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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영가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알아본 후 악귀나 악령이면 퇴귀를 하든 천도를 시키든 하면 될 것이고,

다른 사연이 있으면 충분히 들어주고 달래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내는 일.

딱 그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안일했고, 그랬기에 준비가 부실했다.


"와... 큰일났는데."


법사의 입안에서 비릿한 쇠맛이 느껴졌다.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중이었다.

시간이 들더라도 제대로 굿판을 열어야했다.

무녀가 간단히 신을 담아내는 모습을 봐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비교적 쉽게 처리했기에 방심했던 것일까.


부적에 순순히 담겨올 때, 의도를 알아야했다.

무녀의 큰 그릇에 감탄할게 아니라, 악귀의 영악함을 눈치챘어야 했다.

사람에게 해를 끼칠 정도의 악귀가 아니었던가. 심지어 둘이나.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들 뒤에 있는 사연은 보았다는 것과 하나는 처리했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 방법을 선택해야한다. 저 남은 악귀를 이대로 내보낸다는 선택지는 없다.

문제는 부족한 신력으로 악독하고 영악한 저것을 어떻게 처리하냐는 것.

이미 오래도록 대치하고 있었음에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떨어져죽어서머리가으깨지고다리가으깨지고내장이튀어나온고통을잊지않고남기기위해하나라도더데려갈것이니방해하는놈들은모두...


"멘트라도 좀 바꾸던가. 진짜 정신병 걸리겠네."


쉼없이 말을 쏟아내는 악귀를 보며 단박에 머리를 쪼개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랐다.

그럴 힘이 없다는게 문제였지만.


정신병 걸릴듯한 소리를 들으며 대치하고 있으니, 뒤에서 자동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큰일이다. 일부러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와서 이짓거리를 하고 있었는데, 만약 자칫해서 빙의라도 된다면.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익숙하고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관악산을 지키는 크신 신령님,

이 늙은 무녀, 간절한 청을 올리옵니다.


저 앞에 있는 요사스런 혼백,

사나운 기운 흘리며 사람을 어지럽히고

독한 말과 속임으로 길 잃은 이들을 삼키려 하나이다.


바라건대, 산신님,

저 악한 넋의 혀를 묶어 그 말길을 끊어주소서.


들끓는 사기를 눌러 부적 안에 메어주시고,

다시는 이승의 그늘을 밟지 못하게 가두소서.


산의 숨결로 이 자리를 감싸주시고,

그 악귀의 그림자가 바깥으로 번지지 않게 하소서.


이 늙은 몸, 정성 다해 부르짖사오니

부디 굽어 살펴주소서."


해가 떠있는데도 어둡고 추운 기운이 가득했던 이 공터에, 청명하고 밝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어쩐지, 아직 망할 팔자가 아닌 것 같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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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놈아. 하려면 제대로 할 것이고, 혼자 못할 일이면 사람을 모을 일이지. 급하게 간다고 일이 다 처리된다든?"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니가 귀신이야? 자꾸 이어서 말할래?"


"아이고 천지신명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구했더니 윗선에 감사하네."


보살의 툴툴거림에도 개의치않고 온 사방에 감사하는 중이었다. 정말 까딱하면 험한 꼴로 끝나지 않을 일을 당할 뻔 했으니.


"도와주러 오신거군요!"


"아닌데? 나도 네녀석 도움 받으러 온건데?"


차에서 따라내린 재훈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신을 받을 각오가 섰다고 해서, 제대로 판을 준비하려 했지. 내가 이날을 위해서 신력을 모으고 아꼈는데, 이런 쓸데없는 일에 쓸 줄이야."


"이게 다 신령님이 인도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무심결에 뱉은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고 여기를 찾아왔겠는가.


"그래. 인도받은 김에, 너도 같이 인도해야겠다."


"네? 제가요?"


"너처럼 전국팔도에 오지랖 넓은 놈을 몰라서. 내가 굿당은 봐놨으니 네가 무악 악사들을 구해와야겠다."


"네? 제가요?"


"이놈이 귀신들렸나."


보살의 인내심이 한계까지 도달한 듯 했다.


"아무리봐도 나보다 너희들이 더 급한 것 같은데, 자꾸 꾸무적댈래? 돈 따블로 준다하고 빨리 섭외하라고!"


"아니, 갑자기 그러셔도... 따블이면 구해지긴 하겠죠. 근데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계룡산. 큰 신이 오실 자리인데 자꾸 지체하면 너도 같이 경을 치를 걸?"


정작 당사자인 재훈은 별로 급해보이지 않는데, 반대로 보살이 매우 급해보였다.


"굿판을 여실 분이 이렇게 몸이 달아서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오늘 밤에 바로 할거니까 바로 섭외해. 음식부터 싹 다 올려야하니까. 무조건 따블이라고 하고!"


"아, 알겠습니다. 대체 무슨 신이 오시길래... 그런데 지금 무녀님도 오늘 강신을 했어서 몸이 안좋을겁니다. 가서 상태라도 좀 봐야..."


"뭐? 차사를 강신까지 했는데 왜 저런 것들을 처리 못해서 고생한거야?"


"그게... 사정이 좀 있습니다."


슬쩍 시선을 돌리는 법사를 보며 혀를 쯧쯧하고 찼다.


"나중에 들으면 크게 혼낼 일이겠구만. 그럼... 거기 선임 총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운전석에 앉아있던 성주를 지목한 보살이 말을 이었다.


"자네도 무녀님이랑 안면이 있다 했지? 자네가 가. 죽이라도 사들고 가서 상태 좀 지켜봐줘."


그 말에 법사가 화들짝 놀란다.


"아니, 젊은 여성의 집에 아무 남자나 막 들이면 어떡합니까!"


"그러는 너는 왜 거기 들어가 있었냐? 넌 여자냐?"


"어...."


잠시 말문이 막혔던 법사가 다른 이유를 찾아냈다.


"저 청년이 가버리면 우리는 뭘 타고 계룡산까지 갑니까!"


그러자 보살이 피식 웃으면서 답한다.


"택시. 따블."


"와. 돈 많다고 막 쓰시네. 나도 젊어서 돈이나 많이 벌어놓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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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란 참 알수없게 엮이는 것이다.

마음이 쓰이긴 했어도, 이렇게 다시 만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가니, 한겨울같은 냉랭함이 집안에 감돌고 있었다.


"어우, 추워. 왜 춥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체감온도에 집안을 둘러보며 보일러 작동패드를 찾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미 보일러는 28도로 열심히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러고보니 확실히 바닥에서는 온기를 넘은 뜨거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근데 왜 춥지?"


이유를 알수는 없었지만, 이것도 이상한 무속적인 일과 엮여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안방으로 향했다.


-똑똑


"저, 이성주라고 합니다. 아저씨가 가보라고 하셔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안에서 희미하게 '예'하는 소리가 들린 듯 했다. 왠지 남성에 가까운 목소리였지만, 아프면 그럴 수도 있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 위에 서윤이 누워있었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놀랐다.


"많이 아프신거에요? 아니, 병원 가셔야하는 것 아니에요?"


"오전에 다녀왔어요..."


뭔가 목소리가 방금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이번엔 누가 들어도 여성인데, 방금 전에는 남성에 가까운...

그러나 생각하기를 그만 두었다. 무엇이 중요한가.


"상태가 많이 안좋아보여요."


"네... 아, 이정도로 아플줄은 몰랐네. 다음부터는 진짜 신중히 해야지."


"뭘요?"


"멍청한 짓이요."


뭔진 모르지만 그녀가 그러겠다니 그게 맞겠지.


"죽을 좀 사왔어요. 아저씨가 이런거 좀 먹어야 괜찮아질거라고. 화식?"


"아저씨? 아아...법사님이요? 어떻게 만나셨데..."


앓는 소리를 들으니, 침대 밖으로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여기 계세요. 제가 대충 챙겨드릴게요."


그러더니 부엌에서 쟁반을 갖고와서는 어디서 구해온지 모르는 작은 박스 위에 식사를 차렸다.


"오... 우리집에 상 없는건 어떻게 아셨데...?"


"그냥 안보여서 대충 보이는걸로. 모양이 뭐가 중요한가요. 안정감있게 먹는게 중요하지."


"이러다 엎으면 어떡해요?"


"그건 이제 제가 이렇게 살짝 잡으면 되죠."


그렇게 말하며 쟁반을 살짝 잡았다.


"그나저나 집이 상당히 춥네요. 해는 잘 들어오는 것 같은데."


"아직 신이 머물고 있어서 그래요. 오... 여기 죽 잘하네."


"신이요?"


"제가 모시는 신이요. 차사님."


"차사... 차사...?"


죽을 한입 떠먹고는 장조림을 집으며 짧게 설명해준다.


"저승사자요."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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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천황봉 근처 어딘가. 밤이 깊었는데도 연주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근처 절에 사는 스님들에게는 정말 고역일 것이었지만,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나이가 제법 있어보이는 노인이 무복을 입고는 제단 앞에 앉아있는 사내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흥을 돋군다.


"오시옵소서, 오시옵소서. 하늘 위 조상신이시여,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길 잃지 마시고 이 자리에 강림하소서."


제자리에서 뛰기도 하고 이리뛰고 저리뛰기도 하며 악사들의 음율에 맞춰 기도를 한다.


"산신님, 용왕님, 칠성님, 조상 할머니 할아버지,

이 아이의 넋을 보시고, 새 몸뚱이에 새 뜻 심어주시옵소서."


한때 만신이라고도 불렸던 보살의 신력을 단번에 절반 이상 꺾어버렸던 신이 대체 누구인지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꼭 하나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많은 신들이 저 좋은 그릇에 내려오기 위해 서로 다투다 짜증냈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 이번 기회에 과연 어떤 신이 올지 내심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문을 열어라, 길을 비켜라. 하늘의 기운이 이 땅으로 내려앉는다.

구름이 갈라지고, 바람이 서늘해지니 저 높은 곳 어르신 발소리가 들린다.


북소리에 실려 오신다. 향 냄새 타고 오신다. 조상의 옷자락이 이 제단을 스친다.

이 길은 신의 길, 이 자리는 신의 자리.


말 잊고 숨 죽여라, 이제 곧 신이 드신다."


이제 곧. 신이 올 것이다.


"오신다, 오신다...?"


흥을 더욱 올리려던 찰나, 보살이 잠시 멈칫한다. 아니다, 이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그릇이 크다하더라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하늘 위 높은 옥좌에 계신 어르신들,

이 아이 앞에 놓인 운명, 참으로 무겁고 참으로 깊사온데,


뜻을 품은 신이 있다면, 이 아이의 등에 올라타 주소서.

함께 갈 신이 없다면, 이 자리에서 물러가시고,


오직 인도하실 분만 이 아이의 길잡이가 되어 주소서."


그 기도를 듣던 법사가 고개를 갸웃하고 기울인다. 신이 오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신을 구하고 있는 것인가?

다른 신을 구하고 있다면, 왜? 왜 굳이 다른 신을? 위험한 신이라도 내려온 것일까?


악사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오를 때까지 한참을 제청하던 보살은 결국 눈을 질끈 감고는 결심한 듯이 선언했다.


"오신다, 오셨다. 이 아이와 길을 함께 할 신이 오셨다."


그리고는 앉아있던 재훈의 등 뒤로 가 큰 절을 올리며 다시 기도를 읊는다.


"광령본왕님께 아뢰옵니다.


하늘 아래 깊은 터, 땅 위에 선 혈맥마다 삼천 하늘에 빛을 내리시고

만토의 땅줄기를 밝혀주시는 광령본왕님께 아뢰옵니다.


넓은 기운을 펼치시어 닫힌 운명은 열게 하시고

사납고 험한 액운은 거두어주시며 어두운 기운은 걷어내 주옵소서.


옛 고구려의 칼을 들고 청룡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신 그 이름,

천손의 맥을 잇고, 터마다 밝은 불꽃을 심으신 본왕이시여.


이 자리에 앉아계신 님이시여, 이 집의 터를 굳건히 세우시고

그 안에 사는 자손들 천복을 누리게 하소서.


들어오는 자는 평안을 얻고 나아가는 자는 길을 얻으며

머무는 자는 덕을 쌓고 말하는 자는 이로움을 얻게 하소서.


문마다 빛을 내리시고 기둥마다 복을 심어주소서.

이 집의 사방팔방에 광령의 기운이 스며들게 하소서.


오늘 이 자리에 불러 모셔드리오니 부디 허락하시고

빛으로 응답하여 이 집과 이 가문을 굽어 살펴주소서.


지금 이 시간, 광령본왕이시여,

신단 위에 좌정하시고 모든 것을 보살펴 주옵소서.


천지신명과 함께 밝은 길을 열어주소서.

감히 감히, 고하여 비오니, 부디 굽어살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