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입사 축하한다. 이게 정말 축하할 일이 맞는진 모르겠지만.

업무는 간단해. 야근이 많은 것도 아니고 연봉도 다른 데보다 높다. 연차 사용도 자유로움.


근데 몇 가지 꼭 지켜야 하는 좆같은 규칙이 있어. 이걸 네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심 없고 그냥 외워라. 꼭.

뉴비 놀려먹으려는 장난질 아니고 퇴사했는데 굳이 누구 후임이 뒤졌네 어쨌네 소리 들어서 찝찝해지기도 싫으니까 제발 읽어라

그래야 니가 살아

한번 더 말함 그래야 니가 산다


1. 야근하는 날 22시 이후 탕비실 사용 금지임.

필요한 비품 있으면 그전에 미리 꺼내오고, 안에 개인 물건 두고 나오는 거 없는지 잘 봐.

만약 개인 물건 두고 나왔으면 그건 포기해라. 핸드폰이든 지갑이든 어쩔수없음

미회수 물건 있으면 경영지원팀에 메일 보내. 미회수 개인용품 뭔지 생김새는 어떤지 등등 자세할수록 좋다.


1-1. 22시 전까지 탕비실 개별보안장치 필수로 켜고 이거 아침 7시까지 해제하면 안된다.

만약 개별보안장치 켜는 거 까먹었으면 야근하지 말고 걍 바로 퇴근해.

근데 가끔 이유없이 목이 엄청 마를 때가 있을거야.

괜히 물 마시겠다고 탕비실 다시 기어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화장실을 가라. 세면대 가서 수돗물 마셔. 그게 나음.

갈증이 완전히 해결되진 않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낫다.


1-2. 아 그리고 가끔 자정 넘어가면 보안 풀려있다고 삑삑 소리나는데 그냥 무시하셈

그거 풀린 거 아니다 풀린 척하는거지

시끄러워도 못들은척해라. 참고로 노캔이어폰 껴봤자 소용X

걍 참어. 어느 순간 뚝 끊길 거니까


2. 방문객이 초인종을 눌렀을 때 인터폰 화면에 사람이 보이는지 꼭 확인해.

아무도 없으면 그냥 자리로 돌아가도 되는데, 한 30분 정도는 밖에 나가지 마라

나가지 말라면 그냥 나가지 마 제발 부탁이다 난 경고했음


2-1. 가끔 깃털 장식 중절모 쓴 할아버지 한 분이 찾아오시는데 이분이 좀 귀찮음.

통화버튼 누르고 '고 이사님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이 문장 두 번 반복해서 말해줘.

보통 저러면 돌아가는데 문제는 들어와서 확인해봐도 되겠냐고 할 때임.

두 번까진 거절해도 상관없음. 한번 거절하면 돌아가는 날도 있고.

근데 세 번째 물어봤을 때부턴 거절하면 안 된다.


2-2. 영감탱이 세번째 물어봤을때 대처법임. 이때는 '약속을 잡아둘테니 내일 밤에 오십시오'라고 말하고 더 응대하지 마. 알아서 갈 거야.

영감 가면 퇴근 전까지 니 자리에 있는 모든 개인 물품 서랍에 넣고 자물쇠 채워. 책상엔 펜 한 자루 포스트잇 하나도 올려두면 안 됨.

그리고 퇴근할 때 서랍 열쇠랑 노트북 가지고 집에 간 다음 영업일 기준 사흘 재택하면 된다.

대표님한테 카톡으로 고 이사님 건으로 재택한다고 보내. 줌회의 참석 열외니까 따로 확인할 필요 없고.

아 가끔 업무복귀하고 책상 위에 흰국화가 한 송이 있을 텐데 그건 걍 경영지원팀이 뒤처리 까먹은 거니까 쫄지 말고 버려라


3. 옆방 703호도 우리회산데 재고 창고로 써서 평소엔 갈 일이 없을거임.

거기 열쇠는 대표님이랑 경지팀 박신애 팀장만 갖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냐면 평소에 상주하는 인원이 없단 소리임.

근데 가끔 거기서 벽 똑똑 두드리는 소리 날 거거든? 대답해주지도 말고 같이 두드리지도 마셈

전에 수습 하나가 겨울왕국 비트로 벽 두들겼다가 첫월급을 부의금으로 받았다


3-1. 아주 드물게 사람 말소리도 들릴 텐데 그거 다른 사람한텐 안 들려. 한명한테만 들린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노캔이어폰 귀마개 이딴거 다 소용없고 그냥 못들은척해.

한두시간 지나면 보통 가는데 퇴근때까지 그지랄하면 그날은 정시퇴근해라.


3-2. 가끔 화장실 다녀오거나 옥상에서 담배피고 올 때 경지팀 직원이 너 붙들고 703호 비품 옮기는 거 좀 도와달라고 할 거임.

그때는 바로 도와준다고 하지 말고 무슨 핑계를 대서든 안 된다고 해라

진짜 급한 건인데 안되냐고 해도 그냥 정중하게 거절해.

그거 경지팀 아냐


4. 회사에 걸려오는 전화는 대체로 괜찮아. 근데 전화응대 첫 멘트에서 니 진짜 이름 밝히지 마. 응대용 가짜 이름 써라.

입사할때 회사 내에서 사용할 가명 다 정하잖아? 그거 대면 됨.

근데 전 직원이랑 같거나 비슷한 이름은 쓰지 마라


4-1. 비 오는 날 예전 근무자가 회사로 전화를 걸 때가 있다. 전화번호가 12자리면 그놈이야.

이때는 회사용 가명이랑 다른 가짜 이름 아무거나 대.

그러면 자기가 옛날 직원인데 퇴직금 정산이 덜 된 거 같으니 확인 부탁한다고 말할 거임

그건 걍 경지팀 함은석 대리한테 전화 넘겨주면 알아서 처리할거야


4-2. 근데 가끔 다른 걸 물어볼 때가 있어. 전화받은 사람 이름이 뭐냐 신입이냐 이딴 개인정보 물어볼텐데 그거 대답해주지 마라

만약 진짜 이름이나 회사용 이름 댔으면 전화 끊고 경지팀 박팀장한테 가서 상황 설명해

이후 일은 나도 모른다. 니가 살아남길 빈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니가 정상적인 뉴비라면 입사취소를 존나게 꿈꾸겠지만

니가 헛짓거리 안 하고 이상현상은 바로 경영지원팀에 보고만 재깍재깍 해주면 쾌적하게 회사 다닐 수 있다

힘내고

잘 살아남아라







나는 실패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