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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이한은 오른손에 꼭 쥐고 있던 구일역 탈출 메뉴얼을 다시 바라보았다.

다른 분실물을 사용하여 탈출하는 방법은 각각 몇 줄 되지 않았지만, 휴대폰을 사용하여 탈출하는 방법은 매뉴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길었다.

단순히 복잡하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메뉴얼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었다.


[분실물이 ‘구형 휴대폰’ 이었을 경우]

.

.

.

- 이후 지하철의 오른쪽 끝 칸. 예컨대 꼬리칸까지 걸어서 이동하십시오. 지하철은 본래 무한히 길지만, 휴대폰을 습득했다면 10번째 칸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 10번째 칸에 있는 소화기 뒤쪽을 확인하십시오. 책이 한 권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 해당 책에는 사건 당시 지하철에 탑승했던 사망자, 총 312명의 얼굴과 인상착의. 그리고 사망 당시 가지고 있던 휴대폰 기종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매뉴얼에 적힌 그대로, 정말 무한히 길게 이어지던 지하철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한은 마지막 칸에서 책 한 권을 찾아냈다.

Team LORE의 문양과 함께 ‘저희가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적힌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들이. 그러니까 LORE라는 곳에서 이 책을 만든 거예요?”


조금 많이 힘이 빠진 목소리로 이한이 물었다.

무전기 너머, ‘수아’라 불리던 이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 예. 저희가 직접 정보를 모아 제작한 겁니다. 어떻게든 이상현상에 대응하고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그게 저희 LORE가 하는 일이니까요.

“고생 많으셨겠어요. 이 많은 분들을 전부 다.”

-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한은 책의 페이지를 조금 넘겨보았다.

16년 전, 이 지하철에서 불에 타고 검은 연기에 질식해 사라졌던 이들의 사진과 프로필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끔찍한 과거의 잔상이었다.

하지만 이한은 이 책 한 권에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매뉴얼에 적힌 탈출법을 다시금 떠올렸다.


- 늦어도 10분 이내로 ‘구일역 화재 참사’가 다시 반복될 것입니다.

- 참사 당시와 똑같이 지하철은 3분 이내로 불길에 완전히 휩싸일 것입니다.

- 당신은 프로필을 참고하여 습득한 휴대폰의 주인을 찾아주어야 합니다.

- 빠르게 책에 적힌 휴대폰의 기종과 주인의 얼굴, 인상착의를 확인하십시오. 주인에게 휴대폰을 건네주면, 당신은 현실로 귀환할 것입니다.


책 안에 적힌 사람의 숫자는 312명.

그중에서 습득한 휴대폰과 같은 기종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고, 불타는 지하철 속에서 주인을 발견해 돌려주어야만 했다.

제한시간은 넉넉하게 잡아도 겨우 13분.

왜 이 루트의 생환률이 극도로 낮은 것인지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과연 성공하는게 가능한 것일까 싶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LORE의 두 사원, 희와 수아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한과 통신이 시작된 이후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며 이죽거리던 희가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의 이유이리라.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그러자 ‘당신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말해줄 수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빌어먹을.

더 무서워지기만 했잖아.


- 희망을 일지 마시고, 최선을 다하세요. 이한 씨.

 

수아가 조심스럽게 말하고, 희가 한 마디를 보탰다.


- 모든 수칙서는 성공하여 살아나온 자가 있기에 작성될 수 있는 겁니다. 이한씨 또한 해낼 수 있을 거예요.

- 뭐,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조난자님이 만약 실패해 죽더라도 우리 LORE에서 유족에게 1천만 원 정도를 지급할 거니까. 만약 우리 조난자님이 살아서 돌아온다면 그 돈이 본인 통장에 꽂힐 테고요.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요즘 같은 시대 대학생한테 1천만 원이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나? 조금이라도 말이죠.


하지만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아와 희는 생각했다. 아마 이한 또한, 여타 다른 조난자들과 마찬가지로 패닉에 빠져버린 것이라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생각보다는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생각하며 희망을 품었지만, 순식간에 산산조각나 버렸으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같이 절망적인 때에는 더더욱.

잠시 고민하던 수아가 말을 이었다.


- 저희가 어떻게든 이한씨를 찾으러 갈 겁니다. 이한씨가 어떤 상태든지요. 그러니 부디, 화재가 시작되기 전 조금이라도 파일을 읽으시고. 최소한이라도 암기를 해두시면……


그제서야 이한의 대답이 돌아왔다.


“다 외웠어요.”

- 그게 무슨 의미이실지.


정확히는, 수십 개의 이상현상에서 살아남았던 수아와 희마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청난 속도로 책장을 넘기며, 그들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해있던 이한이 이내 고개를 들었다.

10분이라는 시간 내에 312명의 정보를 전부 외우는 것은 보통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매뉴얼에는 ‘가능하면 책을 들고 다니며 주인을 찾는 것을 추천한다’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한은 책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이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전부 외웠다고요. 1번 희생자, 파란 원피스를 입은 46세 ‘황선영’씨부터 312번 희생자, 검은 뿔테 안경에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21세 ‘박규태’씨까지. 전부 다요.”

- 우리 조난자님은…… 기억력이 엄청나게 좋나 보네요?

“이걸로 서울대를 갔거든요.”


불쑥 끼어들었던 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작게 허허 웃었다.

이한이 말을 이었다.


“완전 기억 능력이라고 하더라고요.”


눈으로 한 번 본 것을 절대로 잊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것처럼 완벽하게 기억해내는 능력.

전 세계인 중에서 겨우 100명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가진 초월적인 기억력이 바로 

완전 기억 능력이었는데.

이한 또한 그중 하나였다.


- 서울대를 어떻게 들어갔나 했더니, 이런 비밀이 있었구나! 이야. TV에서나 보던 능력자가 여기에 있다라. 참,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좋다고 하시죠.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제한시간이 전부 지나버린 모양이었다.

본래 이한 혼자 뿐이었던 지하철에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차버린 만원 지하철로 변해버렸으니까.

이제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듯, 지금껏 덜컹거리는 소리뿐이었던 지하철에 새로운 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서울 교통공사를 이용해주신 승객분들에게 안내 말씀드립니다.

- 저희 열차는 곧 구일역. 구일역에 도착합니다.


이전처럼 녹음된 목소리가 아닌, 기장이 직접 방송하는 사람의 목소리.

그에 따라 지하철 안은 내릴 준비를 하는 사람들과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하는 이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이한은 10번째 꼬리칸을 가득 메운 승객들의 얼굴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오른손에 들린 휴대폰의 기종은 검은색의 ‘롤리팝’이었다.

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던 희생자는 총 세 명.


‘빨간 모자를 쓴 17세 김만수. 청남방에 청바지를 입은 29세 조길현. 검은색 트위드 원피스와 심플 재킷 차림의 24세 정주희.’


그들의 얼굴과 인상착의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하게 생긴 또래의 사람들이 몇 명이고 누구인지까지 전부.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가 새어나오나 싶더니, 순식간에 새빨간 불길이 타올랐다.

불이야-! 하고 누군가 소리를 지른 것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아비규환에 빠져버린 사람들.

귀가 시끄러울 정도로 울리는 비상벨 소리를 뒤로 한 채. 이한은 무전기에 대고 다짐하듯 읊조렸다.


“……꽤 할만할 것 같거든요. 휴대폰 주인 찾아주기.”





***





참사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때,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일어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다고 했다.

단순히 사고라 칭하기엔 너무나도 참혹하여 참사(慘事)라 불리는 것이라는 말을, 이한은 어릴 적 뉴스에서 본 적이 있었다.구일역 참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16년 전의 어느 평범했던 아침 출근 시간.

회사와 학교에 나가려던 사람들로 1호선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고, 사람들이 특히 많이 타고 내리던 구일역 부근은 더욱 혼잡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거나 책을 읽고, 혹은 MP3로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의 운행 소리. 여러 향수와 담배냄새가 섞인 아침의 냄새가 났다.

그 누구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10번째 칸 아래쪽의 전력 변환 장치가 새빨갛게 과열되며 달아오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평소 정비가 미흡했었고, 전기를 공급해주는 부분의 고무 절연체가 손상되어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며칠만 더 있었다면 10번째 칸은 노후로 인한 보수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그 고작 며칠의 딜레이가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시민들의 일상을 실어나르기 위해 고속으로 운행하던 열차에서 순간 합선이 벌어지며 스파크가 튀겼다.

스파크는 터널 속 먼지와 유분으로 가득 차 있던 열차에 불을 붙여버렸으며.


퍼엉---!


귀가 떨어질 정도로,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거대한 폭음과 함께.

구일역 참사는 시작되어버린 것이었다.





***




“저기요……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요? 이거 무슨 냄새에요? 불났어요?”

“아니 이거 연기가 막 들어오잖아. 문은 왜 안 열려? 인터폰…… 인터폰도 왜 안 눌리는 건데!”

“콜록! 너, 너무 매워…… 숨이 안 쉬어져. 엄마한테 전화. 전화 해야되는데…… 신호가……”

“비켜 이 새끼야. 문도 안 열리고, 아악! 창문이라도 깨야 할 거 아니야. 저리 비키라고!”


평화롭던 지하철이 지옥도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앞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퍼진 연기가 가득 차오르며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이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터지지 않는 휴대폰을 붙잡고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여고생, 어떻게든 창문을 깨려 주먹으로 마구 두드리는 아저씨, 완전히 패닉에 빠져 덜덜 떨고 있는 어린 아이.

검은 서류가방을 소중한 듯 껴안고 도망치는 사람, 바닥에 떨어진 핑크색 MP3, 리본이 달린 곰 인형을 한 손에 들고 엉엉 우는 소녀 또한 그 자리에 있었다.

수백의 사람들이 수백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악을 쓰고 있었다.

삶을 바라는 그 외침들이 쌓이고 쌓여 귀가 먹먹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여야 해. 살아서 여길 나가기 위해서는.’


이한은 이제는 영원히 이 곳에 묻혀버린 사람들을 제치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딱 3명만 찾으면 되었다.

그 중, 자신이 습득한 휴대폰의 주인이 있을 터였으니까.

그렇게 8번째 칸에 도착했을 때.


‘빨간 모자, 남색 교복, 노란 넥타이. 김만수다.’


첫 번째 후보를 발견했다.

17세의 김만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낀 채, 의자에 홀로 남겨져 엉엉 울고 있었다.

이한은 조심스레 소년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이 휴대폰 혹시 네 거니?”

“아, 아니요. 아닌데…… 제 거 아닌데……”


하지만 소년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16년 전. 확실히 옛되어보이는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려던 소년.

이한은 ‘미안해’라는 한 마디를 남긴 채 그를 지나쳐 더욱 앞으로 나아갔다.


불은 발이 달린 사람보다 빨랐다.

어느새 10번 칸을 완전히 잡아먹은 불길은 8번 칸을 집어삼키고 있었으며, 무작정 앞으로 도망쳐온 사람들로 인해 가뜩이나 만원이었던 지하철은 더욱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이한은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비집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이 곳에 있었던 다른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렇게 4번 칸에 도착했을 때.


‘청남방에 청바지. 왼쪽 눈 위에 작은 상처…… 29세 조길현.’


두 번째 사람을 찾아냈다.

근육질의 건장한 남자는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하이힐 한 짝을 들고서 지하철의 창문을 마구 내리찍고 있었다.

쾅- 쾅- 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비명과 절규에 묻혀버렸다.


“X발…… 이렇게는 못 죽어. 내가 뒈질 것 같아? 어떻게든, 이 망할 창문만 깨면……”

“저, 이 휴대폰.”

“넌 뭐야. 도와줄 거 아니면 저리 꺼져!!”

“이 휴대폰, 아저씨 거에요?”


극단적인 상황 속, 너무나도 뜬금없는 질문.

잠시 멍하니 멈춰있던 조길현은 이내 이한의 멱살을 쥐어잡으며 소리쳤다.


“미친놈.”“……”


이한은 이번에도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김만수도, 조길현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경우의 수는 단 하나.


24세 정주희. 

그녀만 찾으면 되었다. 어쩌면 정말 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고작 3분뿐이라던 제한시간 또한 점점 끝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미친 듯이 터져나오던 불길은 어느새 3번 칸까지 집어삼켰고, 새까만 연기는 더욱 빠르게 퍼져나와 이미 모든 칸을 휩쓸어버렸다.

곳곳에서 절규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숨을 쉬기만 해도 목과 폐가 찢어질 것처럼 아팠고, 오븐 안에 들어와있는 듯 엄청난 열기 때문에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현기증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한은 눈을 부릅뜬 채 마구 쌓여있는 사람들의 사이를 응시했다.

지금 그를 움직이는 힘은 이곳에 있는 다른 이들과 같았다.

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아주 자그마한 희망.

그저 그뿐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움직일 수 있었다.


“하악, 하악, 후아……”


희박해지는 공기를 애써 집어삼키며 사람으로 만들어진 벽을 헤집었다.

한 치 앞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희뿌연 와중에도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 이 분실물의 주인을 찾기 위해서.


“끄흐윽……”


뜨거웠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불에 타는 작열통이라고 하던데.

직접 불에 닿은 것도 아닌데, 살면서 느껴본 적도 없는 수준의 고통이 온몸에 엄습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어느덧 불길이 바로 앞까지 번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한은 그저 버텼고, 그저 걸어 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마지막 칸.

가장 많은 사람이 도망쳐왔고, 그렇기에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1번째 머리 칸에서.


“아.”


수많은 이들 사이. 이한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얼굴을 발견했다.


‘검은 트위드 원피스에 심플 재킷. 24세 정주희.’


생각해보니 그녀는 자신과 동갑이었다.

살아남았다면 이제 40세가 되었을, 이제는 이 열차와 함께 불타버린 한 회사원은 열차의 가장 끝에서 자신의 다리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파묻고 그저 울부짖고 있었다.

불길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이미 창 밖의 역사는 마찬가지로 옮겨붙은 불 때문에 타오르고 있었으며, 지금 도망치더라도 살 수 없으리란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숨을 쉴 수 없어 폐가 쥐어짜듯 아파왔다. 

거센 불길과 수 많은 사람들에 남은 산소마저 전부 타버린 것이리라.

그럼에도 어떻게든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이한은 그녀에게 물었다.


“이…… 휴대폰…… 당신, 거죠. 주희씨. 당신…… 거.”


그러자 패닉에 빠져있던 그녀가 고개를 조심스레 들었다.

이미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끝나고 있는 이 순간에, 정주희는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어 이한이 내민 휴대폰을 받았다.

그녀의 손이 닿자 분명 완전히 고장나 있던 휴대폰의 전원이 켜졌다.

그녀는 1번 키를 길게 꾸욱 눌렀고, 이내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렸으며.


“아, 엄마.”


정주희는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어떻게든 짜내며, 애써 괜찮은 척 연기하면서.

그녀가 삶의 끝에서 내뱉은. 그토록 전하고 싶었던 마지막 한마디를 발음했다.


“내가…… 사랑하는거 알지? 콜록! 아, 아니야. 괜찮아. 그냥, 콜록! 사랑한다고. 내가 진짜로…… 아주 많이. 커흑!! 되게되게…… 많이.”


16년동안 분실되었던 휴대폰이 드디어 주인을 찾았다.


“아하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끝에 도달한 불길은 1번 칸마저 집어삼켰고, 남겨진 것은 그저 새까만 연기뿐.

몸이 타들어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아하.

숨을 쉬어도 쉴 수 없는 느낌이란 이런 거였구나.


‘이렇게 죽는 거구나,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졌다. 숨을 쉬지 못해 헐떡거리는 사이, 다가온 불길이 이한과 수십의 사람들 위로 덮였다.

그러나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삶의 끝자락에서.


- 빰빰빠빠 빰빰빠빠 빰빰 빠바 빠빰~♪

- 이번 역은 구일. 구일역입니다.

-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 서울 교통공사를 이용해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리며.

-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열차가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려온 것 같기도 했다.




***




- 와…… 이걸 성공해버리네. 이한이라고 했었나? 수아야. 얘 진짜 완전 기억 능력인가 뭔가 하는 게 있긴 한가봐? 이러면 휴대폰 루트의 생환율을 4%대로 조정해야겠는데? 캬하!!

- 이제야 이름을 제대로 기억해주는구나. 

- 그럼! 이런 못 잊을 경험을 하게 해줬는데, 당연히 기억해야지! 이 세계 최고 천재인 박 희 씨의 기억에 저! 장! 될 영광을 누리는 거라고?!

- 세계 최고 미친놈이겠지. 

- 난 그런 호칭도 마음에 들어. 아무튼, 세계 최고인 거잖아?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담도 크고. 상황판단 능력에 관찰력까지. 거기에 사기적인 기억력? 수아야. 있잖아. 우리 LORE에 슬슬 신입이 부족하지 않았냐? 응?! 이한이 얘 깨어나면 그냥 잘 구슬려서…… 끄헉!!

-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하면 이상현상이 아니라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 알았어…… 좀 살려주라. 명치는…… 허억, 진짜 아프다고.











***



첫날이라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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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