 마당까지 배웅했다.
골목으로 걸어나가는 등 뒤, B가 대문을 걸어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
사흘 후 저녁.
단골 삼겹살 집에서 만난 B는 상당히 수척할 뿐더러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게임과 영화, 다시 게임, 시사 문제의 대화가 흘러가다
추가로 시킨 삼겹살을 기다릴 때쯤 내가 슬쩍 물었다.
"그나저나 나같아도 참 곤란하겠어, 나도 우리 엄마가
할아버지 사진을 걸어두겠다고 하면... 사실 반대할 자신 없거든."
"뭐, 그렇지."
B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건 그 여자 할아버지 사진이 아니지만."
"뭐?"
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창 밖에서 들었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는 없었다.
"하지만, 그 여자 엄마가...."
"자기 아버지 사진이라고 말했을 뿐이지.
딸은 당연히 엄마의 말을 믿었던 것 뿐이고....
뭐,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믿는 게 좋을 거야."
친구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가에 대한 의문보다도
머리를 앞서는 의문이 있었다.
"그럼... 그 사진에 찍힌 건 누구야?"
만약 그 사진에 찍힌 것이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어째서 여자는 딸에게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수십년의 세월 동안 그런 사진을 걸어놓은 것일까.
대답이 아닌 기침이 돌연 B에게서 터졌다.
냅킨 몇 장을 뽑아 건네자 B는 그것을 대고 쿨럭였다.
이윽고 떨어지는 냅킨 위로 피가 섞인 가래
그리고 반백의 머리카락 몇 가닥과...
"뼈 삼겹 2인분 나왔습니다."
점원이 들고 온 테이블에 고기를 내려놓았을 때엔
이미 티슈와 그 위에 있던 것들은 B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냉면 먹을 거야?"
아무렇지 않은 듯 불판에 고기를 올리는 B에게
나는 그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폴리탄 감성 좋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