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보다
다른 이에게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일지
결정하는 게 더 어렵다.
개인의 취향이나 입맛이 달라서라기보다는
그저 내가 요리한 음식을 먹는 그 순간을
죽는 순간까지 절대 잊을 수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일은
평범할 수 없기에 최대한 극적이고 화려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다.
식자재야 뭐가 있는지 안 봐도 줄줄 꿰고 있지만,
괜스레 냉장고를 열어 눈으로 하나하나 확인한다.
어깨살, 종아리, 심장, 눈, 엉치살, 등심....
손질해서 냉동실에 따로 보관한 것들을 빼고도
선택의 폭이 넓다.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다가
가운데 큼지막하게 자리 잡은 통고기를 집어 든다.
안심.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다.
재료를 정했으니 이제 메뉴에 대해 고민할 차례.
물론 고민은 그렇게 길지 않다.
이 정도로 큰 고기를 쓴다면
내가 만들어야 할 건 마땅히 그것뿐이다.
로스트걸.
내가 직접 지은 이름이지만, 난 이 이름이 무척이나 좋았다.
로스트비프류 음식임을 말해주면서
실종자를 연상시키는 단어이기에
지독한 웃음을 자아낸다.
의욕이 불타올랐지만, 그렇다고 서둘러선 안 된다.
최고의 맛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고기를 키친타올로 감싸 실온에 그대로 두고
조금 기다려 보기로 한다.
그동안엔 식사를 대접할 손님과 저녁 메뉴에 대해
잠시 잡담을 나누면 된다.
시간이 충분히 흘렀다 판단되면 고기를 손질한다.
손질이라고 해봐야 대단할 건 없다.
지방이 너무 많은 부분을 도려내고
모양을 잡아 요리용 실로 묶는다.
소금과 후추로 적당히 밑간한다.
가니쉬로는 양파와 당근, 마늘. 그리고 버섯.
야채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만은 특별히
큼직하게 썰어 준비한다.
오븐을 예열해 놓고, 뜨겁게 달구어진 팬에
고기의 겉면을 시어링 시킨다.
고기가 구워지며 특유의 육향이 내 후각을 자극한다.
그 먹음직스러운 향을 충분히 느끼면서
모든 면을 잘 구워준 뒤,
야채와 고기를 함께 오븐에 넣어준다.
오븐 온도 120도. 미디움이 목표니
70분으로 맞추어 놓고 계속 살펴보기로 한다.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중간이라고 생각하면
타이밍을 가늠하기 쉽다.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곁들일 소스를 준비한다.
식용유와 밀가루로 루를 만든 뒤,
설탕과 간장, 식초, 후추 약간...
간단히 소스를 완성하고 나니 고민에 빠졌다.
플레이팅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평범한 고기 요리처럼 소소하게 할 수도 있지만
역시나 내가 원하는 건 좀 더 대담한 담음새다.
이런저런 접시를 뒤적거리다가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손!
재빨리 냉동고를 열어본다.
한쪽은 엊그제 탕 끓여 먹는 데 썼지만,
다른 한쪽은 남아있다.
손목 관절이 깔끔히 분리된 손을 꺼내어
해동을 위해 흐르는 물에 담그니 잠시 시간이 남는다.
고기손질 때 빼두었던 반지를 찾아 옷에 문질러 광을 낸다.
이게 좀 더 극적인 효과를 내 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요리가 완성되자 정성 들여 플레이팅을 시작한다.
하얀 접시에 해동된 손을 올리고 반지를 끼운다.
로스트걸을 얇게 썰어 손바닥 위에 먹음직스럽게 깐다.
야채는 고기 주변부터 시작해
손 아래로 자연스레 흘러내리도록 배치.
소스를 뿌려준 뒤, 보다 시각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붉은 과일소스를 접시 곳곳에 떨어트린다.
이렇게 하면 흡사 막 잘린 손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린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손가락 위치를 조정해 반지가 잘 보이도록 놓자
만족스러운 미소가 튀어나온다.
이 정도면 가히 역작이라 할 만하다.
완성된 요리를 와인과 함께 쟁반에 잘 담아
서빙 카트로 옮긴다.
혹여라도 모양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철문 앞으로 간다.
다이얼 자물쇠를 돌려 3737을 만들어 열고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서빙 카트를 끌고 들어가니
초췌한 모습의 남자가 힘겹게 고개를 들고 날 바라본다.
멀끔한 신사였던 남자는 고작 5일 굶은 것만으로
핼쑥해진 얼굴이다.
죽은 듯이 쓰러져있던 식객이
내가 요리한 음식 냄새를 맡고 벌떡 일어나는 모습은
언제나 그렇듯 내게 기대감과 만족감을 준다.
그는 내 기대에 부응하듯
목에 걸린 쇠사슬을 짤랑거리며 카트 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정확하게 내가 원했던 반응을 보여준다.
욕설을 내뱉고, 저주하고, 과격하게 팔을 휘두른다.
하지만 우습게도 접시를 엎지는 못한다.
그건 굶주림 때문에 요리를 버리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아내의 몸 일부를 차마 떨어트릴 수 없어서일까?
플레이팅한 손 접시에 끼워진 것과
같은 디자인의 반지를 끼고 있는 그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기대한 것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날 즐겁게 해주었다.
그의 손이 닿지 않는 안전한 곳에서
그의 행동, 그리고 그가 하는 말.
그의 표정 하나하나를 만족스러울 만치 지켜 본 뒤
느긋하게 말했다.
"지금은 그냥 즐기시는 게 좋을 거예요. 다음 식사는 3일 뒤거든요."
물론 그 이후로도 남자는 실신 직전까지
손발을 휘저어 댔다.
이번엔 조금 지조 있는 손님을 만난 모양이다.
슬슬 한계지 않을까 싶을 때가 되어서야
마침내 남자는 내 요리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한참을 주저하다가 간신히 집어 올린 고기 한 점.
그게 입안에 들어가는 데는 더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이후로는 마치 정지해놨던 영상을 빨리 감듯
남자의 행동이 다급해졌다.
자신의 아내의 고기에서 풍겨오는 육즙,
그리고 그 부드러운 육질을 고스란히 느끼며
남자는 광적으로 로스트걸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이때가 요리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라 생각한다.
식사가 끝난 뒤 포만감을 느낄 새도 없이
찾아올 죄책감과 좌절감을 보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혹시, 다음으로 나의 작품들을 시식해 볼 사람이 있나?
ㄱㅊ
아ㅋㅋ내가 맛있는거 만들어준다니까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