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마침 찾아온 입대 영장은 청년에게 축복이었다.

심지어 강원도라니! 사방이 산인 곳이라니! 얼마나 필요했던 곳인가!

눈만 돌리면 사람들의 양기에 떠밀려 온 영가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원한, 악, 귀, 령.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다. 그저 자신의 몸주에게 바칠 좋은 양분일 뿐.


청년의 조모가 숨겨놓았던 비상금은 신내림 비용으로 모두 사용하였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적어도 청년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악귀가 단순히 업혀있는 것과 몸주로 내려온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으니까.


더불어 허주를 등에 업고 신어미를 자처했던 무당을 잡아먹는 수확도 있었다. 

산에 홀로 조용히 사는 무당들은 사람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다. 과연 그녀는 얼마만에 발견이 될까?

경찰은 그녀를 살해한 것이 자신임을 알아낼 수 있을까?

자신의 몸주가 알려준 비 오는 밤. 그리고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한 입대. 널려있는 영가들.


군대에 입대하기 전, 청년은 자신의 어미에게 악귀를 붙여 놓았다.

그리고 멀리서 그녀가 시들어가는 과정을 지켜 보았다. 

신내림을 받기 싫어 자신에게 신줄을 던지고 도망간 여자다.

과연 자신을 괴롭히는 게 악귀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무당을 찾아갈까?


"자식에게 다 떠넘기고 절연할 때는 즐거웠지? 행복했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그녀의 모습은 청년에게 확신이 되었다.

이것이야 말로 완전 범죄 아닌가! 현대의 법은 무당이 날리는 살과 저주를 범죄로 적용시킬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식의 좋은 실험체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시들어 죽어갔다.


---


겁을 먹고 당황해하는 화성이를 잘 달래서 돌려보낸 후, 법사가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저 학생만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히 기억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러자 초콜릿 음료를 마시던 보살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백청이 자네가 학생의 집에 비방을 쳤다면서. 그 영향이겠지."


"그런 효과를 노리고 비방을 친 게 아닌데요. 그저 잡귀가 들어서지 못하게 쳐내고..."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은 일을 부정하는 거겠지. 있어야 할 것들이 제자리에 있고, 없어야 할 것들을 쳐낸 것 아니야?"


"뭐... 따지고 보면 그렇습니다."


"그럼 이 일은 순리대로 흘러간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 얼마 전에 성주 청년이 찾아내었던 내용 기억나나?"


"네."


"그럼 이게 무슨 뜻이겠어?"


"무슨 뜻인데요?"


"자네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야. 그 허주 잡놈을 찾아서 족쳐야 끝나는 일이라는 말이지."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법사가 자신감 있게 말하는 보살을 의아하게 쳐다본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십니까? 저희와 연관이 없는 일 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뭐. 어차피 자네는 그 허주 놈을 쫓을 것이고, 저 학생의 의문도 처리해줄 거잖아."


"그렇...죠?"


"어차피 몸으로 뛰는 고생은 자네가 다 할텐데. 나중에 내 말이 맞으면 거들먹거리면 그만이고, 틀리면 '아이고 그게 아니었네' 하면 그만인데."


"아. 책임감 없는 조언이었군요."


"홍초 값이다."


"거, 실수인데..."


투덜거리며 담배를 피는 법사를 조용히 지켜보던 보살이 한마디 덧붙인다.


"여지까지 우리가 보고 들은 일들이 다 연결되어 있던 게 한두번이야? 심지어 지나가는 말로 흘러간 이야기조차 엮이는 것이 우리 업인데."


"그것과 관련해서 걱정이 좀 있습니다. 이 집 무당은 하려 했던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죽었어요. 근데 그놈이 그걸 완성시키면 어쩝니까?"


"뭘 어째?"


"아니 그러니까. 정말 악귀든 허주든 잡아먹어서 악신이 되어버리면 어쩌냐는 말입니다. 보살님이 보시기에 제 앞에 악신이 나타나면, 제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보살이 쓴웃음을 지었다.


"퍽이나. 무사히 벗어나면 다행이지."


보살의 기억 속 악몽이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아직 미숙했다지만, 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무렵이었다. 가장 쌩쌩했던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혀 마주할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신어미조차도 남은 신명을 다 바쳐서 눌러 놓은 것이 한계였다. 마치 일영도사처럼.


"악신은 어떤 느낌인가요? 조왕신, 측신 같은 가택신도 신이고, 터를 관리하는 터주도 신이고. 산을 관리하는 산신도 신이잖아요."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던 서윤이 물어보았다. 그러자 보살의 표정이 한층 더 굳는다.


"격이 다른 이야기지. 격이 다른. 우리가 언제 부정하고 사이한 것들을 대접하는 경우가 있었는가?

그런데 그런 것에게 '신'이라고 불러주고 인정할 정도이니. 이 정도면 짐작 가능하지 않나?"


"전혀 모르겠는데요."


그랬다. 그녀는 아는 것이 많이 없었다.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보살은 그녀의 신어미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대체 누구길래 내림굿만 해주고, 아무것도 봐주지 않은 것인가. 신을 내리고 방울만 쥐어준 것으로 끝내지는 않았을 것인데.


"뭘로 비유해야 찰떡같이 알아들을까?"


"제가 기준을 정해볼까요?"


담배를 모두 피운 법사가 나섰다.


"체육으로 비교하면... 일반 잡귀들은 생활 체육인들. 저는... 전국체전 입상? 하하. 보살님은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라고 합시다."


"올림픽이 아니라?"


"위에는 비워 놔야 비교하시기 편하실 것 아닙니까?"


"하긴. 재훈이 같은 녀석이 올림픽 메달 경쟁하는 놈인거지. 그럼 악신은 어디로 봐야하나."


보살이 잠시 고민한다.


"일단 올림픽 선수단에는 기본적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네."


"그 정도입니까?"


"적어도 내가 본 악신은 그 정도였어. 다시 만난다 해도 어떻게 할 자신이 없어."


신력과 경험이 충만할 때도 처리할 자신이 없었기에 그대로 놔뒀었다. 심지어 지금은 더욱 자신이 없다.


"그럼 예전에 ㅇㅇ역에 있었던 그 도깨비랑 붙어 먹은 놈은요?"


서윤이 재미가 들렸는지 계속 물어본다.


"음... 올림픽 선수단 예비 선수라고 해야 하나. 성질이 달라서 뭐라고 못하겠지만, 일영이가 자기 신을 떼어서 막아낼 정도였으니."


"그럼 저는요?"


아마 이게 가장 궁금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보살조차도 그녀를 쉽게 규정할 수 없었다.

그릇은 크지만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된, 그리고 더 배울 생각조차 없는 그녀를 뭐라 규정하겠는가.

그런데 듣고 있던 법사가 그걸 해냈다.


"생활 체육대회 심판...?"


"...네??"


---


"아까 밖에서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는데요?"


성주가 식탁에 저녁 반찬들을 내려놓으며 보살에게 물었다.


"응.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들어왔네. 무녀님에게 자극이 되면 좋겠지만. 재훈이는 어떤가?"


그동안 재훈의 병간호를 한 것이 성주였다.


"열은 좀 내린 것 같아요. 기력이 많이 없는 것 같은데, 병원 안가도 되나요?"


"가봐야 자기들은 원인을 모르겠다면서 이것저것 쓸데없는 검사만 해서. 나중에 좀 나아지면 가서 링거나 맞게 하는 게 최선이야."


동종업계 선배가 그렇다니, 성주도 별로 토를 달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한 것은 생각해 봤는가?"


"아. 실장이요? 근데 서윤씨는 무속적인 일은 안하잖아요."


"글쎄. 내가 보기엔 조만간 할 것 같아서. 그 전에 쓸만한 인재를 알아놓는 거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생각은 있고?"


"어... 뭐, 백수기도 하고.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없긴 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근데 고용주가 중요한 것 아닌가요?"


"지원자가 없으면 고용주가 무슨 소용인가. 일할 사람이 있어야 고용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하하."


그냥 웃으면서 흘리는 것을 보며 보살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 일단 거절은 아닌 듯 했으니.


"그런데 할머님도 가족이 있으시죠?"


"당연히 있지. 손주들도 있어."


"결혼 하시고 신을 받으신 건가요?"


"아니? 무업을 하다가 결혼 했는데?"


"어... 그게 되나요?"


성주의 의아한 표정에 보살도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왜 안돼?"


"아니, 그게... 뭐랄까. 무속인들은 독신으로 산다는 이미지가 있어서요."


"쟤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든거야?"


보살이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뇨. 아저씨 때문은 아니고요."


"나 백청이라고 말한 적 없는데."


"..."


"우리도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래. 신부님이나 스님은 종교에 귀의했으니 논외고. 굳이 따지면 목사님들하고 비슷하겠네."


"연애 결혼이셨나요?"


"그게 왜 궁금해?"


"신기해서요. 무속인 분들은 자기 신이 허락해줘야 돈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어느새 국까지 따라서 식탁에 놓기 시작했다.


"음... 뭐 그렇긴 하지. 그런데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제자의 삶은 제자의 삶대로 흘러가게 놔두는 경우가 많아."


"특수한 경우는 뭔데요?"


"상대방이 업이 많은 놈이거나. 오래 못 가고 헤어질 인연이라거나."


"오오. 그럼 무속인 분들은 연애나 결혼 하면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겠네요?"


"쟬 보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와?"


보살이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물론 누구라고 지칭하지 않았다.


"...아직 못 만나신 분 말고요. 일단 만나면 오래 오래 행복한 것 아닌가요?"


"아닌데? 사람 마음 누가 말려. 신이 뜯어 말려도 사귀고 결혼했다가 신벌도 맞고 사기도 맞고 그러는 게 사람이고 사랑이야."


"하하."


어느새 밥까지 퍼서 식탁 위에 놓기 시작했다.


"그럼 무속인 분들과 연애나 결혼하면 데이트할 때마다 신이 다 지켜보겠네요."


"신이 제자들 생활에 뭐 얼마나 관여한다고. 딱히 관심 없어."


"항상 곁에 있는 것 아니었나요?"


"신경 쓰여? 무당들하고 연애질하면 신이 다 지켜볼까봐?"


"네? 아뇨. 하하. 그런 건 아니고."


"어차피 관심들도 없어. 그렇게 따지면 하나님 부처님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연애한다니? 다 지켜보는 분들인데?"


그 말에 성주도 '그런가?'하는 표정으로 마지막 밥그릇을 놓았다.


"그런 잡스러운 짓을 하면 그게 신인가, 잡귀지. 어차피 자네 눈에 보이지도 않을 것에 너무 신경 쏟지 마.

그렇게 따지면 연애도 결혼도 못해. 신 이전에 사방에 널려있는 잡귀들 볼까 무서워서 뭘 할까?"


"그런가요?"


"그래. 그러니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해."


"하하. 네."


순간, 성주는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뭔가 자신의 연애 상담처럼 흘러간 것 같은 느낌은 뭘까?


"아뇨, 저기 그게 아니라..."


"그만들 싸우고 밥 먹어! 집주인은 뭘 하고 손님이 밥상 차리게 만드냐!"


성주의 해명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밖을 향해 소리쳤다.

저 멀리서 '생활 체육은 심하잖아요!'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