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헉! 켈록! 켈록!"


눈을 떠보니, 흩날리는 재와 매캐한 연기 사이로 절이 보인다.


분명 소연이의 졸업식에 가던 길이었는데..


아내에게 운전을 맡기고 잠시 잠을 청했을 뿐인데,


여기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당황한 채 주위를 둘러보던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새하얀 종이 한 장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 종이를 읽어보았다.


https://m.dcinside.com/board/napolitan/34585



...나는 어떻게 살아왔던가.



눈을 감고 지금까지의 삶을 곱씹어보았다.



오락실에서 딱딱이를 쓴 적도 있었다. 



짝꿍이 떨어트린 지우개를 몰래 챙겼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것 외에도 악행이라 부르기에도 뭐한 자질구레한 일들이 떠오른다.



전부 철없을 적에 뭣모르고 저질렀던 일뿐이다



그마저도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소연이를 낳은 이후로는 누구보다 떳떳한 남편이 되고자 그정도의 사소한 일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 이정도면 꽤나 괜찮게 살아왔다.



석불까진 아니더라도, 반짝거리는 금동불이 저 안에서 날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소연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대웅전으로 달려갔다.



굳게 닫힌 문을 힘껏 잡아당기자 작고 초라한 목불이 보였다.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괜찮다. 108배만 하면 되니까.



향에 불을 붙인 뒤 자세를 잡던 중 그 종이에 적혀있던 주의사항이 떠올랐다.



아. 표정을 확인하랬지.



...



젠장. 



'부처님의 미소도 저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만큼 온화한 미소.



그것의 미소를 보고는 경외감 같은 것이라도 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절을 하려 하고 있었다.



머리가 바닥에 닿기 직전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고, 침착하게 목불의 머리에 불을 붙였다.



대웅전을 나선 뒤 문을 닫자 그것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나에게 더 큰 죄가 있었던 것일까.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꺼냈다.



절에서 흡연이라.. 이것도 악행이라면 악행이려나.



갑을 열어보니, 딱 한 개비가 남아있었다.



돛대를 꼬나물고는 안에서 챙겼던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후우..."



내가 저질렀던 가장 큰 잘못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



생각해보면, 나는 꽤나 엄한 가장이었던 것 같다.



함부로 손을 올린 적은 없다.



하지만 아내와 딸이 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는 망설이지 않았다.



당연히 좋아서 한 일은 아니었다.



엉엉 울며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우는 소연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 가슴도 찢어지는 것 같았으니까.



허나 그것은 부모로서, 또 지아비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었다.



그것도 죄란 말인가.



생각에 잠겨있던 와중에 손 끝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벌써 다 폈구나.



비명소리도 멎었다.



구둣발로 불을 끈 뒤 다시 대웅전의 문을 열려는 순간, 떨어진 담배꽁초가 눈에 밟혔다.



홀로 떨어져있는 그 담배꽁초가 오늘따라 유난히 초라해보였던 탓일까.



이런 외딴 곳에 떨어진 나의 처지와 비슷하게 느껴졌던 탓일까.



그 담배꽁초를 주워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대웅전의 문을 다시 힘껏 잡아당겼다.



그런데 아까 그 자리에 새로 생긴 불상은, 목불이 아니었다.



도자기처럼 생긴 불상이 놓여있었다.



아. 저게 그 소조불인가 보구나.



이곳에선 애정에서 우러나왔던 나의 행동이 단순한 폭력으로 치부되는 것일까.



소조불이 나를 향해 어기적 어기적 다가왔다.



날카로운 손끝으로 내 몸을 할퀴어댔지만,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아니. 버텨야했다.



실수로라도 저 불상이 깨지기라도 하면, 아내와 소연이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될테니까.



상처가 조금씩 깊어지고, 이러다간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던 때에 소조불에서 연기가 나더니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고맙다는 듯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녹아내리던 그 불상에서 나온 것은, 새빨간 사리였다.




...씨발.



다시 대웅전을 나선 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뱃갑을 열었다.



아. 돛대였지.



"하아...."



머리가 아파온다.



다시 저 거지같은 대웅전의 문을 열면 이번엔 어떤 불상이 나를 반겨줄까. 또 소조불일까? 아니면 즉신불?



두렵다.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앉아 하염없이 시간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나는 가장이니까.



소연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뭐가 서있든 간에 반드시 버텨내겠다고 각오하며 문을 잡아당겼다.



"...저게..저게 뭐야.."



안에는 온몸이 새까만 불상이 있었다.



반타블랙.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은 이질적인 어두움. 저 불상에게선 그런 어두움이 느껴졌다.



몸과는 대비되는 새하얀 눈동자가 아니었다면 저 자리에 불상이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까 본 종이에 저런 불상에 대한 얘기는 없었는데.



당황한 채로 그 불상을 바라만 보던 중에, 그것이 내게 손짓했다.



나는 홀린 듯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자세히 보니, 저것은 불상처럼 생기긴 했으나. 유기체 같았다.



인간처럼 숨을 쉬고, 눈을 깜빡이고 있었으니까.



"혹시...당신이.. 부처님...이십니까...?"



그것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곧 입을 열었다.



"왜 스스로의 죄를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반성하지 않는 것입니까?"



...


사실 나 역시도 잘못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 옳지 않다고 인정해버리는 순간, 훌륭한 가장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살아온 나의 반평생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것이 어떻게 죄란 말입니까."



"저는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한 것 뿐입니다."



"자식이 올바르게 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잖습니까."



"그랬기에 소연이가 좋은 대학도 가고, 지금처럼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이해가 안된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아이가 무슨 짓을 했길래 체벌을 한겁니까?"




"...해야 할 일을 안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묻겠습니다."




"당신의 행동은 모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겁니까?



"...네."





"그러면 묻겠습니다. 숙제를 안했다고 책상 밑으로 밀어넣고는 소리 지르며 발로 밟아대는 것이 사랑입니까?"




"...예?"





"청소를 안했다고 한겨울에 맨발로 집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 사랑입니까?"




"..."





"편식은 나쁜 것이라며 구역질하며 뱉어낸 음식을 다시 먹이는 것이 가장의 역할입니까?"




"그만.....그만..."




"그것을 거부했다고 방문을 잠근 채로 밥은 커녕 물조차 주지 않은 것이 부모의 도리입니까?"




"제발...그만 하라고..."




"그 아이가 당신이 술에 취해 흥얼거리며 집에 들어올 때마다 침대 밑에 몸을 숨긴 것은, 당신을 사랑해서였습니까?"




"그만 하라고 이 씨발새끼야!!"



그것의 인자해보였던 웃음이 이제는 비웃음으로 느껴졌다.




"왜... 왜 나한테만 지랄인건데..."



"그땐 다들 그랬잖아..나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



"엄마, 아빠는 나한테 그보다 심한 짓도 했는데 밥만 잘먹고 천수를 누리다 갔잖아.."



 "나보다 훨씬 심한 사람도 쌔고 쌨잖아!!!"



"왜..왜...."




이제는 그것이 새하얀, 육식동물의 이빨처럼 생긴, 치아를 드러내며 웃기 시작했다.




아..그래. 아까 봤던 불상들도, 저 새끼도, 모르긴 몰라도 부처는 아니겠구나.




"...너.. 부처...신..  뭐 그런 존재가 아닌거지..?"



"부처가 그런 이빨을 가지고 있을 리 없잖아.."



"너도.. 너도..그냥 괴물새끼잖아. 죄 지은 사람들 골라서 잡아먹으니까 뭐 신이라도 된 것 같았어? 어?"




정곡을 찔렸는지 그것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꼬라지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살아서 돌아가기엔 그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 새끼의 기분이라도 잡치게 하고 뒤져야 속이 시원할 테다.



천천히 그것에게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어? 대답해 봐. 대답해보라고 이새끼야!!"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워 졌을 때, 그것이 표정을 바꾸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죽고 나면, 당신의 가족이 진심어린 눈물을 흘려줄 것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습니까?"



"근데 이 개새끼가!!"



이왕 뒤질거면 사내답게 주먹질이라도 한 번 해보고 뒤지는게 낫겠지.



그런 생각으로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닿기 직전, 그것이, 조금은 측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것만 같았다.



붕-



내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그 불상이 있던 자리엔 검게 물든 불두화와 종이 한 장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끝까지도 미안하다는 말 한 번을 안하는구나.'






끼익-



쿵.



대웅전의 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