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그대로, 인간은 패배했습니다.

지난 수십년간 본 기관과 세계 각지의 기관, 단체들은 통칭 괴이(怪異)라고 명명된 형이상학적, 초자연적 존재들과 연대하여 방어선을 구축하였으나 금일 최후의 방어선이 무너졌습니다.

물론 받아들이기 힘드시다는 것을 압니다.

귀신이니, 신(神)이니 하는 괴이들을 직접 보기 전까진 믿지 않으시겠죠.

하지만, 살면서 이상하리만치 기묘한 순간들이 존재하지 않으셨습니까?

가령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무언가 귓가에다 대고 속삭였다던가, 혹은 본래 다섯개였을 손가락이 일곱개로 찍힌 사진이 발견되었다던가...

괴이와 인간 사회의 공존을 사전 공지 없이 부득이하게 진행한 점은, 본 기관에서 사죄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의 존속을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금일 오전 정부에서 지급한 구토제와 설사제를 드시고 지금 당장 속을 비워내십시오.

속을 다 비워내셨다면 집에 있는 유제품과 달걀, 생선을 포함한 육류들을 몽땅 내다버리십시오.

전부 이행하시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어디 풀밭에 가서 좀 구르고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예? 왜 굳이 귀중한 식량을 내다 버려야 하냐고요? 가뜩이나 속을 비웠는데?

당연하게도, 이러한 명령들이 이해가 가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해합니다.

혹시 한국에서 공장식 가축 축산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자그마치 1970년대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50년간 한반도에서만 도살된 동물들의 수를 헤아리실 수 있으십니까?

평생 비좁은 우리에서 일평생 새끼 낳는 용도로만 쓰이며 혹사당하다가, 그렇게 낳은 새끼들이 전부 산채로 갈려나갔다는 사실을 알게된 짐승의 원한을 짐작하실 수 있으십니까?

앞서 언급했듯 괴이의 종류에는 귀신도 있습니다.

그리고 귀신은 어떤 생명이 사후에 강한 원한을 품고 이승에 남았을 때 탄생하죠.

예, 현재 지구는 물경 수백억에 달하는 동물형 괴이들에게 점령당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것들을 막는 유일한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우시다면 지난 몇십년간 심령 사진이나 괴이 영상, 괴담들이 무슨 연유로 종적을 감추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최근 정체모를 기관이나 기업에서 접근을 통제하고 있던 구역들의 통제가 해제되었지 않습니까?

사이비로 소문이 자자했던 종교들이 언제부턴가 동물 보호 기관으로 탈바꿈했지 않습니까?

위험에 처한 이들은 우리 인간들만이 아닙니다.

좋습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치셨군요.

이제부터는 순전히 당신과 당신의 몸에 공존하고 있는 괴이들이 함께 해쳐나가야 할 영역입니다.

지구의 주인은 이제 인간이 아니란 사실을 항상 명심하십시오.

당신에게 허락된 공간은 더이상 지구에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십시오.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