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찬은 탈출을 위해 달리다 벤치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그때, 누가 봐도 ‘괴이’인 것이 유찬의 옆에 스르륵 다가와 앉는다. 놀람인지 반가움인지 분명히 알 수도 없는 감정이 뒤섞였지만, 유찬은 이것 또한 자신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싶은 마음에 크게 반응하지 않은 채 그것에게서 시선을 떼고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 공허한 그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것도 그저 가만히 있는다. 


‘그것이 소리에 민감하다는 규칙을 보았던가, 지금 당장 일어서기만 해도 소리가 날 텐데…’


유찬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그것에게 말을 건다. 






[유찬] 너에게는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처음부터 괴이였을지, 어쩌다보니 괴이가 된건지, 아니면 괴이도 뭣도 아닐수도, 하하. 

[그것] …

[유찬] 나 사실, 여기 자발적으로 들어온거다? 몇 년째 공시 준비해도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나 진짜 열심히 했는데……부모님께선 내색은 안하시지만… 더 이상 짐 되기도 싫어서. 여기서 죽어도 나쁠 것 없고, 뭔가 발견하고 탈출에 성공하면 초자연 뭐시기에서 돈도 준다고 하니, 못난 아들놈이 처음으로 효도하는거지, 뭐. 

[그것] …

[유찬] 여기 들어오기 전에 대학생때부터 사귄 여자친구랑 헤어졌어. 내가 차인건 아니고 먼저 그만하자고 했어. 놀랍지? 하하. 민서가 합격 못해도 괜찮다고, 자기가 먹여살리겠다고 했는데… 그냥 헤어졌어 그냥. 이제 나이도 찼고, 민서 정도 능력이면 훨씬 좋은 놈 만나 호강해야지. 사랑한다면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우리 민서… 나한테 참 과분한 여자였어. (눈물을 흘린다)

[그것] …

[유찬] 하하, 상남자 답지 않게 눈물을 흘리고 있네…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근 3년간 대화 상대는 민서랑 부모님 뿐이었어. 근데 민서도 회사일 바쁘니 피곤할테고, 부모님한테는 더 짐만 될테니… 이렇게 속내 이야기 한 적은 정말 없었는데… 덕분에 마지막으로 응어리 풀고 가네, 하하. 들어줘서 고맙다. 






그때 갑자기 그것이 움직인다. 유찬은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 생각해 두 눈을 꼭 감았지만, 예상과 달리 그것은 유찬을 끌어안으며 말한다. 

[그것] 열심히. 살아. 아직은. 일러. 



약간은 꺼림칙한 기계음이었으나, 그 진심만은 따사로웠다. 유찬은 빙긋 웃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유찬은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있다. 

























규칙서 16번. 
길을 달리다 노란색의 벤치를 발견하면 앉아서 숨을 고르십시오. 그것이 나타나면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으며 이승에 미련이, 삶의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십시오. 실제이거나 경험담일수록 유리합니다. 그의 감정에 호소하십시오. 현 상황으로써는 이 방법이 가장 편하고 빠른 탈출 방법입니다. 


본 항목은 20XX년 심유찬 대위의 제 1차 조사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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