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첫 꿈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20년 8월 30일이었다.
꿈 일기라고 하면 심리 치료나 자각몽을 시도하기 위해 적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아니었다.
난 보통 잠들면 꿈 없이 혹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꿈만 꾸고 일어나는 편인데, 아주 드물게 기억에 남는 꿈들이 있었다.
대부분 슬프거나 무서운 꿈들이었지만 떠올리려고 애쓰면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 자세한 내용은 어차피 금방 잊혀졌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꿈에서 깨기 직전부터 꿈이라는 자각이 들었고 이 강렬한 기억을 남겨야 한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깨어나자마자 나는 휴대폰을 키고 메모장에 기억나는 대로 꿈 내용을 기입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시초였다.
꿈 일기를 적는다고 해서 매일 매일 일기를 적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꿈이 기억나는 날보다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날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간혹 기억나는 꿈의 내용도 첫 꿈 일기의 내용처럼 강렬하지도 않고 꿈이라는 자각을 쉽사리 하지도 못했다.
대부분은 우스꽝스럽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의 연속이었고 깨어남과 동시에 묘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억은 휘발하여 사라졌다.
당연히 적을 거리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날은 단 한 줄을 써 내려가기도 힘들어 일기를 기입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꿈 일기를 적는 것을 그만둔 21년 6월 27일까지 약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8편의 일기만 기록할 수 있었다.
이 중 내가 꿈 속에 있다는 자각을 가졌던 꿈은 첫 일기를 제외하고 세 번이었다.
딱 한번,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 생각해봤을 자각몽을 꾼 적이 있는데, 그 뒤로 한참을 야한 꿈을 꾸려고 노력해본 적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소용없었는데 자각몽을 꾸는 일도 힘들었지만 자각하고 곧장 깨어나거나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마지막 일기를 쓰기 전 까지는 나는 꿈 일기를 적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마지막 날은 전조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꿈이라는 자각과 함께 나는 운전 중인 차 안에 있었다.
또 동시에 그 차의 밖에 있었다.
나는 1인칭이면서 3인칭 관찰자 시점이었다.
차 안에는 아내와 그 옆에 다른 여성이 있었고 둘은 운전 내내 싸우고 있었다.
동남아계의 인종으로 보이는 아내는 남편을 죽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옆의 여성은 그것을 비난하고 있는 듯 했다.
운전을 하고 있던 것은 나였는지, 남편이었는지, 아내였는지, 여자였는지 알 수 없었다.
이 개같은 시점은 나를 철저하게 관찰자로 만들었지만, 아내가 아내라는 것, 남편을 죽이려 한다는 것 따위 사실을 내가 떠올리게 했다.
다음 순간 차는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었고 그제서야 나는 차의 모습에 주목했다.
마치 비행기를 닮은 조잡한 차체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내의 작품이었다.
터널을 빠져나가자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는데 사고가 발생했다는 걸 알게 됐다.
조잡한 차체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는데, 사고가 발생해서 차체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인지, 차체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 바로 발생한 사고인지, 발생한 사고와 차체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 별개의 사고인지도 알 수 없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 따위의 대본에 '사고가 발생한다' 지문이 등장한 것처럼 그저 알게 됐다.
그리고 이때부터 굉장히 답답한 기분이 들면서 꿈에서 깨고 싶다, 다른 꿈을 꾸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무언가 나를 강제로 이 불쾌한 꿈을 시청하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윽고 차체가 불타며 완전히 무너져 내렸지만 아내와 여성은 무사히 생존했다.
그들은 도로에서 버스를 잡아 세웠는데 이때 근처의 모든 차들이 정지해 있었고 내려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불타 무너져가는 차체는 계속 미끄러져 내려가 정지해서 이쪽을 구경하고 있던 성별을 알 수 없는 성인에게 이동했다.
마치 카메라 앵글이 이동하듯이 나는 그 성인 앞에 있었다.
다음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는데, 두 명의 여성이 시야 오른쪽에서 날아왔다.
근처의 사람들이 모두 날아갈 정도로 큰 폭발에 나는 패닉에 빠졌지만 이 빌어먹을 시점은 눈을 감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거의 나체 상태로 날아온 두 여성은 한 눈에 봐도 심각한 신체 결손이 발생했고 오른쪽 여성은 사망한 듯 보였다.
왼쪽의 여성은 왼 팔꿈치 아래로 사라진 상태였고 근방은 유혈이 사방에 낭자했다.
왼팔은 이미 없는데도 양손을 들어 얼굴과 몸을 만져보는 여자의 눈은 텅 비어있었는데, 자신의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 그녀의 절망감이 1인칭으로 느껴졌다.
아내는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사망한 오른쪽 여성이 아내인지, 아니면 지금 눈 앞에 있는 두 여성이 아예 다른 인물들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절망감에 압도되어 한참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정신이 들자 내 앞에 남편이 있었다.
아내와 닮은, 동남아계의 남성인 그는 울면서 아내의 얼굴을 붙잡고 있었는데 돌연 싸늘하게 식어있던 아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천천히 우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뀌는데 불쾌한 골짜기가 강력하게 느껴지면서 절대 다음 장면을 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무력했고 마치 카메라가 천천히 멀어지는 것처럼 뒤쪽으로 끌려갔다.
시야가 이동하면서 기괴하게 울고 있는 아내의 목 아래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아내는 목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목은 인공 심장으로 보이는 역겨운 물체와 연결되어 있었고 보자마자 남편이 이것을 만들어냈단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은 자신의 손으로 그 심장을 반복해서 눌러 펌핑하고 있었고 눈물을 흘리는 아내는 아무 말없이 나를 원망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굉장한 구토감과 함께 꿈에서 깨어났는데 화장실로 달려가기도 전에 침대 위에서 토악질을 했다.
그 날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한 1년 정도는 선지같이 피비린내를 연상시키는 음식은 입에도 못 댔다.
이상하게도 저 꿈은 일기에 기록하지 않아도 무엇도 잊혀지지 않았다.
이후 나는 꿈을 기억하기를 포기했고 이게 내가 꿈 일기를 그만 둔 이유다.
너때문이야너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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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기괴한 꿈이네 마지막에 인공심장이라는 단어에서 잠깐 스크롤 멈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