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녹음기를 주운 건 분명 너겠지. 너일거야.

안녕, 나는 너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야. 이런 사술에 기댈 정도로 네가 보고 싶었어. 정말 많이 그리웠어.

너는 죽었어. 꽤 젊은 나이였고, 상당히 갑작스러운 사고였지. 지금 네가 어디 있는지 나는 정확히 몰라. 내가 아는 건 네가 정말 오래 걸었다는 것,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거야.

그 곳이 무척 끔찍했으리란 걸 알아. 내가 너를 구해줄게. 내가 녹음한 대로만 행동하면 너는 분명 내 곁으로 올 수 있어.

기억해, 이 말이 네게 닿기 위해 많은 일이 있었어. 나는 너와 달리 오컬트나 신 따위를 믿지 않았거든, 그래서 이 시도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굉장히 불안정해. 네가 가장 힘들고 의지가 약해질 때가 되어서야 내 말이 네게 도달한 게 그 근거지. 내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음을 네가 이해해 줬으면 해.

서론이 길었네.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듣고 따라해. 네가 긴장해서 중간에 잊거나 집중하지 못할까봐 맞는 장소에 도달할 때 한 항목씩 이야기하도록 설정해뒀어. 내 조언은 분명 네 상황마다 적절할 거야. 잘 따라야 해. 너는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으니 여러 번 강조하는 거야. 잊으면 안 돼, 너는 죽었고, 내 말을 들어야 네가 살아날 수 있어.

우선, 네가 힘들거나 아픈 건 환상통이야. 영혼이 육체의 고통을 느낄 리가 없잖아. 지옥에 가면 영혼에게 고통을 부여하기 위해 육신을 주잖아, 그러니 영혼인 너는 고통 받을 리 없어. 그럼에도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것 같다면, 눈을 감아. 그리고 기도해. 네가 평소에 믿던 주님도 좋고 나에게라도 좋아. 충분하다고 느낄 만큼 기도한 후에 다시 눈을 뜨면 괜찮아질 거야.

네가 이걸 얻은 곳은 백색 광야일 확률이 높아. 얼마나 걸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 안개가 낄 때 까지 걸어. 만일 지나쳐 왔어도 되돌아가지 말고 계속 앞으로 가. 만일 실내 같다면 그곳에서 나와. 실내라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문은 찾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걱정 마, 창문은 그대로 있거든. 1층일 수도, 20층일 수도, 그보다 더 높을 수도 있겠지만 그곳으로 나와야 해. 뛰어내려도 죽지 않을 거야, 분명해. 거기서 나오면 광야가 펼쳐질 테니까 안개가 낀 곳까지 걸어가면 돼.


걸음을 멈추지 마, 너는 거기 너무 오래 있었어. 이 편지를 받을 때 네가 너무 힘들고 포기하고 싶어졌던 걸 기억해. 네가 걸음을 멈추고 쉬는 순간 너는 왜 살아나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거야. 그리고 뒤를 돌아보겠지. 드넓은 광야는 사라지고, 아름다운 가로수 길과, 너른 상가가 보일 거야. 하늘에는 꽃불이 수놓이고 너는 거기서 사는 게 괜찮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야.

그렇게 너는 다시는 살아 돌아올 수 없게 되겠지.

지금 네 인지는 뒤틀려 있어서, 본능적으로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해. 네 감각에 너를 맡기면 너는 영원히 거기서 나올 수 없을 거야. 내 말 믿어. 네 감각이 아니라 나를 믿어, 네가 죽었다는 걸 잊지 마.





[2]

도착했니? 잘 했어. 많이 걸어서 지겨웠지? 하지만 마음을 다 잡아, 안개 속에는 너만 있는 게 아니거든. 아는 목소리가 들려도 무시해. 대답하지 말아, 지금 너는 대부분의 기억을 잃었어. 그런데 어떻게 그 목소리를 네가 알겠어? 너 자신을 믿지 마, 날 믿고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외면해. 전부 거짓말이니까.

검은 집을 찾아. 지붕부터 경첩 한 쪽까지 전부 새카만 집이야, 다른 집으로 들어가면 안 돼. 반드시 잘 확인해. 잘못 들어갔다면 구해줄 방법이 없어.

들어갔지? 어두운 걸 싫어하는 너니까 걱정되어서 붙여두자면, 오른 쪽 벽에 스위치가 있어. 불을 밝히도록 해. 벽이 끈적거리고 물컹거려서 손을 치우고 싶겠지만, 참아줘. 어둠 속에서 뭐가 널 유혹할지 알고 그래. 넌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다니까? 너를 잃지 마. 나를 믿어.





[3]

좀 둘러봤니? 온 사방에 거울이 있지? 거기 떨어진 이래로 거울을 보는 건 처음일 거야, 무척이나 낯설겠지. 거울마다 모습이 다르게 비치니 무섭기도 할 거고.

너는 모습을 잃기 직전이야. 망자는 시간이 오래 흐를수록 살아 생전의 기억과 모습을 잃게 되거든. 그 상태로는 돌아올 수 없어. 거기서 네 살아 생전의 모습을 찾아야 해.


너는 오른쪽 눈 밑에 점이 있고, 머리카락이 짧고, 진한 붉은 색으로 염색했어. 키는 큰 편이고 피부는 희고, 눈은 조금 옅은 갈색이야. 왼쪽 손에 화상 흉터가 있는데, 이건 네가 나와 놀러갔을 때 바비큐를 굽다가 데인 상처야. 당연히 흉터가 크지는 않겠지? 진중한 인상에 곧은 자세지만 오른쪽 다리가 조금 가늘어. 늘 궁금했는데, 네 일기장에 어릴 때 다리를 다쳤기 때문이라고 적혀있더라. 네 진짜 모습이 비치는 거울을 찾아. 아, 노파심에 이야기하지만, 이 모습이 아닌 다른 거울을 너무 오래 보지는 마. 살짝식만 살펴보란 뜻이야. 다 주인이 따로 있어.





[4]

찾았어? 그럼 찾은 거울을 계속 보고 있어. 응시하다보면 거울 속의 네게서 기시감이 느껴질 거야. 눈을 깜빡인다거나, 숨을 들이쉰다거나, 너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거나 그런 거.

너는 죽었어, 그래서 신체 활동을 하지 않아.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도 않아. 그러니 예시의 행동이 아니더라도, 거울 속 네가 산 사람처럼 움직인다면, 그 때 거울을 깨. 명심해, 다른 거울을 오래 주시하거나, 기시감이 들기 전에 성급하게 깨면 안 돼. 그러면 너는 돌아올 기회를 잃는 거야. 준비된 자리가 많지 않다고.





[5]

좋아. 네가 스스로에게 생기가 생겼음을 느낀다면, 준비가 된 거야. 너는 돌아올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얻었어. 그렇다고 녹음기를 버리진 말고, 끝까지 들어. 아직 넘지 못한 산이 많아.

이제 그 집의 뒷문을 열고 나가. 검고 긴 강과 배가 있을 거야. 배에는 사공이 있을 거고, 사공은 너를 태워주는 대가를 요구하겠지.


너는 이제 그 사공을 속여야해. 사공에게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네가 사실 생자인데 네가 잠든 사이에 이상한 망자가 네 몸을 차지했다고 말해. 그러면 네 기억을 증명하라고 할 거야. 그건 무척 쉬워. 내가 편지에 말해준 네 성격이나 경험을 말하면 돼. 네가 겪은 것처럼 최대한 그럴싸하게 말하는 게 좋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좋겠네. 정열적으로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고, 나만 보던 사람인데 너무나 보고 싶다며 눈물이라도 흘려.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더라고.

성공했다면 데려다 줄테니 삯을 달라고 할 텐데, 이 녹음기에 붙어있는 리본을 삯으로 내밀어. 그곳에서 이 리본은 무척 귀한 물건이거든. 혹시라도 잃어버린 건 아니지? 잃어버렸다면, 강가에서 날카로운 돌을 찾아. 그걸로 왼손 약지를 잘라서 건네. 고통은 없을 거야, 너는 죽었으니까. 네가 다시 살아났을 때 약지가 움직이진 않겠지만, 그 정도면 싼 대가일 거야.

주의할 건, 리본을 찾겠답시고 집이나 안개 거리로 돌아가지 말아야 해. 너는 자격을 갖췄잖아. 다른 망자들이 너를 집어삼키려 들거야. 이곳에 머무르라고, 너는 속고 있다고, 가면 안 된다고 붙잡겠지.

전부 거짓말이야, 나를 믿어. 어떤 그럴싸한 말을 해도, 설령 정말 마음이 동하고 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눈물이 나더라도, 믿어선 안 돼. 너를 기다리는 내가 있다는 걸 결코 잊지 마. 배에 타면 배는 봉쇄 돼. 다 건널 때까지 그 누구도 타거나 내릴 수 없지. 배에 타기만 하면 돼. 돌아보지 마.

기억했으면 이제 강을 건너. 곧 다시 볼 수 있겠다.





[6]

내 사랑, 드디어 내게 돌아오겠구나. 이제 눈 앞에 보이는 길을 걸어. 끝에 문이 있을 거야. 그 문을 열고 나오면 모든 게 끝나. 넌 살아나고 나는 너를 얻겠지. 기억나는 추억이 거의 없겠지만 걱정은 하지 말아, 나를 믿으면 돼. 내가 늘 곁에서 알려줄게.


강을 건너면서 네가 누군지 떠올랐을까?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어. 네가 누구였는 지는 잊어. 중요한 건 네가 내 곁으로 온다는 거야. 돌아갈 방법도 없겠지만, 돌아갈 수나 있겠어? 너는 이미 기억이, 얼굴이 주는 포근함을 깨달아 버렸잖아. 다채로운 표정을, 생동감 넘치는 세상을 깨달은 이상 이전으로는 갈 수 없어. 그저 나를 사랑하기만 하면 돼.


미안해.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너도 나를 봐줬으면 했어. 내가 고백했더니 너는 끝내 내게서 도망갔잖아. 그래서 이렇게라도 텅 비어버린 너를 채워야 했어. 몇 번째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항상 처음처럼 너를 사랑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광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알려준 주의사항 외의 변수는 없었는지, 네가 원래 있던 곳은 어딘지. 그리고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번에야 말로 네가 정말 내가 바라는 너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할 거야. 네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근사한 저녁을 해놓고 기다릴게.


보고싶다, 어서 돌아와.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