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외로웠다.


언젠가부터일까, 그는 지하에 갇혀 있었다.


먹을 것도 없고, 목마르고, 텁텁했다.

어둡고, 축축하기도 했다.


그는 그가 누구였는지 몰랐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어짜피 그건 지금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잊었다면, 잊어도 상관 없어서겠지.

그만큼 중요한 기억이 아니었겠지.


그는 점점 야위어 갔다.

먹을 게 필요했고, 마실 게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필요했다.



어느날 아침이었다.


그걸 아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진 모르겠다.

가끔, 지하실에 불빛 한 줄기가 흘러들어 왔었다.


빛 한 줄기가 있었다.


따뜻한, 마지막 한 점 활기.

그는 줄곧 아침이면 그곳에 앉아, 불빛이 흘러들어 오는 곳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다.


언제 쯤이면 나갈 수 있을까?


난 왜 여기 온 거지?


배고프다.


왜 여긴 어두운 걸까?


저 빛은 뭐지?



뭐 그런 고민들이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언젠가, 빛은 사라졌고, 굶은 배는 점점 더 주려 왔기에, 그는 잠을 청했다.

차갑고, 어두운 지하였지만, 꿈속에서만큼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따뜻하고, 푹신하며,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고...


외롭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날 아침이었다.


늘상 햇빛이 흘러들어 오던 구멍에서, 난데없이 종이가 날아들었다.


그는 종이를 주워들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신기하게도, 그는 그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지금 당장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필요했다.

그는 심심했다.


삶과 죽음이 매 초마다 오가는 상황에서 심심함이란 감정은 원래 생존본능에게 자리를 내줬어야 했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한다.


그는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니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고 싶지 않았다.


볕도 잘 들지 않는 그곳에서, 종이에 딸려온 작은 금속 조각에서 반사되는 빛에 의지해, 읽어 나갔다.



종이 한 장이 있었다.


그 내용은 참으로 신기한 것이었다.

이 방에 문이 있고, 금속 조각은 열쇠이며, 문을 열고 나간다면 자유를 찾을 수 있다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그는 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왜?


어째서 나가지 못하는 거였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


모르겠다, 생각하며, 그는 열쇠로 문을 열고 나갔다.


그를 가둬왔던 방의 문은 터무늬없이 쉽게 열렸다.

그리고, 그는 종이를 완전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쏟아지는 바깥의 빛 속에서, 온전한 글자와, 문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문 밖에는 그를 위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주변의 건물은 온통 낡고, 녹슬고, 병들어 보였으며, 군데군데 초록빛 생명이 자라나고 있었다.

자연이 정당히 자신에게 주어졌던 영토를 되찾아 가는 것이었다.

싹이 움트고, 자라나는 모습을 감상하며, 그는 한 끼 식사를 만끽했다.


문서의 내용은 이러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인간이었다.


다른 인간들은 이미 죄다 죽은 지 오래였다.



그의 주위에는 밤이면 어디서든 나타나는 괴기스러운 존재들과, 낮에도 추격해올 존재들이 있다고 했다.

최대한 오래, 언제까지고 식량을 찾으며 생존하고, 이 쪽지를 쓴 사람이 만들어 두었을 유전자 저장고를 찾아내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다.


그는 이제 마지막 남은 인간으로서, 사명을 짊어졌다.



마지막 남은 인간 한 명이 있었다.



여정은 고되었다.


밤이면 나타나는 흰 눈알만이 빛나는 것이나, 회색 정장을 껴입은 사내, 일제히 일어나 움직이는 거대한 아파트들.

아침이 될 때면 항상 자신을 어디에선가 지켜보며 죽이려 하는 커다란 거미.


사각지대에서부터 엄습해오는 흰색 무언가.


모든 것이 마지막 인간을 죽이려, 삼켜버리려, 영원한 공허 속으로 던져 버리려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지하실 속으로, 캄캄한 무저갱 속으로 빠지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인간은 점점 더 똑똑해졌다.


그는 쪽지를 읽었을 때부터, 어쩌면 지하실에서 온기 한 줌을 만끽할 때부터, 지성을 얻었다.

인간처럼 생겼으나, 인간이 아닌 것들을 구별할 수가 있었다.

점점 영리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무기를 제련했다.

철은 널려 있었고, 불을 피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쓸만한 뾰족한 창 하나를 만들었다.


가는 길에,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다.

외로운 인간을 달래 줄, 영혼의 동반자.


작은 강아지 한 마리와, 창을 든 마지막 인간 하나가 있었다.



이젠 그에게 부족한 것이 없었다.


밥은 어딜 가나 얻을 수 있었다.

잘 보존된 식량을 먹거나, 가끔 나타나는 회색 정장의 사내를 사냥했다.

끔찍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그는 인간도 아니었다.


나와 다른 것들은 살아 있을 자격이 없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나와, 내가 아닌 존재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그걸 아침이라 부를 수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위에서부터 강한 빛이 내리쬐었다.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 빛을 내리쬐었다.



그리고 인간은 창을 잃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것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창을 버리고 나와야만 했다.


하지만, 지도대로라면 저장고까지는 멀지 않았다.

그곳에서, 다른 인간들의 유전자를 통해 다시 인간들을 살려내면 되는 거였다.


그러면 다 끝나는 거였다.


작은 강아지 한 마리와, 마지막 인간 하나가 있었다.



인간은 계속 전진했다.


가끔 야영 하기도 하고, 버려진 오두막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점점 심해지는 혹한의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으로 몸을 숨기고, 강아지와 함께 떠들거나, 몸을 녹였다.



저장고 바로 앞이었다.


설산을 오르며 만든 조잡한 파카와 지팡이만을 든 채, 오슬오슬 떨며 마지막 인간은 강아지와 함께 저장고 앞으로 도달했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 배가 고팠다.


3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마실 것은 눈을 녹여 마시는 것으로 대신했다지만, 너무나도 배고팠다.


그때, 그에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나와 다른 것들은...











마지막 남은 인간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약속대로, 저장고까지 도달했다.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며, 필요하다면 제 몸조차도 바쳐 가며.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었고, 동상으로 발가락 3개와 손 하나를 절단해야만 했었다.


더는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그를 꺼내준 쪽지의 작성자를 위해서라도.


드디어.


드디어 나는 구원을...




...















억겁의 시간이 흐른 후,




인간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외로웠다.


언젠가부터일까, 그는 지하에 갇혀 있었다.


먹을 것도 없고, 목마르고, 텁텁했다.

어둡고, 축축하기도 했다.


그는 그가 누구였는지 몰랐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젠가, 쪽지 한 장이 날아 들어왔다.





마지막 남은 인간 한 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