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리 안 궁금하면 하단부 녹취록만 봐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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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하게 잊혀지는 책은 있어도
과분하게 기억되는 책은 없다.
- 오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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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거 언제부터 저렇게 됐지?"
홍원영 팀장은 경비에게 회원증을 건네주려다 멈칫했다. 도서관 정문에 세로로 길게 걸린 '죽은 이야기들을 위한 살아 있는 도서관' 현판의 문구가 미묘하게 짧아졌다. 죽은 이야기가 살아 있는 도서관 - 큰 틀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이 현상이 일어난 지역에서는 작은 변화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혹시 도서관 이름이 바뀐 이유 알아요?"
팔 열두 개 달린 경비는 머리라고 추정되는 신체 부위를 가로로 흔들었다. 전신에서 분비되는 점액에 젖어 끈끈한 촉수가 홍 팀장의 손에 있던 회원증을 가져간다. 그는 회원증을 요리 조리 살펴 보다 돌려준 다음 촉수를 동그랗게 말아 보였다. 제법 기억력이 좋은 개체라 사흘 전에 왔을 때 가르쳤던 OK싸인을 잘 기억하고 있다.
"항상 고마워요, 수고하세요."
미소를 지어주자 경비도 따라 웃는 것 같다. 키가 4m인 촉수 경비의 이목구비 배열은 지구상의 생물들과는 동떨어져 있기에, 어디까지나 홍 팀장의 추정일 뿐이다. 그는 도서관 카운터를 지키는 눈 100개 달린 사서에게 꾸벅 인사하고, 지난번에 대여했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회원증과 함께 내밀었다.
- 띡, 띡, 타닥타닥
사서가 반납 처리를 하는 동안 로비 중앙 소파에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진초록빛 게시판에 도서관이 만든 자체 수칙이 한줄 더 생겼다.
(이것을 다 읽은 후에는 반드시 팜플렛을 보십시오) 1. 도서관에서는 결코 절대 정숙!! 1-1. 사서나 경비를 보고 비명을 지르지 마십시오. 1-2. 사서에게 질문할 때는 속삭이듯 말하십시오. 1-3. 도서관의 직원들과 잡담하지 마십시오. 1-4. 청소년 및 성인이 도서관에서 소리치며 엉엉 우는 행위는 금지합니다. (단 만 10세 이하 어린이는 예외) 1-5. 전자 기기는 무음 모드로 바꿔 주십시오. 알람도 꺼 두십시오. . . 2. 사람이라면 이용 예절을 지키기!!
2-1. 도서관에서 음식물을 섭취하지 마십시오. 물, 캐러멜, 초콜릿, 사탕, 은단껌 등등 모두 먹지 말라고 계속 말했습니다. 몰래 먹는다고 안 들킬 것 같습니까? 2-2. 엘리베이터는 노인, 어린이, 임산부, 장애인을 위한 이동시설입니다. 사지 멀쩡한 당신이 타는 게 아니며, 장난감은 더욱 아닙니다. 2-3. 도서관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합니다. 해 봤자 찍히지도 않습니다. 2-4. 푸쉬업을 하거나 계단을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는 운동은 하지 마십시오. 정신 사납습니다. . . . 2-18. 도서관 로비에서 코끼리 코를 10바퀴 돌고 벌러덩 드러누워 헐떡이는 행동 또한 금지합니다.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써줘야 압니까? |
엘리베이터 옆에 새로 생긴 알로카시아 화분이 보인다. 홍 팀장이 처음 진입했을 땐 네 개 뿐이던 화분은 어느덧 열세 개가 되었다. 로비의 조각도 많아진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이러다가 언젠가 이 도서관은 화원이나 미술관으로 업종을 변경할지도 모른다.
그는 피같은 예산을 들여 매달 갱신하는 팜플렛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읽으라는 팜플렛은 안 읽고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 하는 인간들의 작태에 신물이 난다.
'김 주무관이 맨날 밤 새가며 고치는 거, 나라도 읽어 줘야지 -'
홍 팀장은 북 스탠드에 외롭게 놓인 팜플렛을 하나 꺼냈다.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던 그의 미간에 어느 순간부터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지침서의 내용이 오염된 거 같군."
생각이 무심코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러자 서가에서 배회하던 외눈박이 사서가 손가락이 하나 달린 손을 존재하지 않는 입술에 가져다 대는 시늉을 한다. 도서관은 소음을 유발하는 행위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후 남은 팸플릿을 모두 수거하여 메고 있던 백팩에 구겨 넣었다.
카운터로 가자 백눈박이 사서가 회원증을 돌려 주며 말했다.
"반납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혹시 대여할 수 있는 다른 책이 있습니까?"
사서는 백 개의 눈을 꿈뻑거리며 이동 카트 쪽을 가리켰다. 짙은 회색 표지의 졸업 앨범 사이즈 책 한권이 놓여 있다. 제목은 단 세 글자, '방명록' 이다.
"이런 것도 빌려줍니까?"
기가 막혀 묻자 백눈박이 촉수가 눈으로 말한다. 싫으면 꺼지라고. 홍 팀장은 죄송하다고 웅얼거린 뒤 방명록을 빌려 가방에 넣고 도서관에서 나왔다.
도서관 출구를 지키는 경비가 바뀌었다. 촉수 개체와 교대한 거인 경비가 여섯 번째 손을 흔들기에 같이 흔들어 준다. 마주칠 때마다 꾸준히 인사했더니 인간들의 인사 동작을 학습한 모양이다. 이러다가 정 들지도 모르겠다. 그는 피식 웃으며 풀이 멋대로 자란 길을 되짚어 걸어갔다.
도서관 정문의 바깥, 봉쇄된 길의 바리케이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박용운 주임이 보인다. 그는 철제 차단막을 낑낑대며 넘는 상사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도서관 정도의 전이 현상은 양반이죠. 도서관 내부에서 '상식적으로'만 행동하면 생환률은 약 88%입니다. 큰 죄 안 짓고 무난하게 살았던 사람은 이야기 속에서도 대부분 살아 돌아오잖습니까."
박 주임은 홍 팀장의 머릿 속 생각을 태연하게 끄집어냈다. 본인은 그저 '눈치가 빠른 것이다'라고 해명했지만, 그 뿐만이 아니라는 점에는 현장 대응팀원 모두가 동의했다. 머쓱해진 홍 팀장은 구겨진 팸플릿을 부하에게 건넸다.
"이거 어떻게 생각해?"
박 주임은 탈출 지침서의 내용을 쭉 훑었다. 네 번째 페이지 쯤에 눈길이 닿는 순간 미간이 구겨진다.
"위화감이 느껴지는데요."
"5번 서가 지침?"
"그 곳을 거쳐 탈출할 때 겪을 수 있는 정신 붕괴 및 해리성 인격 장애 현상의 위험도를 실제보다 훨씬 낮게 서술했고, 육체적 피해는 입지 않는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건 마치-"
"도서관으로 전이된 사람들을 그 쪽으로 데려가려는 것 같다는 거. 이번에는 내가 이겼다."
홍 팀장은 의기양양하게 차에 올라탔다. 그러나 운전대를 잡은 박 주임은 상사의 소소한 성취감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본부를 향해 차를 몰고 가는 길에 박 주임은 사흘 전, 명천 아파트 O동 13층에서 추락한 버섯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남자 말입니다. 같이 투신한 소녀는 자기 딸이 아니었어요."
"미친 새끼."
"근데 그 여자애, 어디에도 기록이 없습니다. 서류상으론 존재하지 않는 아이에요."
"뭐? 대한민국에서 그게 가능해?"
다른 나라에서는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생활 정보가 전산상에 꼼꼼히 등록되는 대한민국에서는 상당히 드문 경우다. 놀란 홍 팀장이 반문하자 박 주임은 조금 더 놀랄 만한 정보를 꺼냈다.
"사망자 자택을 수색해 봤더니 저희 본부에서 준 약이랑 상담 신청서, 위로급 지급명세서가 나왔습니다.
죽은 사람, 5번 서가 생환자에요."
그 서가는 신들의 구역이다. 인간의 정신력으로 버티기 어렵다.
5번 서가 생환자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자는 드물지 않았기에 홍 팀장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렇구만, 안타깝게 됐네."
그 때는, 투신한 버섯 인간이 하필 또 다른 전이 구역에 들어 갔다 나온 것은 그저 신기한 우연의 일치라고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2.
"녹취록을 보시겠다고요?"
"급한 일이야. 실종 사건 용의자 정보를 얻어야 해."
"5번 서가 생환자 녹취록은 극비 문서라 전이 현상 대응 본부 본부장님의 정식 허가 없이 열람할 수 없는 거 아시잖아요."
"본부장님 지금 대리 결재 지정 깜빡하고 해외 출장 가셨잖아. 어제 허락 받았는데, 구두 결재로는 안 될까..."
"한 번 속지 두 번 속습니까. 돌아가세요."
전이 현상 대응 본부 분석팀 소속 김수경 주임은 홍원영 팀장의 애절한 부탁을 단칼에 끊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래서 공무원은 글러먹었다니까, 잠시 본인의 정체성을 부정하던 홍 팀장은 휴게실로 후퇴한 후 다음 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공무원 사회는 계급에 따른 권한으로 움직인다. 본부장보다 '높으신 분' 이 요청하면 깐깐한 김수경 주임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전화번호부를 열어 500개쯤 저장된 번호들을 슥슥 훑었다. 그러다 'ㅎ' 란에서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마침 이번 실종 사건을 꼭 해결하라고 당부한 분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홍원영 팀장은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하대식 사장님! 저 전대본 홍 팀장입니다. 별 일 없으시죠? 귀여운 고양이랑 깜찍한 토순이도 잘 있고요? 사돌이 빠따는 여전히 살벌하다면서요. 어휴, 좋을 때네요. 아 근데, 사장님. 이번에 황천 랜드 사칭한 놈 때문에 좀 곤란하시죠? 그 새끼 잡는데 사장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요, 네. 행안부 차관님한테 소소한 부탁 하나만-"
10분 뒤, 마음껏 구긴 A4 용지 같은 얼굴을 한 김수경 주임에게 녹취록 파일을 받은 홍 팀장은 휘파람을 불며 분석팀 사무실을 나섰다.
문제는 실종된 황도훈과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던 용의자다.
그는 본인 말에 따르면 헨젤 역을 맡았다가 돌아온 '생환자' 였다. 그런데 1~4번 서가 생환자 기록에는 4번 '그림 동화' 서가의 '헨젤과 그레텔' 에서 '헨젤' 로 생환한 사람이 없다. 누락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응 본부로 찾아온 사람들의 면담 기록과 도서관에서 대여한 '사례집' 을 교차 검증한 결과, 사례집에는 이야기 속에 들어갔던 사람들의 사례가 빠짐 없이 수록되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례집 반납과 황도훈 실종 사건 사이에 한 달 가까운 공백이 있긴 하나, 그 사이에 전이 현상을 겪었던 3인은 모두 1번 서가에서 빛과 함께 사라졌다고 했다. 전날 도서관 사서에게 알아낸 사실이다.
용의자는 전이 현상에 대해 알고, '도서관 생환자' 의 존재를 알고, 황천 랜드 야간 개장에 가본 사람만 아는 정보까지 안다. 그러나 1~4번 서가를 이용해 탈출한 기록은 없다. 그렇다면 그 자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세운 가설들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쪽에 베팅하는 쪽이 합리적이다.
- 너처럼 끔찍하게 운이 좋은 인간은 2300년 만에 보네.
황천 랜드의 점박이 고양이는 그를 돌려보낼 때 이렇게 말했다.
홍 팀장은 이번에도 자신의 행운을 믿기로 결심하고 5번 서가 생환자 녹취록 파일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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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관계자 외 열람 금지!
[5번 '세계의 신화 모음'서가 생환자 녹취록 요약본]
작성일자 : 20xx년 4월 8일
작성자 : 전이 현상 대응 본부 분석팀 김수경 주무관
질문자 : 본부 직속 의료원 소속 정신과 전문의 조OO 박사
1. 작성 목적
1) 위로금 지급 자격 요건 심사
2) 5번 '세계의 신화 모음' 서가의 위험도 파악
2. 생환자 면담 녹취록(일부)
Case 1.
이름(나이, 성별) : 심xx (28세, 여)
전이된 신화 : 이집트 신화 (추정)
증상 : 밤마다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 창 밖으로 뛰어내리려 함. 생고기를 뜯어먹으려는 충동에 시달림.
특이사항 : 녹취 전 다량의 신경안정제 투여로 말투가 어눌함.
일상 생활 : 불가능(병동 입원)
질문자(이하 Q) : 이야기 속에 들어갔을 때 무엇을 보았나요?
심xx : 가... 강물이 있었고... 하늘... 구름... 밭, 끝없는 밭... 고양이...
Q : 당신의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나나요?
심xx : (고개를 가로저음) 사람... 은 아니었던 것... 같...
Q : 혹시 날아다녔나요?
심xx : (침묵)
Q : 거기서 무엇을 했습니까?
심xx : 누가... 눈을 줬어, 먹었어요. 화가 나요, 피가... 사방에... 하늘을 날았어... 다들 날 무서워 했어... 먹고, 또 먹고, 먹고...
Q : 뭘 먹었죠?
심xx : 사람.
(크게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5분 가량 이어짐)
심xx : 졸려, 잘래요.
(면담 종료)
Case 2.
이름(나이, 성별) : 강xx (18세, 남)
전이된 신화 : 인도 신화 (추정)
증상 : 가끔 비정상적으로 강한 파괴 충동을 느낌, 수시로 코끼리에게 사과함. 바라나시에 가고 싶다는 욕망.
특이사항 : 본래 느긋한 성격이었으나 생환후 세계에 대한 분노가 많아짐. 본인은 고3이라 그렇다고 주장.
일상 생활 : 가능, 조건부 투약
Q : 신화 속에 들어갔을 때 했던 일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강xx : 어... 그냥 평범하게 살았던 거 같아요.
Q : 어떻게 평범하게 사셨죠?
강xx : 이쁜 마누라랑 잘 살았죠. 근데 분노 조절을 잘 못했어요. 화나면 주변 애들 목을 쳤죠. 친구 대가리 자르는 바람에 걔 모가지 들고 사죄하러 다닌 적도 있고... 오해로 아들 목을 잘랐을 때는 진짜 미안했어요.
Q : 현실로 돌아온 다음에도 그런 충동을 느끼나요?
강xx : (잠시 침묵) 칼은 되도록 안 만지려고 해요. 부서진 세계는 다시 만들어도, 떨어진 사람 목은 붙일 수 없으니까...
Q : 만약 목을 치고 싶은 욕구를 자제하기 힘들어지면 이 약을 드세요.
(면담 종료)
(질문자는 강xx에게 강력한 충동 조절제를 처방함)
Case 3.
이름(나이, 성별) : 고xx (40세, 남)
전이된 신화 : 수메르 신화 (추정)
증상 : 세계 멸망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 물을 두려워 함
특이사항 : 항불안제 투입 후 집착증과 물 공포 증상 완화
일상 생활 : 투약 후 가능
Q : 이야기 속에 들어갔을 때 무엇을 했나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고xx : 알아요, 비밀, 죽일 거야, 나를-
Q : 어떤 비밀입니까?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죠?
고xx : 모두가 녹아, 모두가 잠겨, 멸망은 필연, 구원은 우연-
Q : 무슨 말씀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고xx : 갈대는 그것을 알아요. 난 더 말할 수 없어요.
(질문자가 몇 가지를 더 물었으나 생환자는 대답하지 않음)
(면담 종료)
Case 4.
이름(나이, 성별) : 진xx (10세, 남)
전이된 신화 : 한국 신화 (추정)
증상 : 동굴에 대한 비정상적인 혐오감.
특이사항 : 원래 편식이 심했으나 생환 후 쑥과 마늘을 매우 잘 먹게 되어 부모가 기뻐하고 있음.
일상 생활 : 무리 없이 가능
Q : 안녕, xx야. 기분은 어때?
진xx : 좋아요! 우리 이제 뭐 하는 거에요?
Q : xx는 이야기 속 세상에 다녀왔잖아. 거기서 했던 걸 아저씨한테 알려줄 수 있겠어?
진xx : 수염 하얀 할아버지가 저랑 호랑이를 동굴에 가두고 쑥이랑 마늘만 줬어요. 고기도 안 주고... 쏘세지 피자 먹고 싶었는데... (울먹임)
Q : 동굴에서 쑥이랑 마늘만 먹으려면 힘들었겠네. 그래도 용케 100일을 버텼어, 씩씩하고 장하구나.
진xx : (잠시 침묵) 저기... 아저씨.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요?
Q : 당연하지! 여기서 네가 한 말은 아저씨랑 너만 아는 거란다.
진xx : 저 동굴에서 쑥이랑 마늘만 먹은 거 아니에요.
(면담 종료)
Case 5.
이름(나이, 성별) : 정xx (31세, 여)
전이된 신화 : 북유럽 신화 (추정)
증상 : 세계의 종말을 외치고 다님. 가로수나 보호수의 뿌리를 갉아 먹으려는 지속적인 시도.
특이사항 : 생환 후 독수리에 대한 과도한 혐오를 드러냄.
일상 생활 : 불가능
Q : 정xx가 전이된 세계에서 무엇을 하셨는지 기억나십니까?
정xx : 세계수 뿌리를 갉으면서 독수리랑 싸웠어.
Q : 당신이 뿌리를 다 갉으면 무슨 일이 생기죠?
정xx : (깔깔 웃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멸망.
Q : 지금 살고 있는 세계도 멸망하기 바라십니까?
정xx : 파괴는 창조의 근원. 좋은 인간은 죽은 인간 뿐.
Q : 당신은 지금 누구입니까?
정xx : 시체 달린 날개가 날아오르는 순간 모든 게 끝나.
(면담 종료)
Case 6.
이름(나이, 성별) : 이xx (21세, 남)
전이된 신화 : 불명
증상 : 불명
특이사항 : 면담을 신청하였으나 면담 예정 시각 30분 전, 자기에게 주어진 타락의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면서 대기실에 놓여 있던 사과 한 알을 들고 사라짐.
일상 생활 : 가능 여부 불명
Case 7.
이름(나이, 성별) : 윤xx (39세, 남)
전이된 신화 : 그리스 로마 신화 (추정)
증상 : 본인이 하는 말을 누구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음.
특이사항 : 극도의 인간 불신 현상에 시달려 3차례 자해시도를 벌임.
일상 생활 : 불가능
Q : 사람들이 윤xx씨가 하는 말을 안 믿어준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윤xx : 내가 하는 말을 선생님도 믿지 않으실 텐데 왜 말을 해야 합니까?
Q : 윤xx같은 분의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는 게 제 일입니다.
윤xx : 그걸 어떻게 믿죠? 선생님은 저를 믿지 않을 거고, 저도 선생님을 믿지 않을 건데요. 인간의 세상에 진정한 믿음과 신뢰는 없습니다.
Q : 그러면 이렇게 하죠, 윤 xx씨가 귀환한 다음 다른 사람에게 했던 이야기 중 하나를 저에게 해 주시면 어떨까요.
윤xx : 흠, 어차피 믿지 않으시겠지만-
(녹음기가 원인 불명의 소음을 낸 후 작동을 멈추었다가 2분 뒤 재시작)
Q : 허, 하, 그것 참...
Q : (1분 가량의 침묵) 믿기 어려운 이야기군요.
(면담 종료)
(이 때 윤xx가 한 이야기에 대해 묻자 질문자는 '믿을 수 없었다는 것만 기억난다'며 답변을 회피함)
.
.
.
3. 결과 및 분석
1) 단 한 사례(어린이)를 제외하고 '세계의 종말' 또는 '신들의 의한 파괴 행위' 부분이 반복적으로 나타남.
2) 5번 '세계 신화 모음' 서가를 통해 생환하였다며 본부를 찾아온 37명 중 36명은 (해당 녹취록에 기재된 사례 이외에도) 일상 생활에 지장을 겪을 만큼의 정신 착란, 공포증, 해리성 인격 장애, 자해와 파괴 충동 증상을 겪고 있음.
3) 권고 사항 : 5번 서가를 통해 탈출하라는 지침에 대한 수정. 위험도가 낮은 1번과 4번 서가를 통한 탈출을 권장한다는 문구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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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끊었던 담배가 몹시 생각난다.
녹취록 파일을 덮은 홍 팀장의 간단한 소감이었다.
생환자들의 상태는 그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참담했다. 5번 서가를 겪고 돌아온 사람 중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는 건 한 명, 초등학생 뿐이고 범위를 넓혀 봐도 고등학생 까지다. 성인들은 약물 없이는 일상 생활이 불가능하거나, 약물조차 소용없는 상태에 빠졌다.
저들 중 버섯 인간과 황도훈 실종사건 용의자가 누구인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그러나 육하원칙 중 '왜'가 없다. 미쳐 버린 그들이 자기 주변인을 전이 현상에 끌어들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사건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전 할 일이 있다. 홍 팀장은 본연의 업무인 '전이 피해자를 미연에 방지함'에 우선 충실하기로 결심하고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이제는 외워버린 번호를 긴 손가락이 바쁘게 누른다.
"어, 김영우 주무관님- 바쁘지? 아, 끊지 말고! 급한 일이야. 지금 당장 '도서관 지침서' 파일 열어서 5번 서가 항목에 대한 내용 수정 좀 해야겠어. 완전한 접근 금지로. 그래, 2번 서가 급으로 해 두면 되겠다."
그의 문서 제조기가 전화기 너머 세상에서 툴툴대며 타이핑을 하는 동안, 문득 또 다른 물음표가 떠올랐다.
- 도서관은 왜 지침서를 오염시켰나?
도서관은 '비교적 안전' 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대응 본부 직원의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한 유일한 전이 현상이다. 그런데 지난 달, 현판이 갑자기 수정되고 지침서는 오염되어 전이된 사람들을 위험 구역으로 끌어들였다. 그 때 오염된 지침서를 수거하고 새 지침서를 갖다 놓은 후 오염 현상은 사라졌지만 현판은 바뀐 채 그대로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머릿 속 질문은 제 꼬리를 무는 뱀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홍 팀장님, 듣고 계십니까? 지금 수정 완료했는데 파일 보낼 테니 문서 확인하고 결재 부탁드립니다.'
"어, 아, 수고했어. 고마워."
김영우 주무관의 사무적인 말투에 정신을 차린 그는 곧바로 전화를 끊고 파일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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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본)
[도서관으로 전이된 피해자들을 위한 지침서]
안녕하십니까, 전이 현상 대응 본부에서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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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계의 신화 모음 서가 : 탈출 후 정신 착란, 비정상적인 공포증, 자해 행동, 해리성 인격 장애, 인지 장애 등의 후유증을 겪어 일상 생활이 불가능해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해당 서가를 통한 탈출을 금지합니다.
전편 수정하다 잘못 눌러서 지움 아아아 저녁에 재업할까말까 이야기가 시리즈가 되더니 점점 뇌절로 흐르고 있어서 두 편 정도 더 쓰고 끝내버릴 예정
재업하셈 이메일이라는형식으로 ㅋㅋ
@벽늘 걍 본부 분석팀이 말투 분석해서 파악한거로 처리함 대화가 안 되면 난감한 형식이라 어쩔수가 ㅋㅋ
1. 세크메트 2. 시바 3. 지우수드라 4. 웅녀 5. 니드호그 6. 이브 7. 카산드라인가 - dc App
6번빼고 다 맞음!
이브가 아니라면 뱀?? 이런 신화적 요소 갖고오는거 좋아해서 꿀잼으로 읽었음 ㄱㅅㄱㅅ - dc App
@ㅇㅇ(218.155) ㅇㅇ 뱀으로 변한 루치페르 생각하고 씀 ㅋㅋ
재밌게 잘 보고 있다 같은 세계관으로 다른 얘기도 부탁하면 실례.. 려나??
뭐 규칙서는 어디에나 적용되니까 쓰려면 쓰는거지만 비슷한 게 반복되면 내가 지치더라고 ㅋㅋ 재밌게 봐줘서 고마워!
가둬놓고 글만쓰게해야함 빨리담편주셈
개체들이 정상적으로 이성 가지고 있는거면 타 종을 위한 가이드북 무단 오염 항의도 정식적으로 해볼 수 있으려나?
사서나 경비가 고치는 게 아니라 도서관의 의지라 항의해도 소용없을 것
이제 2개밖에 안남았다고...?! ㅠㅠㅠ 재미있게 보고 있던 시리즈인데 너무 아쉽다 ㅠㅠㅠ
세계관이 있는 규칙서의 한계라고 생각함ㅜ 쓰다보면 뇌절이 되거나 나폴리탄의 범주를 벗어날 수밖에 없어서...
재밌당 재밌당
오 좋다
개추개추
더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