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늘 내게 십자가를 가지고 다니라고 하셨다
“악령은 신을 두려워한단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난 십자가 대신 '그녀'가 준 펜던트를 품고 다녔다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수확을 마친 들판에서 우리는 처음 입을 맞췄다
그 순간 하늘이 울부짖으며 벼락이 땅을 찢었다
그날 이후 마을엔 재앙이 시작됐다
가축들이 새벽마다 죽어 있었고 강에서 물 대신 피가 흘렀다
한 아이는 밤 사이에 실종되었다
사람들은 말없이 서로를 의심했고 끝내 마녀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표적은 정해져 있었다
들판에서 처음 입을 맞춘 '그녀'
할머니는 군중 사이에 서서 조용히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
“그날 들판에서 마녀와 같이 있었다는게 사실이야?”
목사가 내게 물었다
나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불길이 내 발 아래에서 피어났다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틈에서 할머니만이 그저 나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눈은 감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그녀가 왜 나와 입을 맞췄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구하지 않은 이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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