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아악!!!”
비명이 점점 커지다가 쿵. 조금 더 실감 나게 옮겨보면 으적이 맞으려나. 보도블록은 묵직하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으니 말이다. 피가 여기까지 튀었다. 보도블록의 틈이 붉게 물들었다. 몇 사람들은 근처에 있었다. 피가 제법 튄 어느 여자는 재수 옴 붙었다고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가까운 건물로 들어갔다.
나는 좀 더 가까이 가서 살폈다. 둘 다 머리부터 떨어졌고, 육편이 조금 튀었다. 고개를 드니, 제법 높은 건물이 보였다. 난간에서 밀리듯 떨어지기보다는, 난간에서 함께 붙잡고 뛰어내린 듯했다.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근처에 다니는 중고등학교의 것은 아니었다. 조금 멀리서 온 건가? 구급차가 오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으니 몸을 뒤집어 교복 마크를 살폈다. 창명고등학교라. 검색해보니 이 근처는 아니고 조금 떨어진 곳이다. 그렇다면 여긴 ‘논개’나 ‘왜장’의 거주지 근처일 수 있다.
사연도 한 번 추측해볼까. 비명이 들렸었지. 상호합의 하에 뛰어내린 게 아니라는 뜻이다. 체격이 좀 더 크고 표정도 일그러진 이 친구가 ‘왜장’일 것이다. ‘논개’ 친구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다. 그게 보도블록에 부딪힐 때의 충격 때문인지, 결연한 각오 때문인지, 혹은 ‘논개’ 역할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체격 차이, 같은 교복, 그리고 ‘논개’의 일방적인 진행. 논개놀이의 조건을 잘 충족했다. 성별이 다른 건 조금 아쉽지만. 아마 사연도 비슷하게 맞추지 않았을까?
“저기, 학생. 시체 치우게 좀 비켜줄래?”
“아, 넵. 죄송합니다.”
구급차가 도착해버렸다. 나는 자리를 비켰다. 신발 밑창에 굳지 않은 피가 잔뜩 묻어서 찐득거렸다. 그저께 비 오고 남은 물웅덩이가 있으면 씻고 가는 건데, 그런 게 이틀 동안 남아있을 리 없지. 어쩔 수 없이 나도 근처 건물에 들러 신발에 묻은 피를 씻어냈다.
“야, 나 논개놀이 봤어.”
뒷자리에 앉아 멍이나 때리려고 했는데, 옆자리에 창준이가 찾아왔다. 이 자식, 평소처럼 출튀나 할 것이지.
“대학로 거기?”
“어? 너 거기 있었어?”
“시체 만지고 있던 게 난데.”
“아, 난 구급대원이 옮기는 것부터 봐서. 정확히는 맞은편 건물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 급하게 내려와서 인파 뚫고 본 게 그거지만.”
“맞은편 건물엔 왜 있었는데.”
“밤샘과제 하느라 있었지. 24시간 여는 카페가 어디 흔한 줄 아냐.”
그제야 창준이 눈가의 눈그늘이 보였다. 얘는 이런 식으로 대학 생활 보내다간 취업하기 전에 죽을 것 같다.
“그래서? 논개랑 왜장은 누구였어?”
“청명고 애들이더라. 검색해보니까 좀 떨어진 곳이더라고.”
“대학로까지 와서 떨어질 필요가 있나? 여기 사는 애들인가?”
“뭐, 그렇지 않을까? 고층 건물 찾으러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거 아니야.”
“아, 근데 진짜 아깝네. 논개놀이 직관을 그렇게 놓쳐버리다니. 나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직관하는 게 소원이거든.”
나는 혀를 내둘렀다.
“취향 진짜 좀 어떻게 안 되겠냐? 차라리 직접 하지 그래?”
“조건이 안 맞잖아, 조건이. 내가 평소에 얼마나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침 좀 뱉어보고 담배도 펴볼걸.”
창준이가 껄렁대는 꼴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웃기시네. 넌 왜장이 아니라 논개야, 논개.”
“야, 교수님 들어오신다.”
문이 열리면서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전자 출석도 안 쓰시고 손수 출석표를 들고 오셔서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시는 분이다. 나야 출석 부르는 시간 동안 밀린 잠을 보충할 수 있어서 좋지만.
“허진영.”
“야, 너 부른다.”
“허진영 학생 안 왔나요?”
“여기 자고 있어요.”
“깨우세요.”
“야, 너 찍혔다.”
창준이 계속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는 통에 나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교수님 특유의 지엄하시고 위압감 넘치는 눈빛이 나에게 닿았다.
“죄송합니다.”
“1교시니까요. 졸릴 수 있지만 자진 마세요.”
“넵.”
시선이 쏠렸다. 앞자리에 앉은 채희는 힐끔 돌아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웃어? 자기는 아주 성실하다 그거지. 정작 날 깨우던 창준이는 수업 시작하자마자 고개 처박고 자기 시작했다. 코만 골지 말아라.
“……그래서 다양한 놀이 문화의 확산 경로를 조사하는 과제를 낼까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요새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놀이가 하나 있더라고요. 논개놀이라고 다들 들어보셨나요?”
대답은 없다. 하지만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주의를 다시 돌린 학생들이 보였다. 나 역시 턱을 괴던 손을 치우고 조금은 집중했다.
“과제입니다. 짝을 지어서 논개놀이를 체험해보시고, 살아 돌아오시면 해당 놀이의 유용성에 대해 A4 1페이지 분량으로 제출하세요.”
과제 소리에 다들 앓는 소리를 냈다. 교수님 딴에는 A4 1장 분량으로 배려해주신 듯하지만, 지금 중간고사도 안 봤는데 과제만 벌써 3번째이지 않은가.
“과제 미수행, AI 사용 적발은 0점입니다.”
“교수님, 적어도 중간고사 이후에 하면 안 돼요?”
다른 용기 있는 학생이 손을 들어 요청했다. 정작 교수님은 타협의 의지가 없다는 듯 컴퓨터 화면을 정리하며 답했다.
“기한은 2주 드리겠습니다. 사이버캠퍼스 공지 확인하시고, 짝을 지어도 두 사람 모두 각각 제출해야 합니다. 같이 써서 똑같은 걸 제출하는 건 인정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수업 끝. 질문 있으면 남으시고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순식간에 수업이 끝나버렸다. 성실한 학생 무리가 곧바로 교수님께 다가가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기껏해야 짝을 못 지으면 어떻게 되냐, 논개놀이의 기준은 어디까지냐, 놀이 체험도 가능하냐 같은 질문이겠지.
“야, 박창준. 일어나.”
“어, 왜.”
“끝났어. 일어나. 다음 수업 가야지.”
“나 수업 없어…….”
“그럼 과방 가서 자던가.”
“여기도 다음 수업 없어…….”
“민폐거든?”
“먼저 가…….”
가방에 얼굴 처박고 한다는 소리가……. 계속 상대했다간 나만 피곤해진다. 나는 조용히 가방 챙기고 일어나 강의실을 나왔다.
“야, 허진영!”
채희가 복도에서 날 불러 세웠다. 쟤는 또 무슨 일이람.
“왜.”
“너 논개놀이 짝 구했어?”
뭐지, 시비인가. 나는 한숨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고 답했다.
“야, 10초 전에 들었어.”
“인간적으로 10초는 아니지.”
“하여튼 내가 구했겠냐? 너는 구했고?”
“괜찮으면 나랑 할래? 내가 논개 할게. 네가 왜장 해.”
채희의 말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러니까, 채희가 나랑 논개놀이를 하고 싶다고? 나는 대번에 진의를 파악했다.
“야, 너 왕 게임 걸렸냐?”
“…….”
“아님 말고……. 사람을 그렇게까지 쳐다볼 건 없잖아.”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중간고사 끝나기 전에 얼른 해치우고 싶은데.”
“나 말고 창준이는 어때?”
“너라면 걔를 끌어안고 싶겠니?”
“생리적으로 무리지?”
내 대답에 채희도 피식 웃었다. 아, 그래. 웃긴 하네. 너무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란 거지. 그러니까 나도 너무 심각하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게 아니란 거고. 여기서 괜히 발 빼거나 진지하게 받아치면 둘 다 곤란해질 거다.
“그래, 뭐. 창준이랑 하는 것보단 낫겠지.”
“야, 남정네 둘이서 논개놀이는 좀 그렇지 않아?”
“아니, 그래도 그게 덜 껄끄럽지 않아? 연인도 아닌데 네가 날 끌어안고 논개놀이하는 건 네가…….”
“난 괜찮은데?”
아유, 그러시겠죠. 내 말문만 막으려면 무슨 말인들 못 하겠냐.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따라오라고 턱짓했다. 어차피 다음 수업도 같이 들어야 해서 가는 길도 같다.
“넌 근데 왜 뒤에 앉아? 교수님 소리 잘 안 들리지 않아? 칠판도 잘 안 보이고.”
“졸리잖냐. 맨 앞줄에서 꾸벅꾸벅 졸고 싶진 않거든?”
“교수님이 고개 떨어지는 모습 싫어하시긴 하지.”
“누구라도 그렇지 않나? 논개놀이도 직관하려는 사람 잘 없잖아.”
나는 아침 등굣길이 생각났다. 괜히 뒤돌아서 복도를 살폈다. 그래, 핏자국이 찍혔으면 이미 건물 들어왔을 때부터 눈치챘겠지.
“너 진짜 잘 모르는구나? 유튜브에 논개놀이 직관 쳐봐. 영상 엄청 많아.”
“세상에 창준이가 너무 많구나.”
“그러는 넌 직관한 적 있고?”
“어.”
“진짜? 언제?”
“오늘 아침에. 남고딩 둘이 떨어졌더라. 창명고 애들이던데, 알아?”
“내가 알겠냐? 나 여기 안 살거든?”
“그래 뭐, 비명 잠깐 들리고, 보도블록에 으직 하면서 골통 쪼개지더라. 피가 쫙 튀기고 나선 조용히 퍼졌고. 난 좀 떨어져 있었는데 피가 꽤 튀더라고. 가까이 있던 사람은 거의 뒤집어썼더라.”
내 설명에 채희는 유독 흥미롭다는 듯 내 곁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나를 잠깐 살피듯 훑어보더니 무언가 발견한 듯 내 셔츠 안쪽을 가리켰다.
“아, 여기 피 튀었네. 진짜구나?”
“그럼 가짜겠냐?”
“코피 흘린 걸로 구라 쳤을 수도 있잖아.”
“사진이라도 직어둘 걸 그랬다.”
“야, 그거 기억나? 전에 이차돈놀이 유행했을 때 말이야.”
채희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피식 웃었다. 재작년인가 작년인가. 이차돈놀이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혈액 염색 주사인가 뭔가를 맞고 참수당해서 흰 피를 뿜어내는 놀이였었는데, 논개놀이와 다르게 이차돈만 죽는 거라서 유행이 금방 사그라졌었다.
“창준이 직관하면서 오줌 지렸잖아.”
“걔 오줌도 지렸어?”
“네가 어디서 지린내 안 나냐고 한 거 기억 안 나?”
채희는 진짜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는 한 층 더 올라가서 다음 수업이 있는 강의실에 자리 잡았다. 잠도 적당히 깼고, 채희도 이 수업은 별로 안 좋아해서 우리는 중간에 자리했다.
“전혀. 너 그때 이차돈놀이 했으면 여기 없었어.”
“애초에 난 유행하는 놀이에 관심 없으니까.”
“그럼 놀이문화 수업은 왜 들어? 교필이긴 한데 이거 말고 다른 거 들어도 됐잖아.”
“…….”
아,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솔직하게 말할까? 여기서? 이 타이밍에? 하지만 꽤 괜찮지 않나? 괜히 여기서 채희에게 주도권이든 반감이든 주는 게 아닐지.
“이거 답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네가 듣는다고 하니까…… 따라 신청했지.”
실실 웃던 채희의 얼굴 근육이 굳었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돌려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나를 흘끔 봤다.
“왜?”
“우리 과대 따라가면 성적 잘 나올 것 같아서?”
“그것뿐이야?”
“네가 놀이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이참에 나도 놀이 좀 알면 좋잖아.”
“나랑 떠들려고?”
아, 이거 분위기 묘해지는데. 난 이런 게 쥐약이란 말이다. 실없는 소리로 분위기를 깨뜨릴까 싶은데, 그랬다간 채희가 단단히 삐칠 것 같고, 그렇다고 시간 끌기엔 아직 수업 시작까지 꽤 남았고…….
“아아아악!!!”
“논개다!”
“야! 창문 열어!”
“뭐야? 논개놀이야?”
순식간이었다. 채희와 나는 곧장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고, 창가에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여기서 논개놀이라고?”
채희는 당황스럽다는 듯 중얼거리면서 곧장 창가로 달려갔다. 나는 두 번이나 논개놀이 현장을 보고 싶진 않아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아침에 봤던 논개놀이보단 이 건물이 높이가 낮긴 하다. 그래도 논개놀이의 조건을 채울 만큼의 높이는 된다.
그러니 아마……. 즉사했을 것이다. 목뼈가 부러지든, 골통이 쪼개졌든. 운 나쁘게 다리로 떨어졌으면 살았겠지만.
그나저나 교수님 수업 듣던 애들은 아니겠지? 중간고사도 안 보고 논개놀이라니. 너무 진도가 빠른 거 아니야?
“진영아, 넌 안 봐?”
채희가 잔뜩 흥분해서 외쳤다. 하여간 놀이에 환장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나는 손사래 쳤다.
“두 번 보고 싶진 않아.”
“에이, 그땐 가까이서 본 거고, 이건 위에서 보는 거잖아.”
“야, 그게 그거지.”
채희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미소가 예뻤다. 난 어쩌자고……. 에휴. 내 팔자야. 결국 채희의 눈빛에 못 이겨 나도 가까이 다가가 구경했다.
창준이와 이름 모를 여자애였다. 끌어안은 쪽은 창준이. 설마 창준이가 논개인 거야? 하긴, 그 비명은 남자의 것은 아니었다. 맙소사. 저 여자애는 대체 뭐가 좋다고 창준이와 함께한 거지? 아니, 꼭 좋아서 한 건 아닐 수도 있나?
“창준이가 선수 쳤네.”
채희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지. 설마 과제를 내자마자 해버리는 애가 어디 있다고.”
“저기 아래 있네.”
“그니까 이젠 없잖아.”
내 말에 채희는 피식 웃었다.
“그러게, 없네.”
“그래도 솔직히 사람들 다 보는 데서 논개놀이는 좀 그래.”
“부담스러워?”
“아무래도?”
“그럼 우리 계곡 같은 데 갈까? 강원도 쪽으로. 그러는 게 진짜 논개놀이 같잖아.”
채희는 벌써 머릿속으로 계획을 짜둔 모양이다. 아니, 근데 진짜 논개놀이로 할 거면 경남으로 가야 하지 않나? 근데 경남은 머니까……. 오가는 시간 생각하면 강원도 정도가 합리적이긴 하다.
“얼른 하고 싶네.”
채희가 날 보며 말했다. 나는 애써 웃었다.
“그래, 중간고사 끝나고 약속 잡자.”
그래 뭐, 별일이야 있겠어? 고작 논개놀이 하러 가는 건데.
계속 내가 이해한 게 맞나?? 하면서 읽었음 재밌는데 호흡이 좀만 빠르면 더 좋았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