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면에서 바로 이어지는 내용임


-----



유머는 본질적으로 아이러니다. 따라서 아이러니를 마주한 인간은 아무리 나약해도 웃음을 터트릴 가능성을 품는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녀가 그들과 같은 환경에 처한 것처럼.


“하, 하하, 하하…….”


그녀 정신을 차리자 자신도 황야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곳이 어디인지 직감한 순간, 주머니에 무언가 들어있길 기대한 자신이 바보 같. 예정에 없던 일이었지 않은가.


“침착하자, 침착해야 해.”


그녀는 천천히 일어났다. 애써 차오르는 불안과 공포를 억누르며 침착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지평선에 걸친 짙은 안개, 그리고 황야. 그녀가 확인할 수 있는 건 그 두 가지뿐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보이는 걸 말하라고 할 때 대다수가 ‘없다’라고 말한 이유를 알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이 한 바퀴를 둘러본 게 맞는지, 한 바퀴가 아니라 한 바퀴 반인지, 두 바퀴를 돌았는지, 어쩌면 그조차도 아니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모든 곳이 똑같았다. 모든 곳이 황량고, 모든 지평선은 안개로 뒤덮였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골을 울리고 있어서 진정할 필요가 있었다.


“습―하. 습―하.”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알고 있다. 1,080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1명만을 구했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다. 1,080명이 온전히 그녀의 잘못으로 죽은 게 아니란 걸.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다. 절대다수는 그녀의 무지와 무능, 그리고 ‘조사’라는 명목으로 였다는 걸.


“스읍―하아―.”


공포는 불안의 극화된 감정이다. 변화하는 상황, 부정적인 전망, 그리고 신체에 닥쳐온 위협에 반응하는 감정이다. 그녀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이해와 분석, 해체는 감정을 흩뜨리는 좋은 행위다.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 공포에 잠식된 채 불안만을 가중하는 것보다 움직여야 함을 안다. 실재하는 공포와 불안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의 유동성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4시간……이지.”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손목시계는 없다. 시간을 알 만한 수단은 전무하다. 이곳 빛이 있지만 해는 없는 곳이다. 다만 분명한 건, 이 끝없는 황야도 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끝이 과연 그녀에게 호의적일지 그녀로선 자신할 수 을지라도.


-----


사무직이 4시간을 내리 걷는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주저앉아 쉬길 반복했다. 한 가지 다행은 이곳에선 몇 시간을 보내도 소리만 크게 내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는 그것에 정녕 안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시야에 보이는 건 안개다. 변하지 않는 황야다. 그녀는 마치 평평한 판에 황야의 텍스처만 입힌 곳을 걷는 것 같았다. 얼마를 걸었는지, 얼마 동안 걸었는지 도저히 알 수 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저 안개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 정확히는 수많은 조사관의 비명을 만들어낸 존재가 있다는 것만 알 뿐,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는지, 어떻게 마주하게 되는지,


어떻게 자신을 죽일지.


그녀는 모른다. 결과와 소만 알 뿐, 정보의 공백과 현실의 괴리 그녀에게 과연 안도감과 안정감을 줄까? 그녀는 어떻게 행동해야 살 수 있는지 누구보다도 자세하게 알고 있다.


그게 전부라면 어째서 11명만 살아 돌아왔는가? 죽은 이들이 전부 돌아갈 방법 제대로 숙지 못해서일까? 그녀는 혼란스럽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이곳에서 쓰러졌을 이들이 떠오른다.


씨발, 여기가 어디야! 너흰 뭔데 내가 여기 있는 거야!


흠칫. 그녀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뒤? 거기가 뒤일까? 아니면 지금 돌아본 곳이야말로 그녀가 나아갔어야 할 방향일까? 환청일 게 분명했다. 공포는 쉽게 물러나지도, 해체되지도 않는다. 그런 것처럼 보일 뿐.


근본적으로 그녀가 황야에 있는 한, 공포는 그녀의 내면을 다양한 경로로 갉아먹을 것이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무어라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참아야 했다. 혼잣말 소리가 위험한 게 아니었다. 그 혼잣말을 내뱉게 될 자신이 위험했다.


그녀는 몇 시간이 지났는지 셈했다. 무의미한 일임을 알고 있다. 시야에 변화가 없다. 변화하는 건 시시각각 커지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점점 지치는 육신뿐이다. 그런 곳에서 정확한 시간 감각이 살아있을 리 없.


“……현명하게 판단하셔야 합니다.”


그녀는 혀를 굴려 소리를 냈다. 소리 내서 웃은 이후로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녀는 되는 대로 읊었다.


“길고 루한 걸음이 될지라도, 괜찮습니다. 제가 있습니다. 제가 귀하를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귀하를 탈출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이 얼마나 난지 깨달았다. 이런 곳을 1천 명이 넘게 걸었다니. 당장에라도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싶은 감정을 4시간 가까이 억눌렀다니. 삐걱거리는 의지 사이 공포가 스며들자, 그녀는 오한을 느끼기 시작했다.


“추, 추워…….”


그러나 공포가 간과한 건 그녀가 정말로 연약하기만 할 뿐인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말로 단순하 추우면 몸을 움직여서 덥힌다는 발상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지극한 단순함이 일시적이나마 공포에서 그녀를 건져낸 것이었다.


그렇게 그 단순함도 체력의 한계로 끝을 맞이할 때, 그녀는 마침내 안개 너머로 건물의 그림자가 잡히기 시작한 발견했다.


“……아.”


그녀는 안도했다. 그리고 전율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앞으로 마주할 일을 알고 있다. 그건 어느 의미로 기대였다.


동시에 그녀는 모른다. 결과와 소리만 알 뿐, 정보의 공백과 현실의 괴리가 그녀에게 안도감과 안정감을 주지 않는다. 그녀는 분명 지금 이상의 결단이 자신에게 요구되리란 걸 안다.


운이 안 좋다면, 아마 결단만으로는 부족 일에 처할 수 있다. 작은 요소라도 까먹고 놓쳤다간 죽을 수도 있다. 불합리, 부조리, 불가해. 초자연현상이란 인간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그들의 생태와 그들의 법칙은 인간이란 종을 적대하며, 위협한다.


그녀는 지금쯤 병실에 누웠을 자기 육체를 상상했다. 깨울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녀를 죽이고 싶다면 모를까. 어쩌면 그들은 그녀를 지원할 때를 놓친 걸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매뉴얼을 심기 직전에 매뉴얼 그 자체인 그녀가 빠졌다. 그녀는 어떻게 행동해야 살 수 있는지 안다. 이건 시험이다. 매뉴얼이 그녀를 살릴 수 있는가. 아니면 그조차도 아닌, 무의미한 천 명의 희생이었는가.


“초자연현상처리반은,”


그녀는 천천히 건물에, 패스트푸드점에 가까이 다가갔다.


“인류의 존속과 안녕, 번영을 기원하며,”


그리고 그 안을 쳐다봤다. 처음 수십 명의 조사관이 헛되이 죽어버리고, 일찍이 파악하지 못했던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초자연현상에 휘말린 인류를 구원하고 보호하는 곳이다.”


내부는 텅 비었다. 키오스크도, 직원도 없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문고리를 잡았다.


지금부턴 시간 싸움이었다. 그녀는 현명하고 침착하게 숨을 고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되새겼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곳에서 자기 그림자를 찾고, 짐승의 우리를 부수는 일이었다.



-----



뜻하지 않게 뇌절치게 돼서 미안하게 생각함.


읽어줘서 꺼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