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지방 출장이 잡혔다. 무슨 놈의 회사가 이렇게 출장이 잦단 말인가. 아무리 평일이라 고속도로가 뻥 뚫려있다고 해도 장거리 운전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왜인지 오늘따라 차가 한 대도 없다. 평일이니 차가 적은 건 당연하지만 오늘은 정말 이상하리만치 차가 없었다. 아니, 정말 한 대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괜히 으스스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표지판을 봤다.

 

뭐야 저거?”

 

표지판에 누가 붉은색 락카로 크게 X자를 그려놨다.

 

고속도로, 그것도 저 높이에 있는 표지판인데 누가, 어떻게 저래놨지? 아니, 했다고 치더라도 아무도 신고를 안했나?

 

그렇게 얼마나 운전했을까. 다시 표지판이 나왔다.

 

······.”

 

표지판에 다시 붉은색 락카칠이 되어있다. 씨발, 개새끼, 죽어 등 온갖 욕설이 적혀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참 겁도 없는 놈이다 싶었다. 당장 내가 신고만 해도 바로 철창행일텐데.

 

세번째 표지판. 다시 붉은 락카로 X자가 쳐져있다. 첫번째 표지판과 다른 점은 그 위에 글씨가 적혀있다는 것이다.

 

-표지판 믿지 마!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그리고 네번째 표지판이 나왔다. 네번째 표지판에는 락카칠이 되어있지 않았다.

 

씨발 뭐야······.”

 

-적정주행속도 시속 3~5km

 

초록 배경에 하얀 글씨. 정식 표지판이었지만 내용은 마치 앞서 락카칠한놈들처럼 누가 장난이라도 친 것 같았다. 적정주행속도가 시속 3km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당연하게도 나는 여전히 시속 120km를 유지하며 달렸다.

 

다섯번째 표지판에는 다시 락카칠이 되어있었다.

 

-잘했어. 이번 표지판은 믿어야 돼.

 

나는 혼란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내가 무슨 선택을 할지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예측한 거일 리가 없지. 애초에 표지판 때문에 진짜 시속 3km로 달리는 놈은 없을테니까. 하지만 생각할 시간은 길게 주어지지 않는다. 표지판 사이의 거리가 짧아졌다.

 

여섯번째 표지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주행하시오.

 

“······.”

 

다음 표지판은 200m . 락카칠은 이번 표지판은 믿으라고 한다. 저딴 장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생각은 없지만······. 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다음 표지판을 만나기 전 간신히 노래를 튼다.

 

일곱번째 표지판.

 

-제이슨 므라즈 좋아하는구나. 아무튼 잘했어. 이번 표지판은 믿지 마.

 

내가 들은 노래의 가수가 그대로 적혀있었다.

 

씨발 뭐야······.”

 

하지만 혼란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었다.

 

여덟번째 표지판. 적정주행속도 초속 20m 이상.

 

초속 20m가 시속 몇키로인지 바로 계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서행을 했다. 계산해보니 시속 72km 정도 된다. 다행히 내가 낸 속도는 시속 10km였다. 참 어지간히도 쫄았구나 싶다.

 

아홉번째 표지판. 이번 표지판도 믿지 마.

 

열번째 표지판. 적정주행속도 시속 180km 이하.

 

씨발!”

 

나는 죽어라 페달을 밟는다.

 

계기판의 숫자가 180을 겨우 넘을 때쯤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흐흐흐흐.”

 

그리고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 표지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