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집 문상객 명부를 작성하는 일을 맡은 건 순전히 친척들 등쌀 때문이었다.


"그래도 일가친척 중에 글씨 깔끔한 건 너밖에 없다."

"아이고, 불쌍해서 어쩌나."

"젊은 놈이 가도 하필 그렇게..."


죽은 사촌 동생은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자기 집 욕실에서 피를 다 쏟고 죽었다.







입관이 끝나고 저녁 내내 쏟아지던 문상객들의 발길도 새벽 2시가 넘어가자 끊겼다.


시큼한 음식물 냄새와 향 냄새가 빈소 내부를 텁텁하게 채우고 있었다.


상주인 큰아버지는 수면제를 드시고 안쪽 방에 쓰러지듯 잠드셨고,

친척들도 하나둘 바닥에 머리를 대고 곯아 떨어졌다.


나는 그날따라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아 맞다.

바빴던 탓이었는지, 영정 사진 속 사촌동생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네.

향 앞에 앉아 동생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틱- 틱- 시계침 움직이는 소리만 울리던 그 때,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 하나가 들어섰다.







여자는 신발을 벗지도 않고 조의금 수합대 앞까지 천천히 걸어왔다.


맨발이었다.


발바닥이 검게 물들어 있었고

걸을 때마다 장판에 쩍, 쩍 하고 살점이 들러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저... 조문 오셨나요? 방명록에 이름 좀..."


나는 황급히 볼펜을 쥐며 물었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얼굴이 부풀어 올라 있었고,

피부가 물에 오래 불은 어묵처럼 허옇게 흐물거리고 있었다.


여자는 방명록 위에 놓인 펜을 집어 들고는 이름을 써 내려갔다.



이 혜 진



글씨를 쓰는 동안 여자의 소매 끝에서 툭, 하고 진물이 방명록 종이 위로 떨어졌다.

종이가 축축하게 젖어 들며 글자가 뭉개졌다.


"아... 저기, 죄송한데 조의금은 이쪽에..."


나는 두려움을 참으며 조의금 봉투를 내밀었다.

여자는 봉투를 받지 않았다.

대신 자기 치마 밑단 속으로 손을 넣었다.


여자는 축축한 옷감이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상 위에 툭 던져놓은 것은, 검은 비닐봉지에 싸인 덩어리였다.

비닐봉지 겉면에는 진액이 범벅되어 있었다.



"이게... 뭐예요?"


"갚으러 왔어요."


여자의 목소리는 분명 잠겨 있었다.


"예?"


"그쪽 동생이... 작년에 나한테 빌려 간 거."


여자는 비닐봉지를 내 쪽으로 슬그머니 밀었다.

봉지 입구가 살짝 벌어졌다.

지독하게 비린 냄새가 순간적으로 코를 강격했다.

음식물이 썩은 것이라고 할까, 차마 숨을 쉬기 힘든 악취였다.


"이게 대체.. 무엇인가요?"


"직접 전해주지 못해 아쉬워요."


여자가 소름돋게 꼬리를 올렸다. 침이 흘러내려 턱 끝으로 떨어졌다.






여자는 그 말을 끝으로 뒤를 돌아 나갔다.

쩍, 쩍, 쩍.

검은 발자국이 신발장 입구까지 길게 이어졌다.


나는 멍하니 앉아 여자가 두고 간 비닐봉지를 바라보았다.


이것을 치워야 한다.

당장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것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꿈틀.


비닐봉지 안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마치 숨을 쉬듯 천천히 부풀었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나는 홀린 듯 비닐 겉면을 살짝 건드려보았다.

미지근했다.

사람의 체온보다 약간 더 높은, 기분 나쁜 열감이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그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방명록을 들춰보았다.


종이 밑바닥까지 핏물이 젖어 들어

그 다음 장, 그 다음 장까지 검은 문장들이 계속해서 배어 나오고 있었다.



너한테 빚진 거 다 갚았다.

너한테 빚진 거 다 갚았다.

너한테 빚진 거 다 갚았다.



비닐봉지 입구가 전보다 조금 더 넓게 벌어져 있었다.


작고 허연 손가락 세 개가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그 손가락들이 공중을 향해 꼼지락거렸다.



어서 자기를 만져달라는 듯이.

어서 자기를 만져달라는 듯이.

어서 자기를 만져달라는 듯이.



침을 삼켰다.


나는 봉지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에 닿는 축축한 감촉이 뇌수를 긁어내리는 것 같지만, 도저히 손을 빼낼 수가 없었다.