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눈 앞이 새빨갛게 물든다.
현실감이 없는 거리를 붕 뜬 채 날아가 도로에 처박힌 결과, 겨우 정신을 붙든 머리는 제 몸뚱아리가 트럭에 치였다는 것을 이해했다.
'씨발'
어떻게든 의식을 붙잡으려 해보지만, 붙잡은 끈은 점차 얇아져 갈 뿐.
변변찮은 유언도 남기지 못한 나는, 그렇게 어이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
"허억?!"
천장에 뜬 크리스탈 샹들리에.
몸을 감싼 부드러운 비단.
나쁜 꿈이라도 꾼 것 마냥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다.
"도련님?!"
물그릇을 든 채 옆에서 대기하던 여성이,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인 채 내게 다가온다.
이 사람은...
"누, 누구..."
"네?"
갑작스레, 머릿속으로 수 년 분의 기억이 밀려든다.
나는 공작가의 아들. 이 현실에서는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했을 듯한 미모를 지닌 여성은 내가 손가락 하나로 부릴 수 있는 사용인...
"...아, 아무것도 아니에... 아냐."
"네? 네에..."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뱉은 그녀는, 작은 헛기침을 내뱉고는 물그릇을 나의 앞에 내려 두었다.
"도련님, 한 시간 후 엘리자벳 아가씨가 방문하시기로 하셨습니다만... 식사는 조식을 겸해 브런치로 준비할까요?"
"어? 아, 응. 어... 그렇게 해 줘."
분명하다. 이건...
"......"
이세계 전생.
30세 모솔아다백수인 내게도 이런 호사가 찾아 오다니! 입꼬리가 꿈틀거리는 걸 참기 어려웠다. 이 세계에도 마법이나 검술 같은 게 있는 걸까? 얼굴도 잘생겼고, 무엇보다 공작가의 아들이라면, 저런 여자 한 두명 쯤은...
"도련님?"
"응?! 아, 아아. 씻을 테니까, 옷 좀 준비해 줘."
"네."
...역시 갑자기 권위적으로 행동하라 해도, 방금까지 멀쩡하게 한국에 살던 내게는 허들이 너무 높다. 이런 것도 차차 익숙해져야겠지.
나는, 이제부터 제국 공작가의 소가주니까!
...
"아하하, 정말 동녘에 그런 나라가 있다는 것이와요?"
"아, 음. 그렇지! 정말 그렇다니까? 철로 된 마차가 말 없이 움직이고..."
"그럼 마차가 아닌 게 아니온지?"
"그래서 차라고 불러."
엘리자벳은 후작가의 딸로, 고귀한 신분, 외모, 내 찐따같은 회화 실력에 맞추어 주는 심성까지 삼박자를 충족하는...
내 약혼자였다.
"어쩜, 해박하기도 하셔라. 소녀도 한 번 가보고 싶사와요~"
살살 눈웃음을 지으며 하지만 여전히 아이 태를 벗지 못한 해맑은 표정. 흘러 내리는 반짝이는 금발...
'씨발... 이세계 최고다!'
나는, 진심으로 트럭을 보내주신 신께 감사했다.
...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엘리자벳과 결혼했고, 공작가의 고귀한 핏줄 답게 마법 또한 수준급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물론 아내도 좋지만...
"도, 도련님. 이런 건..."
"어허. 잠시 옷매무새를 확인 해 보는 것 뿐이라 하지 않았느냐?"
"....."
한 바탕 거사를 치른 후 홀로 침대에 누워, 내게 온 편지들을 뒤적인다.
"이건 됐고... 하, 부르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아? 이 놈의 인기란..."
피식 웃으며 편지 봉투들을 대충 침대 맡으로 던져 두려다, 마지막에 놓인, 다른 것들과 다르게 어쩐지 손 때라도 묻은 듯 거무죽죽한 종이가 시선 끝에 띄어서.
이건...
"어?"
호기심에 펼쳐 본 더러운 종이에 적혀있던 것은, 또박또박 쓰인 단 한 문장이었다.
내 몸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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