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아리에서 찍은 사진엔 항상 심령사진이 있어."

"만약 진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이미 뉴스나 인터넷 같은 데서 떠들썩했겠죠"


반사적으로 반박하고 후회했다. 

이 선배는 언제나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어서 감정 조절이 잘 안된다는 건 핑곗거리가 되지 못했다.

다행히 선배는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이지만 속으로 삼켜야 할 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난 속으로 삼켜야 할 것과 밖으로 드러내야 하는 걸 구별하지 못했다. 


난 무언갈 속에 감추는 게 싫었다. 

내막 속에 감춰진 진실 같은 건 너무 싫었다.

내 앞에 있는 이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은 그중에서도 제일 혐오스러웠다.

속에 감춰야 더 좋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질리도록 배웠다.

하지만 아무리 암기해 봐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난 사진 동아리 같은 거에 들어오고 싶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그건 남들과 공유할 만할 취미가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깊게 숨겨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난 왜 사진 동아리 같은 곳에 들어 온걸까 


첫사랑이었다.

편의상 그녀를 A라고 부르겠다.

아니 그녀와 A는 어울리지 않는 글자였다. 

구태여 그녀를 다시 B라고 부르겠다.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언제나 B의 곁을 맴돌았고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다.


"그 우리가 분기별로 사진 찍으러 단체여행 가잖아. 거기서 매년 한 장씩은 나오더라고 그게"

단체여행? 그런 걸 간다는 얘기가 있었나. 동아리에 별 관심이 없어서 알지 못했다.

그나저나 이 인간은 왜 나한테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 

"이건 내 감인데 이번엔 네가 찍을 거 같거든"

이번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는데 선배는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을 했다.

어지간히도 난 속에 감추는 게 서툴렀다.


그녀는 벚나무 앞에 서 있었다.

이곳엔 우리 둘뿐이었다.


분명히 단체 여행을 왔을 텐데 왜 둘만있는걸까 

기억이 애매했다. 어지러웠다.

B에게서 딸기향이 났다. 어지러웠다. 

흩날리는 벚꽃과 딸기향이 내 시각과 청각을 어지럽혔다.


B는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내 사진을 봤는데 마음에 들었다는 게 이유였다.


그녀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내 사진들을 본 걸까 

가족들에게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사실 나도 내가 찍은 사진들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그걸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게 무서웠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도덕, 가치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땀이 되어 흐르는 거 같았다.

난 그것들을 B와 저울질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건 시험이 아닐까?

내세울 만큼 자랑스러운 인생은 아니었지만, 똑바른 인생을 살고자 노력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매일 쓰던 문장들이 생각났다.

부모님부터 선생님까지 날 위해 애써주신 분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사랑은 내 인생에서 가장 거리가 먼 단어였다. 그래야만 했다.

내가 사람으로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난 떨리는 손으로 사진기의 셔터를 눌렀다. 

사진 속의 B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이걸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 여기서 내가 이 벚나무에 목을 매다는 게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 아닐까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그만 두었다.

여기에 내가 흩날린다면 이 경치가 망가질 거 같아서 두려웠다. 

난 여기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B가 산장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산장? 우리는 거기서 온 걸까? 거기로 가면 다른 동아리 사람들이 있을까?

사람들 속에 섞여서 이 빛나는 순간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게 가둘 수 있을까?


산장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또다시 우리 둘뿐이었다.

나와 그녀는 그곳에서 사랑을 나눴다.

나와 그녀는 깊은 곳에 숨겨왔던 모든 걸 밖으로 드러냈다.


마음 같아선 그녀와의 사랑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 인생의 마지막 사진은 이미 찍은 뒤였다.


그녀의 입술에선 딸기 맛이 났다.

그녀의 눈에서도 딸기 맛이 났다.

그녀의 속에 감춰져 있던 것들은 모두 딸기향이 났다.

분홍색 선혈들은 이곳이 벚꽃축제인 것처럼 흩날렸다.

흩날리는 벚꽃과 딸기향이 내 시각과 청각을 어지럽혔다.


다음날 산장을 내려가니 동아리 사람들이 있었다.

"사진 잘 찍었어?"

선배는 나를 보며 여전히 웃고 있었다. 구태여 꺼내지 않은 그 속에 숨겨진 말들이 들려 불쾌했다.

"만약 제가 진짜 심령사진을 찍었다면 이미 인터넷에 글을 올렸겠죠"

내 일생에서 찍어야 할 사진은 어제 모두 찍었다.

사실 이 말은 좀 이상했다.

내 일생은 이미 끝났다. 만찬은 끝났고 남은 건 길고 지루한 설거지뿐이다.


선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배가 웃지 않는 걸 처음 봤다.

아니 선배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불쾌했던 얼굴이 더 불쾌해진 것뿐이었다.

"뭐야 역시 찍었잖아. 심령사진" 

언제 가져간 것인지 선배는 내 사진을 붙잡고 흔들었다. 

분명 가슴속에 숨겨뒀을 건데 언제 어떻게 가져갔을까


사진을 본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등신처럼 눈만 껌뻑였다.


만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