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초자연현상처리반 모음
· 초자연현상처리반 모음집




어느 순간 풍경이 변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 그보단 갑자기 구름이 걷히며 날이 맑아져서 눈치챘다. 드디어 십장생도에 들어왔다.


산의 풍경은 달라질 게 없었다. 드문드문 붉은 줄기를 가진 소나무,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는 물줄기 소리,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애매하게 쌓인 낙엽,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티없이 맑은 하늘. 십장생도의 풍경은 이질적일 정도로 평화로웠다.


길을 잃고 조난당했단 사실에 빠지지 않았다면, 이런 풍경을 감탄하며 즐길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도 민간인 구조를 비롯한 임무가 아니었다면 이런 자연을 누비며 감상했을까?


쓸데없는 생각이다. 이곳은 초자연현상이다. 당사에서 공식적으로 "인외마경"을 선포한 곳이다.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은 폭풍전야와 다를 바 없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 지나치게 빠를 것도 없이, 그렇다고 너무 느릴 것도 없이.


내 머리 위에 뜬 해, 내가 발 디디는 산, 내 주변을 스치는 소나무와 돌, 그리고 물. 그 전부가 내 목숨과 수명을 노리는 존재들이다.


"엇."


발에 무언가 걸렸다. 그리고 걸렸다고 생각한 순간 낙엽더미에서 손이 튀어나와 내 다리를 붙잡더니 그대로 날 끌어내리려고 했다.


"우왓!"


한순간이지만 격통이 느껴질 만큼 강하게 움켜쥔 그 손은 날 쓰러뜨렸고, 나는 낙엽더미 속으로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졌다고 생각했는데, 빠졌다. 말 그대로 발 밑이 푹 꺼지면서 축축한 흙구덩이 속을 굴렀고, 내 머리 위로 함께 들어온 낙엽들이 팔랑거리며 내려앉았다.


"여기엔 유랑하아러 왔소이까."


상당히 중후하면서도 폐색한 목소리였다. 굳어버린 성대를 억지로 두드린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가 빠진 구덩이는 어느새 위장용 뚜겅이 덮여 햇빛이 완전히 차단됐다. 빛 하나 없는 완전한 어둠 속에 내가 인지할 수 있는 건 내 앞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공간감. 인기척뿐이었다.


"사람이 묻지 않소."


현대인이라면 쓰지 않을 말투.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등산하러 오긴 했죠. 어느 순간 길을 잃었지만요."


"그런 것 치고 태연하아구려."


"제가 다니던 산에서 길을 잃은 건데 불안할 이유가 있나요."


쿵.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이곳 구덩이를 거세게 치자 내 머리 위로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산이다. 십장생 중 하나인 산이다. 그런 산에서 이런 흙구덩이를 팠다. 언제 산이 삼킬 줄 알고? 어쩌면 십장생 중 하나인 산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이런 흙구덩이를 도대체 언제, 어느 세월에 파낸 거지? 성인 두 명이 들어가고도 넉넉히 남는 공간이다. 억양, 말투, 그리고 성대.


지금 내 앞의 남자는 이곳에서 몇 년을 살았을까?


"히이, 히이, 히히이, 히이."


쇳판을 손톱으로 살살 긁는 웃음소리가 내 귓전을 간지럽히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아마 호탕하게 웃으려고 한 것일지 모른다. 무엇이 됐든 그 웃음의 의미는 다르지 않았겠지만.


"감히이, 나를 기만하아려 하아오?"


'ㅎ' 발음이 유독 성대를 가늘고 길게 통과하니 도저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확인한 모습은 처음 날 잡아끌 때 뻗은 팔과 손 한짝뿐이다. 경우에 따라선 내 앞의 사람을 제압해서 탈출해야 할 수 있다.


"실례지만 선생님은 이곳에 사시는 분입니까?"


"살다. 살다라. 히이, 히이, 히이이이......."


더는 웃길 포기한 것 같은 숨소리였다. 숨소리가 맞긴 하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흙구덩이를 닫은 뚜껑이 들리면서 햇빛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들어온 빛에 나는 잠깐 눈을 질끈 감았는데,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그가 내 뒷덜미를 잡더니 그대로 날 구덩이 밖으로 던져버렸다.


"으헉!"


"거지시오!"


나는 낙법을 취하기도 전에 낙엽더미 위를 굴렀다. 다행히 그대로 산에 잡아먹히기 전에 멈춰 일어날 수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허리춤에 숨겨둔 권총을 꺼내 날 던졌던 구덩이쪽을 쳐다봤다. 어디였지? 순식간이었다. 근력이 인간의 것이 아니다. 성인 남성을 이렇게 내동댕이칠 정도면 이미 인간의 수준을 벗어난 게 분명하다.


"저는 초자연현상처리반 구출처리복원 3팀 박서민입니다! 이곳 십장생도에서 얼마나 오래 계셨습니까! 지금 인간을 벗어난 존재가 됐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천천히 움직이며 낙엽더미를 치워봤지만, 내가 빠졌던 구덩이의 뚜껑으로 보이는 건 발견되지 않았다. 내 외침은 침묵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5분을 그 자리에서 기다렸지만 점점 나만 바보가 됐다는 느낌만 들었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물 순 없었다. 시선이라고 할지, 유독 해가 내 머리 위에 떴다는 느낌이 들었다. 움직여야 한다.


"여기는 구출처리복원 3팀 박서민. 들리십니까?"


"......."


"여기는 구출처리복원 3팀 박서민. 중요 보고 사항이 있습니다. 들리십니까?"


"......."


안 된다. 통신이 연결되지 않는다. 초자연현상 중에는 물리적, 영적 통신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지만 십장생도에선 그런 게 확인되지 않았었다. 그 말은 지금 통신 장애의 원인은 둘 중 하나다. 장비의 기능 이상, 혹은 수신자의 문제 발생. 차라리 전자였으면 다행이겠는데 공식적인 인외마경인 만큼 후자의 가능성도 염두해야 한다. 통신 오염 같은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일단 꺼두는 게 좋겠다.


바스락.


낙엽 밟는 많은 소리 중, 뜻하지 않게 소리를 낸 것 같은 소리가 있다. 그런 소리는 어떻게 그런 의도를 담아내 와 닿는 걸까? 피식자로서의 유전자가 각인한 소리인 걸까? 그 소리가 들리면 당장 도망치라고?


고개를 돌렸을 때, 3m는 돼 보이는 거대한 사슴이 날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사슴의 거대한 뿔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니,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그 뿔에서 뚝뚝 떨어지는 선홍빛 선혈을 본다면 다른 걸 고민할 이유가 있을까.


.


.


.


장생목을 찾았다. 1차 구출 작전 때 발견한 패턴이 그대로 쓰여서 다행이었다. 여기에 내 수명을 바치면 나갈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봉쇄 이후 남은 민간인을 구조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장생목, 구출을 대가로 수명을 받아간다. 받아간 수명은 출구를 열어주는데 쓰는 건가? 아니면 그것과 별개로 받아가는 것일까? 전자라면 십장생도의 구조로 이해할 수 있지만, 후자라면.......


첫째, 해, 달을 뺀 십장생은 단수가 아니다.


십장생도 원화가가 말한 가장 첫째되는 주의사항이다. 이 말은 단순히 십장생이 소나무 하나, 사슴 하나, 돌 하나, 물 하나 등 이 십장생도에 딱 하나만 십장생인 게 아니라고, 모든 소나무, 모든 사슴, 모든 돌, 모든 물이 십장생이라고 가리키는 말인줄 알았다. 실제로도 그러하고.


그러면 이 장생목은 뭐지? 장생목도 십장생이라면? 십장생이 단수가 아니라는 말이, 또 다른 십장생이 존재한다는 말이라면?


이곳에 기존 십장생 말고도 다른 십장생이 존재한다는 것 아닌가? 아니, 그러면 해, 달은 왜 뺀 거지? 그냥 십장생은 단수가 아니라고 하면 될 것 아닌가? 해, 달은 십장생 중에서도 특별하다는 건가?


안 돼. 너무 오래 고민하고 있다. 장생목 근처라고 해도 10분 이상 머무르면 안 돼. 움직이자. 움직이면서 생각해도 충분해.


여섯째, 십장생도에서 나가는 방법. 장생목, 그리고....... 십장생이 되는 것.


십장생은 단수가 아니다. 그리고 십장생의 수명을 빼앗으면 십장생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곳에 널린 게 십장생이다. 해, 달을 빼면.


나는 다시 장생목을 쳐다봤다. 또다른 십장생 장생목. 그렇다면 장생목도 하나가 아니라는 건가? 그러고 보면 이곳에 투입된 인원이 몇인데 어째서 장생목에 나 하나만 모인 거지?


여긴 얼마나 넓은 거야? 십장생은 얼마나 많은 거지?


그 순간, 내 뇌리에 스쳐간 건 그 갈라진 성대의 웃음소리 였다.


히이, 히이, 히이이이.......


아직 인간이 어떻게 하면 십장생의 수명을 빼앗을 수 있는지 확인된 바는 없다. 다만 장생목에 수명을 바치는 일을 미루어 짐작할 때 어떤 의미를 가진 의식적인 행위가 뒤따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일곱째, 이곳에선 수명이 다해서 죽는 것 외엔 어떤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사하는 일도, 탈진해서 죽는 일도, 쇼크사로 죽거나, 피가 없어 죽거나, 머리가 잘리거나, 심장이 터지거나, 뇌가 없어도 죽지 않는다. 당연히 인체에 수분이 말라가도 죽는 일은 없다. 수명이 다해서 죽기 전까진.


성대가 그렇게 마르고 굳으려면 몇 년이 지나야 할까?


나는 여전히 해를 피해 움직이면서 통신을 켰다. 제발 연결되길 바라며, 내가 깨달은 걸 누구라도 좋으니 들었으면 했다.


삑. 연결됐다.


"아, 아. 이렇게 하는 거 맞습니까?"


"......아."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내 머리 위로 그늘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두루미였다. 어느새 근처에 풀들이 많이 자랐다. 불로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귀가 갑자기 밝아진 게 아니니, 물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낙엽 스치는 소리, 네 발 달린 짐승이 낙엽을 밟는 소리, 돌 구르는 소리, 나뭇잎 바람에 스치우는 소리, 육중한 네 발 짐승이 천천히 걷는 소리, 그리고 하늘 저편이 까맣게 물드는 소리.


"초대장, 슬슬 뿌리려고 하는데 뭐가 좋을까요?"


"답해주면, 제 질문에도 답해주세요."


이상하리만치 긴장이 사라졌다. 모든 게 평온하게 다가왔다. 나는 진지하게 내가 해야 할 질문 외에 초대장의 재질이나 문구 따위를 고민했다.


"......그러죠. 제가 먼저 답해드리죠. 뭐가 궁금한데요?"


"기존의 십장생 외에 다른 십장생, 거기에 인간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꽤 있는 편이죠. 혹시 만나보셨나요?"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가 볼 리는 없지만, 왠지 그라면 날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십장생도, 초자연현상, 인외마경이지 않은가.


"음, 그래서 이젠 제 질문에 답을 해주실 차롄데요."


몸이 살짝 뜨겁다.


"아, 그거요. 이제 곧 가을이니까,"


숨이 멎었다. 더는 숨 쉴 필요가 없었다.


"추석 한가위로 꾸미는 게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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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편을 봐야 이번 편에서 내가 노린 지점들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음...


지나치게 겜 던전 같은 느낌 안 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초기 컨셉부터 실패한 것 같기도 하고 orz


방향 잘 잡아볼게.


읽어줘서 꺼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